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25화 (325/500)

제1 장

내건내거,네 것도내거 (1)

네즈미가의 가주실.

50평의 규모로 대전(大殿)을 축소해놓

은 구조다. 세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

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과 세밀함이

구석구석에 묻어나온다. 가주실의 중앙 에는 장방형(長方形)의 자단목(紫®木)으 로 되어 있는 탁자가 있었다.

탁자의 양옆으로 가문의 중심축을 이 루는 8명의 가신(八劍)이 앉았다. 중앙 에 턱을 괴고 있는 사내가 네즈미가의 가주, 유우신이다.

숨이 막히는 침묵이 홀렀다.

가라앉은 공기의 무게가 사태의 심각 성을 유추하게 한다. 예기치 않은 실패 의 연속이기에 더더욱 뼈아프게 다가왔 다. 고요함 속의 무거운 분위기, 숨이 막혀 오는 찰나 유우신이 말문을 열었 다.

“시간이 이렇게까지 흘렀는데도 소식 이 없다면 실패는 확실한 거겠지.”

“면목이 없습니다, 가주!”

계획을 주도한 자는 총관이지만, 승인 한 건 팔검이다. 그들은 이번 일을 계기 로 한국 무림과 길드를 지배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었다. 하물며 네즈미가를 상징하는 3개의 무맥 중 광륜(光輪)을 이은 총관이 직접 움직였다. 절대 실패 하지 않을 거라 믿었기에 타격이 컸다.

실패는 실패, 받아들여야 했다.

유우신은 앞으로의 방향을 찾을 의무

가 있었다.

‘寄국 무림의 동향은?”

“딱히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이상하군, 물어뜯기 좋은 기회를 내 버려둘 이유가 없을 텐데 말이야.”

“케이브 오픈으로 위장한 이유가 뭐 겠습니까?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으려는 걸지도 모릅니다. 굳이 본가와 척을 져 봤자 저들에게도 좋지 않을 테니까요.”

총관과의 연락이 끊어진 이후, 한국 무림에 파견된 가문의 요원을 동원해 무림대회가 열린 인근을 조사하도록 했 다. 그러나 한국 무림이 철통경계를 하 고 있어 정보를 얻기가 요원치 않았다.

유우신의 뇌리로 좋지 않은 기분이 스쳤다.

‘흠!’

이번에는 지나치게 조용했다. 세계를 통틀어 일본에 대놓고 욕을 하는 국가 는 많지 않다. 그 많지 않은 국가 중에 하나가 한국이다. 미국이나 중국도 아 니고, 경제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건만 희한한 종족이다. 밟으면 밟을수록 고 개를 숙이기는커녕 더욱더 날뛰었다.

“과연 그럴까? 불길하단 말이야.”

“과민한 생각이시옵니다. 저들도 사태

가 공론화되어 시끄러워지기를 바라지 는 않을 겁니다. 본가와 내통한 길드를 방치한 건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입니 다.”

사방신 길드와 어떤 식으로 협상이 오갔는지는 몰라도, 대외적으로 사건의 진실을 밝히진 않았다. 그 점 하나만 봐 도 한국 무림이 조심하고 있다는 반증 이었다. 딱히 이상하진 않았다. 무림대 회에서 벌어진 사고가 언론에 유출되면 한국 무림도 타격을 받게 된다. 내부적 으로 협력한 자들이 있기에 언론의 도 마 위에 오를 행위다.

‘저들의 말대로, 과민했던 것일까?’

유우신이 보기에도 지극히 합리적인 결단이다.

굳이 들춰내 봤자 서로에게 타격이 되는 일이다. 이쯤에서 마무리하는 편 이 한국 무림에게도 이득이었다. 감정 적으로 일본을 싫어한다고 해도, 이익 이 되는 일이라면 언제든지 돌아서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뭔가 중요한 걸 놓쳤다는,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유우신은 꼼꼼한 성향이었다. 의문을 그대로 두진 않았다. 반드시 찾아내야 했다. 놓친 걸 찾기 위해서는 원점에서 다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더 이상하군. 이쯤에서 마 무리를 원한다는 건 그만큼 피해가 적 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총관은 본가의 무맥인 광륜의 전승자다. 그런 총관을 간단히 제압할 자가 한국 무림에 있었 던가?”

“혹, 피해가 너무 커서 축소한 것은 아닐는지요.”

8검의 대답에 유우신은 고개를 저었 다.

보고된 내용만으로도 판단이 되는 부

분이다.

“한국 무림의 핵심수뇌부 대부분이 대외적인 행사를 무리 없이 마쳤다고 하더군. 본가에서 포섭한 자들이 제대 로 일을 수행했다면 이들 중 절반은 수 면 위로 나오지 못했어야 하지 않나.”

가주의 날카로운 추리에 8명의 가신 은 입을 닫아야 했다.

그들이 생각해봐도 이상한 점이 있었 던 것이다. 특히 광륜의 전승자를 피해 없이 막기란 간단치가 않았다. 이분인 가? 총관이 데리고 간 수호대와 생체 병기는 본문의 주력이었다.

“하오면 가주께선 어찌 생각을 하시 는지요?”

“전략의 유출.”

가주의 나지막한 결론에 모두는 긴장 했다. 말 한 마디라도 잘못하면 그 즉시 배신자로 낙인찍힐 수 있었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다는 말씀이 십니까?”

“그게 아니라면 상대가 우리보다 한 수 위였다는 뜻이겠지.”

한국 무림의 피해가 지나치게 경미했 다. 본가의 주력과 총관이 직접 행차한 일임에도. 이쯤에서 마무리가 되었다는 점만 봐도. 충분한 대비가 되어 있지 않 고서는 불가능하다.

‘간과한 부분이 있다는 건데?’

유우신도 가문의 누군가가 배신했을 거라고는 판단하지 않는다. 그랬다면 대회는 열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알고 있어도 위험하단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국 무림이 굳이 그런 무리수를 둘 이 유는 없었다. 그렇다면 대회 도증에 누 군가 전략을 눈치 챘을 가능성이 제일 크다.

“우리의 계획을 파악하고 대회가 열

리는 동안 대비를 했다는 뜻이겠지. 이 번 일을 통해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곳이 어딘가?”

“금강문입니다.”

“일전의 일도 그렇고 우연치고는 공 교롭군.”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우연으 로 치부하기 어렵다. 도해문과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 입지가 축소되고 있는 도해문이 조바심을 내는 바람에 정보가 유출되었을 테고, 금강문은 단서를 통 해 무림 대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거 라고 예측했을 거다.

“금강문이었구나!”

유우신의 두 눈에 살기가 그려졌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본가의 대업 을 방해한 대상이었다.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두고두고 역린이 될 게 분명했 다. 반드시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 주 어야 한다.

큭!

가주의 살기에 8명의 가신은 마른침 을 삼켰다. 감히 대적할 엄두가 나지 않 을 경이로운 기세의 발현이었다.

‘가주의 전륜신화기가 극한을 초월했

구나.’

역대를 돌아봐도 전륜의 극한에 도달 한 가주는 없다고 단언한다. 가문 역사 상 최강의 무사라 불려도 손색없었다. 가주의 분노를 산 금강문이 오래갈 거 라고는 보지 않는다. 누가 있어 가주의 신위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금강문과 연관된 모든 걸 조사하도 록.”

“예, 가주.”

금강문이 대척점에 있다는 사실을 깨 닫게 되었다.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금 강문에 대한 조사다. 적을 알고 나를 알 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금강문을 간 과한 뼈아픈 대가를 상기하면 준비는 필수였다.

“신녀의 전언은?”

“곧 받아오겠습니다.”

신녀의 예언을 무시했기에 벌어진 사 태일 수도 있었다. 하물며 요 며칠 전부 터 신녀는 본가에 누란의 위험이 닥칠 거라는 예언을 했다. 이번에도 무시하 기에는 연이은 실패가 마음에 걸렸다. 예로부터 본가의 근원은 신녀에게 있다 고 했었다. 대비를 해놓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두근.

찰나였을까?

유우신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

부르르!

미세한 파문이 가문 전체로 번져가 순식간에 전부를 감싸 안았다. 유우신 과 8명의 가신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 다.

“이게 무슨?”

여긴 네즈미가의 본가, 즉 성지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현 실이었다. 유우신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성보다 본능이 경고를 울렸다. 이럴 때 손 놓고 있는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 다. 사태의 진위부터 알아봐야 했다.

-휴가를 주마.

-예?

-뭘 그렇게 놀라?

놀랄 만도 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단주께서 휴가를 주다니. 세상이 종말 을 고하는 줄 알고 행복할 뻔했다. 그 말 그대로 우리는 세상이 멸망하면 한 그루가 아니라 일억 그루의 나무도 심 을 수 있었다. 그만큼 행복할 수 있건만, 결과적으로 세상이 멸망할 가능성은 희 박하다.

왜 그렇게 확신하냐고?

멸망을 하려면 일단 단주의 허락부터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멸망도 제 맘대로 하지 못한다.

-해외여행은 처음이겠지?

■그렇습니다.

-여권에 도장 하나 박아주마, 티켓은 끊어 놨다.

-어느 나라입니까?

- 일본.

- 일본이요?

이거 혹시 후쿠시마 원전으로 가라는

거 아냐? 라는 의혹이 일었었다. 방사능 을 처먹고 2차 각성을 하라는 의미로 해석되었다.

다행히도 목적지는 후쿠시마가 아닌 후쿠오카였다. 글자가 비슷해서 순간 식겁했었다. 원자로가 멜트스루 단계를 넘어서고 있음에도 방치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무능을 전 세계가 지탄하고 있 는 시기였다. 유니크를 동원해서라도 처리해야 하는데 끝까지 방치하는 걸 두고 다른 속셈이 있는 거라는 예측도 있었다.

-가서 맘껏 놀아

-진정이십니까?

-짜식들, 나 그렇게 빡빡한 사람 아니 다.

-감사합니다, 단주님!

그날은 정말 감격해서 눈물이 다 나 올 것 같았다. 이 얼마 만에 주어진 황 금 같은 휴가란 말인가? 오래 살다 보 니 이런 날도 오나 싶었다.

하나 벅차오른 감정은 하루가 채 지 나기 전에 끝이 나고 말았었다.

-다 놀았냐?

놀기는 뭘 놀아. 입국 수속하고, 비행 기 타고, 숙소에 도착해서 정비를 마치 고 나면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는데.

이제 막 일본식 우동 한 그릇씩 먹고 일대를 돌아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현 실이 빡빡하긴 빡빡한 모양기다. 몇 시 간의 자유만으로도 즐겁기는 했다.

-놀았으면 이제 일을 해야지.

그럼 그렇지.

강태산과 단원들은 예상하고 있었다. 단주가 비행기 값과 숙소, 식비까지 들 여 휴가를 보내줬을 때부터 의심은 들 었다. 단주는 비효율을 가장 싫어한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 성과를 원하 는 도둑놈 심보를 지녔다. 그런 분이 아 무 이유도 없이 휴가를 보내주고, 비용 까지 대준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 았다. 그럼에도 일말의 희망에 행복함 을 느낀 현실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평소대로 하면 되는 일이니, 어렵진 않을거다.

혹금단은 목표물을 탐색하고, 정보를 수집했다.

정보 수집이 끝났을 때 주군의 2차 명령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전략을 수행해 나갔다. 시간은 부족하 지 않았다. 모든 전平] 완수되었을 즈 음, 한국 무림 대회가 끝이 나고 금강문 의 위엄이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과연 주군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은 단 주의 손바닥 안에 있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는 말도, 주군에겐 통용되지 않았다. 하늘도 가릴 손바닥 이다.

강태산과 단원들은 계획대로 준비를 끝내고 대기했다.

여분의 시간을 활용해서 노가리를 까 고 있었다.

“쥐새끼들이 주제를 모르고, 겁 없이 나댄 거지.”

“그런다고 단주님이 가만 놔둘까?”

“그렇긴 하지.”

“가만있도록 놔둘 분도 아니잖아.” 언덕 위의 바위가 구르기 시작했다.

일단 건드리면 주군은 절대 가만있지 않는다. 상대를 집요하게 괴롭히며 피 를 말린다. 결국에는 참다못해 손을 쓰 도록 만들어버린다. 그러면서 후발제인 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해버린다. 절 대 먼저 손을 쓰지는 않았다 이거지. 이 러니 당하는 사람의 입장은 열불이 터 질 수밖에. 분노에 이성을 잃어 달려든 다고 통할 상대는 더더욱 아니고. 열불 이 터지든, 억장이 무너지든. 결국에는 주군의 손바닥 안에서 농락당하다가 개 털 되고 덧없이 사라지고 만다.

“시간 다 됐다, 다들 평소대로 해.”

“예, 조장.”

흑금단은 이 일대의 사람들과 동화되 어 있었다. 그들은 매일의 일상처럼 정 해진 대로 움직였다. 딱히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케이브 오픈 대비 훈련이 있습니다. 주민 여러분은 가급적 다른 길로 가주 시기를 바랍니다. 차후, 생기는 피해는 본가에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네즈미가의 가주, 유우신 배상.

목표지점으로 향하는 모든 길에 팻말 을 꽂아 놓은 후, 장치를 발동시켰다. 사전에 충분한 테스트를 했으며, 무림 대회를 통해 검증은 끝이 났다. 일단 내 부에서는 절대 해체가 되지 않는다.

“우리도 가자.”

주변에서 얼쩡거리고 있는 무사들은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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