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내실을 다지다 (2)
“이상하지 않다고?”
“팽세경은 팽가의 사신입니다. 사신의 자격으로 준 카드를 돌려달라고 한다면 팽가의 입장이 뭐가 되겠습니까”
“그럼 지금처럼 써도 된다는 거잖아”
“ 당분간은요.”
“이 영악한 녀석, 머리 돌아가는 게 귀 신도 속이겠구나.”
정우는 팽가와의 협상뿐만 아니라 김 총관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서 팽세경을 이용한 것이다. 강천에게 어떤 매력을 느 꼈올진 알필요도 없다 문파의 재정건전성올 위한 일이라 김 총관도 두말하지 않고 협조했다. 사실 팽 세경이 강천과 잘 안 된다고 해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런 정도는 처음부터 충분 히 대비를 해 놓았다 팽세기와 이극의 공조로 팽가 내에서의 입지가 점차 굳건해지고 있었다. 다음번에 있을 무림의 대환란만 극복하면 팽가의 주도권을 팽 가주한테도 빼앗아 올 수 있 었다. 그땐 숨겨 두고 있는 비밀을 폭로해 서 매장시켜버릴 계획이다.
‘사귀고 싶으면 우승을 해야겠지.’
정우는 대회에 참여한 무인의 수준올 알고 있었다.
강현, 강우 강천의 적수가 될 만한 무인 은 염화를 제외하면 3명을 넘지 않을 것이 다. 그러나 특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자가 있었고, 강탈 능력이 이제는 안정성을 확 보한 모양이다. 예전처럼 강탈능력을 사용 하면 속성 능력자가 죽는 일이 사라졌다.
무인의 대결은 작은 변수로 인해서 큰 전환점이 될수있었다. 그모든변수를물 리치고우승을해야한다 정우가 삼형제를 다그치는 이유이기도 했다. 변수가 승패에 영향올 끼치지 못할 만큼 강해져야 했다.
‘대회가끝나면 알게되겠지.’
정우가 세운 계획의 시작은 무림대회부 터다. 대회가 끝나고 나면 금강문은 탄탄 한 기반을 얻게 된다 안 시장을 비롯한 정 치인들이 찾아오고 있음에도 거절한 이유 다. 기반이 없는 정치는 무용하다. 세력이 없으면 목표를 추진하기 어렵다. 현대의 정치는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한다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정당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서애를쓴다.
‘한번만들어주지.’
소통이 가능한 사회, 정우의 바람이 담 겨 있었다
단,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을 기반으로 둔다 이에 대해 태클을 걸고 싶다면, 얼마 든지 받아줄 용의가 있다.
“청와대 국수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네 요.”
“정말?”
“대령숙수가 손수 만든 비법 육수를 사
용하거든요.”
“호오, 그건 참 입맛 당기는구나.”
문주의 입맛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는 걸 잊진 않았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니, 식욕이 곧 정치가 될 것이다 정우는 문주의 집무실에서 나와 총관 실로 향했다.
총관실은 금강문에선 없어서는 안 되 는 중추기관이다. 이 안에서 결정된 사안 은 금강문의 핵심전략이 된다. 반면에 문 주의 집무실은 대외 선정용이다. 속된 말 로 빛 좋은 개살구도 되지 않는다 한 해가 저물가고, 새해가 밝아오는 시 기일수록 총관실은 더더욱 바브다.
국가와 마찬가지로 그해의 재정과 정책 방향을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도해 문의 관할 구역까지 관리를 해야 하기에 인력 수급이 절실한 시기다 아이구 아이구!
김 총관이 정우를 보자마자 앓는 소리 를 한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죽상 을 하고 있었다. 누구 때문에 밤잠을 쉬지 도 못한다는 무언의 협박이기도 하다. 노 년의 다크서클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다는 부언과 함께.
“늙은이를 이렇게까지 학대해도 되는 것이냐?”
“학대라니요, 오해십니다. 그리고 지금 도정정하세요.”
“정정하긴 개뿔.”
“당분간 문주님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 지 않습니까?”
팽세경을 부추겨 문주의 식대를 비롯 한 각종 사고에 대한 비용 처리를 하도록 유도한 이유가 김 총관의 업무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업무량이 3배로 늘어난 만큼, 처리해야 할 사안도 많아졌다. 문주에게 신경을 쓸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규모가 커지고 있 는 만큼 당연한 수순이기도 하다
‘껄! 이 녀석의 머리통엔 대체 뭐가 들 었을까?’
김 총관은 정우의 능수능란한 용인술 과 처세술에 혀를 내둘렀다. 가지고 있는 실력은 물론, 사람까지도 이용할 줄 알았 다. 그 안에서 놀아나고 있음에도, 정작 당사자는 고마워하고 있었다. 정우의 계 획이 성공하자, 팽세경은 평생 은인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용하면서도 인망까지 얻다 니, 놀랍다
“문주보다 네가 더 무섭다, 이놈아”
“저는 사리분별은 하는 편입니다.”
사리분별을 해서 더더욱 업무량을 늘 려 주고 있었다 손자 보고 있을 나이에 매일 일찍 출근 에 야근까지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이 아 내란 인간이 요즘은 그 나이에 일자리도 구하기 힘든데, 금강문만 한 데가 없다고 사족을 단다. 틀린 말은 아니라서 부언하 진 못했다.
금강문의 복리후생은 자신이 직접 만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괜찮았다. 곧 고갈 이 될 국민연금은 국가의 지급보장이 안 돼서 불안하기는 하지만. 옛날에야 적게 내고 많이 받았어도, 고령화 시대가 된 이 상 많이 내고도 적게 받아야 할 형편이다. 사실 받을 수 있을지 미지수이기도 하다. 왜 연금을 냈는지, 맘 같아서는 이자 안 받을 테니 돌려받았으면 했다. 일전에 연 금가지고 장난친 게 보록나면서 연금공단 에 대한 질타가 난무했지만, 워낙 방대하 게 퍼져 있어서 그만 낼 수도 없는 처지다.
“그래서 더 짜증난다고.”
“나이가 들수록 머리를 써야 치매 예방 도 되고 삶의 활력소가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집에서 애 보는 것보다는 훨씬 좋 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넌 하루 4시간도 안 하잖아”
“저야아르바이트니까요.”
정우의 고용 계약서는 본인에게 지극히 유리한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시간은 자유롭고, 하루 4시간 이상은 일하지 않 는다고 적어 놓았다. 이뿐인가, 시간당으 로 계산을 하면 20만 원이 넘어간다: 한마디로, 본인이 원할 때만 일해도 된 다 피고용자이면서도 압도적인 우위에 있 는을질 계약서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어 취직조차 못하고 있는 취업자들에게는 신 의 직장이라불려도손색이 없다. 단, 정우 만큼 이득을 가져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사람도 붙여 줬는데, 엄살이 심하시네 요.”
정우도 나이든 김 총관을 마냥 부려 먹 진 않았다. 괜찮은 사람을 붙여 주었다. 일 전에 도해문에서 당돌하게 치고 나왔던 워킹맘 이유정을 소개시켰다.
데려오기 전 신상조사는 마친 상태였기 에 문제는 되지 않았다. 그녀의 일거수일 투족을 혹막을 고용해서 샅샅이 훑었다. 그녀가 나고 자란 일대기가 요약 정리된 지 오래다. 아마 부모님이나 남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원한다면 전신 모 공에 난 털 개수까지도 확인이 가능하다
“그거야 그렇지만.”
“요즘 미는유행언가요, 그거.”
김 총관은 이유정을 못 미더워했었다. 딱히 뛰어나 보이지 않는 데다가, 애까지 딸린 유부녀란 점이 마이너스였다. 양성평 등 시대에 불합리하게 대할 수 없어 일을 시켰는데 웬걸, 굉장히 잘했다 그간의 선 입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업무처리 능 력이었다. 특히 꼼꼼한 성격이라서 오차가 거의 없다.
“일이 많은데도 정해진 시간 안에 빈틈 없이 처리하는 걸 보고 나니, 인정하지 않 을수 없더구나?”
“총관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뿌듯하네 요.”
김 총관도 업무에 관해서는 공치사를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공적이라, 문주의 사적인 주먹질에 종종 당하지만
“하지만 그녀의 인생이 행복할 것 같진 않구나. 누구 때문에.”
“저는 그녀를 위해서 사람까지 붙여 주 었습니다. 저 같은 고용주가 어디 있다고 그런 섭섭한 말씀을 하십니까 저 상처 받 습니다”
“상처, 네가 상처를 받으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
“저도 사람입니다:
워킹맘의 가장 큰 고민은 애와 살림이 다
시대가 변하면서 남편이 의무적으로 도 움을 주기는 하나, 같이 한다는 마인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하물며 함께 일 을 하는데도 살림과 애는 여자의 몫으로 남아 있다.
정우는 그녀의 원활한 업무를 위해서 집을 금강문 근처로 이사시키고, 혹금단 원을 배치시켰다. 그녀의 남편과 딸 문제 로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물론 그 집 남편이 꽤나 불편해하고 있 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으나, 무시했다. 당 장 필요한 사람은 그녀였고, 그녀의 남편 은 사족이었다. 더불어 월급도 그녀가 훨 씬 많이 받는다. 가정의 주도권은 돈을 많 이 버는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다. 이로 인 해 남편의 애환이 쌓이고 있는 모양인데, 업무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잘 처리하라 고일러 놓았다.
드륵!
올해의 재정보고서 작성을 마친 이유정 이들어왔다.
그녀의 직책은 부총관이다. 김 총관이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파격적인 인사를 강행했다. 불만은 나오지 않았다. 총관이 하던 일을 장로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 다. 장로들은 금강문의 특성을 고스란히 받은 채로 나이가 들었다. 이제와 단단해 질 대로 단단해진 머리를 쓸 수 있올 만큼 유연하지 않았다. 금강문의 뒷방 늙은이 가 되어 자리를 채우는 데 사명을 다했다. 간혹, 전투가 벌어지면 한 손 거들 뿐이다. 무인은 나이가 들어도 공력이 강해지기에 정년은 긴 편이었다 싱글벙글.
김 총관의 우려와 달리 이유정은 일이
즐겁고, 신이 났다.
남녀를 떠나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건 축복이었다. 도해문에 있을 땐 여자라는 이유로 편견에 시달리고, 능력 에 비해 제대로 된 대접올 받지도 못 했다 그녀에게 금강문은 신세계다. 같은 무 문이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예상과 달리 대접이 후하다. 특히 남편 앞에서 당당해 질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간 같이 일하면 서도 월급이 적다는 이유로 무시를 당하 기 일쑤였었다.
정우는 넌지시 물었다
“일은 적성에 맞습니까’?”
“좋아요, 절 스카우트해줘서 얼마나 고 마운지 몰라요. 정말 고마워요. 이 은혜 절대 잊지 않을게요.”
“잊지 않으셔야 합니다. 한데, 시어머니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조금 있더군요.”
“시어머니가 워낙 옛날 분이라서 그래 요.”
옛날 마인드라서 그럴까, 그 시대에도 여성에 대한 지위 향상은 계속되어 왔었 다. 현재의 시어머니도 그 시대 분일 텐데. 달라지지 않는 걸 보면 시어머니의 종특 보존 법칙이 작용하는 모양이다
“원한다면 해결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에요. 제가알아서 할게요.”
이유정은 흑금단주에 대한 선입견을 버 렸다. 처음엔 무서워서 전신의 모공이 열 리고, 잔털까지 쭈뼛 섰었다. 함께 지내다 보니 그는 굉장히 젠틀하며, 사리분별이 확실했다. 공과 사를 구분해서 대했으며,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열심히 하면 대우도 섭섭하지 않아서 일할 맛이 났다
‘하아, 위선이 쩌는구나.’
김 총관은 방금 무서운 말이 지나갔음 을 간과하지 않았다 정우는 절대 입에 발 린 말을 하지 않는다 본인이 뱉은 말과 약 속은 반드시 지킨다. 무심코라도 이유정 이 시어머니에 대한 처리를 부탁했으면 정 우는 실행했을 것이다
‘직무에 지장을초래하면 곤란하지.’
정우는 가족 같은 직장을 바라지 않는 다
이유정은 직장인으로서 맡은 일에 최선 올 다해야 한다. 만일 직무에 지장올 초래 한다면, 지금까지의 혜택은 거둬들일 것이 다. 그것이 고용주와 피 고용주의 의무와 책임이다. 정으로 얽히지 않는 게 오히려 낫다
‘사람이 좀더 필요하겠어.’
김 총관과 이 부총관만으로도 운영은
되나, 로봇이 아닌 이상 피로가 쌓이기 마 련이다. 이보다 더 규모가 커지게 될 터, 인 력 보충은 이루어져야 한다
‘학과에 괜찮은 애들이 있올라나.’
마법학과의 취업 성공률은 100%다.
이렇게 말올 하면 이상하게 다가올 것 이다. 정우가 오기 전까지 마법학과는 MT 에서 최하점을 받는 학과로 폐지되기 직전 이었다. 그런 학과의 취업률이 100%라고 한다면 보통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실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된다. 마법학과를 나와서 유니크가 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이 3레벨에서 고배를 마신다. 결국 유니크와는 다른 직장을 가 지게 되는데, 마법학과를 졸업만 한다면 기본적으로 업무처리 능력은 있다고 봐야 했다. 마법학을 이해하려면 학습 능력과 이해력올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잔대가리를굴리는놈들이 많아서, 별 론데.’
이 부총관을 선택한 이유 중에 하나가 책임감이었다 그녀는 맡은 일을 끝내기 위해서 최선 을 다한다. 모르쇠와 무책임으로 일관하 는 요즘 정치인들과는 정반대다.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해냈다. 설 령 주어진 환경이 어려울지라도.
‘당분간은 어쩔수 없지.’
사람을 아무나 봅을 수는 없다. 당장은 김 총관과 이 부총관으로 끌고 나가고, 적 합한 인재가 있으면 스카우트하기로 결정 했다. 사람하나 잘못 들어오면 자칫 문파 의 위계와 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었다.
총관실에서의 일을 마친 정우는 본인의 전용 단주실로 들어섰다. 다른 단주실에 비해 특별하진 않았다. 탁상 위에는 혹막 에서 보내온 자료가 놓여 있었다.
“남의 걸 노리는 놈들이 꽤 있네.”
일우그룹에 대한 대한그룹의 지배권이
높아지고, 여러 수익 사업에서 성공적 결 과를 얻어내고 있었다. 그에 따라 상대적 으로 위기에 몰린 기업이 있었다. 이를 타 파하기 위해서라도 연결고리가 필요한 시 점이었다.
“곧 할아버님이 부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