제 9장
한판 붙자 ⑵
길드연합은 내뱉은 공표가 있기에 여 러모로 곤란한 지경에 처하고 말았다.
사방신 길드의 일방적인 주장만 듣고 현무 길드의 편을 들어줬으니, 이러다 가는 같은 급으로 매도될 수도 있었다. 금강문에서 보낸 자료는 빈틈이 존재하 지 않았다. 이토록 정확하고 방대한 자 료를 수집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유니크연합도 길드연합의 편을 들어 주려고 하다가 된서리를 맞았다.
현무 길드와 연관된 자들이 유니크연 합에도 소속되어 있었다. 뇌물을 받고, 편의를 봐주며, 연합의 기밀 정보까지 팔아넘긴 것이다. 쉬쉬하며 어물쩍 넘 어가기에는 파급력이 너무 컸다. 설령 이대로 유야무야 잠잠해지기를 기다린 다고 해도, 금강문이 가만있지 않을 게 분명했다. 후일 늦장 대응을 하다가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기에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감사가 들어갔다.
이로 인해 유니크연합은 길드연합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가만이나 있었으면 그나마 파장이 적 을 텐데, 벌집을 쑤신 꼴이었다. 감사를 받는 내내 줄줄이 직책이 잘려나가고 있는 가운데,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 버둥을 치는 유니크연합과 길드연합이 었다.
상황은 녹록하지 않았다.
여론에 숨겨진 내막이 알려지면서 숨 길 수도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쯤 되니 길드연합과 유니크연합은 이번 사태를 전가해야 할 대상을 찾아야 했다.
-처음부터 싹 다 청산을 했어야 했어
-유진그룹은 정말 안 되겠네, 불매 운 동해야 해!
-아닌 척하더니, 결국에는 쪽바리 기 업이었잖아!
-연결 고리가 어디까지 있는 거야?
-이건 그냥 일본에 돈을 주는 거였어!
-이번에는 말로 끝내선 안 된다고!
-맞아, 본때를 보여줘야 해! 저번처럼 또 잊어버리진 말자고. 왜 매번 당하고 서 잊어버리는 건지!
-그래도 되놈들처럼 무식한 짓을 해 선 안 돼.
-맞아, 상도덕이 있지. 정말 되놈들은 상종 못할 놈들이라니까.
인터넷으로 확산되는 유진그룹에 대 한 소문이 일파만파였다.
일본 자금으로 설립되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국내 매출이 훨씬 컸다. 그럼에 도 모든 자금이 모회사인 일본으로 빠 져나가고 있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반 감이 엄청났다. 그런 가운데 터진 소문 은 큰 파장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현무 길드는 온갖 더러운 일을 다 하고 다녔네.
-뭐, 이런 쓰레기들이 다 있냐!
-사람 죽이는 어새신 길드였네, 그걸 길드연합에선 옹호한 거고.
-유유상종이지, 내로남불의 정석이다.
-이번에도 금강문이라며!
-거봐, 내가 뭐랬어! 얘기는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고 했잖아!
-금강문주께서 아무 이유 없이 움직 일 분이 아니시지.
-난 한순간이지만 문주님을 의심한 걸 반성하고 있다고.
현무 길드의 패망으로 금강문이 타격 을 입을 거란 초반의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었다.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며 금 강문에 대한 칭송이 나날이 높아졌다. 매국노 청산과 부패 청산의 일등공신이 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럴 때일수록 금 강문주처럼 결단력 있고, 강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현무 길드와 연관된 유진그룹은 몰매 를 맞고 있었다. 감사까지 들어와서 난 장판이 되었다. 사실 그간 관행처럼 해 온 일들이라 정부 차원에서 묵과한 경 우도 있었다. 사소한 부분까지 자잘하 게 걸고 넘어가면 기업 경영에 어려움 이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정부에서도 봐주기가 어려 웠다.
유니크연합과 정부가 합심해서 유진 그룹의 총수일가를 탈탈 털었다. 금강 문에서 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대조하고 있기에 뺀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탈세, 편법 증여, 불법적인 일까지. 빠 르게 조사가 되고, 판결이 나왔다.
속전속결, 총수 일가에 대한 막대한 추징금이 나왔다. 설상가상으로 주가지 수까지 급락을 하면서 유진그룹은 조각 나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결국 이사회 를 열어 대대적인 쇄신을 단행해야 했 다. 유진그룹으로선 기업이 망하면 실 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걸 강조해 야 할 판이다.
-유진그룹의 회장실.
반백의 정장을 입은 노인이 격노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본가의 결정입니다.”
“내가 그동안 가문을 위해서 한 일이 얼만데, 이런 식으로 나를 버려!”
“순순히 물러나지요.”
노인은 유진그룹의 총수, 유경환 회장 이다.
그는 이사회에서 물러나라고 종용을 받았다. 거의 결정이 난 상태였다. 그럼 에도 물러나지 않았던 건, 네즈미가가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네즈미가가 지 분권을 행사하면 이사회에서 뭐라고 하 든,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가문에서 버 림을 받은 이상, 자생하는 수밖에 없다.
비틀!
망연자실한 유 회장은 뒷목을 잡았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에서 탈세 추징금 까지 나왔다. 그 액수가 이제까지의 추 징금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조 단위의 액수다. 강제 집행이 들어와 집까지 압 류를 당하게 된 상태다.
쫘악!
유 회장은 눈앞에 아들이 보이자 화 가 폭발해 손찌검을 했다.
“네 아들 녀석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 더냐!”
“아버지, 화낸다고 될 일은 아니잖아 요. 남아 있는 거라도 챙겨야 할 때입니 다.”
“뚫린 입이라고, 말은 청산유수구나!”
“이미 벌어진 일입니다. 한탄만 한다 고 달라집니까!”
분노에 이성을 잃은 유 회장과 달리 유 사장은 그나마 이성적이었다. 남아 있는 걸 최대한 감추고 보전해야 했다. 그래야 다음을 노릴 수도 있었다.
덜덜덜!
병상에서 겨우 일어난 유호진은 회사
는 물론 집까지 넘어가는 걸 목도해야 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을 간다고 하 는데, 하루아침에 쫄딱 망하고 말았다. 남아 있는 거라고 해봐야, 예전과 비교 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이건 꿈이야?’
악몽이 아니고서야, 가지고 있던 모든 게 사상누각이 되어버렸다. 그 새끼한 테 당하고 난 후, 복수할 계획이었는데 부질없는 짓이었다. 지금은 가지고 있 는 것이라도 건사를 해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재산을 빼돌리고, 스위스 계좌에 있는 자산도 확인해봐야 한다.
때마침 일까?
드륵.
문을 열고 낯선 자들이 들어온다. 그 룹 회장의 저택 정도 되면 경비 시스템 이 완벽에 가깝다. 어지간한 도둑은 담 을 넘기도 전에 잡힌다.
“?넌?”
정우를 본 유호진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100억이면 싼 거 맞지?”
정부 고위층까지 연관이 있어 대대적 인 수사에 들어갔고, 책임자를 골라내 는 데 혈안이 되었다. 여론도 눈에 불을 켜고 지켜보는 상황이라, 북한도발 뉴 스로는 감당이 되지가 않았다. 북한이 주적이기는 해도, 당장 중요한 건 부역 자의 깨끗한 청산이었다.
“빌어먹을. 받아먹을 때는 언제고 이 런 식으로 나와.”
“어쩌겠나, 자기 살기도 바쁜데.”
현무 길드가 빠지면서 3방신 길드가 되어버린 청룡 길드, 주작 길드, 백호 길드의 수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 은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꽤나 오랜 동안 현무 길드 와 거래를 해왔었다. 최대한 거래 내역 을 삭제하고, 거리를 두고는 있으나. 언 제 어떻게 상황이 돌변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정부는 물론 유니크 연합에도 손을 대봤지만, 허탕이었다. 다들 자신들 선까지 오지 않도록 꼬리 를 자르고 있는 중이다.
“금강문을 제어하지 않으면 같이 죽 을 수 있다고, 무문연합에 압박을 넣어 보는 게 어떤가?”
“그랬다가는 역풍을 맞을 걸세.”
이번 사태는 무문연합의 이름으로 행 해지고 있지만, 사실상 금강문의 단독 행동이나 마찬가지였다. 금강문이 정면 에 나선 상황에서 압력을 행사했다가는 도둑이 제 발 저린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살 수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서 더 답답 하네.”
“나도 요즘 들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으니 그만하게.”
유니크연합, 무문연합, 정부에서 감사 가 들어오진 않고 있었다. 현무 길드와 연관된 자들만 선별해서 처리를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언제 불똥이 튈지 몰랐다. 슬슬 현무 길드가 소속된 사방 신 길드와 길드연합에 대한 말이 나오 고 있어 더더욱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어차피 잘못되면 다 같이 죽으면 되 는 거지.”
“맞네, 우리만 죽을 순 없지!”
같이 죽자는 물귀신 작전은 사실 회 의적이었다. 전략도 시간이 맞아야 한 다. 무림대회가 끝날 때까지만 해도 먹 혀들어갔겠지만 현재는 불가능에 가깝 다. 여론이 사방신 길드를 주목하고 있 는 가운데, 무림대회 때 일본무가와 결 탁한 사실까지 알려지면 그땐 끝장이다. 무문연합도 타격을 받을 순 있으나, 미 미할 것이다.
“일이 벌어진 것도 아니니, 최대한 준 비를 하고 있을 수밖에 없겠지.”
“금강문도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걸 세.”
주작길드의 길드마스터 백명진의 말 이 공허하게 들렸다. 현무 길드를 치기 전에도 금강문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하물며 한밤중에 현무 길드를 붕괴시킨 금강문이었다. 무리수를 두지 않을 거 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아무튼 대책이 안 서는 인간이라니 까!”
“상종하지 말았어야 했어!”
금강문주를 생각하니 다들 뒷골이 당 겨 왔다. 그 인간하고 엮이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순탄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고춧가루를 부리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똑똑!
문 밖을 지키고 있는 길드원이 문을 두드린다.
“무슨 일이야?”
“금강문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백명진, 주지태, 유선엽은 가슴이 철 렁하며 차갑게 가라앉았다. 드디어 올 것이 온 모양31었다. 맘 같아서는 문전 박대하고 싶으나 들어는 봐야 했다.
“몇 명이나 왔지?”
“혼잡니다.”
금강문과 길드 간의 관계를 상기하면 이 밤중에 혼자 찾아왔다는 사실이 고 까뭤다. 현무 길드를 무너뜨렸다고 사 방신 길드를 우습게 여기고 있는 느낌 이다.
“들어오라고 해.”
“예, 마스터.”
방문을 허락한 길드 마스터는 고민이 깊어졌다. 금강문의 속셈을 정확히 알 아야 하는데, 감조차 오지 않았다. 어디 로 튈지 예측을 언제나 상회하는 결과 를 만들기에 방심할 수도 없는 상대였 다.
그렇다 하나, 여긴 청룡 길드의 본부 다. 주인이 홀로 찾아온 손님을 쫓아낸 다면 만고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게 된다. 어쩌면 그마저도 노렸을 수도 있었다.
10분후.
금강문의 사신이 집무실로 들어왔다. 사전에 신상을 밝혔기에 놀라지는 않았 다. 다만 길드의 심처에 들어왔음에도 위축되지 않는 자연스러움이 심기를 불
편하게 했다.
“흑금단을 맞고 있는 전호경입니다. 삼방신 길드의 마스터를 뵙게 되어 영 광입니다.”
“우리가 인사를 나눌 사이도 아니고, 용건을 밝히게.”
주지태가 나서 흑금단주의 기세를 꺾 으려고 했다. 흑금단주에 대한 평가가 남다르다는 걸 알지만, 그래 봤자 무문 의 단주일 분이었다.
‘이놈이!’
무형의 기세를 보내 짓누르려고 했건 만, 혹금단주는 태연하기만 했다. 그를 중심으로 기세가 밀려 나가 흩어져 버 렸다.
‘보통이 아니구나.’
흑금단주에 대한 소문이 과대 포장되 었다고 봤던, 세 길드 마스터의 눈빛이 바뀌었다. 가볍게 볼 놈이 아님을 직시 했다.
“바쁘신 분들이시니 시간을 길게 빼 앗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문주께서 보 내신 서신입니다.”
정우는 서신을 건넸다.
백명진이 서신을 펼쳐 읽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한판 붙자.
백명진, 주지태, 유선엽의 미간이 무 섭게 일그러졌다. 간단하면서도 속을 긁기에는 충분했다. 꼼수가 있을 거라 예측했건만, 지나치게 직선적이었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일전의 무림대회에서 벌인 일, 현무 길드와 공모한 사건들, 일본 무가에 협 조한 문서까지. 공개되면 꽤나 큰 파장 을 불러올 테니까요.”
정우는 줄줄이 읊어주었다.
그간 사방신 길드가 해왔던 만행의 민낯이었다. 공개되는 순간 사방신 길 드는 와해될 게 분명하다.
휘이잉!
흉흉한 살기가 감돌았다. 기세가 예리 하게 갈아놓은 칼이 되어 집무실 안을 난도질하고 있었다.
정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할 말을 마 저 끝냈다.
백명진, 주지태, 유선엽은 고개를 갸 웃거렸다. 문파와 길드의 명운이 걸린 대결이 분명하거늘, 조건이 파격적이었 다.
한쪽에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마지막으로 이 말을 전하라고 하셨 습니다.”
“뭐지?”
“쫄리면 뒈지시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