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독식하다 (3)
정우진과 천호의 대결이 끝나고 염화 와 강우가 무대에 올라섰다 고조되는 분 위기 속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겁게 가 라앉은 대회장은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는 다. 압도적인 기량으로 올라온 두 무인의 선전을 기대했다.
강우가 염화를 보고 앓는 소리를 했다.
“누님, 살살해 주세요.”
“그럴까?”
엄살을 진심으로 받자
“농담도 못하겠네요.”
“그럴 때가아니잖아”
강우는 훈련을 함께하며 동고동락했던 염화 누님과는 다름을 체감했다. 전신을 조여 오는 감각, 그건 각오가 실린 기세였 다. 절대로 지지 않겠다는. 투지를 불태우 는 염화 누님에게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
‘사사로운감정은 잊겠어.’
무대에 오르기까지 염화는 강우에게 시
선을 준 적이 없었다 실제로 이번 대회가 시작되고 난 후부터 삼형제는 물론 정우 도 찾지 않았다. 개인적인 친분에 연연해 대회를 망친다면 문파에 누를 끼치는 행 위였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기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무림대회의 막바지까지 힘을 써주며 훈련을 도와준 아버지를 위해서.
‘장난아니네, 앓느니 죽지.’
염화 누님의 결연한 각오에 강우는 심경 이 편치 않았다. 전력을 다한다 해도 승부 를 점치기 어려운 난적인 데다가, 정우의 모진 훈련을 받으면서 정도 쌓였다. 되도 록붙고 싶지 않은 상대이기도 했다. 차라 리 염화 누님이 아닌 다른 상대였으면 하 는 바람이다: 그러나 어쩌랴?
예보부터 운명은 가혹하다고 했다. 나 름 좋은 집안에 태어났기에 이대로 평탄 한 삶을 바란다면, 인생을 날로 먹는다고 욕먹어도 할 말 없어진다. 시련은 주인공 을 완성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라고도 했으 니.
‘주인공이고 뭐고, 일단 나부터 살자’
화천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염 화 누님의 결연한 각오는 인정했다 하지만 강우의 배후에는 정우와 아버지가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그들이 언제 인정에 얽매 여 사정을 봐주었던가. 만약 서푼의 인연 에 연연해 대결에 지장을 초래한다면 각오 단단히 해야할 거다:
-8강 3번째 경기가 시작됩니다. 둘 다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파죽지세로 올 라온 만큼 공전절후한 결전이 기대가 됩 니다 하면 어떤 점을 주목해서 봐야 할지 핵심 포인트를 꼬집어 주시겠습니까, 강 대주님?
-화천문과 금강문은 교류가 활발한 문 파이니만큼, 서로의 무공에 대해서는 훤 히 꿰뚫고 있을 겁니다 그런 만큼 수 싸움 으로 가기보다는 힘과 힘의 격돌이 되지 않을까조심스럽게 예측해볼수 있을 겁니 다
-힘 싸움이 되면 금강문이 유리하지 않 을까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무인의 역량은 외 형이 전부가 아닙니다. 덩치가크다고 고수 라면 동양인보다 표준적인 규격이 큰 백인 과혹인 중에 고수 아닌 이가 없을 겁니다
-그것도 그렇군요.
강 대주도 대결의 양상을 짐작만 할 뿐, 명확하게 밝히진 못했다. 그만큼 백중세 가 예상이 되었다. 유명세로만 본다면 염 화가 우위에 있기는 하나, 연전연승을 해 온 강우도 만만치가 않았다. 포텐이 터진 삼형제의 진신역량은 비단 신진 무인뿐만 아니라 현재의 고수들에게도 자극제가 되 고 있었다
-강 대주님조차 예상이 되지 않을 만 큼, 백중세라니. 확실히 대회가 거듭될수 록 상향평준화가 되어 가는군요. 어쨌든 두 무인 모두 기량이 뛰어난 만큼 절기의 향연이 펼쳐지겠군요. 벌써부터 두근두근 거립니다.
-당장은 예측이 어렵겠지만, 대결을보 며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할수 있도록 노 력하겠습니다.
-한데, 실력은 몰라도 인기의 척도는 크 군요.
관중의 환호와 야유가 뒤섞여 있었다.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염화에게는 환호 를 보내고, 강우에는 적의가 가득한 야유 가쏟아졌다.
염화는 남녀를 불문하고 인기가 있을 만한 매력을 지녔다. 무인에게 남녀의 차 이가 없다고는 해도, 일반인까지 그렇지는 않았다. 여자는 보호해야 할 존재로 인식 이 되었다.
염화는 남녀의 차이를 무너뜨리는 걸크
러쉬를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붉은 머리 카락의 아름다운 외모와 육감적인 몸매는 사내로 하여금 판타지를 선사해 주었다 그에 반해 강우는 이름 없는 프로에 나 와 몸 자랑이나 하는 근육 찐따처럼 생겼 다
-때리기만 해, 평생 저주할 거다!
-자고로 여자에겐 지는 게 이기는 거라 고했다!
-그냥 처맞아라, 맞을 때도 많잖아
-이름이 강우가 뭐냐? 폭우도 아니고!
강우는 유치한 이름 폭행을 두서없이 당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은 성(姓) 폭행 은 아니라는 점이다. 평소라면 시답지 않 은 개소리를 지껄이는 놈이 있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겠지만, 의외로 평정심을 유지 하고 있었다.
‘이 삼형제 중 누구 하나 쉬운 상대는 없어.’
염화도 관중의 환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럴 때가 아님을 직시했다. 평소 에 농담 따먹기를 좋아하는 강우지만 대 결에 임하자 또 달라졌다. 금강문의 사내 들은 다 저런 성격이었다. 덩치에 어울리 지 않게 주둥이가 가볍지만, 전투에 관해 서는 생긴 대로 논다. 그렇기에 섣불리 판 단을 하면 곤란하다. 덩치만 큰 쭉정이는 금강문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덩 치에 어울리는 과격한 괴력과 야수성을 보유하고 있었다.
둥둥둥!
대결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다.
-우우우우, 여자에게 폭력이라니, 야 만?…!
관중의 열렬한 야유가 채 완성이 되기 도전.
꽈아아아앙!
천지개벽을 알리는 굉음이 토해지며 귀 를 찢어발긴다 유리방벽에 충격방지 시설 이 되어 있지 않았다면 관중들은 파장에 휩쓸려 고깃덩어리가 되었을 터. 야유를 보내며 나불거렸던 염화의 광팬조차도 입 을 다물었다. 저 주먹에 맞으면 야유고, 뭐 고 살 조각이라도 주우면 다행이었다 하나, 격전은 시작에 불과했다
퍼퍼퍼퍼펑!
강우의 좌우 권공이 불을 붐어댔다. 본 인의 전력이 담겨 있는 일로금강이다. 연 속으로 권공을 뿌릴 때마다 나선의 권풍 이 형성되어 유리방벽을 강타했다 쿵아아앙!
염화가 보법을 펼치며, 맹공을 피해낼
때마다 거친 파공성이 울린다.
무지막지한 맹공의 향연. 관중의 모골 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본인들의 싸움이 아님에도 마른침이 삼켜졌다.
슈아아앙!
맹렬히 권공을뿌리고난후 방향을예 측한 강우가 탄보를 시전했다. 동시에 금 강팔격의 비섬각을 펼쳤다. 제련되지 않은 쇳덩어리를 둔탁하게 담금질한 규격과는 달리 날렵함과 예리함이 공간을 갈라놓 는다 파팟!
강우와 염화의 공수가 얽혔다. 물러설
거란 예상과 달리 염화는 뒷발에 힘을 주 어 안으로 파고든다.
씨익!
수세에 처했던 염화의 입꼬리가올라갔 다. 그녀는 단순히 피하는 데만 열을 올리 지 않았다. 회피 궤적을드러내어, 강우의 공격루트를 유도했다. 올 줄 알았기에 반 격기회가 찾아왔다 염왕보를 밟으며 방향 을 꺾어 사각의 대치를 이루었다 푸아아아앙‘!
응축된 불의 화력이 장심에 촘촘히 모 여 발출되었다. 목표지점은 권격을 내지 른 강우의 오른쪽 옆구리다 염화일기공의 정수가담긴 염천장(炎天掌)이다. 일반인은 맞는 즉시 핏물로 화할 파괴력을 지녔다.
후후
극염극화(極炎極火)의 초열장력에 적중 당하고도 강우는 인상을 찌푸리기는커녕, 오히려 반격을 해왔다. 마치 이런 상황을 예측을 하고 있다는 듯한, 아무렇지 않은 대응이다. 기실 염화누님을 간단히 이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대도 강(李代桃彊)의 수를 섰다. 틈을 내주고 난 후 속성인 강화를 옆구리에 집중시켰다 퍼퍼펑!
염화의 대응도 실로 적절했다. 9성의
장력을 퍼부었음에도 방심하지 않고 염왕 보를 펼치며 재차 장력을 뿌렸다. 공간을 벌리는 와중 강우의 신체에 연거푸 적중 시켰다.
화르르르르!
초열의 열기가 대결 공간을 뜨겁게 했 다. 공기가 화기에 닿아 수증기가 발생하 여 유리방벽을 메운다. 한겨울 밤, 으슥한 한강변에 세워진 선팅 된 차량의 창문인 양 거친 호흡 소리와 파열음이 고막을 달 아오르게 한다.
퍼퍼퍼펑!
수증기 사이로 염화와 강우의 격전이
계속되며, 굉음이 토해졌다
관중은 야유도, 환호도 하지 않은 채 숨을 죽였다 남녀의 대결로 몰아 응원을 했건만, 강우와 염화의 투쟁은 남녀불문 이었다. 무인 대 무인의 비장한 혈전이 되 었다. 이런 장면을 연출하는 데 장난으로 말하기 어려웠다 쩌어어어엉!
눈과 귀를 어지럽히는 강우와 염화의 혈전에 감탄이 홀러나왔다. 혈전은 시간 이 지날수록 맹위를 더 해갔다 투아아앙!
장력과 권공이 접전에서 만나며 밀고
밀리는 장면을 연출했다
강우와 염화의 온몸이 땀으로 젖어 가 고 있었다. 또한 뇌전과 화염이 서로의 역 량을 시험하듯 분출하여 형상화를 이루 었다. 뇌력광마신공과 염화일기공의 전력 이 부딪친 결과였다.
후아아앙!
부딪침으로 인한 파공성과 파장 돌풍 이 유리방벽을 거세게 후려친다. 그럴 때 마다 관중은 영혼의 고비가 풀려나가는 층격을 받았다. 초식과 초식의 대결에서 공력과공력으로, 나중에서 심기체(心氣體) 를 요하는 막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서로 물러서면 끝장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 문이다.
-남녀의 싸움이 아니잖아!
-저런 무식한!
-저러다 몸이 남아날까? 죽는 거 아냐?
-근데 저 유리방벽 정말 단단하다. 다 막아!
대결이 치열해질수록 유리방벽의 단단 함과 유연함이 오히려 화제가 되고 있었 다. 만으추 유리방벽이 없었다면 관중들의 피해가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벌써부터 하이퍼 팩토리의 사장이자 정 우의 아버지, 하윤철의 곡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실상은 좀다르다
유리방벽의 강인한 성질도 중요하지만 강화 마법을 사용했기에 버텨내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과장된 광고효과이기도 하다.
파아아앙!
염화의 권공이 강우의 명치를 강타했 다. 화력을 분출시켜 시선을 교란하고 보 법으로 파고들어 일격을 선사한 것이다. 10성의 염화일기공이 권공에 집중되어 강 맹한 위력과 가공할 열기를 동반했다. 맞 는 즉시 거북선의 포탄에 맞은 왜선처럼, 분멸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파괴력이었 다
쿠웅
강우의 신형이 유리방벽까지 튕겨져 나 가 버리고 말았다. 덩치에 걸맞은 굉음이 토해졌다. 유리방벽이 강도 9.0의 지진처 럼 혼들린다 염화는 승기를 잡자, 망설이지 않고 구 룡화를 뿌렸다. 남아 있는 공력을 융단 폭 격기처럼 쏟아냈다.
퍼퍼퍼퍼퍼펑!
대결의 공간은 살벌함이 자리했다. 불 의 열기가 닿지 않음에도 전해지고 있었 다. 심혼을 빨아들이는 염화의 마력이었 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처음처럼 열광하 지 못했다 무인의 처절함마저 느껴졌다
-……말려야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아닙니다;
아나운서의 당혹스러운 외침이 관중을 대변하지만, 강 대주는 선을 그었다. 무대 의 지근거리에서 심판을 보는무인의 역량 을 믿었다 그들은 각 무문에서 선별된 자 들이었다 위험하다면 조취를 취했을 것이 다 하아, 하아: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숨소리가 거칠지만 규칙적으로 들린다.
염화와 강우가 유리방벽의 양 사이드를 대각선으로 등지고 서 있었다. 죽일 듯 파 상공세를 취한 염화의 숨소리가 조금 더 거칠었다. 그에 비해 강우는 상체를 드러 낸 채 굳건히 서 있었다 화력에 검게 칠해 져 오히려 더 각이 선명하다. 보디빌더가 경기 나가기 전 기름칠한 육체처럼 땀에 번들거렸다
-그렇게 맞고도 멀쩡하네.
-하여튼 참몸이다.
-어머, 망측스럽게.
-손가락 사이로 볼 거 다 봤으면서!
-넌 다 벗어도 안 보니까 닥쳐 줄래! 아
무것도 없으면서.
-없긴 누가 없어
-그걸 누가 믿어.
-여기서 5초간까발리면 믿겠냐!
강우는 여자들의 반가운 호응에도 신 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이게 바로 남자의 참다운 몸이라며 자랑을 했 을 텐데, 집중력이 놀라웠다. 하지만 당연 했다. 일말의 방심도 염화 누님은 허용하 지 않았다.
‘생으로 화장당할뻔했잖아!’
‘이놈의 집안은 하나같이 왜 이렇게 단
단한 거야!’
강우와 염화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서로 안면이 있다고는 해도 격전이 지속될 수록 감정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치명타를 아낌없이 쏟아부어 주니, 공수 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치열한 난타전은 되지 않았다. 강우의 스피드보다 염화가 좀 더 빨랐다. 그러나 맷집으로 버텨내며 반격을 하기에 염화도 충격을받아야했다. 10방을때려도, 1방 을 잘못 맞으면 염화의 손해였다.
“누님, 이럴 거요‘?!”
“너야말로 얌전히 패배를선언해!”
“이렇게 나오면 나도 하는 수 없거든
요.”
“허세부리지마 안통해.”
“통할걸요.”
강우의 미소에 염화의 인상이 일그러졌 다. 어떤 수작을 부리려는지 얼굴에 뻔히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강현이나 강천의 개 성이 하도 강해, 강우의 특징이 별로 없는 줄 알았건만 덩치에 걸맞지 않게 능구렁 이였다.
“어서 꺼내세요.”
강우는 염화의 히든카드를 알고 있었 다
속성과 융합하여 완성된 염화무극신
공(炎火無極神功).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실 체, 염화일기공을 뛰어넘는다 자신하고 있 었다 물론 염화일기공이 초월경지에 이른 화천문주와의 비교는 아직 어불성설이다;
‘이 망할놈이, 최악의 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