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저마다의 사정 ⑴
“어떻게 된거야?”
“얼굴이 왜 저래?”
“걸레도 저보단 깨끗하겠다!”
“뭔가있나 봐:’
장씨 형제의 결계와 정우의 환상마법이 풀리면서 현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양 팔이 잡힌 채 무방비로 처 맞은 유호진은 엉망진창이었다. 여자가 분노하면 결말이 좋지 않음을 증명해주었다.
웅성웅성.
연회에 참석한 회원들은 두 눈을 의심 했다. 방금 벌어진 일들이 이해가 되지 않 았다. 흐}지만 당연했다. 그들이 본 장면은 저장된 영상에 불과하다. 결계에 환상 마 법을 걸어 놓은 효과였다 정작사건의 당사자이자, 주범들.
하라와 정우는 강 건너 불구경 중이다.
“자기야, 맛있어‘?”
“?…내가 말을 말아야지.”
정우는 포크로 썰어 놓은 스테이크를 하라의 입에 건네주었다.
하라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도 주는 건 받아먹었다. 걸레가 된 유호진과는 대조적 인 고상하고 아름다운 커플의 식사였다. 마치 남의 일처럼, 완벽한 모르쇠다.
‘이래도 되는거야?’
‘그럼 어쩌려고, 인정할까?’
‘너 때문이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난 가만 있었는 데.’
하라는 골이 지끈거렸다. 정우로 인해 사달이 벌어졌다고는 할 수 없다. 본인의 빛나는 외모와 넘치는 배경이 사건을 일으 킨 원흉이었다 너무나 잘나서 생긴 일. 하 늘은 왜 이렇게 잘나고 예브게 만들어 주 셨을까 푸념을 해본다 그래도 그렇지.
정우는 말리지는 못할망정, 멍석까지 깔아주었다. 멍석 위에서 정말 제대로 놀 고 말았다 그로 인한 걱정은 하라의 몫이 되었다.
‘그러게 적당히 하지, 왜 사람을 치고 그 래.’
‘약올리지 마. 확! 엎는다.’
‘뭐, 그러든지.’
‘넌 진짜걸리는 게 없구나!’
‘하늘을 우러러 한 점의 부끄러움이 없 을 분이야 아니라면 돌을 던져도 좋아’
옆에 암반 있었으면 던졌다
정말
하라는 답답함이 밀려왔으나, 정우의 계획을 순순히 따랐다. 이제와 잘못했다 고해 봤자좋은꼴못본다. 때론모른체 와 발뺌도 필요했다. 끝까지 모른 체하면 저들도 어쩌지 못한다. 만약을 대비해서 천원일기공과 신안을 극대화했었다. 기억 의 왜곡은 자칫 발각될 위험이 있기에, 최 소한의 기억 삭제를 해 놓았다. 끊어져 버 린 기억에 대해서는 찾아내기 어려울 것이 다. 설령 찾아낸다 해도 완벽하지 않아증 거는되지 않는다
‘천원일기공이 많이 늘었어.’
‘넌 꼭 이럴 때만 칭찬하더라 비꼬는 거 야?’
‘비꼬기는 난순수해.’
‘두 번 순수했다가는 내가 제명에 못 죽 겠다,
‘아냐, 넌 나하고 사귀는 이상 무병장수 할거다 내가보증해.’
왜냐고?
내 여자 친구의 수명은 소중하니까
정우는 주변을 챙기는 자신의 변화에 부듯했다 전생엔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 고 다른 여자를 취하면 그만이었다. 인간 적인 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하라 도 일부분은 영향을 주었다 그 점은 칭찬 을 받아 마땅하다.
‘그나저나 괜찮을까?’
‘괜찮아 너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반응 했을뿐이야’
‘그런 거야?’
‘그렇고말고.’
정우의 태평함에 어이가 없기는 해도, 든든함을 느꼈다. 내 남자 친구가 천하무 적이기에 가능한 위로였다. 그 어떤 사람 의 확답보다도 안심이 되었다. 솔직히 정 우가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어려서부터 봐온 정우는 자신이 한 말은 반드시 지켰 다. 신뢰감 하나만큼은 최강이다. 너무나 완벽해서 재수가 없을 때도 간혹 있지만
“이게 대체?”
“이런 젠장!”
끊어졌던 의식이 돌아온 장씨 형제는 당황했다. 자신들이 밟고 있는 대상의 보 호가 그들의 목적이었다 한데, 발로 밟고 선 채 제압을 했다. 다행이라면 외상이 심 하기는 해도,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는 점 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뭘 알아야 따지지, 기억이 나지가 않았 다. 주변의 반응도 자신들과 다르지 않았 고, 원인을 제공한 연놈들은 외면한 채 고 상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저 연놈들과 관련이 있을 공산이 크지만 증거가 없다.
그때였다.
식사를 하던 정우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장씨 형제들을 위로했다. 주인을 잘못 만난 개는 영양탕이 되기도 하는 법.
“딱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살다 보면 실수도 하고 그러는 거죠. 저분도 충 분히 이해를 해주겠지요.”
“당최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습니 다만?”
“단기기억상실증이라니, 충격이 꽤나 컸나 봅니다. 하긴, 모시는 분을 말리려다 의도치 않게 손을 썼으니 그럴 수밖에요. 실수니까, 괜찮을 겁니다. 실수하면 처 맞 기도 해야 세상이 바로 서지 않겠습니까”
“헛소리하지 마시오!”
“혓소리라고요, 그렇다면 방금 일을 모 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해 볼까요?”
장씨 형제는 정우의 여유로움에 움찔했 다. 분명 받아들이기 어려운 오해이기는 하나, 저 근거 없어 보이는 자신감이 맘에 걸린다. 더욱이 영상을 찍었다면 더더욱 문제가 된다. 사태 파악이 되지 않은상황 이기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장씨 형제는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영상을 주시면 확인한 후에 연락드리 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여기서 다같이 보시죠.”
정우의 쐐기포에 장씨 형제의 동공은 흔들렸다. 유호진이 나섰을 때부터 기억이 사라졌다. 뭔가 수작을 부렸을 가능성이 컸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들에게는 불리 한 영상일 수밖에 없다. 이쯤에서 사태를 마무리하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영상은 다음에 보겠습니다. 저희는 이 만물러 나겠습니다.”
“식사도 하지 못했을 텐데, 같이 하고 가시죠.”
장씨 형제는 물고 늘어지는 정우의 화 술에 울컥했다. 경호 대상이 반죽음 상태 가 되었는데, 한가롭게 식사할 여력이 있 겠는가. 자기 일 아니라는 식의 담담함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유호진이 평소와 다르게 성질을 참지 못하고 분노한 이유를 알것같았다.
“좀더 있는다고안죽습니다.”
“됐습니다.”
대화를 더 하다가는 무슨 짓을 할지 모 른다
장씨 형제는 유호진을 데리고 급히 연 회장을 빠져나갔다 그들로서는 꼬일 때로 꼬여 버린 현실이었다. 돌아가서도 문책을 피하기 어렵다. 재수 없으면 유진그룹과의 관계마저 틀어져 버릴 수 있었다.
“와 진짜할말을 잃게만드네.”
“뭐가‘?”
“영상은 있는거지?”
“있으면 좋고, 아니면 말고지.”
하라는 말 몇 마디로 장씨 형제를 보내
버리는 정우의 테크니컬한 화술에 혀를 내둘렀다 이 인간은 전투력도 무지막지하 지만, 그보다 더 대단한 건 저 주둥이다. 사람의 약점을 찌르는 데 최적화된 말발 이었다. 단순히 찌르는 걸로 부족해, 심각 한 정신적 대미지까지 축적시킨다.
“진짜어쩔 셈이야?”
“걱정은 넣어두고 집에 가서 푹 쉬어. 그 럼되는 일이야”
바보가 아닌 이상 정황을 보면 계산은 나온다. 다만 현무길드나 유진그룹이 대 한그룹의 손녀인 하라를 건드리진 않을 거 다. 잘못 건드렸을 때의 파장이 크기 때문 이다
정우는 처음부터 그 점을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라에게는 위험이 가지 않는다는것을.
물론 진짜 목적은 따로 있었다.
‘무문연합만으론 안되거든.’
무문연합이 한국 무림을 대표하기는 해 도, 유니크 전체를 총괄하진 않는다 길드 연합과의 관계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 었다
‘명분이야 만들면 그만이지.’
단, 현무길드나 유진그룹이 올바르고 현명한 판단을 한다면 애써 만들어 놓은 판은 깨지게 된다. 아름다운 한국 사회의 이면을 견식 할 기회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보는눈이 너무 많았다. 꼬리를 말고 도 망간 상태에서 보복을 하게 된다면 이목 의 집중은 당연했다. 시간대는 아마 무림 대회 이후일 거다.
‘아니면, 말고.’
방법은 많았다.
금강문은 하북팽가에 이어 앨런가와도 교류를 맺었다 한미중과 동등한 협약을 맺었기에 시
사하는 바가 컸다. 이에 대한 대대적인 홍 보를 통해 금강문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 는 중이다. 숨겨진 내막을 따지고 들어가 보면 금강문이 더 유리하게 작성되기는 했 다. 물론 불평등한 계약조건을 내밀어 앨 런가와 하북팽가를 자극하진 않았다. 자 존심은 세워주고, 실속을 차렸다고 보면 된다 정우는 동생과 쉴드의 훈련을 끝마친 후 금강문에 도착했다 금강문에 들어서자마자 희한한 광경이 시선을 잡아끈다. 청금단의 황 단주 이하 단원들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못 볼 꼴을 본 표정들이다. 눈들이 썩을까 염려가 되 어 세안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었다. 정우 를 보고 하소연을 해 왔다. 저것들만 치워 주면 수련을 더 열심히 할 자신들이 있었 다
“차마 눈뜨고 못 보겠다. 정도란 게 있 는거지.”
“또 왜요?”
“걔들 정상이아니야, 적당히 좀해야 지, 원.”
“좋아하니까 그렇겠죠.”
“자기들만 연애를 했나. 너도 보면 못
참을걸.’
세경과 강천이 요즘 금강문의 화젯거리 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 매번 이슈의 대상 이 되어 문도들의 안줏거리가 되었다 정우는 딱히 제지하진 않았다. 본인들 이 좋아서 하는 애정표현이다. 사랑한다 면 스킨십을 한다 해도 문제가 되진 않는 다. 서로에 대한 표현이 많을수록 애정이 쌓여간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총관실로 가는 중에 강천과 세경을 봤 다
움찔!
정우도 강천과 세경의 복장에 한 발 뒤 로 물러서고 말았다. 전장에서도 물러선 적이 없었건만, 신선한충격을 안겨주었다 요즘 시대는 과거와 달리 표현이 보다 더 적극적이라고는 하나. 청금단주의 짜증이 이해가 되었다
“너희, 그러고돌아다닌 거냐?”
“대공원에 갔다 왔지롱 그치 자기?”
“응,너무재밌었어.”
“유령의 집이 제일 재미없었지?”
“그건좀 시시했어.”
정우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했다. 이 둘 을 연결해준 당사자가 다른 누구도 아닌, 본인이었다 처음부터 이상증상이 있기는 했어도, 이렇게까지 심각한 중병일 줄은 예상못했다. 청금단이 질겁할 만하다
“머리 위에 그건 또 뭐야?”
“내 건 호랑이고, 자기 건 토끼야 예브 지?”
호랭이고, 토갱이고.
내 안구를 테러하는 저 외형을 그대로 두고싶지 않았다.
정우는 주먹을 뻗을까, 말까 망설였다. 근래에 들어 해 보지 않았던 고민을 안겨 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강천과 세경은 핑 크색 반팔 커플 티를 맞춰 입고. 호랑이와 토끼 리본을 머리에 떡하니 쓰고 있었다.
“한겨울인 건알고 있는거지?”
“날씨가 뭐가중요해.”
한서불침의 역효과였다. 한겨울에도 반 팔티를 입고 다녀도 되었다.
계절의 변화에는 맞춰가야 하건만 지들 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뿐이랴, 오늘은 30 년 만에 가장 추운 날씨였다. 다들 옷을 싸매고 다니는 가운데,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제정신으로 보진 않을 거다. 간흑, 메이드복이나 래깅스에 빠진 정신 나간 여자 유니크가 한겨울에 도 착용하고 돌아다니기는 해도.
“날씨 따윈 우리의 뜨거운 사랑을 이기
지 못해. 그치 자기야?”
“몰라몰라!”
꽝꽝!
세경이 강천의 넓고 단단한 가슴을 토 닥거리는데, 쇠몽둥이를 치는 굉음이 들 렸다. 강천도 그때만큼 동공이 살짝 풀렸 다. 일반인이었으면 몰라몰라 초식 두 방 에 황천길로 직행할 애교였다. 세경에게 ‘나 잡아봐라’를 시켰다가는 정말 잡아먹 힐지도 모르겠다
‘ 깨버릴까?’
하북팽가와의 협약을 위해선 세경과 강천이 잘되어야 한다. 팽세기에게 힘을 실어줄 때도 유리하고. 하나, 이 꼴을 계속 보고 있으니 하북팽가도 지금 당장 부셔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명분 따위에 얽매이고 싶지 않은, 그간 지켜내려고 안 간힘을 쓴 인생철학마저 흔들렸다.
때마침일까,
이호극이 등장했다. 화천문주를 만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고 온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 염화는 덤이었다
“어이구, 우리 새애기! 아주 잘 어울리 는구나.”
“아버님밖에 없어요, 최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이호극의 가벼움 이었다. 플레티넘 프리패스 카드의 위력이 기도 했다. 풍족해진 자금과 더불어 여유 가 늘었다. 화천문에 가서도 시원하게 쏘 고 왔었다. 좀생이 같은 화천문주에게 카 드의 위력을 맘껏 자랑했다. 너는 며느리 한테 이런 카드 받아는 봤냐, 라는 자랑이 압권이었단다.
“겨울에는 반팔이지, 잘어울린다.”
“아버님도 멋져요.”
“나야 항상 멋지지.”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이호극은 세경을 인정한 이후 태세가 돌변했다. 뭘 해도 세경이 마음에 들었다.
흔들흔들.
정우와 염화는 고개를 저으며 돌아섰
다
“나 없다고 놀진 않았나 봐.”
“이번엔 네 뜻대로 되지 않을 거야”
정우의 혹독한 가르침을 받은 염화는 무극기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다. 그에 따라 언제든 속성을 통제하여 융합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증거로 그녀의 머리카락 이 원래의 붉은색으로 돌아왔다
“혹화의 징징거림이 쏠쏠한 재미를 선 사했는데, 아쉽다?”
“너한테나 그렇지.”
염화는 혹화와 일심동체다. 혹화의 고
통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어지간해서는 버텨내기 어려운 고통의 연속이었다. 끝까 지 포기하지 않았던 흑화의 집념이 무서 웠었다. 그러나 그런 혹화마저도 정우의 악랄한 손속에 자포자기하고 말았다.
‘넌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녀석이냐?’
염화는 혹화를 완벽히 흡수함으로써 기존의 경지를 확실하게 넘어섰다 아버지 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흑금단 주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 녀석의 강함은 애초에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상 식적인 선을 넘어선다는 표현도 부족하다. 하나, 포기는 하지 않는다 최고의 무인이 되기 위해서 물러설 마음은 없었다.
“언제가 됐든 넘어설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거야.”
“용기는 가상하지만 무모한 도전은 하 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워.”
염화는 투지를 불태우고 있나, 혹금단 주는 피식 웃어 보일 뿐이다. 적수로서 인 정하지 않는 뉘앙스다. 염화는 화를 내지 않았다. 인정한다면 그게 더 어색했을 것 이다. 혹금단주에겐 오만함이 어울리기까 지 했다.
“고생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