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41화 (341/500)

제 6장

신생 무력단 (3)

파파파팟!

주고받는 공수는 거울을 마주하고 있 는 것 같았다.

수의 예측이 귀신과 같았다. 무인들은

두 눈을 의심해야 했다. 저 빠른 속도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예측이 이어지고 있으며, 이를 대응해 나가고 있었다.

팽팽함 공수의 연속.

그러나 당겨진 고무줄도 탄성의 한계 가 존재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정우와 천호의 역량^] 드러나기 시작했다.

‘반 박자 더 빠르다!’

천호는 권공을 마주할 때마다 식은땀 을 홀려야 했다. 처음에는 비슷한 수준 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반 보 더 빠른 예측으로 완성되었던 백전 무(百戰武)가 엉성해졌다. 궤적이 엇나 가고 있다는 걸 알아채고, 속성을 꺼내 들어 통찰안을 강화했음에도 결과는 매 한가지였다. 한번 선수를 내주자 기회 는 다시 오지 않았다.

‘이대로는 안 돼!’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

통찰안으론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천호는 변수를 만들어야 했다. 공세에서 뒤처진 이상 질질 끌려가다 장현성과 다르지 않은 패배를 당하게 된다.

사사삭!

열 번의 공방 동안 익숙한 루트를 이

용했다.

열한 번의 격돌 시 방향을 아예 바꾸 었다. 자칫 큰 피해를 양산할 궤적이었 기에 변수로서는 확실했다.

휘이이잉!

오른쪽에서 급히 왼쪽으로 틀었다. 무 리한 방향전환으로 인해 균형이 흐트러 진다. 천호의 오른쪽 가슴이 무방비가 되었다. 일격을 내지르기만 하면 승부 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착, 쿠우웅!

대지를 흔들어놓는 거친 울림.

천호는 바닥을 내리찍고 말았다. 허공

을 바라본 두 눈엔 허망함이 담겼다. 무 심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흑금단주는 마치 너의 수를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 했다. 아니,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 다.

“미숙해.”

“…그렇게 티가 났습니까?”

“많이.”

“?다른 녀석들은 모르는 것 같은데 요.”

“만족한다면 더할 말은 없다.”

천호는 오른쪽 가슴을 내주는 척하며 흑금단주의 팔을 잡아채려고 했었다.

여태 권공으로만 상대를 하다가 숨겨둔 비장의 체술을 써 숨통을 조이려고 했 건만. 흑금단주는 이마저도 꿰뚫고 있 었다.

“점쟁이가 따로 없군요.”

“그럼 복비라도 내든가.”

복비는 내기 싫었던 모양이다. 충격을 받은 천호는 의식을 놓아버렸다.

무인들 중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자랑 했던 장현성과 천호의 허무한 패배. 결 국 어느 누구도 혹금단주의 능력을 제 대로 끄집어내지 못했다. 이제는 해보 나 마나였다. 굳이 승부를 할 필요성을 못느꼈다.

하나 발동이 걸린 정우는 멈추지 않 았다. 실상 면접의 시작은 대련을 기반 으로 했었다. 장현성과 천호가 나서주 어서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이왕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자.”

“예?”

“처맞고 나면 깨닫는 베가' 있을 거 다.”

“?우린 처맞을 이유가 없…… 헉!”

순서는 정우가 정했다.

처음에는 현양문, 그다음은 무영문으

로.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권공에는 권 공으로, 검공에는 검공으로 각자의 장 기로 상대를 해주었다.

푸악!

권법가는 권법으로 처맞고, 검법가는 검법으로 처맞았다. 장기는 달라도 결 과는 매한가지. 다들 마지막 한 방을 견 디지 못하고 의식이 끊어지고 말았다.

헐!

끊어져 가는 무인들 사이에 장현성만 홀로 남았다.

‘……잘 친다!’

말도 안 되는 괴물인 줄은 알았지만

30명을 해치우는 데 1분을 넘기지 않았 다. 단순히 시간만 짧은 게 아니라, 그 시간을 효율적으로 운용했기에 더더욱 놀랐다. 이는 당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뼈 있는 가르침이었다.

“혼자는 외롭겠지?”

“예?”

“이제 와 순진한 척하긴.”

“..설마?”

정우는 모두가 자고 있는데 혼자 멀 뚱히 심심해할 장현성을 위해 동침할 기회를 주었다.

퍽, 꼴까닥!

3시간이 흘렀다.

의식을 회복한 무인들은 기절했던 과 정을 복기했다. 눈앞에서 펼쳐진 믿지 못할 광경이 시뮬레이션이 되어 뇌리에 각인되었다. 놀랍게도 그간 가로막았던 벽을 넘어설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다 들 누가 명하지 않았음에도 가부좌를 튼 채 깨달음을 소화하기 위해서 노력 했다. 이 시간의 깨달음이 얼마나 소중 한 것인지를 체감하고 있었다. 깨달음 을 소화하는 데 걸린 시간은 제각각이 었으나, 얼추 2시간은 걸렸다.

해가 넘어가는 시각.

하아

무인들은 이 일련의 현실이 꿈처럼 다가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악몽은 곧 기연이었음을 깨닫게 해준다. 한편으로 모두에게 소성(小成)을 내려준 혹금단주 가 비범함을 넘어 까마득히 높은 경지 의 무인임을 실감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었군.’

‘하룻강아지에 불과했었나.’

천호와 장현성은 씁쓸했다.

같은 사람이고, 비슷한 나이라서 노력 하면 넘어설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하 지만 재능과 노력만으로는 닿지 못할 거대한 벽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릇이 달라.’

‘인정하지 않을수가없군.’

단순히 능력만을 봤다면 마음 깊이 고개를 숙이진 않는다. 무인에게 있어 심득(心得)은 목숨보다 소중하다. 이를 대수롭지 않게 내어줄 무인은 흔치 않 다. 하물며 저토록 젊은 나이에 자신의 것을 남들에게 베푼다? 이건 도량의 차 이가 나도 너무 크게 났다. 감히 따라가 지 못할 대도(大度)였다.

“날 더 어두워지기 전에 면접을 끝내

야겠지.”

흑금단주의 목소리에 다들 깜짝 놀라 서 돌아봐야 했다. 언제 왔는지 아무도 못 느꼈다. 한데 의식을 하자 한없이 커 보였다. 다들 저절로 무릎이 굽혀지려 고했다.

“질문이 있습니다.”

“해봐.”

“어째서 저희에게 호의를 베푸시는 겁니까?”

모두를 대표해서 천호가 나섰다.

암묵적으로 천호를 인정하고 있었기 에 불만은 없었다. 그리고 다들 궁금했 다. 독문무문과 무문연합의 관계는 예 전부터 껄끄러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괴리감은 커져만 갔었다. 그런 와중 흑 금단주의 호의를 마냥 좋게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닌 지 의심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었다.

“간단히 말하면 두 가지의 이유가 있 지. 그중 하나는 본문에 대한 호의적인 시선을 만들기 위해서야. 왜 그런지 알 겠어?”

“우리의 입을 통해 금강문을 선전하 겠다는 의도군요.”

“정답. 그리고 독문무문이 자진해서

본문의 전력이 된다면 보기에도 좋잖 아.”

“저희를 꽤나 높게 평가하시는군요.”

“당장의 실력보다는 자질이 중요하니 까.”

“예선전에 쓰인 장치는 단순히 실력 만이 아니라, 발전 가능성까지 테스트 한 거군요.”

“맞아.”

천호를 비롯한 무인들은 세게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다. 작금의 상황은 우 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금강문의 철저 히 계산된 전략에 의해서 완성된 계획 이었다. 무림에 알려진 세간의 평가, 무 식함의 대명사와는 정반대였다.

“우리가 가입하지 않으면요?”

“그럼 집으로 돌아가서 평소대로 살 아가면 돼.”

강요는 아니더라도 설득이라도 할 줄 알았다. 예상과 달리 지나치게 쿨해서 되묻게 되었다.

“그간의 계획이 전부 어긋나는 건데, 금강문으로서는 손해가 아닙니까?”

“손해라니, 그럴 리가 있나.”

“어째서요?”

幻}음은 얻었으니까.”

천호는 혹금단주의 말이 무섭게 다가 왔다.

마음이 기운 것이 사실이다. 이는 부 정하기 힘들다. 금강문이 베푼 은혜는 돈으로 갚기도 버겁다. 하지만 그뿐일 까? 절대 아니다. 인정하기 싫어도 금강 문의 도움으로 무공이 성장했다. 이는 빚으로 남게 된다. 은혜를 입고도 모른 척하는 건 금수만도 못한 짓이다. 결국 금강문과 척을 지게 되면 여론뿐만 아 니라 독문무문에서도 배척당하게 된다.

‘……선택지가 없어.’

자유는 개불! 금강문에 대한 꼬리표가

남는다. 본인의 노력에 의해 실력이 상 승했을 수도 있지만, 세간의 시선은 냉 정하다. 마치 단물만 빼먹고, 외면했다 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현실이 되었다.

그럼에도 너무나 솔직해서 의아하다.

“굳이 밝힐 이유가 있었습니까?”

“숨길 필요도 없지.”

정우의 당당함에 모두는 압도당했다. 태산처럼 크고, 높았다. 무서운 심기와 태평양 같은 도량이다. 따르고 싶다는 충만한 감정이 벅차오른다.

남자는 남자를 알아본다고 하지 않던

가.

후일 그 눈 팔아버리고 싶을 테지만.

“받아주십시오.”

“지금보다 더 힘들 거다.”

“견딜 수 있습니다.”

“선택을 하면 되돌릴 수가 없어.”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후회하면?”

“목숨으로 맹세를 하겠습니다.”

“이거 참곤란하네.”

천호와 무인들은 감화되었다. 저 크고 높은 뜻에 자신들도 동참하고 싶은 욕 망이 샘솟았다. 혹금단주라면 금강문이 아닌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발판을 제 공해줄 것만 같았다.

‘무력뿐만 아니라 화술도 천하무적이 시다!’

‘갔네, 뻑 갔어!’

‘광신도를 만들어놨잖아.’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도 성공했겠 다.’

흑금단은 무인들이 감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도저히 빠 져나오기 힘든 그물망을 쳐놓고 끊임없 이 유혹을 했다. 솔직히 이쯤 되면 벗어 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저러고서 돌아설 수 있는 인간이 과연 있을까? 없다고 자신했다.

‘더 무서운 사실은 뭔지 알아?’

‘뭔데?’

‘단주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그러네.’

사람을 속이는 사기꾼이라면 거짓말 을 밥 먹듯이 한다. 그러나 단주는 거짓 말은커녕 지나치게 솔직했다. 사실대로 말을 해서 상대를 속인다. 상식적으로 는 불가능하지만, 무인들은 콩깍지가 씌어 있었다.

“진심이라면 어쩔 수 없지.”

“감사합니다!”

“그러나 절차는 지켜야 해.”

“물론입니다.”

정우는 아공간을 열어 가입 서류를 꺼냈다.

빼곡하게 못 알아들어먹을 약관으로 점철되어 있는 보험사의 약관과 비슷했 다. 실상 읽어봐도 뭔 내용인지 모를 모 호한 내용으로 채워놓았다. 말이 아! 다 르고, 어 다르다는 사실을 나중에야 안 다고 해도 돌이키진 못한다.

“사인하면 되는 겁니까?”

“읽어는 봐야지.”

정우는 끝까지 치밀했다.

조금 전의 대화를 녹음까지 해놓았다.

“단주님을 믿습니다.”

“성급한 결정은 좋지 않아.”

“괜찮습니다.”

괜찮기는, 뭐가 괜찮다는 거야?

흑금단은 저들의 망설임 없는 결정에 속으로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왜 스 스로 지옥불로 들어오기를 마다하지 않 는단 말인가. 똥인지 된장인지 맛을 보 기 전에 냄새로도 알 텐데.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 저들은 서류를 다 읽어보기도 전에 지장을 찍 고말았다.

그렇다면 환영을 해주는 수밖에.

‘본문의 노예…… 아니 무인이 된 걸 축하한다.’

정우는 자리를 벗어나기 전, 양용익에 게 속삭였다.

“알지?”

“관례대로 처리하겠습니다.”

신생무력단인 백금단(白金團)의 탄생 이었다. 혹금단이 어둠이라면 백금단은 빛, 문제는 빛과 어둠은 동전의 양면과 같았다.

단주가 떠나고 양용익이 책임자가 되

었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백금단을 맞 아주었다. 도장을 찍은 이상, 한 식구였 다.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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