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내건내거,네것도내거 (2)
느닷없이 펼쳐진 결계, 네즈미가는 공 황상태에 빠졌다. 예상을 하지 못했기 에 더더욱 그렇다. 처음에는 훈련을 하 기 위해서 결계를 친 줄 알았지만, 허둥 지둥대는 걸 보면 그렇지 않았다. 한편 으로 결계가 펼쳐질 동안 아무도 자각 하지 못했다는 점이 무섭게 다가왔다.
“도대체 누가 결계를 친 것이냐?”
“혹, 다른 가문에서?”
“이런 짓을 하고 무사할 성싶은가!”
가문의 무사들은 다른 11개의 가문을 의심했다.
대외적으론 일본 무림의 축을 이루는 12개의 가문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적으 로는 경쟁 상대였다. 다른 가문보다 우 위를 점하기 위해 알게 모르게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언론을 통제하여 국민들만 모를 분, 가문 간의 과다 경쟁으로 인해 대규모 의 유혈사태가 일어난 적도 있었다. 이 를 케이브 오픈으로 인한 피해로 무마 했을 뿐이다.
“본가를 우습게 봤구나,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주마.”
유우신은 상처받은 성난 맹수처럼 으 르렁거렸다. 자존심이 상했다. 오랜 시 간 경쟁을 해오고는 있으나 본가를 공 격받은 경우는 없었다. 네즈미가를 가 볍게 여기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기만 행위였다. 설령 타격을 입지 않는다 해 도 심정적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전력을 재정비하고 결계를 뚫어라.”
“예, 가주.”
가주의 명을 받은 8명의 가신이 직접 무사들을 이끌었다.
잠시 허둥지둥대기는 했어도 무사들 은 서둘러 전열을 가다듬고 사태 파악 에 나섰다. 본가 전체에 결계가 발동되 었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충분히 뚫 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
‘토리가? 아니면 이누가에서?’
12개의 가문 중 네즈미가와 가장 반 목이 심한 가문이 토리가와 이누가다. 예전부터 경쟁이 치열했으며, 사업 분 야에서도 비슷해 서로를 노리고 있었다. 먹어치운 후 가문의 이름만 남겨두고, 꼭두각시로 만들려는 속셈이겠지만.
‘누가 됐든, 이번 사태에 개입한 가문 은 피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본가는 네즈미가의 상징이다. 침입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되돌려주어야 했다.
“오랜만에 비행기 타나 했는데, 배를 탈 줄이야.”
“운치 있고 좋았잖아요. 그리고 데려 와 준 것만 해도 어디예요.”
“이놈아! 넌 단주고, 난 문주다. 누가 누굴 데려와.”
“제가 문주님을 데려온 겁니다. 사실 관계는 분명히 해야지요.”
괜한 공치사는 사양하는 게 겸양의 미덕이라고 포장을 하나, 청년은 단호 박이었다.
인과는 물론 공적에 관해서는 한 치
의 오차도 없이 다 받아먹어야 직성이 풀렸다. 본인의 공적에 관해서는 절대 숟가락 얹지 못하도록 종용했다. 함부 로 올렸다가는 평생 밥숟가락 잡지 못 하는 수가 있었다.
“짜식이, 꼭 날 이겨먹어야 직성이 풀 리는 게냐.”
“문주님이라고 다를까요?”
정우는 사돈 남 말 하지 말라고 했다.
“끄응.”
“아랫물은 원래 윗물을 닮는 겁니다.”
“할말 없네.”
툴툴거렸던 거한의 사내, 이호극은 반
박하지 못한 채 입을 닫아야 했다. 본인 도 지고는 못 산다, 억울해서. 상대가 누가 되었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승부라고 한다면 반드시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널 좋아하는 거지만.”
“저도 문주님의 취향을 리스펙합니 다.”
지고는 못 사는 이호극과 정우다.
또한, 져주는 건 더더욱 못 참는다. 둘 다 대련이라는 명목하에 손속을 겨 루는데, 누가 보면 불구지대천의 원수 인 줄 착각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살벌 함의 강도가 일반적인 상리를 뛰어넘는 다. 죽기 살기로 싸우고 난 후 항상 시 원한 맥주를 마셨다. 치킨 20마리를 둘 이서 해치운다. 그땐 또 아버지와 아들 처럼 훈훈하다. 누가 봐도 정상으로 보 이진 않을 케이스다.
“이거 괜찮네.”
“이 근방에서 가장 잘하는 집이라더 군요.”
해외여행 시 맛집 정보는 필수, 사전 에 조사를 해놓았다.
이호극과 정우는 다코야키(문어빵)를 제일 잘하는 집을 찾아가서 위장에 쓸 어 담았다. 이미 1천 개의 다코야키를 끝장내고 덤으로 포장된 걸 사서 먹고 있는 중이었다. 앉은자리에서 다코야키 를 해치우는 정우와 이호극의 식성에 그 집 주인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손이 보이지 않는 진귀한 광경을 연출해야 했다.
“요걸 꼭 차야 하는 거냐?”
“그럼요.”
“비겁한데.”
“비겁하면 어떻습니까, 이기면 장땡이 지.”
“맞는 말이야.”
“그리고 쭉정이는 걸러야죠.”
“하긴, 주변에서 날파리들이 윙윙거리 면 쳐내고 싶어진단 말씀이야. 약자를 괴롭히는 건 취향이 아니거든.”
정우는 전략과 전술, 계략과 음모도 전투력에 포함시켰다.
전투가 꼭 힘과 힘의 싸움이라고만 여긴다면 하수에 불과했다. 간혹 암수 에 당하고서 비겁하다고 욕하는 어리석 은 중생들이 있는데, 패자의 구질구질 한 변명에 불과하다. 강자란 그 어떤 암 계에도 굳건히 이겨내야만 하는 법이 다.
‘그 녀석이 내게 준 선물 중에 하나 지.’
진강백과의 일전을 통해 정우는 보다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만약 진강백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라이벌의 존재는 실력향상의 밑 거름이 된다. 작금의 현실에서 진강백 에 어울릴 만한 상대가 그나마 문주님 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는 하다.
‘문주님은 지나치게 정석이라.’
진강백과 이호극의 차이점이 여기에 있었다.
힘과 힘의 싸움이라면 누가 더 우위
에 있다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지능을 활용한 전략 싸움으로 간다면 이호극은 진강백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환생을 할 때마다 매번 참신한 전략으 로 동귀어진을 이룩한 진강백의 전략과 전술에 관해서는 인정했다.
“오야는 내 거다.”
“제가 원하는 상대는 따로 있습니다.”
“내 딸 놔두고 바람피우면 호온~난 다.”
“어폐가 심하군요.”
이호극은 벌써부터 입맛을 다시고 있 었다. 특히 이처럼 남의 나라에서 깽판 을 칠 수 있다는 사실에 홍분이 된다. 무대가 일본이라 더더욱 애국심이 불타 오른다.
일대를 전부 부수어도 남의 탓으로 돌릴 수 있는 이 현실이 아름답게만 다 가왔다. 그간 집에서 훈련한다고 아내 와 김 총관의 눈치를 손톱만큼은 봤었 다. 고거 좀 부서졌다고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저만 따라오시면 원 없이 싸우다 뒈 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난 지금 죽어도 호 상일 거다.”
“호상으로 죽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래야지. 난 너만 믿고 호상 을 기다리련다.”
이호극과 정우의 대화를 뒤따라오며 듣고 있었던 흑금단원들은 오싹한 한기 를 느꼈다. 저 인간들의 정신머리가 정 상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안면서 도, 소름이 돋았다.
‘문주나, 단주나.’
‘난 다시 태어날래.’
흑금단에게 있어 단주와 문주는 하늘 보다 무서운 존재다. 하늘은 그나마 대 답이라도 하지 않지, 단주와 문주는 항 상 대답을 해준다. 그래서 더 무섭다. 왜냐고? 논리 따윈 일체 배제된 자신들 만의 정의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 거냐?”
“좀만 더 있으면 효력이 나타날 겁니 다.”
정우의 입꼬리가 사악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내 것을 노리는 자에 대한 응분 의 대가를 주기 위한 정의의 용사하고 는 거리가 멀다.
‘내 건 내 거고, 네 것도 내 거지.’
결계사를 대동해 결계를 확인한 8명
의 가신, 팔검(八劍)은 낭패한 기색이 완 연했다. 믿어지지 않지만, 이 결계는 익 숙하다. 너무나 익숙하기에 인정하기까 지 시간이 걸렸다. 마치 그 익숙함마저 계산에 넣어둔듯.
“이 결계는 설마?”
“……오성망혼진!”
결계를 구성하는 흐름이 오성망혼진 과 비슷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계사들이 해체 를 못하고 있었다. 비슷한 듯하나, 한 끝 달라 해체하는 데 애먹고 있었다. 한 끝의 차이건만, 완전히 달랐다. 결계의 흐름을 연산하는 데 시간만 소요되었다. 무엇보다 결계사는 일반 무사보다 무력 이 낮았다. 오성망혼진에 영향을 받아 해체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이게 진짜 오성망혼진이라면, 위험 해.”
“본가의 비전을, 대체 누가?”
오성망혼진을 완성하기 위해서 본가 의 모든 결계사가 동원되었었다. 일단 결계가 펼쳐지면 내부에서는 해체가 거 의 불가능한 절진이다.
“오성망혼진이라니, 불가능한 일일 세.”
“누군가 비슷한 절진을 만들어 우릴 현혹시키려는 걸지도.”
“그렇다면 결론은 나온 게 아닌가.”
결계사를 동원한 이유는 힘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서였다.
이젠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았다. 결 계의 흐름이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해지 고 있었다. 그 말은 결계가 무언가를 통 해 힘을 얻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모두 물러서라.”
팔검은 오성망혼진의 진위 여부를 판 별하기보다는 힘으로 뚫기로 결단을 내 렸다. 심정 한편엔 절진이 오성망혼진 이 아닐 거라는 불신이 있었다. 가문의 주 전력 중 하나인 오성망혼진이 외부 로 유출될 리 없었다.
우우웅!
내력을 끌어올린 팔검은 지체하지 않 고 전력을 퍼부었다.
꽈아아아앙!
결계와 부딪친 가공할 내력이 날카로 운 파장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번져갔다. 큰 너울이 형성되며 전체를 흔들어놓는 다.
팔검의 무력 수위가 낮지 않음을 대 변해주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 력을 발출한 팔검의 안색이 좋지 않았 다.
‘망할!’
오성망혼진이 아니기를 바랐으나, 그 와 필적할 반탄진력이 발동되었다. 무 지막지한 경력을 쏟아부었음에도 결계 는 출렁거릴 뿐, 보다 더 촘촘해지고 말 았다.
‘……가주에게 알려야 한다.’
팔검은 심상치 않다는 걸 체감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문 전체가 위험할 수 있었다. 하나 결단이 늦었다. 무사들 의 눈빛이 이상해지고 있었다. 하급 무 사일수록 결계의 영향이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