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297화 (297/500)

제’7장 저마다의 사정 (3)

후르륵!

보이차 향이 입 안을 감돌았다가 식도 를 타고 내려갈 때의 느낌이 참 좋았다. 개 운하고 청량한 맛이 일품이었다. 되놈들 이 성격은 쪼잔할지 몰라도, 차의 발상지 답게 종류도 다양하고 향과 맛이 괜찮았 다

“여기가네 집이냐?”

“며칠 전엔 직접 타 마시라고 했으면서.”

“됐고, 어떻게 책임질 거야?”

“뭘요?”

“시치미를 떼시겠다, 그런다고 어물쩍 넘어갈 성싶으냐!”

노인네가 집요한 구석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한 번 꽂히면 포기할 줄 모른다 그 래서 젊었을 땐 안 그래도, 나이가 들면 꼰 대가 된다. 본인은 아닐 것 같지, 확신하지 마라. 미래는 아무도 모르고, 지나온 세월 이 검증을한다.

정우는 손사래를 치며 오해라고 해명했 다. 갑자기 긴급 호출을 하는 바람에 오밤 중에 공간이동마법진으로 급히 왔을 뿐이 라고. 하루의 보장된 수면 시간을 할애했 건만 돌아오는 오해는 억울했다

“전가만히 있었는데요.”

“그러니까! 네놈이 언제부터 내 말을 그 렇게 잘들었다고.”

청개구리처럼 꼬박꼬박 반대로만 행동 하며, 노인네 간덩이를 오그라들게 만들 었으면서. 이번에는 말을 잘 듣고 지랄이 었다

“제가 또 언제 말을 안 들었다고 하세

요. 알다시피 전 신용 빼면 시쳅니다.”

“뚫린 주둥이라고 잘도 나불거리는구 나.”

언성을 높였지만 답답한 쪽은 유 회장 이었다. 이 망할 녀석이 손녀가 나서도록 유도했다는 게 뻔히 보이는데도 책임을 묻 기가 어려웠다. 지가 기름장어도 아니고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갈 구멍을 파 놓은 것이다 걸고 넘어가면 손녀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하기에 더더욱 난감하다 한숨만 깊다.

“말렸어야지.”

“작정한 놈을 어떻게 말려요. 말린다고

듣지도 않을 텐데. 그렇다고 야만인도 아 닌 지성을 갖춘 현대인으로서 때릴 수도 없고요.”

내 손녀가 야만인이냐?

이걸 확마!

유 회장은 다른 녀석도 아니고, 정우에 게 이런 시답지도 않은 개소리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이놈은 자기가 하면 무조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무조건 불륜으로 만드는 요상한 재주를 타고났 다. 유진그룹의 애송이도 처음부터 그럴 마음은 먹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의 보는 눈도 있을 텐데, 무모한 행동이었다. 그럼 에도 엮이게 된 건 정우의 의도가 작용했 을 것이다.

“왜 그런 거냐?”

“목적이 있다고생각하시는 건가요?”

“발뺌하진 마라”

“아주 없다고는 말 못 하겠지만, 제 잘 못으로만 모는 건 너무하신 처사네요. 막 말로 하라는 어딜 가도 분란을 초래할 만 한 외모를 지녔습니다. 모두가 보는 자리 라고 해서 고양이가 생선을 두고 보겠습니 까.”

“내 손녀가생선이라는 게냐.”

“그 녀석은 길드원을 데리고 파티에 참

석했습니다 그것도 기억조작과 공간에 결 계를 칠 수 있는 유니크를요. 그게 뭘 뜻 하는 거겠습니까?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언제든 노릴 심산이었던 거지요. 차라리 제 앞에서 일이 벌어진 게 다행이지 않습 유 회장은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 다. 유진그룹의 애송이는 명백한 흑심이 있었다. 그 자리가 아니더라도 본색을 드 러냈을 확률이 높았다. 그렇다고 정우에 게 정체를 드러내라고 강요할 수도 없다. 장막에 가려져 있을 때와 드러냈을 때의 차이는 컸다. 본인의 의지라면 또 모를까, 남의 강요에 움직일 녀석도 아니다. 어설 프게 다그치면 이놈은 지 가족만 지키는 이기적인 놈으로 돌변한다.

“이제 어쩔 셈이냐? 유진그룹이나 현무 길드가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이빨을 드러낸다면 봅아버려야지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면서 웃기까지 했 다

정우의 태연함에 유 회장은 피가 차갑 게 식었다. 의도하지 않았다면서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는 주제에 오해라니. 뻔뻔함이 지상 최 강이다.

“나야 살만큼 살았으니 그렇다 치고 하 라에게 피해가 가기라도 한다면, 너라도 가만두지 않을 테니 잘해야 할 거다”

“아실만한 분이 왜 이러세요. 저들이 바봅니까”

“살다 보니 납득하기 어려운 일도 일어 나더구나. 상식이 통하는 세상은 아니지 않느냐”

“그렇긴 하죠. 되도록 신중을 기하겠습 니다”

“그것만으론 안돼. 네가장담해라”

“대단하시네요. 약속드립니다. 절대 하

라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을 겁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진 않 겠지만, 정우는 자신의 주변을 위험에 빠 뜨리는 짓은 흐}지 않는다 하라도 그 안에 포함이 되었다. 그럼에도 유 회장의 노파 심을 이해했다.

“할아버님은 중국시장 장악에만 집중 하시면 됩니다.”

“한한령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시긴데, 힘든 일만 떠넘기는구나.”

중국은 과거나 현재나, 자기중심적인 사 고관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작은 수틀림 을 핑계로 무역장벽을 세워 놓고, 힘겨루 기를 한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힘 싸움을 해서 승산이 있는 국가는 많지 않았다 딴 에는 중국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루트 를 개발하라고 하나, 현실이 그리 녹록한 가 정우는 이를 위해서 팽가를 끌어들였 다고 봐도 무방하다.

“팽가의 이름으로 막아줄 겁니다.”

“그게 맘처럼 되겠느냐,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족속들이거늘”

“반드시 그리되도록 만들어야지요.”

“안되면?”

“약속은지켜져야만 합니다.”

대한그룹의 위상은 국내 최고의 위치

에 올라섰다. 국내 재계서열 1위면 세계에 서도 10대 그룹 안에 속했다. 막대한 부 를 축적하며, 일우그룹의 지분까지 흡수 를 해 대적할 그룹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기업은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언제든 쇠 락할수 있었다 항시 경계를 하며, 발전을 늦추지 말아야 했다.

“이번에 정부에서 재단설립을 위해서 기금을 요청하더구나.”

“설립 목적이 뭔가요?”

사회재단을 하나 더 만들려는 정우로 서는 걸림돌이 될 수 있었다. 이 문제가 커 지면, 금강문도 영향을 받는다.

“문화융성을 통한 한류 콘텐츠 강화를 위해서라더라. 이전에는 청년사업진홍이 목적이라고 하더니 이름은 잘도 갖다 붙 여.”

사업목적만 있고, 사용된 기록은 존재 하지 않는다. 희한한 형태의 재단설립이었 다. 여태까지 청년들의 창업을 위해서 노 력했다고 하지만, 기금의 운용은 투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단의 자체 비용 처리가 상당히 많았다. 사실 재단은 운용할 인원 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 필요한 공간만 있 으면 한두 명으로도 얼마든지 관리가 가 능하다

“얼마나 원합니까?”

“8백억을 내놓으라는데, 협박이나 다름 이 없어.”

주지 않으면 다양한 방법으로 사업에 제재를 가할 게 확실하다. 이번 정부 들어 서 더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암울한 현실 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하려면 정경 유착은 필연이었다

“한몫 제대로 챙기겠다는 건데, 목적은 확실해서 좋네요.”

“나라도 나서서 깨끗한 세상을 만들고 싶기는 하다만, 착한 사람은 불이익을 받 는 현실이지.”

권선징악은 말 그대로 동화 속에서나 가능했다. 현실은 동화처럼 아름답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시간이 흐르면 정의가 이긴다는 말도 현실적이진 않다.

“할아버님은 착하지 않다는 말이네요.”

“씁쓸한일이지.”

유 회장이 비록 생김새는 꼬장꼬장히고 고리타분해 보이지만, 사업가로서의 수완 은 세계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청렴도에서 도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럼에도 정경 유착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유 회장도 많 이 봐온 것이다. 정부에 좋지 않게 찍히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과거 신발공장으 로 큰 기업이 정부의 탄압에 갈가리 찢겨 나가는 꼴을 봤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줘야죠.”

“어째서?”

“사업은 해야하니까요.”

유회장은털어 놓은고민에 대한답을 원하진 않았다. 답은 정해놓고 있었다. 하 지만 정우가 이런 식으로 대답할 줄은 몰 랐다. 자기한테 요구했으면, 당장 찾아가 서 항문에 낀 콩나물까지 탈탈 털어올 놈 치고는 지나치게 고분고분하다

“단요구를하시면 안됩니다”

“내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800억 이나 내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는 게 냐?”

“예.”

“이놈 보소, 네 돈이라면 그리 말할 수 있냐!”

“저라면 요구하는 즉시 연관된 모든 연 놈들의 사지를 자르고, 개 먹이로 던져줄 겁니다 하지만 회장님은 제가 아니시죠.”

웃으면서 말을 하는데, 정우의 눈은 웃 지 않고 있었다.

유 회장은 농담이 아님을 직시했다. 하 긴 사람 죽이는 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 는 했다. 특히 건드리는 놈들의 최후는 일 우그룹의 채철민만 봐도 충분하다. 자식도 잃고, 본인도 이용당하고 그룹까지 털렸 다

“아, 정정합니다. 개도 그런 놈들은 안 먹을 테니 소각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무서운 자식.”

“회장님만할까요?”

“내가어쨌다는 거냐?”

“따로 전담부서를 두어서 자료를 수집 하고 있잖아요.”

유 회장은 홈칫했다. 그룹이라고 비밀 부서가 없다고 보면 오산이다. 만약을 대 비해서 방패막이로 쓸 자료를 조사해 놓 고 있었다. 이는 자신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기밀이었다. 한데, 이놈은 모르는 게 없다

“어떻게 안거야?”

“제가혹막을 관리합니다. 자료가 미흡 하다면 도와드릴 수도 있습니다.”

“네가 그리는 큰 그림에 빠지고 싶구나.”

“낙장불입니다.”

유진그룹의 장자가 걸레가 되어 현무길 드는 망신살이 뻗쳤다. 그들로서는 꼴이 우습게 되어버린 사건이다. 유진그룹에서 사람 하나도 경호하지 못하냐는 격렬한 항의를 해 왔다. 만약 유호진이 잘못되면 그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거북이와 뱀이 오묘하게 섞인 그림이 인상적인 공간.

백발 백미의 사내가 원탁의 중앙에 앉 아 있었다. 머리카락을 보면 나이가 들어 보여야 하나, 피부는 주름 하나 없이 팽팽 하다.

사신(四神) 길드의 한축인 현무길드의 길드장 수왕(水王) 이영환이다 장씨 형제는 긴장을 한 채 고개를 숙이

고 있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사람인 이상 실수할 수도 있지.”

길드장의 용서에도 장씨 형제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그들이 아는 한 길드장은 무 서운 위인이었다. 한없이 너그러워 보이나, 그의 눈 밖에 난 자들의 말로는 처참했다. 또한 표적을 정하면 끝장을 낼 때까지 지 독히도 괴롭힌다. 피를 말린다는 말이 괜 히 불거져 나오지 않았다. 그렇기에 바짝 엎드렸다

“당시의 상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 지?”

“?…그렇습니다.”

장씨 형제의 기억조작과 결계는 정평이 나 있다. 그런데도 도리어 당했다면 상대 방의 실력이 그 이상이라는 의미가 되었 다

“어째서일까?”

“조사해본 바로 그는 마법사입니다. 그 것도 꽤나 수준 높은 실력을 갖추고 있습 니다”

“그분이야?”

장씨 형제는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으 로 인해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등 뒤의 계곡 사이를 홀러 바지를 적셨다. 길 드장은 원인 규명을 원하고 있었다. 사태 를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 야만 전번의 실수를 조금이나 만회할 수 있었다.

“유니크 전문학과에 다니고 있으며, 추 정된 마법레벨은 6륜에 올라섰다고 판단 이 됩니다. 또한 근래에 들어 파란을 일 으키고 있는 하이퍼 팩토리의 후계자입니 다”

“그게 다야?”

“하이퍼 팩토리와대한그룹은 금강문 과 관련이 있습니다. 놈은 마법사이면서 금강문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또?”

장씨 형제는 점점 더 궁지에 몰렸다. 조 사한 자료를 빠짐없이 보고 했음에도 길 드장은 더 많은 정보를 요구했다

“송구합니다!”

“됐어, 그만 나가봐:”

길드장의 축객령에 장씨 형제는 두말하 지 않고 문을 나갔다. 형제는 밖에서 대기 하고 있는 여인을 보았다.

움찔!

수수한 미소를 짓고 있는 청순한 여인.

장씨 형제는 그녀의 시선을 급히 피했 다. 길드장도 무섭지만, 길드 내에서 제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대가 있다면 바로 그녀다. 아름다운 외모에 속아서는 안 되 는 부류로. 사갈 중에서도 최악의 사갈, 그녀를 지칭하는 단어다. 절대 그녀에게 넘어가지 말라는 소문이 길드 내에 떠돈 다

“또 봐요.”

“?…아닙니다!”

“제가 싫으세요?”

“?…아닙니다!”

“그럼 좋다는거군요.”

청순했던 그녀의 두 눈이 요사스러운 빛을 발하자 장씨 형제는 독사 앞에 놓인 개구리처럼 벌벌 떨었다. 다행이 그녀는 길드장의 부름을 받고 안으로 들어갔다. 만약 시간이 더 지체되었다면 형제는 영 혼은 물론 육체까지 온전하지 않았을 것 이다.

‘?…도대체 얼마나 잡아먹은 거야?’

장씨 형제가 그녀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그녀는 결코 어리지 않았다. 하 지만 외견상으론 갓 20세로 보였다 저 젊 음이 단순하지 않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길드의 회의실로 들어온 여인이 인사를 했다.

“부르셨어요.”

“ 앉아”

“어디에 앉을까, 난무릎이 좋은데.”

“죽고싶나?”

“헤헤, 농담이에요.”

어딘지 모르게 헤퍼 보이는 그녀, 길드 장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본모습 을 안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하나, 기 어오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떻게 생각해?”

“젊음이 좋네요, 먹음직스럽겠어요.”

“그렇군.”

이영환은 그녀의 감을 믿는다. 물론 그 보다 더 믿는 건 그녀의 정보력이다. 명령 을 내리고 나서 조사가 들어갔을 테고. 잠 재등급이 낮기는 해도, 마법사로서 6륜에 올랐다면 실력은 보장되었다

“딩장움직일까요?”

“알면서 묻는거면, 짜증나는군.”

이영환은 필요한 말을 전하고, 그녀를 내보냈다. 길드 내에서 같이 하면 피곤한 여인이 그녀다. 그로서는 현재 무문연합 에서 개최한 무림대회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길드연합에서도 이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무림대회에 버금가는 대회를 주최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무문연합에 주도권을 빼앗지 않으 려는 것이다.

‘그건 끝나봐야 될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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