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낙장불입 ⑵
일요일의 요리사는 오빠다.
정우는 오랜만에 실력 발휘를 해주었 다. 근래에 유행하는 요리프로그램을 독 파함으로써 실력은 보다 더 업그레이드가 되었다.
손맛은 믿지 않는다
모든 요리는 정확한 측정량에서 나온 다는 게 정우의 모토다. 일체의 군더더기 없이 자로 잰 듯 완벽한 동선으로 요리를 정해진 시간 안에 끝을 냈다.
맛을 결정하는 신선한 재료, 천연 조미 료、시간의 배분이 기가 막혔다. 프로그래 밍이 된 요리로봇이 레일대로 움직이는 것 같다
“요리를무슨 전쟁처럼 해.”
“무공은 평소의 단련이 중a한 거야.”
“내가말을 말아야지.”
“그래 넌 말하지마 그냥봐.”
수연은 오빠의 요리를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제공권이 지나치게 완벽했다. 저 안으로 잘 못 파고들면 요리재료에 포함 되는 수가 있었다. 그러나 정작 오빠는 손 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요리를 의형 기(意形W를 이용해서 완성했다. 의형기는 극도로 세밀하게 컨트롤 된 허공섭물의 업 그레이드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활검을 이런 데 쓰는 법이 어디 있어?”
“재료의 신선도를 위해 활검은 필수다” 소 잡는 칼로 닭을 태연하게 잡는다고 해야하나.
어찌 되었든 오빠가 썰어 놓은 고기는 엄마가 냉동실에 방치하는 바람에 유통기 간이 지났었다. 한데, 오빠의 칼질 한 번에 현지에서 갓 잡은 신선한 고기로 탈바꿈 했다. 비록 숙성된 고기가 더 맛있다고는 하나, 신선도와 비주얼은 끝장났다. 고기 의 근육들이 심장박동처럼 꿈틀거리는 듯 하다
“골고루 간올 배게 하려면 의형기를 가 는 주사바늘처럼 만들 줄 알아야 해.”
“차라리 검강을 만들라고하시지!”
주사바늘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 게 말처럼 간단하나. 검강이 훨씬 쉬운 경 지였다. 저렇게까지 가늘게, 무수히 많은 의형기관(意形氣管)을 형성하려면 공력의 컨트롤이 신의 경지에 올라서야 가능했다. 그분이랴 그 관에 소금을 녹여 정확한 양 을 주입해야 한다 말이 쉽지, 일반적인 경 지로는 턱도 없다.
“불의 세기도 조절해야 하고.”
“삼매진화가 아깝다!”
수연이 경악하는 이유는 단순히 의형 기와 삼매진화, 허공섭물 때문만은 아니 다 이 모든 걸 단숨에 처리하고 있는 오빠 의 멀티 클래스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 었다 하나 정도는 얼추 가능할 것 같은데 그 이상은 불가능하다
“요리의 기본은 뭐라고?”
“속도■다.”
“그렇지.”
“자고로 배고플 때 먹는 게 가장 맛있 는 법이지.”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 가. 시간이 느리면 배고픔도 무뎌지기 마 련이다. 그럼 아무리 맛올 최적화해도, 맛 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감동이 오지 않는 다
15 분.
정우의 요리는 15분 안에 끝이 났다.
식탁에 올려진 30개의 요리가 완벽한 구도로 배치가 되었다. 하나하나에 가해지
는 정성은 일반적인 상리를 가볍게 거부한 다. 물론 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가당치도 않은 일이긴 하다. 무공을 배운 무인이라 면 더더욱 그렇다. 이른 바 무공인플레이 션, 무공의 비효율적인 낭비였다.
“데커레이션으로 보존마법올 걸어 놓으 면 완벽하지.”
하나만 해도 부족하건만, 무공은 물론 마법까지도 경지에 이르러 타의 추종을 불 허한다.
그럴수록 수연은 답답함이 밀려왔다. 자신이 아무리 발버둥을 쳐 봤자, 오빠에 겐 비빌 수 없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된다. 이 세상에 넘지 못할산이 있다면 그 건 바로 오빠였다. 어디서 이런 완벽하고 괴물 같은 오빠가 나타났는지, 동생으로 서 앞날이 막막하다.
“그나저나 소영이 이모는 어떻게 된 거 야?”
“아주 사소한오해가 있었어.”
“오해는 무슨, 오빠 말을 믿으라고 거 야.”
“알다시피 무인은 타문파와 무공을 교 류하지 않잖아. 소영이가 말을 하지 않은 모양이야.”
“그래도 그렇지, 소영이 이몬데 너무 심
한거아냐?”
“나도 그땐 몰랐었다”
“옷기고 있네.”
소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는 오빠였다. 남의 사생활을 함부로 까발리 고 있는 주제에 소영이 이모를 몰랐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만큼 순진한 동생 은 이제 없다고. 나도 이제 현실에 닳고 닳 은 동생이다 이거야
“내가일, 삼오, 칠, 구도아니고.”
“그건 또 뭐냐, 암혼가?”
“띄엄띄엄 보지 말라고!”
“호외 그렇게 깊은 뜻이.”
“지랄하네.”
리액션 만큼이나, 정우는 동생의 개그 센스에 빵 터질 뻔했다. 무던한 인내심을 발휘,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으 면 헤픈 오빠로 전략할 수 있었다.
‘아 자존심 상해.’
청출어람이라더니, 장족의 발전을 한 수연이었다 개그에 관해서는 이제 하산해 도 될 만하다 그러나 배움에는 끝이 없는 법, 정우는 동생을 포기하지 않았다 100 년 후에도, 1000년 후에도 수연의 오빠로 서 책임을 다할 것이다 어떤 놈이 데려갈지 복 받았다.
“어서 말해, 소영 이모 오시면 다 말해 버리는 수가 있어.”
“내 동생의 입이 저렴하다는 소린 듣고 싶지 않구나. 오빠로서 묵직하게 만들어 줄의무가 있겠지.”
수연은 입올 닫았다. 자칫 잘못하면 화 장실에서 괴성을 지른 소영 이모와 다르지 않은 봉변을 당할 수 있었다. 사소한 일에 목숨은 걸지 않기로 했다. 이럴 때는 상황 을 전환시키는 편이 이롭다.
“이거진짜맛있겠다, 오빠최고.”
“어른이오면 먹어야지.”
“당연하지, 사진 찍어서 올리려고 한 거
야”
“네가 나처럼 대단한 오빠를 만나서 이 런 흐사를 누리는 거다 고마운 마음을 항 상간직하도록 해.”
두 번 고마우면 죽빵을 날릴지도 모른 다
수연은 식탁 아래 숨겨둔 경직된 주먹 을 간신히 풀었다. 정말 내 오빠지만 겸손 이라고는 쥐뿔도 없다. 자기 자랑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잘난 체의 끝판왕이 었다. 그러나 오빠의 잘난 체는 천하무쌍 의 능력을 기반으로 둔다. 능력도 없이 잘 난 체하는 허세 가득한 쭉정이와는 비교 를 불허했다.
‘구석기개그만 하지 않으면 완벽하긴 해.’
내 오빠지만, 진심 대단하다. 그러니 여 자들이 줄을 잇고 목을 매지. 그래서 더더 욱 마음이 복잡하다. 영원히 오빠의 그늘 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오빠의 테 두리가 너무 안전해서, 탈선은 꿈도 꾸지 못한다.
여하튼 생각과 달리 입은 칭찬머신이 되었다. 오빠는 칭찬을 마다하지 않은 부 류다. 솔직히 겸손과는 가장 거리가 멀다. 오빠를 춤추게 하기 위해선 칭찬은 필수 옵션이었다. 또한 비판을 받아들이기는 하나 아량은 없었다.
“비주얼 진짜끝내준다”
수연은 식탁에 놓인 요리를 찍어 블로 그에 올렸다. 종종 오빠의 요리를 블로그 에 올리면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단, 조리 방법을 물어오면 곤란했다. 방법을 알아도 설명하기가 어렵다. 삼매진화와 허공섭물 을 간단히 시전할 경지에 올라야 가능한 조리법이었다. 덤으로 마법까지 익히고 있 어야 하는데, 조리법을 공개한들 따라할 수 없는 영역이다. 오빠만의 독자적인 요 리기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타박 타박!
맥 빠진 아줌마의 발걸음이 들려왔다.
20대의 발랄 상큼한 걸음걸이와는 다른 농염함과 완숙함이 있었다. 다만, 세월의 모진 풍파를 단시일 내에 몰빵 받았는지, 얼굴에 생기가 닳고 닳았다 하
진영화는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 얼굴로.’
진영화는 머리뚜껑이 활짝 열리는 색다 른 기분을 만끽했다. 거울에 자신이 아닌 전혀 모르는 낯선 여인이 있었다. 얼굴 전 체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고, 붓기가 빠지지 않아투박한 풍선인형 같았다. 그 얼굴로 일어나서 정우와 대화를 나눈 것 이다. 화장을 안한건 그렇다 쳐도, 이 얼 굴로 대화를 하고 있었다니. 그 자체로 정 신적 충격을 주었다.
‘나이가 들수록 얼굴이 중요한 법인데, 이 망할놈!’
진영화는 혹금단주의 만행에 치를 떨어 야 했다. 여자의 얼굴을 떡 주무르듯이 만 져 놓고서, 내팽개치고 가 버린 것이다. 얻 을 건 다 얻었다 이거지. 상기할수록 열 받 게 하는놈이었다.
‘이놈도 그렇고.’
얼굴이 그 모양이면, 말을 해 줘야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더 쪽이 팔■린다. 쪽팔림은 자기들 몫이 아니라 이거지. 하 는 행동 하나하나가 다 맘에 들지 않는다.
진영화는 운기조식으로 얼굴의 붓기와 멍 자국올 빼는 데 시간이 걸렸었다. 어찌 나 잘 두들겼는지, 극성으로 운기행공올 하지 않으면 빠지지가 않았다
“안녕하세요, 소영이 친구 하수연이에 요 저도 이모라고 불러도 되나요?”
“어, 그러렴.”
아줌마라고 부르면 곤란했다. 반백 살 이기는 하나, 아직은 언니이고 싶은 진영 화다. 그러나 조카의 친구한데 언니라고 부르도록 강요할 수는 없었다
‘응?’
진영화는 그제야 부조화를 느꼈다
조카에게 친구이자 라이벌인 수연에 대 해서 들었다 공부는 물론, 무공도 이겨보 지 못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겸양의 표현 으로 받아들였으나, 밤중에 험한 일을 겪 고 나니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수연이가 무공을 익혔다는 의미가 되었다
‘안 느껴져.’
고수는 하수를 보기만 해도 역량을 읽 어낸다. 특수한 심공을 익히면 겉으로 티 가 나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수연의 나이 는 조카와 같은 이제 곧 17세가 된다. 저 나이에 경지가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로 수행이 가능하단 말인가? 상식적인 선은 넘어선다. 사실이 그렇다면 조카에게는 승 산이 없다.
‘이게 말이 돼?’
하나는 천재 마법사에 또 하나는 천재 무인이었다. 한 집에 천재가 두 명이나 있 었다 이 집 부모는 전생에 나라를 환란이 있을 때마다 구했나 보다.
진영화는 지독한 악몽을 꾸고 있는 기 분이었다. 현실감각이 제로에 가까워졌다 막말로 저 나이 때 절정의 경지만 되어도 문파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 한데, 그마 저도 넘어서는 재능과다(多)역량의 천재들 이었다.
“너희 대체 뭐야?”
소영이 친구의 오빠입니다.”
소영이 친구요.”
누가 그걸 물어 본 거냐? 그렇다고 숨기 고 있는 걸 까발리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진신무공이나 마법을 알려달 라는 건 금기였다. 알려달란다고, 알려주 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하아아.
진영화는 깊은 한숨을 쉬며 식탁 앞에 앉았다. 따져 물은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 가; 이미 코가 꿰인 상태이거늘 성급한 행 동을 고치지 않으면 큰 코 다칠 거라는 문 주의 충고를 새겨들었어야 했다. 때늦은 후회일뿐이다.
킁킁.
생명체는 숨을 내뱉고 들이쉬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다 호흡을 통해 코를 타고 들어온 음식의 향이 진영화의 육체를 자 극했다.
꼬르륵!
아주 그냥 갈 때까지 가고 있었다.
진영화는 포기했다. 체면이나 위상을 따지기에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리고 말 았다. 이제와 근엄한 척 위엄을 세워봤자, 쟤들 남매가 보기에는 개폼 그 이상도 아 니었다.
“시장하시죠, 드셔 보세요.”
“그래, 고맙구나:’
진영화는 젓가락을 들어 조림이 된 돼 지고기를 한 점 입에 넣었다. 일단 배부터 채워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아까부터 배가 요동을치고 있었다 사르르!
뭐야 솜사탕이냐?
왜 녹아.
진영화는 혀가 닿기가 무섭게 녹아 버 리는 고기의 맛에 이성을 잃었다. 기존에 먹어봤던 고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너무 맛있어’
젓가락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갖가 지 요리들올 하나씩 맛을 보았다. 어느새 진영화의 얼굴에는 행복함이 깃들었다
‘살찌는데.’
걱정하면서도 젓가락은 멈춰지질 않았 다. 오늘처럼 맛있는 요리는 태어나서 처 음 먹어봤다. 나름 미식가라 맛집을 찾아 다니며 시식을 거쳤던 탁월한 혀끝이었다.
재료의 맛을 최상으로 끌어내며, 적절한 불맛까지 가미가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천 하일미라 할 수 있었다.
“많이 있으니 천천히 드세요.”
“정말 맛있구나 이거 누가한 거니?”
“오빠가한 거예요?”
“진짜로?”
“그럼요.”
진영화는 정우가 인간처럼 보이지 않았 다
마법도 잘해, 무공도 잘 봐, 이제는 요 리까지 잘한다. 이게 사람인가? 다재다능 하다는 말이 좋아 보일지 몰라도, 어느 하 나도 완벽하지 않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정우는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다.
‘그 괴물에 비하면 부족하긴 해도.’
흑금단주를 떠올린 진영화는 소름이 가시지 않았다. 솔직히 얼마나 강한지 판 단이 서지 않올 지경이다. 하긴, 일반적으 로 처 맞기만 했으니 답이 나오지 않는 게 당연했다. 여하튼 이 남매 역시도 일반적 인 상리를 거슬렀다. 능력만 놓고 보면 어 느 문파에서도 탐을 낼 만하다.
“오해를 하시는군요.”
“이제 와 아니라고 발뺌을 하려는 게
냐?”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저는궁극을 탐구 하는 마도를 걷는 구도자로서 무공을 연 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새로운 학문이나 깨달음은 제게 삶을 살아가는 활력소를 제공하니까요.”
“그래서?”
“바라보는 관점이 다를분이지, 이모님 의 무공보다 강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망신 좀 당했다고 날 바보로 여기는 거 야?”
누굴 세 살배기 코흘리개로 아나.
진영화는 믿지 않았다. 자신이 체험한 흑금단주의 무공은 진짜배기였다. 손을 써보기도 전에 처 맞은 육신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아니라고 발뺌을 하다 니, 코웃음이 절로나온다.
“이해가 되지 않으시다면 보여드릴 수 도 있습니다”
“보여주겠다고?”
“일단 식사부터 마저 하시지요.”
“네 말대로 식사는마저 하겠다만, 어설 픈 속임수는 통하지 않을 거야.”
두 번 다시 망신당하진 않겠다는 진영 화의 각오였다 반면 정우는 느긋했다.
‘채찍만으론 안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