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293화 (293/500)

무턱대고 치근거리는 건 아마추어다. 상대의 마음을 읽고, 차분히 풀어가야 한 다. 이를 위해서 유하라의 사진집을 가지 고 왔다. 사진집은 홀로그램 영상을 지원 하는 한정판이었다. 100장 내외로 발매되 어 구하려면 5천만 원을 호가한다는 말까 지 떠돌았다. 열성팬이 아니고서는소장하 기 힘든 애장판이다

‘오늘을 위해서 준비했지.’

연애를 세 자리 수 이상 해 본 유호진은 여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무엇을 해 야 좋아하는지 척하면 척이었다. 그리고 원하는 여자는 반드시 손에 넣었다 한창 잘나가가는 여 아이돌도 어렵지 않았다. 아이돌이라고 해도, 벗겨 놓으면 다 거기 서 거기다. 때론 너무 쉬워서 흥이 금방 식 기도했다.

유호진이 싸인을 부탁하기 위해 유하라 특별 사진집을 꺼내들었다.

때마침일까?

스윽!

정우가 빈 접시를 하라에게 내밀었다

“초밥맛있네.”

“또 먹게?”

하라의 타박하는 뉘앙스에.

“내가가지러 갈까?”

“아냐, 됐어.”

하라에게 초밥을 맡긴 후, 메이드에게 와인을 병째 요청했다. 한두 잔으론 감질 맛만 났다. 가득 따라서 시원하게 마실 요 량이었다.

“숙성이 잘돼서 그런지 몰라도 끝내주 네.”

고가의 와인은 시가로 수백을 호가한 다. 시중에서 구하기도 어려운 와인을 주 문하면 바로 가져다준다. 사교 파티의 수 준을 짐작하게 해주었다. 연회장의 조명 장치와도 잘 어울렸다. 모나지 않게 사람 들의 화려함을 살려주면서도 눈에 무리가 가지 않았다. 작은 것에도 세심함이 깃들 어 있었다.

‘이 새끼가!’

유호진은 사진집을 내민 그대로 병풍이 되고 말았다.

이런 병풍!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유호진은 일단 이대로 서 있는 것보다 는 앉기로 했다. 하라가 초밥을 가져오기 전에 미리 앉아 있으면 예의상 내치지는 못할 거라고 봤다.

사뿐 사뿐

하라는 가지각색의 초밥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왔다. 데커레이션도 꽤나 신경을 쓴흔적이 보인다 홈

정우는 못마땅한 기색을 비쳤다

미간이 찌푸려지자 하라는 멍하니 바 라보았다

‘섹시해.’

미섹남, 정우는 미간이 섹시한 남자였 다 좋아하는 남자의 투정이라 하라는 뭐 든지 들어주고 싶은 관대한 아량이 생겼 다

“왜?’

“고등어가 빠졌잖아”

“진작말하지.”

“가는 김에 스테이크도, 미국산이라서 더 맛있네.”

정우는 딱히 원산지를 가리지 않았다. 입에만 맞으면 그만이었다. 한우라고 해서 더 맛있다고 주장하진 않았다. 무엇보다 조리가 훌륭하다. 최고의 요리사가 최선을 다해 만든 스테이크였으니, 맛은 당연했 다 종종종.

드레스를 입은 하라의 발걸음이 바빴

유호진은 그 일련의 상황을 멀뚱히 지 켜봐야 했다. 유하라가 방송 이미지로는 털털하게 나오지만 빈틈이 없기로 소문이 났다. 무수히 많은 아이돌이 도전을 했다 가 거절당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도 도하기는커녕 너무나 쉬워 보인다.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하고는 정반대였다

“됐지‘?”

“이거 미안하네.”

가져올 때마다 접시가 비어 버리자, 하 라는슬슬 짜증이 치밀었다 이 인간이 본 색을 드러낼 때 위장도 봉인을 해제했다.

미간의 섹시함만으로 버텨내기에는 울화 가점차 쌓인다.

“이 보}:”

하라가 요리를 가지러 간 사이에 유호진 이 정우를 불렀다. 노려보는 시선엔 경멸 이 담겨 있었다. 여자를 부려먹는 행위에 대한 지적이다. 자고로 여자란 깨지기 쉬 운 유리잔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법

“레이디를 함부로대하는군.”

“누구?”

관심을 끌어오려던 유호진은 정우의 무 심한 대꾸에 뚜껑이 열릴 뻔했다. 자리에 앉은 지 5분은 되었다. 여태 자신에 대해 서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의미였다. 평소 어디를 가도 자체발광을 하건만 개무시를 당했다

“지금나를 놀리는 것이냐?”

“이상한 말을 하는군a.”

난색이든 난감이든

도발을 하면 반응을 해야 한다

정우는 유 회장의 부탁대로 반응은커 녕 시큰둥할 따름이다 오늘따라 유 회장 의 요청을 잘 따르고 있어, 이상하기는 했 다. 그러나 무관심이 관종에게는 분노유 발을 하기 마련이다 무덤덤한 반응에 유호진은 도발수위를 올렸다

예로부터 본인보다 가족을 건드리면 더 더욱 열이 받는다. 군대에서 갈굴 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금기가 바로 부모 욕이다. 부모 건드리면 착한 놈도 등 뒤에서 총 쏜 다. 평소 화기 휴대가 가능한 GOP나 GP 는 특히 명심해야 한다 성탄절 날 선물로 수류탄 받고 싶지 않으면.

“대한그룹의 지원으로 겨우 자리를 잡 은주제에 꽤나 건방지군.”

“유 회장님이 하도 저를 예뻐 하셔서 무 상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앞0. 루. 두 지원을 약속하셨으니 다행입니다.”

예상과 달리 정우는 반박하지 않고, 요 리에 신경을 썼다.

이는 고도의 심리전이다. 트집을 잡고 싶어 하는 상대다. 무시로 일관하면 더 열 받는 법. 예상대로 유호진의 입술에 주름 이 잡힌다. 화를 내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 만 감정이 상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본 인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이 강할수록 효과는더 크다:

“여자를 이용해서 배를 불리는 행위가 창피하지 않나?”

“전혀요, 예로부터 여자 잘 만나야 한

다는 말이 왜 나왔겠습니까. 하라 같은 여 자 친구를 사귀는 것도 능력이라고 생각 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남녀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며, 현실의 벽으로 다가온다. 남자 가 집에서 살림을 하면 무능하다는 인식 과 맞물린다. 일과 살림이 따로 나누어져 있는 게 아님에도 남녀의 관계는 고정관념 처럼 되어 있다. 남녀를 차별하지 말라면 서도, 살림한다는 남자와 결혼하려는 여 자가 많지 않음은 현실이다. 그렇기에 남 자는 항상 여자보다 우위에 있으려고 노력 을 하는 것이다 하물며 여자 등골을 빼먹 고 산다는 말을 들었을 때, 발끈하지 않을 사내는 없다

“수치심도 모르는 철면피였군.”

“자존심 별거 아니더군요. 먹고살기도 힘든 세상이고, 자존심이 밥 먹여 주는 것 도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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