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300화 (300/500)

제1 장

용인술(用人術) (1)

무림대회가 열리는 대회장은 해안분지 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원형으로 되어 있 으며, 기후의 변화에 따라 열고 닫을 수 있는돔형구조다.

대회장을 반으로 가른 중앙에 탑이 우 뚝솟아 있다. 탑엔 대회장의 현황을 지휘 하는 통제실이 위치한다. 통제실엔 정우와 쉴드, 오덕X, 통제 현황을 체크하는 인원 까지 해서 총 10명이 있었다 정우는 모니터를 응시할뿐, 별도의 지 시는 하지 않았다. 통제실의 전반적인 일 처리는오덕X가맡아서 진행했다

“오덕 X.”

“예,주군!”

오덕X는바짝긴장했다

항시 긴장의 끈을 놓지 않기로 다짐을 한 그들이다.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을 저 당 잡히고 말았으니. 속성 중에 회귀가 있 다면 그날 이전으로 되돌리고 싶을 지경이 다. 이런 괴물인 줄 알았다면 절대 행운의 편지 같은 뻘짓은 하지 않았다 주군이란 작자는 전투력도 괴물이지만 사람을 괴롭히는 데는 도가 텄다. 작정하 고 마수를 뻗치면 어느 누구도 빠져나가 지 못한다 그러니 주군의 부름에 긴장하는 게 당 연했다. 또 어떤 말로 괴롭히려고 할지, 심 히 걱정이 앞선다 매일 일에 치여 살고 있 는데도 내색은커녕, 언급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 아이러니하게도 집에서는 잘 지내고 있는줄 안다 하긴, 예전에 비하면 인간됐 다고 봐도 무방하다.

“ 미안하다.”

“?…예?”

사과?

왜?

주군이 어째서?

혹, 지구종말!

오덕X는 멘탈붕괴가 왔다. 벌써부터 오 금이 저려온다 주군은 절대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럴 인간도 아니고. 무엇보다 약 점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사전에 포석을 깔아 놓고, 목표물이 함정에 들어오도록 유인하는 사냥꾼이다. 함정에 빠진 목표 물이 피가 마르도록 괴롭히고, 또 괴롭히 는 성격파탄자다.

‘안하던 짓을!’

‘왜이래 무섭게?’

‘죽나?’

사람이 한순간에 바뀌면 곧 죽는다는 말이 나온다. 인간인 이상죽음이 다가오 면 살아온 날을 되짚어보기 때문이다. 그 러나 오덕X가 아는 주군은 반성 자체를 모르는 인간이다. 본인만의 기준을 정해 놓고, 탈출하는 자들을 개 잡듯이 잡는다

‘우릴 공인인증서 대신 사용하는 인간 이!’

‘털리면 우리 책임이고.’

‘항거불능 조사불능, 생식 불능(?)?… 이건아니고.’

오덕X는 모든 서류 절차에 주술을 사 용해야 했다. 강력한 주술을 걸기 위해서 매일 무한 반복을 하고 있었다 그 결과 유 니크 등급이 7급에 도달했다.

주술력, 특히 인증과 각인에 관해서는 최고라고 자부한다. 하나, 주술은 인과율 이 작용한다. 각인의 반작용이 발생하는 즉시 주술을 펼친 주술사는 타격을 입는 다. 빌어먹게도 주술 속성이 상승하면서 일전에 계약한 주술의 효력 역시도 상승 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벗어날 수 없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너희를과소평가한거 같다.”

점점.

바른말만

오덕X는 몸이 차갑게 식어 시체가 된 기분이다. 지금도 업무량에 치여 살고 있 는데, 뭘 더 시키려고 저런 황송한 말을 하는 걸까? 무시무시한 밑밥이다. 얼토당 토아니한 명령이 내려질지 모른다는 불안 감이 엄습해온다

“컴퓨터 말이야.”

아!

통제실의 현황을 맡고 있는 오덕X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발달된 시대가 되면 서 인간이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오덕X의 컴퓨터 다루는 수준은 AI를 넘어섰다. 피지컬적으로 인 간이 AI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는 데, 오덕X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었 다. 하나에 빠지면 주변은 돌아보지 않는 집중력 하나는 타고났다.

근래는 물론 과거에도 들어보지 못한 칭찬에 오덕X는 감동했다. 워낙 칭찬을 받아보지 못한루저의 비애다 작은 칭찬에도 약하다

눈물 날 거 같다

‘우리가 컴퓨터는 좀다루지.’

‘덕후가 되기 위한 필수 덕목이니까’

‘이쯤은 되어야 덕후지.’

오덕☆유하라의 열성 팬이었다.

팬으로서 열일하다가 행운의 편지를 써 서 인생을 저당 잡히기까지 했다. 기본적 으로 오덕이라면 탁월한 해킹 실력을 보유 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연예인의 일거수 일투족을 확인할 수 있다.

‘그 시절의 노력이 보상을 받는구나.’

‘사람은 한우물을파야하는 법이지.’

‘이거 어쩌면우리에게도?’

각 기관과 매니지먼트 회사의 방화벽을

뚫기 위해서 오덕X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 았다. 그 결과 컴퓨터에 관해서는 누구에 게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할 만한 실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정우는 담담히 자아성찰을 했다. 인정 할건 인정할줄아는사람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감개무량한 현실이었다.

“주술 빼고는 병신이라고 확신했거든. 기특하다?”

엥?

이게 칭찬이야 먹이는 거야?

칭찬 같은데, 칭찬 같지 않은. 엿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오덕X는 표정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웃으면 서글프고, 울면 병 신 같고. 어쨌거나 주군의 공인인증서가 된 이후로 칭찬을 받아본 역사적인 날이 다 그간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 이 생활을 해 오고 있었다. 어쩌면 월급을 인상시켜줄지도 모른다 주군의 월급 명세 서를 본 날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었다

“굼벵이는 구르는 재주라도 있지.” 기특하다면서 비교를 해도 굼벵이냐. 뭐야 그럼?

굼벵이보다 못하다는 거잖아. 졸지에, 오덕 X ?굼벵이가 되었다 오덕X는 들을수록 칭찬으로 들리지 않 았다. 병신보다 낫고, 굼벵이와 동급 취급 을 받고 기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주 군은 수하들의 자존감을 하락시키는 데 도 천부적이었다. 이러려고 컴퓨터를 배웠 나 하는 자괴감만 쌓인다.

“시답지 않는 덕후질이나 하며 평생 구 질구질 살 녀석들이건만, 이젠 번듯한 직 장도 있고, 유니크 등급도 꽤 높아졌지.”

허!

오덕X는 할말을 잃었다.

칭찬은 개불! 하는 말마다 비수가 되어 심장을 관통; 영혼에 콕콕 박힌다. 다행이 라면 허락 없이 자살도 못한다는 점이다. 주술에 걸리지 않고 들었으면 바로 한강 입수다.

정우는 꼬집어 주었다.

“벌레보다 못한 너희를 사람 만들어 준 분이 누구라고?”

“?…주군입니다!”

“대답이 늦네.”

오덕X는재빨리 변명했다.

주군의 아량은 바늘구멍보다 좁다. 그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비위를 잘 맞추어야 한다. 칭찬은 패시브스킬(Passive-Skill)이 며, 아부는구명지초(救命之招)다

“주군이 아니었으면 저희는 평생 벌레 보다 못한 삶을 살았을 겁니다!”

“그 마음 잊지 않도록.”

“항시 가슴에 새겨 명심하습니다!”

치하는 개뿔, 본인에 대한 자화자찬을 하기 위한 포석에 불과했다. 어쩐지 사과 를 할 때부터 오금이 저려왔었다. 주군이 어떤 사람인지를 또 한 번 깨닫게 해준다. 대화를 하면 말려드는 가장 큰 이유이기 도하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가장 뼈아픈 부분

을 정확히 찌르고 난도질을 한다. 그러니 안 넘어오고 배기겠는가. 4대 성인도 주군 과 난상토론을 하다 보면 빡쳐서 주먹질부 터 하게 된다 결과는 뻔하다. 주군은 신이 라고 해도 가만 놔두지 않는다

“이제 그만혹금단에 편입시킬까?”

오덕X는 주군의 중얼거림에 마른침을 삼켰다. 공인인증서로 제 역할을 하기까 지 혹금단의 기초 훈련을 수료 받았다 그 때만 상기하면 아직도 피가 마르는 기분이 다 혹금단은 인간 같지도 않은 망종의 집 합소다. 원래부터 망종이었는지, 아니면 주군의 훈육으로 망종이 되었는지는 중요 하지않다

주임교관이었던 양용익 부단주와 한 대 화가 아직도 회자되었다

-훈련을 하다 죽었어, 그럼어떨 거 같 아?

"개죽음이죠.

-아니지, 축복이다. 전생이 나라를 구 했을 거다. 그러니 너희는 절대 죽지 않는 다

-그게 무슨?

-곧 알게돼.

오덕X는 훈련이 끝나고 나서야 깨달았

다. 혹금단은 살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이 아니라, 죽기 위해 노력하는 자들이라는 걸.

“주군, 잘못했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당치도 않은 소리. 기대하지 않았던 너 희가 이만큼이나 해줄 줄이야, 내가 너희 를 과소평가한 게 맞아. 난 말이야, 실수 는 인정할 줄 아는 큰 사람이다. 허참 내 가 생각해도 담대한 아량과 깊은 고찰이 아니던가”

오덕X는 기브지 않았다.

잘해도 지옥, 못해도 지옥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이 혹금단에 소속되 는 것보다는 덜(a little) 지옥이었다. 현실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 이 오덕X, 본인들의 처지임을 실감했다.

피식.

정우도 그냥 해 본 소리다.

오덕X는 현장에서 뛰기에는 지나치게 연약하다 톡 쳐도 죽어버릴 것 같은 허약 한 육체다. 훈련을 통해서 일반인보다는 강해졌다 해도, 한계가 엄연히 존재했다.

혹금단이 현장이라면 오덕X는 사무실 이 적합하다

“10만원 올려주지.”

“?…감사합니다!”

연봉 1200만원에서 1210만원이 되었 을분이거늘, 왜 이렇게 기브냐고.

오덕X는 감격에 겨워야 했다. 흑금단에 편입시키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 다

“그래야지, 초심을 잃지 말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헤헤헤.”

정우는 통제실을 관리하고 있는 자를 불렀다

혹금단의 기초교육 과정을 무사히 수료 하고 막 들어온 신입이다. 훈련을 마치기 전까지만 해도, 일탈한 청소년처럼 반항기 가 가득했으나 이젠 제법 흑금단원의 티 가 난다 개차반 같은 놈들도 혹금단의 기 초훈련 과정만 수료하면 예의 바른 어른 이 되었다

“속성 범위는?”

“100미터 내외입니다.”

“많이 늘었군.”

“단주님의 보살핌 덕분입니다”

“처세술도좋고, 오래 살겠어.”

“최선을 다할뿐입니다”

신입의 이름은 임수철이다

전직은 도둑 나름 한국에서 이름이 알 려진 대도(大盜)였다. 하지만 단주님의 집 을 털려다 흑금단에 걸리는 바람에 빼도 박도 못하는 인생이 되었다. 대도로서 망 할 놈의 승부욕이 발목을 잡았다

‘내가미쳤지!’

임수철은 후회막심 이었으나, 포기했다. 혹금단에 소속이 된 이상 도망은 불가능 하다 단주의 능력을 보고 나선 더더욱 그 렇다. 무공뿐만 아니라 도둑을 꿰는 악마 같은 심기까지 인간의 범주를 초월하신 분이다:

“분석은?”

“끝났습니다”

이번 일에서 임수철의 속성이 가장 중

요했다

오덕X와 임수철이 아니었다면 발견하 지 못했을 것이다 막내임에도 요긴하기에 대회장의 총괄 시스템 관리를 맡겼다. 실 제적으로 주住)는 임수철이고, 보조는 오 덕X였다. 둘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통해 서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내고 있다 간간 히 벽돌 깨기를 하지만 봐주었다.

“시설이 참좋아”

“저도 좀처럼 보기 힘든 최첨단 장비들 입니다”

시스템 장비를 확인한 임수철도 꽤 놀 라고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내 실은 더 좋았다

“돈 많이 들었겠지‘?”

“그렇습니다:’

도해문은 대회장을 건설하는 데 막대 한 비용을 소모했다.

짧은 기간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 최 고의 건설사를 끌어들였다. 대회장 내부 에 기관과 결계를 설치해야 하기에 기밀을 유지해야 했다. 이로 인해 기존 건설비용 보다 더 많은 자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 다 무엇보다 전반적인 상황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통제실의 설비가 중요했다 대회장 전체를 통제실 안에서 언제든지 관리 가 능한 설비를 구축해 놓았다. 근래에 미국 과 일본에서 개발이 된 최신의 인공지능 까지 탑재가 되어 시설관리에 관해서는 최 적화되었다.

“역시 새것이 좋아”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요긴하게 써줘야겠지.”

“거의 공짜라더 좋습니다. 헤헤.”

“악당처럼 웃진 말고.”

“자중하겠습니다”

임수철은 입에 발린 말을 하는 데 주저 하지 않았다 살기 위한 궁여지책은 올바 른 선택이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골 동품은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더 올라가 지만, 기계는 다르다. 자동차를 비유해도, 사는 순간 중고가 될 운명이다

“자고로 1을 투자해서 100을 얻어야 투자할 맛이 나는 거지.”

“단주님이야말로 투자의 신이십니다(솔 직히 그건 날로 먹는 거죠).”

정우는 금강문을 통해 대회장 건설에 자금을 투자했다 도해문이 거의 대부분을 내고, 금강문 은 각 무문보다 조금 더 많은 금액을 투자 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도해문이 쫄딱 망 하는 바람에 대회장의 소유권은 금강문 에 있었다. 각 무문에서도 투자를 했기에 약간의 지분이 있기는 하나, 실소유주는 금강문이다.

“유진그룹의 모회사와 재정 구조는 파 악해 놨겠지?”

“여기 있습니다.”

흑막을 이용해서 유진그룹과 현무길드 의 관계를 파악해 놓았다. 일전의 일을 묵 과한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겠지만, 어쩌겠는가. 사람은 원한을 쉽게 잊지 않 는다: 가진 게 많은 자일수록 더더욱. 슬슬 건강을 회복했을 테니, 원한을 곱씹으며 기회를 노리고 있을 테고.

‘주제를 모르면 알게 해줘야지.’

실상 유진그룹이나 현무길드는 논의 대 상과는 거리가 멀다. 주목해야 할 건 모회 사다 일전에 도해문을 처리하면서 연관성 을 추적하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 다 그 일련의 과정 속, 유진그룹과 현무길 드는 거친 풍랑 속에 휘말리는 조각배에 불과하다

‘완성된 그림은 볼만하겠군.’

하나, 사람인 이상 실수도 할 수 있으니. 반성을 한다면 1번의 기회는 줄 수 있었 다. 그럴 거란 기대는 하지 않지만

“쉴드는 통제실을 지키도록 해.”

“예,주군.”

정우는 쉴드를 대외적으로 드러내지 않 았다. 무문에서도 쉴드의 존재를 모른다. 하북팽가에서 첫 실전을 경험한 이후로 훈련에만 몰두하도록 했다 그동안 취약했 던 부분을 보완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쉴드의 역량을 시험해 볼좋은 기회지.’

정우는 온실 속의 화초를 키울 생각이 없었다. 설령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 해도, 실전을 중시했다. 실전에서 제 실력 을 발휘하도록 혹독한 훈련을 소화했으니 기대는 되었다. 잠재되어 있는 능력과 서 로 간의 호흡이 완벽해진다면 절대 방패 로서 가치를 다할 것이다.

‘보여줄 필요도 있고.

금강문의 저력을 공개하는 자리가 되어 야 했다. 그 안에 쉴드의 전투력도 포함이 되었다. 그렇기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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