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38화 (338/500)

제 5장

뒤끝은 없다 (3)

공학연구소에서 나온 정우는 사장실 로 향했다.

마도공학연구소는 건물의 최하층, 보

안을 위해 엘리베이터에 표시는 되지

않았다. 표시된 마지막 층, 창고의 벽면 에 새겨진 결계를 통해 연결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아버지는 사 장다운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교수님 뵙고 온 길이냐?”

“예, 그 나이에도 의욕을 마구 불태우 시던데요. 저조차도 교수님의 도전 정 신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답니다.”

“어째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씀드렸을 분이거 든요.”

아들을 집이 아닌 회사에서 마주하게 된 윤철은 편치 않았다. 이번에 새로 들 인 최고급 자동조절 소파가 오늘따라 바늘방석 같다. 내 아들이지만 사람 불 편하게 만드는 건 타고났다.

“현재 짓고 있는 공장 건설이 마무리 돼 가고 있으니, 2개월 안에 플렉서블도 대량생산할 수 있을 거다.”

“왜 그러세요? 누가 보면 제가 아버지 를 닦달하러 온 줄 알겠어요. 그냥 아버 지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거예요.”

“그럼 집에서만 보면 되지 않느냐.”

“아시면서. 회사에 나오지 않는데 월 급 꼬박꼬박 타 먹으면 직원들이 뭐라 고 생각하겠어요. 자고로 윗사람이라 함은 아랫사람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전 본인 능력도 아니면서 설치 고 다니는 재벌 2세는 되고 싶지 않거 든요.”

“말이나 못하면.”

정우는 하이퍼 팩토리의 이사직을 맡 고 있다.

회사의 성장 스토리를 알고 있는 직 원들이야 이해하고 넘어갈 사안이나, 내부사정을 모르는 대외적인 시각은 다 를 수밖에 없었다. 경기가 좋지 않은 시 기에 홀로 고도성장을 하는 하이퍼 팩 토리를 재계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 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흠집을 내기 위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혈안이다.

‘아비가 돼서 조언을 해주기는커녕 받 고 있으니.’

딱히 틀린 말은 아니기에 윤철도 두 말하진 않았다. 이럴 때만 정석을 따르 고 있으니 내 자식이지만 얄밉다. 매번 파격적인 행보를 하고 다니면서도, 따 지고 보면 정석을 따르는 오묘한 구석 이 있었다. 과정 하나하나를 따로 떨어 뜨려 놓으면 전혀 연관성이 없는데도, 결과가 드러나면 하나로 이어졌다. 어 린 나이에 성공가도를 달리며 천지분간 못하는 애송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은행대출은 어때요?”

“여유자금도 충분한데, 대출은 왜?”

공장 신축에 돈을 투자하여 사내유보 금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는 했어도, 유동자금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굳이 대출을 해 가면서도 무리하게 투자를 할 필요는 없었다. 빚 무서운 줄 모르고 썼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게 사업이었다.

“사업 영역을 다변화시키면서 규모를 좀 키우려고요.”

“대기업의 문어발식 경영은 여러 문

제점을 야기하고 있어. 우리까지 나서 서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만.”

대기업이 소상공인의 영역까지 진출 하는 건 옳지 않았다. 기업의 목적이 이 윤추구라고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맞지 않았다. 왜냐고? 우리나라의 대기업은 국민의 희생으로 커왔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의 국가다.

대기업은 세계 속에서 경쟁을 해야 마땅했다. 또한 당장의 이익에 급급한 나머지 국내 중소상인의 영역을 파고들 다 보면, 결국에는 제 살을 깎아 먹는 격이 된다. 어떤 산업이든 수출이 중요 하다고는 해도, 국가의 내수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위험해질 수 있었다.

단순히 외부의 시선 때문만은 아니다.

윤철은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경계했 다. 자칫 하이퍼 팩토리의 핵심사업에 대한 투자가 소홀하게 되어 이도 저도 아닌 회사로 전락할 위험이 있었다.

“이래서 아버지가 좋다니까요.”

“……그러지 마라.”

감격한 아들의 눈빛에 윤철은 부담감 만 가중되었다. 저 눈빛을 보인 이후로 벌어질 사태, 즉 과다한 업무가 기다리 고 있었다. 적당히 핑계를 대고 빠져나 올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말아야 했 다. 아들은 이미 완벽한 그물망을 설계 해놓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저 리 말하지 않는다.

“감도 좋으셔라.”

“……칭찬하지 말거라!”

윤철은 아들의 노골적인 칭찬에 불안 감이 증폭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으나, 고래는 되고 싶지 않았다.

“산운저축은행하고 스카이머니를 아 세요?”

“저축은행하고 대부업체 중에 가장

큰 곳이지 않느냐.”

케이블에서 하도 틀어대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산운저축은행과 스카이머니 광고를 봤을 것이다. 모른 다면 거짓말이다. 국민을 빚더미에 앉 히려는 게 아니냐는 부정적인 의견에 광고를 제한하라고 종종 성토한다.

“그거 이제부터 제 거예요.”

윤철은 눈만 붕어처럼 껌빽껌뻑거릴 분, 말문이 막혔다. 비록 저축은행의 탈 을 쓴 대부업체라고는 해도, 막대한 자 금을 보유하고 있었다. 산운저축은행의 자금력은 대기업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았다.

“일본에 뿌리를 두고 있을 텐데.”

“제가 그 뿌리의 주인이 됐습니다.”

“에이, 농담하지 말거라.”

“농담은 집에서도 충분합니다. 사업에 관해서는 농담하지 않습니다. 단 아버 지가 부탁하신다면 지금이라도 제가 알 고 있는 최상급 개그를 풀 용의는 있습 니다.”

“?됐다.”

윤철은 황급히 아들의 입을 막았다.

‘내 아들이지만, 개그는 정말 딸린다.

대체 어느 시대 개그를 치는 거냐.’

일본의 대부업체들이 한국에 진출해 서 국내의 자금을 쓸어 담아 본국으로 가져간다고 말이 많았다. 과거와 달리 일본은 제조업이 아닌 금융업으로 돈을 벌고 있었다.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많 은 자금을 외국에 부려놓고 있다고 보 면 된다.

“설마 금강문주하고 일본에 갔다 온 다고 했을 때?”

“아버지한테는 속일 수가 없다니까요. 족집게세요.”

칭찬은 윤철의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

다. 그보다는 강력한 의문이 형성되었 다. 스탯창이 있으면 물어보고 싶을 지 경이다.

“어떻게?”

“말하자면 너무 길고, 간단하게 설명 해 드릴게요.”

“길게 설명해도 된다.”

정우는 무림대회의 숨겨진 내막에 대 한 썰을 일부분 풀었다. 대외적으론 금 강문이 사전에 케이브 오픈을 막아서 별다른 피해가 없이 성황리가 끝이 났 다고 알려졌다. 윤철조차도 그렇게 알 고 있었다.

베일에 싸인 내막을 알자 경악과 분 노가 뒤섞였다.

“일본 내 반한 감정이 극에 달했다는 소릴 듣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노골 적으로 힘을 행사할 줄이야.”

“쟤들 입장에선 우리의 힘이 강해지 는 걸 원치는 않을 테니까요.”

한미일 공조 시스템을 강조하며 대외 적으론 우호적으로 보이나, 한국과 일 본은 경쟁관계이며 언제 어느 때라도 적으로 돌변할 수 있었다. 아주 오래전 경제 위기가 왔을 때 가장 먼저 등을 돌 리며 돈을 빼 간 일본의 행태를 기억해 야 했다. 뒤통수 맞기 싫으면 철저히 준 비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간단히 들어주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에겐 문주님이 있잖아요.”

“우리나라도 아니고 일본에서 통할 리가 없잖느냐.”

“우리 문주님은 평범한 걸 싫어하시 는 분이세요.”

정우는 금강문주가 네즈미가의 가주 를 두드려 팬 일화만 꺼내놓았다. 상세 한 설명은 등급제한이 걸린다. 전투의 잔인함까지 아버지가 알기를 바라진 않 았다. 당연히 짐작은 하고 계실 것이다.

“가문의 수장을 다들 보는 앞에서 두 드려 패다니, 금강문주답구나.”

“쪽바리들의 습성을 아시잖아요, 강자 한테는 약한 거.”

“우리라고 다를 거 같으냐.”

“아버지는 이럴 때는 꼭 솔직하시네 요.”

강자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기란, 말처 럼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한 순국선열 들이 대단할 따름이다.

“피해보상 차원에서 받았다곤 해도,

앞으로 어찌할 셈이냐?”

“양질의 자금 흐름을 만들어야지요.”

우리나라의 자금 구조는 비정상적으 로 되어 있었다. 빚이 전적으로 나쁘다 는 뜻은 아니지만, 현재의 구조가 지속 될 경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위 험이 컸다. 이 부분을 점차적으로 개선 해야만 한다.

“국내 은행들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괜찮을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나요.”

정우의 목적은 중소기업에 대한 현실 적 지원을 늘리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인재의 창업을 늘리는 선순환의 경제 흐름을 만드는 데 있다.

그 중심에 반드시 하이퍼 팩토리가 있어야 했다.

하이퍼 팩토리는 필요한 인력과 기술 을 중소기업을 통해 종합적인 피드백 시스템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 면 대기업의 하청기업으로 오인할 수도 있으나, 실질적인 지배력을 갖춘 형태 는 아니다.

“할 말이 없어지는구나.”

윤철은 소름이 돋았다. 계획을 실행하 려면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다. 이 를 위해서 일본의 은행과 대부업체를 인수한 것이다. 한편으로 타격을 받을 대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참신한 기술과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 업이 많아지는 게 사회적으론 좋을지 몰라도,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자들 에게는 먹잇감임과 동시에 위협의 대상 이다. 세상이 변해도 권력형 비리가 사 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에서 가만있겠니?”

“이참에 정부도 바꿜 필요가 있지요.”

“어쩌려고?”

정치인을 우습게 보다가 큰코다친 사 업가들이 많았다. 대기업도 정부의 눈 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무너지곤 했다. 과거 세계 10위 안의 해운회사가 하루 아침에 무너진 것만 봐도.

내부적으로 회사를 잘 다스리지 못한 경영자의 책임이 크기는 했다. 그렇다 해도 수출주도형 국가에서 중요한 운항 시스템을 갖춘 해운사를 부도처리한 건 장기적으로 봐도 큰 문제를 야기시켰 다.

“근래에 들어 우리 문주님의 인기가 많이 올라갔죠.”

“?…”뭐?”

아까부터 우리 금강문주라고 할 때 이상한 기분이 들기는 했었다. 허풍이 라고 하기에는 여론과 민심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지금 당장의 인기도로만 판단을 하면 각 정당의 후보자들을 처 바르고도 남는다. 선거에 들어가 봐야 할 일이기는 하나, 공약만 실천 가능한 방향으로 간다면 승산이 높았다.

그럼에도 윤철이 놀라는 이유는 금강 문주의 성향을 알기 때문이었다.

일전에 집들이할 때 이후로도 몇 번 만나서 술자리를 가졌었다. 호탕하고 시원한 성격이기는 한데, 지나치게 사 이다였다. 사이다도 고구마가 있어야 그 맛이 더 진해지기 마련이건만, 시작 부터 끝까지 사이다라서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그 성격에 얌전히 있을까?”

“앉아보면 알지요, 자리가 사람을 만 든다고 아버지도 이제는 사장 같아 보 이잖아요.”

"한두 사람으로 끝날 거 같지 않을 것 같구나.”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정도에서 벗 어나지는 않을 테니까요.”

정도(正道)를 언급하니 윤철은 더더욱 불안했다.

요즘 세상이 어디 정도로 가고 있던 가, 미쳐 돌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금강문주가 과연 그 꼴을 두 고 보겠는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 벌 어질지 모른다.

“하이퍼 팩토리가 나서서 선순환의 토대를 만드는 겁니다. 그리되면 대한 그룹과 연계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이상은 좋다만, 사방에 적들이 우글 거릴 텐데.”

나이가 들어선지 몰라도 윤철은 장밋 빛 미래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상으 로 끝나면 모르겠는데, 실천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불안하다.

“아버지 힘내세요, 제가 있잖아요.”

“넌 지금 그걸 응원이라고 하는 거 냐!”

아들의 응원에 힘이 나기는커녕, 윤철 은 부담백배에 첩첩산중이었다. 앞으로 도 일이 많아질 것 같아 답답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면서요.”

“그건 내가 할 말이지.”

요즘 젊은 세대가 힘든 일은 하지도

않고, 본인 능력에 맞지 않게 허세만 부 린다고 어른 세대들이 지적을 하곤 한 다. 반면에 윤철은 아들에게 입도 뻥끗 못 하고 있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폭발할 것이다. 지금도 힘들어 죽겠는데, 아들이 더 열 심히 해봐라. 상상만으로도 소름이 돋 는다.

“여태 답답해서 어떻게 산 거냐?”

“전 답답하지 않은데요.”

“부조리를 보면서도 답답하지 않았다 고, 그런 녀석이 이토록 엄청난 계획을 세웠다는 걸 믿으라는 게냐.”

“세상은 기득권을 위주로 돌아가는 거잖아요. 가진 자가 가진 권력을 휘두 른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요. 힘이 있 는데 어느 누가 타협을 하겠어요.”

“그래서 이제는 네가 가진 자가 되려 는거냐?”

“아무래도 개털보단 낫죠. 물론 제가 만들어가는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여긴 다면 누구든 도전해도 돼요. 전 최선을 다해 막을 테니까요.”

이것이 정우가 원하는 그림이다. 굳이 자신의 정의가 옳다고 강요하진 않는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도전을 하면 된다. 선택은 오롯이 본인의 몫이다. 도 전해서 보다 나은 현실을 만들 수 있다 면 받아줄 순 있다.

“내가 보기엔 공산당 같은데.”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거죠.”

중국 가서 말도 안 되는 땡깡 그만 부 리고, 국제법을 따르라고 권유해봐라. 자기들은 땡깡이 아니라 당연한 행동을 했을 분이라고 여길걸. 국제관계가 동 등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이상주의적 인 관점에 불과하다. 현실은 전혀 동등 하지 않다. 미국 역시도 자국 보호를 위 해서 억지 섞인 주장을 펴는데, 공산당 이 지배하는 중국은 말할 것도 없다. 국 제관계의 동등함은 수평적인 힘의 균등 이 이루어졌을 때나 가능하다.

“됐고, 수연이 좀 그만 괴롭혀라.”

“무슨 말씀이신지?”

“넌 동생한테 간섭이 너무 심해.”

윤철은 딸이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한데, 아들놈이 지 딸도 아 니면서 간섭이 장난 아니다. 아들을 닮 아가고 있는 딸을 보는 심정이 달갑지 않았다. 팍팍함은 아들 하나로 충분하 다. 딸까지 나서서 아비를 닦달하는 꼴 을 보고싶진 않다.

“간섭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어련하시겠냐.”

윤철은 이쯤 했다.

수연이가 징징거려서 돕기는 하겠는 데, 이러다가 자신한테도 불똥이 떨어 질 수 있었다. 실상 정우의 훈련으로 수 연이는 밤늦게 혼자 골목을 걸어 다녀 도 될 만큼 걱정이 되지 않았다.

‘슬슬 움직일때가됐는데.’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을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어놓았다. 하나 움직 이지 않는다면 이쯤에서 덮어줄 용의는 있었다. 가만있는데 건드릴 만큼 옹졸 하지 않았다.

‘난 뒤끝 없는 사람이거든.’

뒤끝은 없는 대신, 앞끝은 무진장 많 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