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낙장불입 ⑴
툭툭
누가 몸을 건드린다. 사막에서 모래찜 질하는 개구리처럼 늘어져 버린 육체는 일 어나야 한다는 당위성을 거부했다. 오랜 시간 부드러운 침상에 몸을 맡기고 싶었 다. 수면을 방해한다면 그에 합당한 대접 을해줄수 있었다.
툭툭
하물며 겁도 없이 아줌마의 옆구리를 계속 건드렸다.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 고 침상에서 허리를 일으켜 세웠다.
투득!
허리에서 시작해서 전신이 고통을 호소 한다 육체를 구성하는 골격과 신경, 오장 육부가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 고통이 오 래도록 지속되어 정신이 돌아오는 데 시간 이 걸렸다 후우우!
운기조식을 해 육신을 괴롭히는 통증
을 완화한 후에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방 안의 깔끔한 인테리어는 단조로운 면 이 없지 않아 있기는 해도, 마음을 편안하 게 해주었다.
한데 이상하다.
문제는 방 안의 인테리어가 아님올 그 제야 깨달았다.
‘어떻게 된 거야?’
기억이 흐릿하며, 상기하고 싶지 않았 다. 의식이 끊어졌던 시간의 괴리는 크지 않았다. 낱알처럼 끊어져 버렸던 기억의 편린들이 서서히 완성되어 실체를 드러내 기 시작했다 인상이 저절로 찡그려진다.
까아악!
얼굴의 근육들이 꿈틀거리기가 무섭게 비명을 질렀다. 붓기가 빠지지 않은 피부 가 두텁게 포진되어 둔탁했다.
-원하는 대로해드리지요.
악마의 진언.
그 말과 동시에 정말 먼지 쌓인 포대기 처럼 털리고 말았다. 털리는 시간만큼은 남녀 차별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섞 였다. 가리지 않고 골고루 처 맞았다는 표 현이 적합했다
‘?…괴물같은자식!’
그녀의 진심이었다.
무림에 떠도는 소문은 그의 실체를 반 도 설명하지 못했다. 과대평가가 아니라 과소평가되었다 제대로 된 겨룸이라고 하 기도 부끄럽다. 대결이 시작되고 난후 일 방적으로 두드려 맞았으니까. 치는 족족 육신을 갖다 댔다고 볼 수 있었다 무공올 익힌 이후로, 그처럼 일방적인 대결은 처 음이었다
-20 년이라고 했습니까? 흐}하
진영화는 흑금단주의 읊조림에 부끄러 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지경이었다. 지금도 개 맞듯이 처 맞는데 20년 전이면 순삭당하고도 남았다. 애초에 상대가 되 지 않을 격차다.
한편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흑금단 주의 강함은 일개 단주의 범위를 넘어선 다 각문파의 최고수, 어쩌면 문주에 비견 되는 절대강자였다. 실로 어처구니없는 현 실과 마주하고 있었다. 서른도 되지 않아 이미 당대에 적수가 없는 고수가 되었다.
-속성을 사용하시지요.
무화라 불린 그녀에게 있어 굴욕적인 대우였다. 속성을 개방할 시간을 내어준 것이다 하나, 후회막심이었다
‘개방하지 말걸.’
속성을 꺼내 들어 1대 맞을 거 10대 더 맞았다 살다 살다 그렇게까지 처 맞은 경 우는 처음이었다. 경지에 이르렀을 땐 건 드리고 싶어도 남편 밖에는 육체를 건드리 지 못했었다. 그러나 혹금단주에게는 자 동문이었다. 들어오고 싶으면 들어오고, 나가고 싶으면 나갔다. 지 맘대로 육체를 들락날락 가지고 놀았다
‘그 망할 놈!’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 귓속을 파고든 혹금단주의 평가는 잊히지 않았다.
-시시하군요.
무공을 익힌 이후로 들어보지 못한 막 말이었다. 다시 상기해 봐도 화가 치밀었 다. 자존심이 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다. 그 순간 끊어지는 의식을 부여잡으려 고 했었다. 하지만 일어나면 더 맞는다는 공포에 의식을 놓아주었다.
‘ 제기랄’
마지막까지 농락을 당하고, 쪽까지 팔 렸다.
“상념이 많으시군요.”
*.2”
진영화는 의식을 차리고도 대결을 복기 하다 보니, 자신을 깨운 대상을 보고 있지 않았다. 흐릿해진 영상이 제자리를 잡아 가면서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아주 익숙 하며, 짜증 나는 면상이 자리했다
“ 넌‘?”
“인사가 늦었지요. 하정우라고 합니다. 밤에는 결례가 많았습니다.”
진영화에게 있어 사건의 원인 제공자였 다 그런 놈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처럼 뻔뻔하게 웃는 낯짝으로 나타났다.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밤중의 일과는 관 계없는 사람인 줄 알 것이다.
‘公영이의 이모시라고 진작 말씀하셨으 면 오해는 없었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그 러고 보면 흑금단주도 꽤나 고약한 취미 를 가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
차마 네놈 때문이라고는 말하지 못한 진영화였다. 기름장어가 따로 없다. 모든 책임올 흑금단주에게 전가해 버림으로써 자신은 쏙 빠져나가 버렸다. 설령 알고서 했다고 해도, 따질 명분이 그녀에게는 없 었다
‘어디서 이런 개 같은 놈들이, 한 놈도 아니고 쌍으로!’
억울하지만 어쩌랴, 사태는 꼬일 대로
꼬여 버렸다
진영화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현실 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 화를 내 봤자, 손 해를 보는 사람은 정해져 있었다. 일방적 으로 손해를 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 다
“너도보통이 아니구나.”
“과찬이십니다.”
혹금단주가 워낙 강렬해서 그렇지, 눈 앞의 마법사도 탐나는 인재였다 마법사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주었으니 까 그렇다 해도 하루아침에 억하심정이 사 라지지는 않았다
“혹금단주가 조건을 전해달라고 하더군 요. 몸도 불편하신 분께 할 말은 아니라 저 로서도 난감할 따름입니다만, 계약에 묶 여 있는 몸인지라,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점 넓은 마음으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진영화는 그제야 혹금단주와 한 약속 이 스쳐 지나갔다 대결을 하기 전 약속을 하고, 계약서를 작성까지 했다. 계약서는 어디서 났는지, 양식까지 꼼꼼하게 준비가 되었다. 어쨌거나 자존심이 계속 긁히는 바람에 신중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이성이 무너지기 직전이라사리분별이 되지 않은 것이다
‘망할!’
쌍방조건 중에 이긴 쪽에 1000억을 주 기로 약속했다 터무니없는 액수다.
보통은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올 테지 만, 보상심리가 작용했다. 밤중에 당한 걸 되돌려 받으려면 그 정도는 받아내야 공평 해 보였다 그게 실수였다. 질줄 몰랐던 것 이다 버서커 모드까지 발동하고서도 패배 할줄 누가 알았으랴
-겁나면 물리셔도 됩니다.
혹금단주가 꺼낸 잡설에 뒤를 돌아보지
않았었다. 너나 쫄리면 뒈지라고 한바탕 쏟아붓기까지 했었다. 이래서 계약은 함부 로 하지 말라는 격언이 생겨난 것이다. 그 녀가 비록 최상승의 고수라고는 하나, 한 두 푼도 아니고 천억은 감당이 되지 않았 다
“돈은”
“잠깐 시일을좀주면 안될까?”
“갚으시게요? 신룡문의 장로님답게 신 용이 칼이군요. 하긴 장로님이 실언을 하 실 분도 아니고, 제 임의대로 갚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얼마든지 기다려줄 수 있습 니다. 돈이야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렇기는 하지.”
괜히 말 끊었네, 가만이나 있을걸.
진영화는 급한 성격을 고쳐야겠다고 반 성 또 반성했다 말올 끝까지 들어봐야 했 었다. 안 해도 될 말올 해서 궁핍올 자초하 고말았다
‘천억이뉘 집 개이름도아니고.’
망가진 자존심을 한 번 더 굽히면 되는 데, 이 망할 놈의 마법사가 신룡문을 거론 해 버렸다. 본문의 이름으로 계약을 한 이 상 두말할 수도 없는 처지가 아닌가. 명색 이 신룡문의 장로인데.
‘천억을 벌려면 얼마나 뛰어야 하는 거 야?,
케이브에서 마물을 잡아 짭짤한 수익 을 올리고는 있지만, 천억을 벌려면 몇 탕 을 뛰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렇다 고 문주에게 사실대로 이실직고하면 또 사고 쳤다고 지랄발광을 할 게 분명하다. 그 인간 얌전한 둣 보여도, 피는 어디가지 않는 법이다. 뚜껑 열리면 엄청나게 사나 웠다
‘X됐네.’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 자제하지 않았 으면 쌍스러운 욕이 그대로 튀어나올 뻔했 다. 진영화는 숨을 고르게 쉬어 마음을 안 정시켰다.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는 처지, 앞으로의 대처가 중요했다. 벌어진 일을 후회해봤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조건이나 말해봐.”
“무화라는 명성 그대로 시원시원하시군 요.”
“입에 발린 말은 듣고 싶지 않으니까. 어 서 말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입이 화근이라고, 여는 족족 빚을 늘려 주고 있었다.
진영화는 더 이상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 벌을 받아야 한다면 먼저 받는 게 나았다. 나중에 받는다고 없어질 것도 아 니고.
“사리사욕이나 문파의 이익이 아닌 대 의적인 관점으로 공명정대한 결정을 해주 셨으면 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 으면 하나, 정우는 기대하지 않았다 차분 히 원하는 단어를 던져 주었다
“무림대회 이후라면 어떠십니까?”
“말 같지도 않은……응‘?”
무림대회가 끝나고 난 후, 무문연합은 실질적인 수장을 뽑기로 합의를 봤다.
무연연합의 수장은 관례대로 해 왔고, 딱히 문파에 대한 간섭을 하지 않았다. 실 질적인 힘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 나 이번에는 다르다. 국내외의 정황이 급 변하고 있는 시기다. 무문연합의 힘을 하 나로 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장으로 봅힐 유력한 문파는 현재 금 강문과 천무문이다 현 무문연합의 수장이 천무문이고, 금 강문에 대한 반감이 커서 재신임될 가능 성이 높기는 하나. 무림대회의 성적에 따 라 판세가 뒤집힐 우려가 있었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냐, 그건 금 강문이 무림대회에서 성적을 내야 가능한 일이잖아"
“그렇지요.”
“성적올못내면 어쩌려고?”
“혹금단주가 그러더군요. 실력도 없는 쭉정이가 무문연합의 수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요.”
또 말렸네.
진영화는 혹금단주의 무력을 여실히 체 감했다.
각 문파의 최고수가 아니면 적수가 되
지 않는다. 솔직히 나이만 믿고 깝치면 망 신당할 확률이 높았다. 그런데 유력한 우 승후보인 흑금단주가 출전을 포기했다 보 다 확실한 카드임에도 금강문은 과감히 내려놓은 것이다.
‘본문이라면 그럴수 있을까?’
쉬운 길올 놔두고 어려운 길을 택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 다. 더욱이 무림대회에서 성과를 내면 다 음 대 무문연합의 수장이 될 가능성이 높 아진다 하지만 흑금단주가 아닌 금강문의 삼형제가 실력으로 무림대회를 평정한다 면 시너지 효과는 훨씬 커진다. 금강문의 위상을 재확인할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 만약 그것까지 염두에 두었다면 금강문은 이전처럼 허술하게 대해선 안 되는 문파다 그래도 그렇지.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우주 최강이구 나:’
“사나이라면 포부가 있어야지요.”
진영화는 금강문이 또 한 번 비상을 꿈 꾸고 있음을 깨달았다. 무림대회를 기점 으로 무문연합을 실질적으로 통솔할 계 획이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을 포섭하려고 계획을세운 게 분명하다
‘무서운 놈들.’
조카와의 사소한 인연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큰 그림을 그리다니.
진영화는 소름이 다 돋았다. 또한 금강 문이 달라졌음올 받아들였다. 예전처럼 머리 안 쓰는 무식한 인간들만 있지 않았 다 그럼에도 못마땅하기는 했다.
‘금강문주가수장이 되면?’
무문연합의 미래가 암울해진다. 금강문 주의 망언과 돌방행동이 주마등처럼 스치 고 지나갔다. 차라리 현재의 수장인 천무 문주가 하는 편이 낫다고 봤다 그러나 약속은 약속, 조건을 어기면 진 영화는 신용을 잃는다. 내뱉은 말도 문제 지만 당장 천억을 갚기도 막막하다
‘3대 3이 되었군.’
정우가 무화를 택한 이유가 있었다
신룡문이 그나마 금강문에 호의적인 편 이고, 무화는 본인이 뱉은 말은 지키는 여 인이다. 화천문과 신룡문을 포섭한 이상, 남은 문파는 3개에 불과했다 도해문과 혹 호문을 지워버려서 수월하게 되었다. 만약 도해문과 혹호문이 남아 있었으면 금강문 은 무문연합에서 불리하게 작용했을 것이 다
‘그렇다 해도 고작 무문연합의 수장 때 문에 일을 꾸몄다고 생각하다니, 단순하 군.’
정우에게 있어 무문연합은 밟고 올라 갈 발판에 불과했다. 금강문주를 위한 하 나의 기반일 분이다. 수틀리면 언제든 버 릴 패이기도 했다. 저들과 함께하려는 건 이용가치가 있기 때문이지, 신뢰하진 않았 다 말로써 너덜너덜해진 진영화는 힘이 쭉 빠져 버렸다. 어깨에 들어간 봉은 제거된 지 오래다. 이젠 싸울 기력도 없다.
“노력은 해볼 테니, 장담하진 마”
“믿고기다리겠습니다.”
“망할 놈들, 언젠가 너희도 큰코다칠 거다:”
“자중하란 뜻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얄밉기가 천하무적이다
속올 긁올 심산으로 빈정거렸건만, 돌 아오는 대답은 정석에 가까웠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되었 다. 진영화는 마법사와는 말을 나누지 않 는 편이 이롭다는 걸 여실히 실감했다.
“식사하시겠습니까?”
“됐어.”
이 와중에 무슨 식사야
꼬르륵!
망할 위장이 배반을 해 버렸다. 정신이 육체를 이기기는 개불. 몸이 힘들면 마음 도 힘들기 마련이었다. 건강한 육체에 건 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명언이다 꼬르르쾅쾅!
위장에서 밥 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진영화는 달아올라 붉어지고 있는 얼 굴을 상기했다. 그러나 티가 날 염려는 하 지 않아도 되었다. 어차피 붉어지든, 안 붉 어지는 의미가 없는 얼굴이었다
“좀만기다려.”
“그러지요.”
정우가 나가고 진영화는 방 안에 있는 화장실로 직행했다. 여자는 언제 어디서든 꾸미고 다녀야 한다. 무공을 배웠다 해서 털털하게 입고 다니면, 안타깝게도 주변의 시선이 좋지 않았다. 대중의 시선올 의식 하는 편은 아니라곤 해도, 여자로서 꾸미 고 싶은 건 본능이었다.
화장실 앞, 거울을봤다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