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피해보상 (3)
그는 혹금단주의 까만 속내를 읽었다. 일본 내 자금을 금강문의 자산으로 포 함시키지 않은 것도 고도의 계략이 숨 어 있었다.
일본의 반한 감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졌다. 이런 시국에 금강문이 본가 를 먹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금줄이 끊기는 건 둘째 치고, 남은 11가문의 공동 표적이 되어버린다. 속이 이렇게 까지 시커먼 인간이 있다는 사실이 놀 라울 지경이다. 나쁜 놈도 등급이 있음 을 실감했다.
“가주는 역시 눈치가 빨라서 좋아. 앞 으로 우리가 좀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단 말이야.”
“감읍할 따름입니다.”
정우는 네 즈미가를 무너뜨리기보다는
일우그룹을 대신할 저금통으로 만들어, 발대를 꽂기로 결정했다. 또한 반한 감 정을 극대화해줄 필요성이 있었다. 한 국 내 네즈미가의 자본을 합법적으로 얻었다고 공표를 해도 우익성향의 일본 인들은 믿지 않을 거다. 알게 모르게 한 국의 외압이 들어갔다고 여길 게 분명 하다.
‘그건 그거고, 우리나란 다르지.’
정우는 네즈미가로부터 받은 저축은 행의 지분을 가지고 돈 놀이를 할 생각 이 애초에 없었다. 정부의 공식적인 이 자율보다 낮은 이율인 10%대 이하로 감해주고, 복리이자를 상쇄하기로 했다. 하나 돈 무서운 줄 모르고 써댄 놈들까 지 챙겨줄 마음은 없다. 상습적이거나 고의적으로 돈을 갚지 않는 족속들은 흑막을 이용해서 모조리 다 색출해 그 에 합당한 대접을 해줄 요량이다.
‘현상유지면 족하지.’
저축은행은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밑거름에 불과하다. 수익을 창출하기보 다는, 현상 유지를 통해 국내의 자금 흐 름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 쓸 생각이다. 국가의 빚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 한 정책이었다.
시기는 조절할 필요가 있었다. 사람은 쉽게 잊는 동물이다. 반전이 필요할 때 회심의 카드로 사용할 것이다.
‘국내 은행이 가만있지 않겠지.’
정우의 노림수다.
애써 건드리지는 않겠으나, 어쩌랴. 인간의 욕망은 수익하락을 용납하지 못 한다. 그러나 이를 탓하진 않았다. 은행 역시도 수많은 사람의 이합집산으로 이 루어져 있다. 수익을 내지 못하면 반발 은 당연했다. 마치 대학 기숙사를 짓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는 원룸촌 주인들처 럼. 사람은 처한 위치나 상황에 따라서 이기적인 선택을 하도록 종용받는다.
‘몇 가지만 해결해도 지지율은 더 오 를 수밖에 없지. 크크크!’
이 모든 걸 행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미끼가 필요했다.
네즈미가는 앞으로도 쓸모가 많았다.
일본 내에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다. 국내에 자회사를 두고 일본에 모회사를 둔 기 업처럼, 자금을 빨아먹는 데는 제격이 었다. 사전에 무문연합의 회의에서 네 즈미가의 처리를 금강문의 독단으로 처 리하도록 한 이유이기도 하다.
“각도의 지부장들을 본가로 불러들여, 이유는 알고 있겠지?”
“그렇습니다.”
네즈미가의 본가에 오성망혼진을 해 체하지 않은 이유다. 아직 각 지부의 지 부장들은 본가가 점령당한 사실을 모른 다. 혹시라도 반발할 염려가 있기에 신 성에 의한 세뇌는 필수다. 네즈미가를 완전히 장악한 이후의 행보도 정해졌 다.
“가문의 전력이 반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토리가가 안다면 어떻게 나올 것같아?”
“설마?”
“혼자보단 둘이 낫잖아.”
혹금단주의 미소에 유우신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저자는 인간이 아니라 악 마였다. 가공할 무력분만 아니라 악마 적인 심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악마를 불러들였구나!’
자업자득이라, 유우신은 하소연조차 못 했다. 가만히 있었으면 가문이 풍비 박산 나지도 않았을 텐데, 한술 더 떠 일본에 대재앙을 불어들이고 말았다. 일본의 역사에 기록될 대죄인이 되었 다.
“너무 티가 나면 안 되니까, 알지?”
“물론입니다.”
티 나게 정보를 흘리면 함정이라 여 기고 경계할 수 있었다. 조심성이 많은 성향이라면 더더욱. 최대한 사건의 정 보를 은폐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줘야 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상하다는 걸 모 르진 않을 테고.’
정우는 일본 무림의 12가문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개개인을 놓고 보면 굉장히 단순해
보이나, 실제적으로 하나의 거대한 집 단이 되었을 때는 완전히 다르다. 단체 의 의지를 개인이 절대 거스르지 않는 다. 일본의 수뇌부 입장에서는 다스리 기 편한 국민 성향이다. 국가의 의지를 반하지 않으니, 국가가 정한 뜻을 절대 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자기 주체성이 강한 우리와는 정반대 이고.’
한국은 개인의 성향이 지나치게 강해 의견을 일치시키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는 국가의 망조가 극에 이를 때 더더 욱 잘 나타난다. 망해가는 기류를 알면 서도 제 잇속을 챙기려는 인간의 욕망 이 극대화되었다고 보면 된다. 아니라 면 나라가 망하지는 않았을 터.
우웅
정우는 아-공간을 열어 서류를 꺼내 서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일종의 연판장이라고 할까, 여기에 다들 서명해.”
서류 작성은 오덕X가 도맡아서 해놓 았다. 특히 내용이 압권이다. 절대명령 에 의한 확실한 족쇄를 채웠다. 서류를 작성했던 오덕X는 속성력 전부를 탈탈 터는 바람에 보름간 요양을 해야 했다.
“다 끝났으면 영화나 볼까?”
“예?”
갑자기 웬 영화.
유우신과 수뇌부는 의아한 기색이 완 연했다. 팔자 좋게 영화나 보고 있을 때 가 아니지 않은가. 유구한 역사를 자랑 하는 네즈미가를 금강문에 갖다 바친 최악의 날이었다. 영화를 보고 싶을 리 가 없지 않은가.
“나중에 물어볼 거니까, 알아서들 해.”
정우는 영화 시청을 강요했다.
-꽃보다 금강문주.
덕질 성향이 강한 일본인을 위한 정 우의 배려였다.
한국인이라면 오글거려서 끝까지 보 지 못할 영화가 버젓이 순위에 올라가 있는 것만 봐도 범상치 않다.
영화는 무림대회를 훼방 놓으려는 네 즈미가의 간계를 막아내기 위한 금강문 주의 활약상으로 점철되었다. 철저히 금강문주 위주로 나오는 전기영화의 성 격이 강하다.
-금강문 신(新) 오의 비권.
-정의구현! 쪽빠리는 싫어요, 쪽국말
살권(俊國扶殺章)
유우신과 수뇌부는 영화의 내용에 할 말을 잃었다. 이토록 대놓고 일본은 싫 다고 말하는 영화라니. 하물며 본가의 총관이 저 말도 안 되는 초식에 어이없 이 당하고 있었다.
욱씬, 욱씬
유우신은 본인이 처맞는 것처럼 금강 문주에게 맞은 부위가 아파 왔다. 이 영 화를 일본인이 봤다면 결과는 뻔했다. 반한영화의 선봉장 역할을 할 게 분명 하다. 또한 그 영화에 출연한 네즈미가 는 일본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알려지면 끝장이다.’
네즈미가의 운명이 끝난다고 봐야 했 다.
영화를 이유 없이 틀어주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외국인이 볼 때는 단순 한 오락액션 블록버스터로 취급할지도 모르나, 한국과 일본은 달랐다. 극과 극 의 반응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조연; 흑금단주.
-촬영 ; 혹금단주.
-편집 ; 흑금단주.
-각본; 흑금단주.
-연출: 혹금단주.
영화의 주인공은 금강문주이지만, 그 외는 흑금단주가 다 했다. 둘이서 지지 고 볶고, 제 꼴리는 대로 영화를 만들어 놓고 시청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야말로 독과점의 폐해를 현실 그대로 보여주는 광경이다.
‘……젠장, 손안에서 놀아났구나!’
유우신은 영화가 단순히 오락성만 부 여하지 않았음을 파악했다. 금강문이 네즈미가의 계획을 미리 알고 방해한, 그 일련의 과정을 찗지만 직관적으로 표현해놓았다.
“결계를 더 강화했더니, 감정이 더 격 해지더라고.”
“……그런 짓을!”
대회장의 오성 망혼진을 해체하기는커 녕, 더 강화를 해놓고 모든 죄를 네즈미 가에 돌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억장이 무너지도록 염장영화로서 아주 잘 만들 어놓았다.
한쪽엔 카타르시스 자극하는 사이다 를, 다른 한쪽에는 찐 고구마 100개에 군밤 100개를 더 먹였다. 일본인 특히 네즈미가의 무사들이 보면 다들 게거품 을 물며 뒷목 잡고 쓰러질 영화다.
영화의 러닝 타임은 90분r이나, 이건 정우의 감독판으로 3= 추가했다. 세세한 부분을 알아야 효과가 극대화되 었다.
“어때?”
“……재밌습니다.”
유우신과 수뇌부는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정우는 고개를 끄떡였다.
“영화를 봤으면 관람료를 내야겠지.”
“알겠습니다.”
유우신은 따지지 않았다. 원하는 만큼
관람료를 내면 그만이었다. 영화 관람 료가 비싸봤자 얼마나 되겠는가.
“한 사람당 100억씩만 내.”
“..?≫≫
뭔 놈의 영화 관람료가 100억이나 해?
유우신과 가신들은 할 말을 잃고 말 았다. 보고 싶은 영화도 아니고 강제로 시청했다. 한데 100억이나 내라니, 이 건 너무 억지가 아닌가?
“다들 표정들이 왜 그래, 설마 비싸다 는거야?”
“영화 관람료가 비싸봐야 2만 원 아
닙니까?”
“애들이 참 계산을 못하네, 이거 만드 는 데 얼마나 들었을 거 같아?”
“죄송합니다, 말씀해주십시오.”
“세트장 제작비만 1조가 넘어. 이제 좀 감이 오냐.”
“……그럴 수가!”
대회장을 건설하는 데 쓴 비용이 수 천억이 넘는다. 그러나 이는 영화 촬영 이 아니라 무림대회를 위해서다. 이것 마저 세트제작비로 넣다니, 지나친 억 지다.
그러나 말?이야 만들면 그만이다. 영화
를 위해 대회장을 만들었고, 금강문주 와 총관의 대결로 부서진 공간까지 비 용처리 되었다. 그래도 그렇지, 영화제 작비가 많이 들었다고 해서 관람료를 올리는 법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단 말 인가.
“손익분기점도 안 되는 돈이잖아.”
“영화는 흥행할 때도, 망할 때도 있는 겁니다. 손해를 저희들로 메우려는 건 억지가 아닙니까.”
영화가 망했다고 관객에게 책임을 전 가하다니, 후쿠시마 원자로가 고장 나 서 생긴 비용을 전기료로 충당하는 격 이었다.
“이거 봐라, 그새 풀어졌네.”
“죄송합니다.”
처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저도 모 르게 팔을 들어 얼굴을 막은 유우신이 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아 뻘쭘해지 기만 했다. 가문의 수장으로서의 체면 이 여지없이 무너진 꼴불견이다.
“뭐 하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유우신은 쫄지 않은 척, 손을 자연스
럽게 내려놓았다. 그러나 다들 모르진
않았다. 가주로서의 체통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네 말대로 억지 같기는 해. 그럼 손 해를 어떻게 메우나? 방법은 하나뿐인 데, 하는 수 없지. 한국과 일본에 동시 상영하는 수밖에.”
“……안 됩니다!”
포기하는 줄 알고 안심했던 유우신과 가신들은 결사반대했다. 만약 저 영상 이 유출되면 네즈미가는 한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다. 영화만 봐서는 알기 어렵지만, 출연자 들이 목록에 있었다. 네즈미가의 총관 이 버젓이 올라가 있으니, 빼도 박도 못 할 게 분명하다.
“내겠습니다!”
“나 그렇게 강압적인 사람 아니야.”
“?영화가 미치도록 재밌어서 그렇습 니다.”
“공치사는 싫지만, 기분은 좋네.”
염장질에 이어 삥 뜯는 솜씨도 신의 반열에 올라선 정우다. 네즈미가로서는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영화 상영을 막 아야 했다.
“영화 홍보를 했더니, 피곤하네.”
“피곤하시면 제 방에서 쉬었다 가심
이 어떠신지요?”
그때까지 군말 없이 조신하게 앉아 있던 시즈나가 수줍게 말을 올렸다. 언 제든지 방에서 쉬어도 된다는 개방성을 강조하며 앞섶을 살짝 푼다.
“신녀는 원래 남자를 받으면 안 되는 거 아냐?”
“원래는 안 되는데요. 주인님만 특별 히 신께서 허락하셨답니다. 언제든 절 가지셔도 무방해요.”
“잡신 주제에 바라는 것도 많네.”
“전 바라는 거 없어요, 그저 주인님만 원해요.”
정우는 골이 지끈거렸다.
신녀의 마음은 진짜였다. 얼마 전까지 만 해도 죽이려고 작정했으면서, 순종 적인 여인이 되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 죄라고 해도 이건 좀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