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34화 (334/500)

제 4장

피해보상 (2)

“에이,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도 열이 안 받냐, 받잖아?”

“아닙니다!”

“성인군자 나셨네. 괜찮으니까, 나한

테만 사실대로 말해봐.”

“절대 아닙니다.”

말할 사람이 따로 있지, 말하는 즉시 얼굴에 로우킥이 작렬할 것이다. 아쉬 워하며 입맛을 다시는 정우다. 이를 본 모두는 심장이 서늘해졌다.

“호오, 이제야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 는군. 거봐, 처음부터 순순히 알아들었 으면 좋잖아. 왜 자꾸 사람을 나쁜 사람 으로 만들어, 이게 다 너희들 탓이야. 내가 이래 봬도 꽃사슴처럼 여리여리한 성격이라고.”

나쁜 사람을 만들다니, 그냥 나쁜 놈

이면서.

대참사를 일으키고도 뻔뻔하게도 본 인은 선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다니. 듣 고 있는 사람들 전부 복장 터지는 꼴을 보고 싶은 것인가.

‘정우 이 녀석, 염장질이 천하무적이 구나!’

이호극도 속이 터질 뻔했다.

당하는 입장이야 오죽하랴. 마른하늘 에 날벼락 맞은 것도 억울한데, 불난 집 에 트리니트로톨루엔(TN1)을 던지고 있었다. 방 안의 수뇌부는 염장이 남아 나지 않을 듯싶다.

‘써먹을 날이 오겠지.’

이호극도 보통은 아니다.

정우의 염장질을 눈에 익혀두고, 써먹 을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둘의 호흡이 환상적이다. 이보다 더 복장 터지는 조 합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어디를 가도 모두의 염장을 뒤집어놓기에 충분하다.

본인들 염장은 소중하나, 남의 염장은 개무시하는 버릇이 농후했다.

“문주님, 쥐새끼들이 이제 좀 사람이 됐습니다.”

“수고했다.”

듣는 쥐새끼들 몹시 기분이 나쁘겠으

나, 다들 고분고분했다.

특히 신녀는 정우에게 맹목적인 충성 을 바치고 있었다. 선뜻 이해가 되지 않 을 대목일 것이다. 가장 참혹한 대가를 치른 대상이 신녀다. 그럼에도 그녀는 정우에게 그 어떤 원한이나 원망도 남 아 있지 않았다.

‘맹약이 제대로 발동하는군.’

신과 신녀가 행한 맹약은 절대적이다. 벗어나지 못한다. 정우의 명을 거부하 는 순간 신과 신녀는 무(無)로 돌아가 버린다.

“그럼 본격적으로 피해보상을 논해보

자고.”

피해보상? 대체 누가 누구에게 피해 보상을 해?

유우신을 비롯한 가신들은 기가 찼다. 피해를 입힌 가해자가 도리어 적반하장 의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억장이 무너 지고 있었다. 최소한의 양심이나 가책 이 있는 인간이라면 이래선 안 되었다.

“왜, 억울해?”

“아닙니다.”

분하다고 해서 ‘예’라고 대답했다가는 보나마나였다.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봤자 몸 만 피곤해진다.

“세상이 다 그런거 아니겠어.”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억울하면 언제든 말해.”

정우는 거리끼지 않았다.

적반하장은 일본의 전매특허 중에 하 나다. 전쟁의 장본인이었으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것처럼, 되도 않는 짓 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니 이쯤 은 괜찮잖아, 너희들이 하는 짓을 고스 란히 되돌려줬을 분이니까. 때린 놈은 편히 살고, 맞은 놈은 더 고통을 받는 세상의 잔인한 이치였다.

“가볍게 인건비부터 시작하자고.”

“인건비라니요?”

아차!

토키타는 내뱉은 물음을 되돌리고 싶 었다. 그러나 후회해봤자 주먹이 더 빠 르다. 발출된 무형의 권강이 얼굴을 강 타했다.

푸아아앙!

레이저처럼 직선으로 처 날아간 토키 타는 벽에 부딪치고 난 후, 바닥으로 고 꾸라지면서 게거품을 물었다. 목숨만 붙어 있을 분, 의식은 저 멀리 안드로메 다로 급행열차를 탔다.

‘?…"저런!’

일문의 가주에게도 로우킥을 날리는 흑금단주다. 수뇌부라고 해서 대우가 다르진 않았다. 그렇더라도 탁구공도 아니고, 치는 족족 날아가 버리다니 흑 금단주가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흑금단주와 금강문주의 터무니없는 강 함으로 인해 그들은 약자의 설움을 뼈 저리게 체감했다.

“누가 따지라고 했어, 내가 너희들을 그렇게 가르쳤더냐.”

“죄송합니다, 단주님!”

가르치다니, 누굴? 폭력을 행사했음

에도 저리 뻔뻔할 수가.

정우는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개소리 를 마음대로 지껄였다. 승자로서 정정 당당하게 개소리를 지껄이는데, 대꾸하 면 당연히 개같이 처맞을 수밖에.

“시즈나는 어떻게 생각해?”

“토키타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 을 했어요. 마땅히 처맞아야 해요. 저 같으면 사지를 찢어놓았을 거예요.”

시즈나의 승배는 고결하며 신실했으 며 맹목적이었다. 모든 걸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언제든 원하기만 한다면 이 한 몸 바칠 각오가 되었다. 은혜를 받을 수만 있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 다.

시즈나는 신실한 마음으로 수줍게 뜻 을 내비추었다. 오늘따라 신녀답지 않 게 옷이 참 가볍다. 앉아 있는 내내 살 결이 비쳐진다.

“단주님.”

“왜?”

“사랑해요.”

“조까.”

정우의 단호박에 이호극마저 헛기침 을 했다.

시즈나의 무방비는 사내로 하여금 정

욕을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끄떡하지 않는 정우의 무심함에 혀를 내둘렀다. 하라하고 사귀는 걸 알지 못 했다면, 고자라고 불려도 충분하다.

‘효린이가 걱정이구나.’

손을 써보기가 어렵지 않을까, 이호극 은 딸이 안쓰럽게 다가왔다. 일본에 오 기 전에도 정우에게 시집가겠다며 벌써 부터 신부수업을 하고 있었다. 원래 목 적이 정우를 사위로 맞이하기 위해서라 지만, 역시나 여간내기가 아니다.

“네가 보기에 인건비가 얼마나 될 거 같아?”

“원하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크악!” 정우의 손이 매서웠다.

유우신의 고개가 팩! 하고 돌아서며 선혈을 토해내었다. 붉어진 뺨이 부풀 어 오르고 있었다. 한편으로 싸대기를 맞은 이유를 몰라 더 억울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강도처럼 보이 잖아. 난 분명 정당한 피해보상이라고 했다.”

“죄송합니다!”

“쓰미마셍이면 인생 끝나나?”

“?예?”

정우의 눈썹이 역팔자를 그렸다. 눈높

이 개그를 위해서 일본식으로 번역해줬 건만, 들어 처먹지를 못한다. 노력을 배 반당해 감정을 실었다.

쫘아악!

오른벰을 맞고, 왼벰을 내민 꼴이 되 었다.

뜻하지 않게 구세주를 자처하게 된 유우신은 열불이 터졌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족속이었다. 그러면서 대 자대비한 부처의 환생인 양 자비를 논 하고 있었다. 일본에 불교를 전파해준 백제의 노리사치계를 원망하고 싶을 지 경이다.

“혹금단을 봐서 알 거야, 내가 심혈을 다해서 키운 정예 무력단이지. 이쯤 힌 트를 줬으면 감이 팍! 오지 않아? 네가 그래도 명색이 일문의 가주잖아. 계산 이 딸릴 거라고는 보지 않으니까, 만족 할 만한 답변이 나올 거야. 그치?”

“인당 10만 엔이면 어떠신지요?”

“인당? 내가 분명 정성을 다해 키웠다 고 말했다.”

혹금단이 이 자리에 있었으면 경기를 일으키며 게거품을 물었다. 뻔뻔함이 상상을 초월하다 못해, 신의 경지에 도 달했다. 한데 정우는 한술 더 떴다. 언 제나 기대 그 이상을 배반하지 않는다. 슬쩍, 시계를 가리켰다.

“……당연히 시간당입지요.”

“밤에는?”

“추가수당까지 더해드리겠습니다.”

10만 엔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약 100만 원이다. 이를 24시간으로 계산하 면 일인당 최소 2,400만 원 이상이 된 다. 한데 흑금단은 100명이고, 일본에 는 두 달이 넘도록 체류했다. 대충 계산 을 해봐도 천억이 넘어간다.

그렇다면 흑금단은 봉 잡은 거나 마 찬가지다. 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혹금단은 자발적(?)으로 정우에게 전액 연금을 붓고 있었다. 고스란히 정우의 호주머니 속으로 직행한다. 마치 엄마 가 ‘너 크면 목돈으로 줄게, 엄마한데 맡기렴.’ 하고 말하는 것과 일맥상통했 다.

‘……날강도가 아니고서야.’

계산을 마친 유우신과 수뇌부는 헛웃 음을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참아냈다. 대 놓고 강도짓을 해놓고, 아니라고 버젓 이 발뺌을 하고 있으니 따져본들 무의 미했다.

“그런데 말이야.”

“말씀하십시오.”

“나하고 문주님은 걔네들과 또 격이 다르잖아. 알지?”

“아무렴요.”

알긴 뭘 알아, 하고 외치고 싶은 마음 은 굴뚝같으나 유우신은 바짝 엎드렸 다.

자존심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처맞 지 않으려면 처신 잘해야 했다. 딱 봐도 치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표정이었다. 저런 인간에게 말이 통할 거란 기대는 부질없는 희망에 불과했다.

“다음으로 본문의 지출경비에 대한

피해보상이 있어야겠지.”

“얼마나 원하시는지요?”

“현금은 됐고, 한국에 들어온 저축은 행의 지분과 자금을 금강문으로 돌려놔. 물론 합법적이어야 해.”

“알겠…… 예?”

처맞을 걸 알면서도 유우신은 반문하 고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대부업을 하 기에 가장 좋은 나라였다. 나라에서 터 치도 잘 하지 않고, 이자율도 높은 축에 속했다. 이자율을 17%로 제한하는 일 본보다는 훨씬 장사하기 편하고 수익이 높았다. 그야말로 황금알을 낳는 사업 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를 그냥 달란다.

“은행의 지분과 자금을 무작정 넘기 게 되면 일본(중앙)은행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단시간 안에는 무립니다!”

“반년 줄게.”

“하오나!”

정우는 부정적인 답변을 원하지 않았 다.

유우신은 말 같지도 않은 요청에 답

답함이 쌓였다. 편법을 사용할 수 있으 면 그나마 낫다. 한데 합법적으로 돌려 놓으란다. 이게 말이 쉽지, 지분 이전에 대한 모든 비용까지 네즈미가가 떠안아 야 했다. 인건비로 나간 천억이 껌 값처 럼 느껴진다.

“나 지금 몇 번이나 참았다. 인내심 테스트하는 거 아니겠지?”

“하……겠습니다!”

“믿는다.”

“흠 하나 없이 깔끔하게 처리해놓겠 습니다.”

“그래야지.”

혹금단주의 협박도 무섭지만, 거부를 할 때마다 신녀가 독기를 품고 쏘아봤 다. 그럴 때마다 신성이 영혼을 빨래처 럼 쥐어짠다.

“그래도 일본 내 자금은 끊지 않았잖 아.”

“감사합니다, 단주님.”

고양이가 쥐를 생각해주나, 엎드려서 절 받는 유우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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