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33화 (333/500)

제 4장

피해보상 ⑴

연합무문은 무림대회 이후로 문파의 내부를 단속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내부적으로 일본 무문과 손을 잡 고 일을 벌였으니 자신들의 손으로 그 들을 내쳐야 하는 시국에 내몰렸다. 특 히 문파의 핵심 수뇌부가 연관이 되는 바람에 전력 손실은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다.

하아아.

깊은 한숨이 그의 심경을 대변해주었 다.

“되는 일이 없다고 해야 하는 것이 냐?”

연합무문의 수장을 담당했던 천무문 주 정민철은 스스루에게 자조적으로 되 물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무림을 대표했던 대문파였건만, 이젠 빛바랜 과거의 영광이 되었다. 천망회 회소이불실이라고 했던가, 하늘이 천무 문을 도와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꼬.”

금강문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하는 일 마다 사사건건 훼방을 받고 있었다.

답답한 현실은 금강문에게 이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책임을 묻기는커녕 감 사를 해야 마땅했다.

“그럼에도 뼈아프구나.”

금강문은 연합의 수뇌부 회의가 끝난 이후, 각 무문에서 일본 무문과 손을 잡 은 부역자를 추적해서 보내왔다. 일반 적인 상황이었다면 남의 문파를 허락도 없이 수사했다고 항의할 일이나, 금강 문이 아니었으면 무림대회는 대참사로 기록될 뻔했다.

“묵과할수 없는 일일 테고.”

부역자에 대한 내역은 상세했다. 내부 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부정 못 할 현실이었다. 쳐내지 않을 도리도 없었 다. 이토록 명백한데, 이들을 방치한다 면 그 또한 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결 과적으로 문파의 힘은 물론 결속력까지 약해지고 말았다.

“우진아,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당장의 손해에 연연해하실 필요 없 습니다.”

“내려놓으란 말처럼 들리는구나.”

“기회는 또 올 겁니다.”

아들의 위로가 덧없이 다가오는 천무 문주였다.

수뇌부 회의에서 흑금단주에게 당한 망신을 상기하면 아직도 열불이 터질 지경이었다. 조목조목 반박을 해서 화 를 낼수록 손해만 봤다. 그나마 다행이 라면 금강문주가 의도치 않은 발언을 해서 사태를 꼬아 놓았다는 것이다.

“이대로는 포기가 안 되는구나.”

우진도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는 했다. 인간인 이상, 손에 잡은 권력을 놓기 싫 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선택은 원치 않는다.

“하시면 어쩌시려는?”

“무인이 별거 있느냐.”

완전하게 수긍을 하지 못하는 이상, 무인은 포기를 하지 않는다. 천무문주 도 다르지 않았다. 무인으로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금강문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도록 해 라.”

“알겠습니다.

악몽의 하루.

네즈미가 역사상 최악의 현실이 도래 했었다. 가문을 상징하는 건물은 절반 이상이 부서져 버렸고, 곳곳에 파괴의 흔적이 남았다. 여기에 더해 본가의 무 사들 중 절반의 생명이 사라졌다. 가문 의 전력 중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비통함에 젖은 무거운 분위기가 자리 하고 있어야 할 텐데, 겉으론 그렇지가 않았다. 무사들의 표정이 굉장히 밝았 다.

“날씨 좋네.”

“그러게,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는 데 말이야.”

“이런 날만 계속되면 좋겠다.”

“일단은 청소부터 하자.”

“시체도 소각하고.”

가문이 폐허가 되었음에도 웃음을 잃 지 않아 섬뜩하게 다가온다. 절망감에 몸부림을 쳐도 부족할 판국에 날씨 타 령이나 하고 있으니, 상식적인 선을 넘 어섰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라 모두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벗어날 수 없는 절망에 단체로 미쳐버린 듯하 다.

“하아, 애들이 아주 맛이 갔네.”

“맛이 가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겠냐.”

“동료를 제 손으로 죽였으니 잊고 싶 겠지.”

흑금단은 나름 이해를 해주었다.

제 의지가 아닌 오성망혼진에 지배되 어 벌인 참극이기는 하나, 기억에는 남 아 있었다. 인간의 감정이 벼랑 끝으로 몰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 다.

하나 혹금단이 착각한 부분이 있었다.

네즈미가의 무사들은 신성에 지배를 받으면서, 본인들의 죄책감을 완전히 잊고 지배를 받아들였다. 어찌 보면 자 발적인 세뇌라서 그 효과가 굉장했다. 인간의 나약해진 마음을 파고들었기에 광적이기까지 하다.

“단주께서 결계를 3단계로 바꾸라고 했으니까, 어서 움직여.”

“오케이, 조장.”

정우는 오성망혼진을 완전히 해체하 지 않았다.

네즈미가에 원래 있었던 결계와 결합

해서 신성을 증폭할 수 있도록 했다. 외 부적으로는 네즈미가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 포장이 될 것이다.

가문에서 그나마 멀쩡한 건물이 북쪽 의 끝에 위치한 청운각(靑®閣)이다.

이름 그대로 일대가 꽤나 아름다웠다. 마치 하늘과 바다를 한 장소에 담아 놓 은 듯했다. 하나 그분이다. 조금만 벗어 나면 파괴된 장소와 대비되었다.

다다미식으로 되어 있는 넓은 방 안.

정우와 이호극이 상좌에 앉아 있었다. 그 앞으로 2열종대로 나란히 네즈미가 의 핵심 수뇌부가 다소곳이 무릎을 꿇 어 정좌했다.

핵심 수뇌부라고 해봤자, 겨우 8명에 불과했다.

“부상잔데, 너무 심하지 않느냐?”

“예로부터 노예는 매로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자유민주주주의 시대에 노예가 웬 말이더냐.”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이호극의 가르침에 순순히 응하는 정 우였다.

표면적으론 지극히 상식적인 대화지 만, 둘의 관계를 아는 사람일수록 이상 하게 보인다.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말 할 것이다. 이호극은 누굴 가르칠 수준 도 아니며, 가르쳐서는 안 되는 인물이 라고.

“그렇더라도 너무 약한데요.”

“이놈, 내 실력을 의심하는 게냐.”

“좀 더 노력하세요.”

“내 앞에서 그리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정우의 평가에 발끈하는 인물이 있었 다.

‘……어쩌다가!’

그는 네즈미가의 가주, 전륜신왕(轉輪

神王) 유우신이었다.

악몽의 하루는 길고 길었다. 어제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갈 때마다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폭포수처럼 홀러내렸다.

‘괴물이 하나도 아니고 둘이나!’

유우신은 금강문주와의 전투에서 패 하고 정신을 잃었었다. 믿고 싶지 않지 만, 완전한 패배였다. 다시 싸운다 한들 이기지 못할 금강문주의 강인함이었다. 무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자체가 강했 다. 저 무식한 육체는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금성철벽이다. 하지만 더 충격적 인 진실은 깨어난 이후였다.

육체가 회복되자, 그 앞에 혹금단주가 있었다.

-네놈은 누구냐?

-닥치고, 따라와.

-이놈, 내가 누군 줄알고

-문주님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손속 이 너무 따뜻해.

누구 손속이 따뜻해?

그게 따뜻하면 세상사람 중 따뜻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때는 그렇 게 생각을 했었다.

채 정기신(精氣身)을 정비도 하기 전 에 케이브에 끌려간 후, 안이했음을 뼈 저리게 각인받았다.

‘하지 말았어야 했어!’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고 했던 가. 이기면 본가에서 손을 떼겠다는 혹 금단주의 약속이 악마의 속삭임이었음 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깨달았다. 본성 을 숨긴 흑금단주가 인두겁을 벗어던지 자, 악마가 자리했다.

전륜신화기를 극한으로 운용하여 속 성까지 사용했음에도 일방적으로 두드 려 맞았다. 금강문주의 강인함과는 전 혀 다른 종류의 강함이었다. 마치 무공 의 루트를 알고 있는 것처럼 맥을 끊어 버리더니 무장해제 시켰다.

그때쯤 되니 저항은 무의미함을 체감 했다.

-아프지, 회복시켜 줄게.

하나 악마가 왜 악마겠는가.

회복을 시킨 후, 두드려 팼다. 그리고 또 회복시키기를 반복했다. 차라리 할 복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금 강문주와의 대결에서 패배를 한 직후, 신에게 맹세했었다. 죽음도 맘대로 하 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이름?

...?

대답이 나오지 않자, 유우신은 악마를 지속적으로 만나야 했다. 이름을 몰라 서 묻지 않았다는 걸 세 번을 더 처맞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이.

-예순다섯 살이다.

- 다?

-……크악!

용서나 관용은 존재하지 않았었다.

유우신은 개 맞듯이 처맞았다. 일문의 가주임에도 고상하게 패지 않았다. 개 처럼 바닥을 굴러야 했다.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은 후, 철저히 굴복을 하고 말 았다.

그럼에도 작금의 현실이 비현실처럼 다가왔다. 금강문주야 연륜과 경험이 있고, 한국 무림에서도 절대자로 손꼽 히는 무인이라 치자. 혹금단주의 강함 은 기존의 상식을 무너뜨리는 파격 그 자체였다.

‘신녀의 예언을 따랐어야 했어!’

신녀의 예언을 무시한 결과다. 설마 괴물이 한 마리도 아니고, 두 마리나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으랴.

‘ 응?’

상념이 길었던 유우신은 눈앞에 어둠 이 다가왔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푸악!

얼굴에 가해진 충격에 유우신은 정신 을 차리기도 전 다다미식 방 안의 저 끝 까지 일직선으로 튕겨져 나갔다.

유우신이 다소곳이 정좌했던 자리의 앞에 정우가 로우킥 자세를 취하고 있 었다. 얌전히 있다가 날벼락 맞은 유우 신을 보며 혀를 찼다.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해야지, 예~ 의가~ 없네'시”

예의를 그렇게 따지는 놈이 다짜고짜 발길질부터 한단 말인가.

다들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하 물며 방구석 끝자락으로 날아가 버린 대상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즈미가 의 가주였다. 일문의 가주를 다들 보는 앞에서 저리 막 다루다니,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원위치.”

정우는 그러거나 말거나 할 말을 했 다.

쌔앵!

날아갔던 유우신이 제자리로 돌아오 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그 어느 때 보다 신속하고 빠르다. 안타까운 현실 은 그 빠름으로 인해 홀러내린 코피가 좌우로 선을 그렸다는 점이다. 그나마 코피라서 다행이기는 하다. 콧물이었으 면 쪽팔림은 더 컸을 것이다.

“꼽냐?”

“아닙니다!”

사람 속을 뒤집어놓는 데는 천부적인 정우였다.

염장을 뒤집다 못해, 갈가리 찢어놓고 있었다. 평소 꾸준히 연구를 하지 않고 서는 행하기 어려운 염장술이었다. 능 히 대가의 반열을 넘어서 신의 경지에 이르렀다.

염장 지르는 놈 따로 있고, 억울한 놈 따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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