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장
최고의 방어는 선빵이다 (2)
“거, 정리 안 하고 뭐하는 거요. 안 할
거면 비키쇼.”
“아! 미안하네.”
예측불허의 사태에 상념이 길었던 김
재명은 대원들과 함께 뒷정리를 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이번 일은 묵과하 기 힘들다. 문파에 연락이 간 이상, 어 떤 식으로든 항의를 해야 했다.
그때 흑금단이 저희들끼리 얘기하는 걸들었다.
“문주님은 벌써 쳐들어가셨네.”
“확실히 추진력 하나는 최고시라니 까.”
“최고의 방어는 공격이라잖아.”
“타이밍이 좀 빠르지 않냐?”
“어차피 할 건데, 좀 빠르면 어때.”
“듣고 보니 그러네.”
김재명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분명 현무 길드의 행위가 지탄을 받아 마땅 한 일이나, 자초지종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지금 그 말 사실인가?”
“이거 보쇼.”
휴대용 소형 스크린을 통해 현장이 생생히 중계되고 있었다. 단순한 항의 를 크게 부풀려 말하는 줄 알았는데, 부 풀리긴 개불! 대형 사고를 빵빵 터트리 고 있었다. 시작부터 현무 길드의 정문 을 박살내고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현무 동상을 고철덩어리로 만들어버렸다. 시 비를 터는 수준마저도 넘어섰다.
“이건 전쟁이 아닌가?”
“먼저 시비를 건 건 현무 길드니 자업 자득이잖소. 흠, 자업자득이 맞냐?”
모처럼 한자를 썼더니, 어색해진 단원 이 동료에게 묻는다. 현무 길드에 쳐들 어간 금강문주에 대한 걱정은 하지도 않았다. 그 인간을 걱정하느니, 지구가 멸망하지 않을까 고심하는 편이 낫다.
“자승자득 아냐?”
“자득자승일걸?”
“동자불승이라고 하지 않나?”
“뭐라는 거야?”
혹금단의 시시껄렁한 농담(?)은 김재 명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이 한 가하게 농담 따먹기나 할 때냔 말이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되었다. 어떤 식으로 든 신룡문도 결정을 내려야 했다. 곧장 무화 장로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 장로님, 큰일 났습니다!”
-알고 있어.
“그게 아니라… 예?”
-금강문주가 현무 길드를 쳤잖아.
“……그걸 어떻게?”
-우리 정우가 알려줬으니…… 크흠.
어쨌든 지금 나도 문주님과 무력대를
이끌고 현무 길드로 가고 있으니 나중 에 통화해.
통화를 마친 김재명은 어리둥절할 따 름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가 고 있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채 보고 를 올리기도 전에 현무 길드로 출동을 했다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민데.
‘우리 정우는 또 뭐야? 바람피우시 나?’
가뜩이나 잡혀 사시는 분이거늘, 바람 까지 피우면 사내로서 굉장히 초라해진 다. 부단주는 고자질을 해야 할지 심각 하게 고민을 해야 했다.
그는 자주 가는 클럽의 룸에서 날이 어두워지기도 전부터 술 파티를 벌였다. 방송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걸 보고 있자니, 비위가 뒤틀렸었다. 탁 자에 부산하게 늘어놓은 빈 양주병들이 심경을 대변해주었다.
“건방진 년!”
유호진은 그날의 기억에서 헤어 나오 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만 상기하면 자 다가도 이불킥을 하기 일쑤였다. 쪽팔 림, 모멸감, 수치, 분노가 복잡하게 뒤 섞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아 있는 감정은 분노뿐이다.
“웃고 떠드는 것도 얼마 안 남았어”
매일 그날의 악몽이 생생히 회자되어 유호진을 괴롭혔다. 술이 없이는 잠을 자지 못하는 나날이 되었다. 하라에 대 한 원한이 커질수록, 정우에 대한 반감 은 더욱더 커졌다. 원한을 토해낼 대상 이 필요하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놈만 없었으면 그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망가뜨리는 것으로는 성 이 차지 않았다. 철저히 부서뜨리고, 가 장 아픈 상처를 새겨주어야 했다.
“천한 것이 감히 분수도 모르고 설친 대가를 치러주마.”
용서를 구걸한다 해도, 유호진은 아량 을 베풀 마음이 전혀 없었다. 사람을 잘 못 건드렸다는 걸 철저히 가르쳐줄 것 이다.
똑똑.
VIP룸을 두드렸다.
“누구야?”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다. 임무에 충실한 자들일수록 감정을 드러 내지 않도록 훈련이 되었기에 신뢰가 간다. 이번에는 현무 길드의 마스터가 제대로 일을 처리했다는 확신이 들었 다.
‘그만큼 돈을 들였으면, 당연히 제대 로 해야지.’
현무 길드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7 개의 길드 중에 하나라고 해도, 고용인 에 불과했다. 주인의 뜻을 헤아리지 못 하는 고용인은 아무리 강해도 쓸모없는 도구일 분이다.
‘내가 그룹을 물려받기만 하면.’
세상 사람들이 유진 그룹을 내수만 발아먹는 기생충이나 거머리라고 욕을 한다. 건설적이고, 수출지향적인 사업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비난을 하는데, 웃 기지도 않는 개소리다. 천한 것들이 짖 어봤자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쌓아놓 은 현금 보유만 따지면 국내 굴지의 대 기업 중에서도 최고다. 현무 길드가 아 니라 다른 길드나 문파도 돈이라면 얼 마든지 부릴 수 있었다.
3명이 들어왔다.
딸깍.
문이 닫힌다.
축 늘어진 자를 둘이 부축해서 유호 진의 앞에 꿀렸다. 시끄러운 클럽이었
고, 만취한 사람도 있기에 의심을 사지 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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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탄성과 함께 무릎을 꿇었 던 사내가 눈을 떴다. 갑작스러운 봉변 에 당황하는 눈치다. 그는 주변을 두리 번거 리다가 유호진을 보았다.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가워서 눈물이 다나는군.”
유호진은 지금을 위해서 살아온 것처 럼 느껴졌다. 같은 인간이라고 해서 다 같은 인간인 줄 아는 천한 것들이 설치 고 다니는 꼴이 같잖았다.
“어디 그때처럼 또 지껄여보시지.”
쥐새끼처럼 여인의 등 뒤에 숨어 주 둥이만 나불거렸던 놈이다. 방패막이가 사라졌으니 당연히 비굴하게 용서를 빌 거라고 확신했다. 살려달라고 바동거리 는 놈 앞에서 최악을 선사해줄 걸 상기 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꼴값은 그만 떨고, 이쯤 해라.”
유호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혹시 잘못 들었나 해서 사로잡아 온 두 사람 을 돌아봤다. 그들은 쉬어(뒷짐) 자세를 취한 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우 린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자위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 같은 환절기 에 고막이 건조하면 간혹, 헛소리가 들 린다는 말을 들은 적은 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술기운이 돌기는 했지만 만찬을 위해 서 주량을 조절했다. 더욱이 주기(酒氣) 를 빼주는 아이템을 착용하고 있어서 취하지도 않았다.
“다시 말해봐.”
“그만하라고 했다, 병신아.”
“…이 새끼가 돌았나!”
“소리 지른다.”
“허허, 그런다고 누가 올 것 같으냐!” 유호진은 헛웃음이 나올 뻔했다. 이놈 이 뭘 믿고 있나 했더니, 소리를 질러서 이 사태를 모면하려는 것이었다. 지나 치게 단순무식한 방식에 기가 찼다. 혹 시나 뭔가 다른 꼼수를 숨겨놓지 않았 을까, 고심했던 게 병신 같았다.
“이 안은 방음시설이 잘되어 있어서, 소리 지른다고 누가 도와주지도 않아. 무엇보다 이 룸 주변은 내 수하들이 버 티고 있다고!”
“갑자기 웬 설명충, 그러니까 더 병신 같잖아.”
묻지 않았는데, 주저리주저리 처한 상 황을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누 가 봐도 이상하다는 걸 모르는 모*] 다.
“사태 파악이 안 돼! 그럼 이건 어떠 냐? 네 동생.”
“수연이?”
수연이를 부르자, 자동으로 전화 통화 가 되었다. 스마트 워치에서 홀로그램 영상이 나오며 수연의 현재 상태가 고 스란히 전달되었다. 세상 편한 옷차림 을 하고 있었다. 남매이기에 볼 수 있는 편안함이다. 한여름엔 팬티만 입고 집 안을 헤집고 돌아다니는데, 그나마 지 금이 낫다. 이년이 오바를 사내로 안 볼 때가 있어 살짝 기분이 상한다. 자꾸 그 러면 이 오빠도 벗고 다닌다고 했더니, 사진을 찍으려고 했었다.
-오빠, 지금 뭐 하는 거야?
‘한번쯤 꿇어보고 싶었다.”
기도 안 차는 헛소리거늘, 정우이기에 납득이 되었다.
명절에 부모님께 세배를 드릴 때를 제외하고 한 번도 누군가에게 꿇어본 적이 없었다. 어떤 기분이 드는지 시험 해볼 겸, 꿇어보았다. 현 시대에서 자신 을 꿇려본 이가 부모님뿐이라는 걸 상 기하면, 유호진은 자랑하고 다녀도 무 방하다.
-뭔 개소리야, 끊어.
“오빠가 끊지도 않았는데, 버릇없이
뭐 하는 짓이야.”
뚝
수연도 뚝심은 있었다.
“쩝, 내 너를 그리 버릇없이 가르치지 않았거늘.”
유호진은 하도 어이가 없어, 넋 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 그럴 것이 동생 을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버젓이 집에 잘 도착해서 목욕까지 마쳤다. 그보다 잡혀온 주제에 지나치게 대범한데다가 자연스럽기까지 했다. 주객이 전도되어 도 한참 전도되어 전두엽을 빡치게 한 다.
“이 새끼가 돌았나!”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유호진이 손을 휘둘렀다.
쫘악!
고개가 돌아갔다.
뺨이 붉어졌고, 입술이 터져 선혈이 룸 안의 벽면에 새겨졌다. 싸대기를 처 맞은 당사자의 동공에서 당황 스킬이 생성되었다.
크윽!
당황에 이은 고통, 순차적으로 그다음 은 분노였다. 유호진은 정우를 죽일 듯 이 노려보았다.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 지 않았기에 더더욱 황당하다.
“똑똑한 척하면서 상황 파악이 안 되 냐,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사로잡혀 온 놈■이 도리어 날뛰고 있 는데 아무도 저지하지 않고 있었다. 이 것만 봐도 굉장히 어색했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라고 해도 돈을 주고받았 을 텐데. 고용주가 모욕당하고 처맞기 까지 하는데 방관하고 있었다.
“어서 놈을 잡아!”
“예.”
그제야 두 사내가 양쪽에서 팔을 잡 았다.
“……뭐 하는 거야?”
붙잡힌 채 강제로 고정당한 유호진의 말투가 떨려 왔다. 그제야 감이 온 모양 인데, 늦어도 한참 늦고 말았다. 애초에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선택을 했다면 대가는 필수과목이었다. 선택하 지 않아도 되는 선택과목이 아니다.
“설마?”
“설마는 무슨, 이쯤 됐으면 견적 나오 잖아. 한통속인 거.”
낯선 놈에게 무릎을 꿇었더니 꽤나 어색했던 정우다. 확실히 사람은 자신 에게 맞는 옷이 정해져 있는 모양이다. 평소 하지 않던 걸 했더니 부자연스러 웠다.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성싶어!”
“언성이 커졌네. 그런다고 들리지 않 는다며.”
방음 시설이 좋은 클럽의 VIP룸, 소 파도 최적화를 이루었다. 이 안에서 뭘 했을지 모르지만, 깨끗하지는 않을 테 고. 젊음을 질퍽하게 적시며 타락의 향 연이 펼쳐졌을 거란 판단이 선다. 물론 나브지는 않다. 자기 돈 갖고 놀겠다는 데 욕하는 것도 웃기다.
정우는 룸 안에 있는 화장실로 가서 머리하고 옷을 정리했다. 거울을 보며 나지막하게 앞으로 일어날 일을 중얼거 렸다.
“팔을 자를까? 다리를 자를까? 고민 되네.”
움찔!
방음 시설은 잘됐는데, 안에서는 또 잘 울린다. 작게 말해도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또렷하다. 하물며 유호진은 청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귀로 쏙쏙 박히는 단어라서,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다.
“모르겠다. 둘 다 자르자.”
이런 고민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 아? 와 비슷하다.
헉!
현실을 인지한 유호진의 뇌리로 분노 대신 공포가 밀려왔다. 일상처럼 대수 롭지 않은 말투라서, 더 두려웠다.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좀 전까지만 해도 살려두지 않는다
고 했던 게 누구더라.”
싹싹 빌어도 용서는커녕 정우 앞에서 수연이를 겁탈하려던 놈이었다. 그런 주제에 이제는 살려달라고 빌고 있었다. 인간이 처한 현실에 따라서 얼마나 이 기적이고, 추악해지는지를 엿볼 수 있 는 대목이다.
“다시는 안 그럴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다 해주겠어!”
“다 해주겠다고?”
“돈을 원해, 액수를 말해!”
유호진은 세상에 돈 싫어하는 놈 없 다고 생각했다. 돈이 얼마가 들든 이 상 황만 모면하면 되었다. 어떤 수작을 부 렸는지 몰라도 되갚아줄 방법이 있었 다.
“협상은 좀 있다 하고. 잘못했으면 맞 아야겠지.”
“뭐?”
정우는 분풀이를 해야 했다.
고*] 새끼도 되지 않은 버러지들이 주제를 모르면 가르쳐주는 게 인간의 도리. 인간 같지 않은 짓을 하고도 버젓 이 돌아다니며 양아치 짓을 하도록 방 치하는 건 옳지 않았다. 맞을 짓 했으면 맞고, 죽을 짓 했으면 죽이면 된다. 아 주 간단한 삶의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