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득템 ⑵
‘모양이 좀 빠지지만 하는 수 없지.’
한 여인이 담벼락을 앞에 두고 있었 다. 평소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 마음 에 들지는 않는다. 손을 쓰는 건 하수의 계책, 눈빛으로 마음까지 얻어냈던 이 력에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하나, 길드 마스터의 명령이다. 언젠가는 잡아먹을 생각이지만, 아직은 길드마스터를 넘어 서지 못해 잠자코 따라야 했다.
‘집도 좋고, 돈도 많고, 생기도 생생하 고, 이게 바로 일석 삼조지.’
평범한 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1,000 평이 넘는 대지에 대 저택을 짓고 사는 일반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막대한 재 력을 쌓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조사를 해보니 하이퍼 팩토리는 신흥 대기업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했기에 미 래가 밝았다. 목표물을 손 안에 넣으면 평생 마르지 않는 돈, 생기 주머니가 된 다. 이보다 더 매력적인 목표물은 없을 거다.
쓰읍!
입맛을 다신 공연화는 단 한 번의 도 약으로 5미터가 넘는 담벼락을 뛰어넘 었다. 일반 여인이 아님을 드러내는 장 면이다.
정원의 잔디밭에 사분히 착지한 그녀 는 주변을 돌아봤다.
어둠이 짙게 내리깔리고, 안개비가 추
적추적 내리고 있어 시야는 꽝이었다. 적외선 렌즈도 이런 날씨에는 꽝이다. 휴전선 근처의 적외선 카메라가 안개가 끼면 무용지물인 사실을 알면 다들 놀 랄걸. 영화에서도 완벽하진 않은 게 현 실이다.
▲ eg;
그녀의 신형은 마치 빙판을 미끄러져 가듯 중력을 거슬렀다. 한국과 유럽의 미(美)가 풍기는 저택에 접근했다.
두웅.
그녀는 저택 안에 있는 젊음의 감도 를 체크해보았다. 인간의 생기는 나이 가 들어감에 따라 빛이 달라진다. 이는 서글픈 현실이자 절대명제다.
‘어?’
이게 아니잖아, 왜라는 의혹이 생겼 다.
문을 열려고 했던 공연화, 닿지 않는 허무한 감촉에 의아해했다. 거리를 잘 못 계산했을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 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가 잡히지 않 는다면 다른 이유가 있어야 한다.
번쩍!
찰나간 동공을 파고들어 오는 거대한
빛의 물결이 포화를 이루어 산개한다.
강렬한 빛의 발현에 공연화는 의도치 않게 눈을 감아야 했다.
“뭐야?”
동공을 감싸던 얇은 살 껍질이 한 번 내려갔다 올라갔을 뿐이거늘.
나타난 현실은 어둠이 아닌 밝은 대 낮이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비는커녕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깨끗하다. 불어오 는 바람마저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청 량함이 실렸다. 강원도의 공기 좋은 산 골을 가본 적이 있다면 예상 가능하다.
“결계!”
밤이 대낮으로 바뀌고, 눅눅했던 비가
멈춰서 좋기는커녕 긴장이 육신을 조여 온다. 공연화는 인상을 구겼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결계에 갇히고 말았으니 당연하다.
“설마?”
마법사라면 결계를 쳐도 이상하지 않 았다. 그렇더라도 지나치게 완벽하고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공기는 물론, 냄 새까지도 산뜻하다. 지금 시각이 밤이 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면, 의심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휘
공연화는 놀라서 돌아섰다. 다가올 때 까지 전혀 기척을 파악하지 못했다. 무 인처럼 기감으로 기척을 파악하지는 않 지만, 속성이 생기를 인지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속성이 발동되지 않았다는 뜻 이다.
“너는‘?”
“현무 길드의 늙은 고양이가 언제부 터 도둑고양기로 전직한 거지?”
“뭐?”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말귀도 어둡
군.”
공연화는 목표물의 갑작스러운 등장 에도 놀랐지만, 정체를 알고 있는 것에 더 놀랐다. 예상을 하지 못했기에 당혹 스럽다.
곧 분노가 차올랐다.
길드에서도 입을 잘못 놀렸던 놈들은 두 번 다시 주둥이를 나불대지 못했었 다. 하물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가 자신을 놀리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지?”
“길 고양이처럼 주변을 기웃거리는데, 모른 척하기도 힘들더군. 생선이라도 던져줄 걸 그랬나 봐.”
공연화는 울컥했다.
저급한 표현은 받아들이면 그만이나, 그간 놈의 개수작에 휘말려 개고생을 한 것이다. 접점을 찾지 못했던 그 일련 의 상황들이 우연이 아니라, 놈의 의도 적인 계획이라니. 애송이의 손바닥 안 에서 놀아났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분노에 이성을 잃고 분별력 없 이 달려들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오히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가공할 염기를 풍겼다.
“어머, 동생! 누나한테 그러면 못써 잉.”
여자의 변신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독 기를 풀풀 풍기던 여인이 사랑을 갈구 하는 정욕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저 정 도면 방송에 나오는 섹시 콘셉트의 미 녀들은 다 처바르고도 남는다.
“동생, 누가?”
“누구긴, 바로 너지.”
170센티미터의 작지 않은 키에 완벽 에 가까운 비율, 동양인이라고는 믿어 지지 않는 바스트와 잘록한 허리 라인 을 지닌 공연화다. 섹시함과 큐트함이 공존하는 마스크까지, 완벽하다 할 수 있었다. 어지간한 여 아이돌은 오징어 로 만들어버린다. 여기에 치명적인 염 기는 사내로 하여금 안달이 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네까짓 게 넘어오지 않고 배길 수 있 을 것 같아!’
공연화에게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 다. 사내라면 그 어떤 상대라도 발정 난 짐승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주민번호에 등록된 나이를 보면 내 아버지보다 많던데, 누나라니 염치도 없군.”
할머니라고 불러야 마땅한 연세시다.
실제로 현무 길드의 길드장도 공연화 보다 어리다.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 과하다고 해도, 우리나라의 정서에는 맞지 않았다. 실제로 연세 많은 할머니 가 약관의 사내에게 교태를 부리면 받 아들일 수 있겠는가. 이는 남녀가 바뀌 어도 마찬가지다. 때론 스무 살 차이의 결혼을 하기도 하나, 이는 대기업 회장 이나 연예인과 같은 특수한 경우다. 일 반인도 그럴 수 있다는 건 착각에 불과 하다.
하물며 정우와 공연화의 신체적 차이 는 60세에 달한다.
“……너 어떻게?”
화사한 미소와 함께 농염한 자세를 취하며 몸을 비비 꼬며 다가섰던 공연 화는 얼어붙었다. 염기와 더불어 유혹 의 속성까지 발휘하고 있었다. 사내라 면 벗어나기 힘든, 정염(情炎)의 수렁이 었다. 하물며 정우는 이제 막 청춘을 불 태우는 스무 살에 불과했다. 정욕을 참 지 못하고 달려들어야 마땅했다.
“놀라긴, 당연한 일이지.”
“당연하다고?”
“나이가 들더니 노망이 났나. 벌써 잊 은거야?”
“무슨 말을 하는 것이냐?”
“이 안이 어디라고 생각한 거야? 강원 도의 한적한 시골이겠어. 설마 앞에 있 는 내가 진짜라고 여기고 있는 건 아니 지? 그렇다면 실망인데.”
공연화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우의 화술에 휘말려 이성적인 판단 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유혹을 하려고 해도 상대가 앞에 있어야 했다. 있지도 않은 허상을 대상으로 혼자서 지랄발광 을 했으니, 낯빛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 이 당연하다.
부르르르!
살면서 오늘처럼 부끄럽고, 창피하기 는 처음이었다. 공연화는 냉정하려고 노력했지만, 연이어 말리자 폭발하고 말았다.
화르르르!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범 상치 않았다.
그저 사내를 유혹하는 기술만 가진 여인이라고 보면 곤란했다. 능히 절대 강자의 반열에 오르고도 남을 무시무시 한 기세다. 기세는 육신이 품고 있는 공 력과 융합하여 공간을 흔들어놓았다.
강렬한 기세로 인해서 결계마저 흔들 린다. 그녀의 머리카락이 불꽃처럼 휘 날리고 있었다. 여전히 가공할 염기를 부리고 있으나, 공포영화를 연상시켰다.
“날 화나게 했으니, 꽤나 아플 거야.”
공연화의 육신에서 붐어져 나오는 붉 은 기운이 맹렬히 원을 그리더니 날카 로운 칼날이 되어 가리지 않고 갈가리 찢어놓았다.
푸아아아앙’!
폭발이 연쇄적으로 터지면서 중첩이 된다. 반진력이 되돌아와 파괴력을 늘 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파워는 끝을 모 르고 상승했다.
-환환색정공(幻幻色情功) 환락난사, 환 환멸멸(幻幻滅滅).
?융합진기(融合眞氣) 개방.
적광이 결계를 폭사하며 결계를 무너 뜨린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융합 된 진기가 완성되더니 용트림을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무수한 변화와 날카로 움이 깃들어 있었다. 결계를 촘촘히 베 어내며 폭발시켰다.
꽈아0}0?앙!
살아 있는 생명체의 고막을 찢어발기 는 굉음이 토해진 후, 밝았던 공간이 어 두워지며 안개비가 추적추적 내려왔다.
허!
망연히 선 정우의 두 눈에 놀람이 자 리했다.
예상을 상회했던 것일까?
스르륵!
공연화가 붉디붉은 혀로 입술을 핥으 며 입맛을 다신다. 그녀에게서 붐어져 나오는 염기는 인간의 경계를 초월해 버렸다.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 이 빨려 들어갈 듯 무시무시하다.
큭
정우의 두 눈에 당혹성이 새겨졌다.
한데 연기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실감 난다. 당황한 기색이라 말투까지 떨린 다.
“……어림없다! 토네이도 익스플로 전!”
집중된 마력이 공간에 형성되더니, 나 선을 그리는 격렬한 바람이 공연화를 집어삼켰다. 정점에 이르렀을 때 응축 된 바람이 폭발하며 안개비를 홀어내고, 정원의 거죽을 벗겨내었다.
-블래스트 마그마, 초열지옥!
-블리자드 임팩트, 빙하지옥!
뜨겁게 달아올랐던 일대가 급속 냉동
을 하며 균형을 이루지만, 생명체가 살 아 숨쉬기 어려운 지옥으로 만들었다.
열기에 안개비가 증발되며 수증기를 발산하더니 어느새 얼음으로 뒤덮인 빙 하의 대지로 화했다.
정우는 만족하지 않고 마지막 일격을 선사했다. 얼음의 대지 속에 갇힌 공연 화를 산산조각 내 버리려는 것이다.
-화이어 레인, 불벼락!
7중첩의 마력이 한 번 더 중첩되어 불귀지옥을 완성했다. 아름다움을 자랑 했던 정원이 황폐화된 공간으로 변해버 렸다.
정우는 그제야 당혹감을 지우고 힘겹 게 미소를 지었다.
“결계를 부순 건 의외긴 해도 내 상대 는 아니야.”
소모된 마력이 크기는 하지만 쉬고 나면 해결된다.
‘ 응?’
정우의 눈앞에 여인이 서 있었다.
“재롱은 다 피운 거니?”
“...아니?”
“놀라는 표정이 귀엽네.”
“……다가오지 마.”
“그럼 그렇게 할게.”
“……제기랄!”
다가올 필요가 없어졌다. 폭발적으로 증가한 염기가 제공권을 형성하고 있었 다. 정우는 그 안에 제압이 되고 말았 다.
“이리 와.”
“?안 돼!”
“이 누님의 외로움과 분노를 위로해 줘야지, 어서.”
돌아서지 못한 정우는 안간힘을 쓰지 만 무력해지고 말았다. 의지는 사라지 고 정욕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제 발로 공연화를 향해 걸어가 안겼다. 품에 안 긴 정우를 내려다보는 공연화의 눈빛은 차가웠다.
“네 녀석의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철 저히 망가뜨려 줄게.”
공연화는 사로잡은 장난감을 쉽게 죽 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오늘과 같은 수 모와 굴욕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열 배로 되돌려주지 않고서는 풀리지 않을 것이다.
“재밌나?”
공연화는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놀라
서 돌아보고 말았다. 돌아선 공간에 품 안에 있어야 할 제물이 버젓이 서 있었 다.
z、gg 큰;
품에 있었던 정우가 연기가 되어 사 라졌다.
공연화는 망연한 듯, 현실을 인지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 설마?”
“어때, 내 연기가? 쓸 만하지.”
공연화는 모멸감에 치를 떨어야 했다. 결계를 부수어 놈의 오만함을 부수고 노예로 만들었다고 자신했건만, 여태 놈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있었다.
“너 이 새끼 절대 가만두지 않아!”
“본성을 드러내니까, 얼마나 자연스럽 고 좋아.”
잠깐의 여홍을 즐긴 정우는 평소와 다르게 시간을 끌고 있었다. 효율적인 전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마치 가 지고 있는 모든 걸 토해내도록 지속적 으로 자극하고 있었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
“더 예브네.”
어르고 달래는 정우의 화술에 공연화 는 더 열이 받았다. 이쯤 되면 유혹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세 살배기 아이도 알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굴욕을 당하고 이대로 물러설 그녀가 아니었다.
-환환색정공 극의, 열락지옥(M地 獄).
이번에도 환상일 수 있기에 공연화는 전력을 끄집어냈다. 단숨에 정우와의 거리를 좁히고 사방을 차단했다.
휘리리리릭!
정우의 운신이 포위되었다.
공연화의 보일 듯 말 듯 나신에 가까 운 육신이 곳곳에 새겨졌다. 사내를 죽 이려고 작정한 최고의 기술이었다. 일 단 열락지옥에 빠지면 사내라면 빠져나 오지 못한다. 생기가 빠져 미라가 될 때 까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정욕에 발버 둥을 친다.
“몸매 좋네.”
정우는 풍경을 감상하듯 공연화의 나 신을 구경했다. 요로코롬 노골적인 광 경은 좀처럼 관람하기 힘들다. 몸매나 얼굴만 놓고 보면 공연화와 견줄 대상 은 많지 않았다. 하물며 색기가 좔좔 흐 르는 계집은 더더욱.
“감상을 했으면, 답례를 해야겠지.”
정우는 정면에서 춤을 추는 공연화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좋은 구경에, 좋은 주먹질로.
‘흥, 멍청한놈!’
열락지옥은 그녀가 만들어낸 현실, 언 제든 마음만 먹으면 실(實)과 허(虛)의 경계를 무너뜨릴 수 있었다. 정우의 후 방을 점한 공연화는 빠르게 다가가 등 뒤를 노렸다.
소성 개방, 죽음의 다이아몬드.
-환환색정공, 극락수(極樂手).
그녀의 왼팔이 날카롭게 갈아놓은 다 이아몬드처럼 변했다. 여기에 운집된 기운이 형태를 이루더니 수강을 완성한 다.
진신의 무력을 선보인 적이 드물기는 하나, 그녀는 8급의 유니크다. 속성등급 과 공력의 양만 놓고 본다면 각 무문의 수장급에 비견되었다.
푸악!
둔탁한 파열음이 울렸다.
주춤!
아찔한 충격에 물러선 공연화는 홀러 내리는 코피도 인식하지 못한 채 넋이 나갔다. 후방의 제공권을 선점하고, 치 명타를 가했는데 오히려 공격을 허용했 다.
“?우연이 아니고서야.”
“맞아, 우연이야.”
불통과 거짓은 없다.
소통의 정우는 순순히 인정하며 재차 주먹질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