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차도염장지계 (1)
수출주도형의 한국 기업은 세계 경제의 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대기업조차도 자 구책을 마련하는 데 사활을 걸어야 했다. 쌓아 놓은 사내 보유금이 천문학적이긴 해도, 국제 환경의 추이를 잘못 예측하면 하루아침에 주식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 기도 한다. 하나, 수출을 늘이기보다는 자 잘한 내수경제까지 홉수하는 경향이 강해 져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었다.
대기업이 질타의 대상이 된 시점에 대 한그룹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재계서열이 수시로 바뀌는 와중, 자리를 굳건하게 지 켰다. 특히 하이퍼 팩토리, 금강문과 계약 을 맺어 중국 수출의 안정적 활로를 열었 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우는 하이퍼 팩토리의 대표로서 대한 그룹을 찾았다
‘딱 맞췄네.’
회장실에서 느긋하게 업무를 보고 있던 유 회장은 정우가 온다는 소식에 깊은 한 숨을 쉬어야 했다. 정우가 오고 나면 일거 리가 산더미처럼 늘어나고 있었다. 하이퍼 팩토리의 사장이자 정우의 아버지와 같은 처지다
“오늘은 또 웬일이냐?”
“언제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며 타박 하시더니.”
“젊은 놈이 노인네를 부려먹으려고만 하니까 그렇지.”
“아직 정정하신데요, 뭘. 고손자손녀는
보고가셔야지요.”
“너 지금 나웃으라고 하는 개소리냐?”
정우는 움찔했다
‘안 웃긴가?’
웃으라고 한 얘긴데, 돌아오는 대답이 싸늘했다. 할아버님 정도는 배꼽을 빼 버 릴 수 있으리라 확신했건만, 안일한 마음 가짐이었다. 충분히 반성을 하고, 개그력 을 절대경지로 끌어을렸어야 했다. 요즘 들어 수연의 개그력이 더 높아지고 있었 다. 오빠로서 동생보다는 뭐든지 압도해야 만한다.
‘ 방심했어.’
정우는 반성을 하며 다짐했다. 다음에
는 반드시 할아버님이 사레 걸리도록 만 들겠다고. 웃다가 죽으면 저승에서도 복 받는다고 하지 않던가.
화화활!
뜬금없이 의지를 불태우는 정우의 태도 에 유 회장은 기가 찼다. 이놈은 보면 볼 수록 도통 생각올 모르겠다. 별거 아닌 일 에 이토록 열정을 불태우는 걸 보면 정상 은 절대 아니었다. 보다보다 처음 보는 종 류의 인간형, 유니크답게 유니크하기는 하 다
“일우그룹 내 지분경쟁은 잘되어가고
있나요?”
“채 회장의 영향력이 아직은 건재하지 만, 회사 내 중대 사안에는 내 의사를 반 드시 타진해야 할 게다.”
벌써부터 물밑작업이 들어간 모양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추진력이 없다고 보 면 오산이다. 유 회장은 들어가고 나갈 때 를 잘 아는 탁월한 사업가였다.
“역시 대단하시네요.”
“네 칭찬은 하나도 달갑지가 않0}.”
“아버지하고 똑같은 소리를 하시네요. 찌찌……
“그만 엄동설한에 날 얼려 죽일 심산이
더냐.”
유 회장은 단칼에 정우의 말장난을 끊 어냈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대체 언제 적 장난을 치는 건지. 포기할 땐 포기할 줄 알아야 했다. 두 번 다시 그딴 시답지 않은 말장난은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이 놈이 하지 말라면, 더해서 짜증이 솟구친 다 쩝!
유 회장의 면박에 정우는 계면쩍은 표 정을 지으며 목을 긁적였다. 본인 딴에는 회심의 반격이었건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 다
“혀가 마른 논바닥처럼 마르는데 차도
한잔 안주^니까?”
“네가 타 먹어. 여기가 무슨 다방인 줄 알아! 매번차를 달래!”
차(Tea) 전용 아공간도 가지고 다니는 놈이었다. 수납공간으로 아공간과 케이브 를 활용하니 어디서든 집처럼 살림이 가 능하긴 하다.
“치사하게 이러실 겁니까?”
“치사한 걸로 따지면 너만한 놈도 없을 거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들들 볶던 녀석이 누구 보고 치사하대, 유 회장은 받 아들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정우한테는 여지를 주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약점을 보이면, 피곤한 건 자신의 몫으로 남는다.
“다 잘되자고 하는 건데, 야박하게 왜 이러세요.”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는구나.”
유회장은씁쓸했다. 자신의 나이 반토 믹도 안 되는 녀석올 말싸움으로라도 이기 겠다고 애쓰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살면 서 만나 본 가장 황당무계한 녀석이 누구 냐고 묻는다면, 돌아보지 않고 정우를 지 목할 것이다. 인류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괴 생명체가 분명하다
“무슨일인지 말해봐;
“우리 사이에 꼭 일이 있어서 만나나
요.”
“아니면 나야좋지.”
“오는 김에 할아버님도 보고, 업무도 따 고. 일석이조좋잖아요.”
“어련하시겠냐.”
유 회장이 아는 한 정우는 절대 쓸데없 는 일로 찾아오지 않는다. 분명한 목적이 있지 않고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상대이 기도 하다. 자신도 그런 스타일이기는 한 데, 정우는 소싯적의 자신보다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았다. 하라는 어디서 이런 별종을 얻어 왔을까? 요즘도 고민을 하곤 했다
“제가 이제부터 사회사업을 시작하기로 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좋은 일은 함께해야 더 좋은 법이 죠.”
“네가몰라서 그러나 본데, 우리도 재단 은 있거든.”
대기업의 반열에 오르면 재단 하나 정 도는 가지고 있다. 사회사업이 목적이기는 하나, 절세의 목적이 더 크기는 하다
“다다익선이라고 하나 더 만드시죠.”
“아무런 이득도 없는 일에 투자할 만큼
한가하진 않단다.”
정우의 권유에도 유 회장은 관심을 보 이지 않았다. 손녀사위가 될 사이기는 하 나, 공과사는 구분했다. 사적인 부탁을 들 어줄 만큼유 회장은 허술하지 않았다. 재 단올 더 만든다고 해서 여론이 더 좋아지 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재단올 만들어 서 통과하려면 정부에 청탁을 넣어야 한 다. 정경유착을 좋아하진 않아도, 하나라 도 더 뜯어내려는 놈들이 판을 치는 세상 이었다.
“금강문이 함께할겁니다”
“무슨 꿍꿍이냐?”
“미래를 보는거죠.”
“O ”
정우의 사족에 유 회장은 반응했다. 금 강문이 함께한다면 또 달라진다. 최근에 금강문의 행보가 심상치 않았다. 민심올 얻고 있다고 봐야 했다. 금강문이 동참한 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한그룹에 대한 평가 가올라갔다 단순한 사업적 계약이 아닌, 사회사업에도 기여를 한다면 그룹의 주가 상승에도 도움이 된다.
“어떻게 할생각인데?”
“공동으로 자산을 투자하고, 금강문을
내세울겁니다.”
“그것만으로 네가 원하는 대로 될까?”
“무림대회를 기점으로 금강문은 또 한 번의 도약을 하게 될 테니까요.”
미래를 위한 투자로서는 나쁘지 않았 다. 유 회장이 가진 재산만 해도 천문학적 인 액수다. 일반적인 잣대로는 추측해봤 자, 다른세상이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사업 방식을 바꾸었 으면 합니다”
“또 있어?”
“하나씩 바꿔나가는겁니다.”
“하나씩이 아니잖아”
“그럼 완전고용부터 시작하시지요.”
“난한다고안했다.”
“저횐 이미 하고 있습니다.”
하이퍼 팩토리는 완전고용을 지원하며, 외국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인력 이 싸다고 하여 외국 노동자를 받아들이 게 되면 자기 살올 깎아 먹는 짓이 되어 버 린다. 월급을 올려 내수가 돌아갈 바탕을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혜택을 받은 대기업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책임 이다 생산인구가 줄어든다고 정부에서 결 혼을 정책사업으로 내세워 대안을 내세우 지만 기본은 소득의 안정적 증대다 이를 이루지 못하는 이상 그 어떤 대책을 내세 워도 무용지물이었다
“정부가 할 일을 우리가 왜 해,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는 이익집단이다. 자선사업 을 하진 않아. 주주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사업가라면 이윤추구를 위해 수단방 법을 가리지 말라고 했습니다만 최소한의 도의를 지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득이라면 일우그룹을 통해서 쥐어짜면 됩니다.”
“헐!”
정우의 방식에 유 회장은 혀를 내둘렀 다. 말로는 사회사업과 공공의 이익을 위 해 애를 쓰자고 하는데, 실제적으로 모든 책임은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그제야 아 는 내용임에도 일우그룹을 거론한 이유 를 깨달았다 일우그룹의 의사결정에서 자 신의 파워를 확인해야만 가능한 계획이었 다
“일우그룹을 욕받이로 쓰자는 거구나.”
“나쁘지 않지요, 채 회장도 반대하지 않 을겁니다”
반대는커녕 채 회장은 더더욱 악착 같 이 그룹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려고 애 를 쓸 것이다. 현재 소상공인의 반발이 심 한데도, 불도저처럼 밀어 붙이고 있는 중 이다. 지분 확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선 행되어야 했다
정우는 이 점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일 우그룹을 탈탈 털고도 부족해, 마지막 남 은 고혈까지 쥐어찌고 있었다
“시국이 불안정하고, 젊은이들은 헬조 선올 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럴 때일 수록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보고 투 자해야 합니다.”
“다 좋다 이거야 한두 푼이 드는 사업 이 아니지 않느냐”
“중국 진출이 성공하면 자금 확보는 어 렵지 않을겁니다”
정우는 중국 진출의 보다 구체적인 사
업계획을 가져왔다.
사업내용을살핀 유회장은또한번 혀 를 찼다. 이 녀석의 두뇌는 진짜 악마적이 었다. 중국의 내수를 빨아들일 방법이 지 나치게 명확했다. 이런 짓을 하고도 욕은 또 하북팽가가 먹도록 연막을 쳤다. 중국 의 경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기 나 라만 잘 살도록 만들겠다는 확고한 신념 이 자리했다
“네 녀석한테 더불어 사는 세상이란무 엇이냐?”
“저와 가족, 내 사람들, 더 나이가 우리 나라겠지요. 이것만 해도 과욕이 심하다 고 생각하는데 아닌가요?”
유 회장은 수긍했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실현하려면 경제적인 여건만으로 되지 않 는다. 힘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 나 이제까지 정우는 실패를 모르고 전진 만 흐fl 왔다.
“사는게 아주만만하구나”
“그럴 리가요, 저는항상 치열합니다.”
그만하면 됐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정 우는 멈추지 않았다. 삶의 만족은 상대적 이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가. 인간의 욕망은 끊임없이 새로운 욕망을 부추기기 마련이다.
정우는 굳이 욕망을 포장하거나 감추 지 않았다. 삶의 정도를 지키며, 자신이 정 한 테두리 안에서 최선을 다할뿐이다
“네 말대로 사업계획을 세워 보라고 하 마?”
“그리해주시면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마워하진 않아도 된다. 충분히 이익 이 된다고 보니까, 투자를 하는 거다.”
“아무렴요.”
유 회장은 조금 안심이 되기도 했다. 정 우는 굉장히 독선적인 성향이 강해 항상 위험을 몰고 다닌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 었다 한데, 자신의 것을 지키면서도, 도를 넘지는 않았다. 저 나이 때에 과연 저럴 수 있을까? 조그만 능력이 있어도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다가 세상의 쓴맛을 보고 자 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물며 정우는 가지고 있는 능력의 한계를 여전히 드러내 지 않았다. 충분히 과신을하고다녀도되 었다. 한데, 절제를 하고,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졌다.
“우리나라가 세계 제일의 강대국이 되 었으면 좋겠구나.”
“초딩도 아니고, 유치하시네요”
“유치해도 어쩌겠느냐,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게 내 꿈이거늘 늙었다고 꿈도 포기 하고 살라는게냐.”
“그럴 리가요, 저도유치한 걸 좋아합니 다:’
“아재개그는 사양한다?”
정우의 미간이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 큼 미세하게 잔 경련올 일으켰다. 삶의 유 일한 낙중에 하나이자 활력소가 바로 개 그다 하나, 이 와중에 드립을 쳤다가는 낭 패를 면치 못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개그 란 때와 상황을 맞추어야 하는 법, 아무리 웃긴 개그도 분위기 파악 못하면 욕먹기 딱 좋다.
“됐고, 언제 식을올릴 거냐?”
“15년 후5월 15일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