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내실을 다지다 (1)
무문연합에 소속된 문파는 대회 준비 에 매진했다.
최근 연이어 터진 대형사고로 무문에 대한 인식이 좋지만은 않았다. 세간의 불 신을 종식시키고, 이미지 개선을 위해서라 도 무림대회에서의 선전은 중요했다 물론, 표면적인 이유이기는 하다
무문은 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Why?
금강문 때문이다.
무문은 그간 마케팅의 중요성올 간과했 었다. 근래 금강문의 선전효과는 기대 이 상으로 컸다. 금강문에 대한 인식의 변화 로 여론이 받쳐주고 있었다. 그제야 무문 은 홍보의 중요성을 깨닫고 만전을 기했 다 다른 무문이 대회 준비와 홍보에 사활 을 거는 동안, 금강문은 앨런가와 협상을 끝냈다.
앨런가의 대공녀 윤정이 전권을 위임받 았기에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협상은 공평 했다. 서로가 원하는 윈윈 전략이 되었다. 이후의 성과는 이해득실에 따라 달라지기 는 하겠지만 앨런가와의 공조는 정부에서도 주목하 고 있었다.
최근 한미연합의 유대관계가 과거와 달 라지면서, 불안감이 팽배했다. 확고한 한 미 간의 수교와 안보 확립을 위해서라도 앨런가와의 협상은중요■하다. 실상 외교정 책에서 연이은 실패를 하는 바람에 앨런 가와의 공조가 반드시 필요했다.
정부의 주요 인사가 금강문에 자주 행 차했다.
특히 각종 스캔들로 시달리고 있는 여 당은 금강문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당의 쇄신을 위해서라도 이름을 바꾸어야 한다는 쓴소리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자칫 당이 와해되어 사분오열될 위험이 있 었다. 어떻게 해서든 당을 존립시키기 위 해서 애를 써야 하는 실정이다.
“당에 들어오기만 한다면 최대한 원하 는 모든 걸 해드릴 용의가 있습니다.”
“난무인이지, 정치인이 아닙니다.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돌아가시지요.”
“문주님과 같은분이 정치를 하지 않으 면 어느 누가 이 나라의 누란지위를 극복 할 수 있겠습니까 금강문이 지향하는 의 와 협, 바른 신뢰가 필요한 때입니다. 부디 이 어려운 난국을 외면하지 말아주십시 오.”
“뚯이 없으니, 그만하시지요”
인천시장의 끈질긴 설득에도 이호극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말만 들어도 골이 지 끈거리고 있었다.
‘이 망할 녀석이 더럽게 끈질기네, 한 대 칠까?’
요즘 안정복이 속한 여당은 분열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다음 대 대선은 야당의 승리가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마땅한 대선후보조차 내세우지 못하고 있었다. 그로서는 금강문주의 정당 참여나 지지가 반드시 필요했다. 맘 같아서는 바지 자락 이라도 붙잡고 늘어지고 싶으나, 성질 낼 것 같아서 참는다
“그러지 마시고, 찬찬히 고민을 해 보십 시오.”
“나 같은 사람도 필요로 하는 걸 보니, 힘들긴 힘드나 보군요.”
“힘든 건 사실이지만 보수는 보수입니 다. 보수의 표가 진보로 가지는 않습니다.
문주님만 결정하신다면 얼마든지 가능합 니다.”
안정복은 당장의 민심과 여론이 여당 에 불리하기는 해도, 걱정하지는 않았다. 민심은 언제 어느 때라도 요동치며 변화 무쌍하다. 보수의 고정 지지표는 여전히 여당을 지지하고 있었다.
금강문주만 와준다면 여론의 향방을 돌리고, 민심을 되찾아오는 것도 가능했 다 한데, 이 돌덩어리 같은 위인이 꿈쩍도 하지 않아 애를 태운다
“혹,야당에서 사람이 온 겁니까?”
“어허, 나를 뭐라고보고.”
안 시장은 움찔했다. 가만히 있어도 금 강문주는 호랑이 상이었다. 그런 그가 인 상을 쓰니, 오금이 저려 온다. 금강문주의 진면목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 이토록 엄청난 존재감을 가 지고 있기에 대선주자로서 적합하다는 생 각마저 들었다. 여당의 대선후보 중에 금 강문주와 같은 카리스마와 민심을 동시에 얻은 인물이 없었다. 당장은 연예인 스캔 들과 그 당이 그 당이라는 물 타기로 선동 을 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같은 수를 쓸 수 는 없는 노릇이다
“무인을 모독하지마시오.”
“죄송합니다”
금강문주는 끝내 사양했다.
안 시장은 아쉽지만, 일어서야 했다. 답 을 얻기에는 금강문주의 태도가 지나치게 확고부동하다. 자칫 긁어 부스럼을 만들 위험이 있었다. 넘어올 것 같으면 10번이 아니라 100번도 마다하지 않겠으나, 빈정 상해서 야당으로 가기라도 하는 날엔 죽 쒀서 개 준꼴이 된다.
‘오줌 마렵네.’
금강문주의 서슬에 안정복은 방광과 괄약근이 움찔거리며 풀릴 뻔했다. 그가 보여준 행보만 봐서는 의협으로 똘똘 뭉 친 위인이나, 무인은 무인이었다. 한국 무 문을 대표하는 절대무인 다운 사나운 기 세다
‘이런 자한테 밉보이면 큰일 나겠구나.’ 당 내부적으루.두 의견이 분분했다. 금강문주의 영입에 대해서 마냥 긍정적 이지만은 않다. 대다수는 현재의 민심을 되돌리기 위한 확실한 카드로 보지만 금 강문주는 휘둘릴 사람이 아니었다. 어쭘 잖은 수작을 부렸다가는 당에 피바람이 불수도 있었다. 저 인간이 당 대회에서 주 먹질을 한다고 상상해 봐라 단순 쇼로 끝 나지 않는다. 사람도 가려가면서 수작을 부려야 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다음엔 부디 올바른 선택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오늘과 다르지 않을것이오/
이호극은 틈을 주지 않았다?
안 시장은 아쉬운 마음올 간직한 채 집 무실을 나서야 했다. 그로서는 당 내의 권 력구도를 굳건히 할 기회라서 더더욱 아 쉬움이 크다. 어제의 적이 아군이 되듯이, 당 내에서도 경쟁이 치열했다. 금강문주를 등에 업으면 천군만마를 얻게 된다.
정우는 집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가 안 시장을 정문까지 배웅했다. 안 시장 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위로의 말을 건넸 다
“성과가 없으셨나 봅니다”
“문주께서 저리 완강하시니 답답하네. 기회도 다 때가 있는 법인데 말이야”
안 시장의 안타까운 심정올 정우는 거 들지 않았다. 설령 그의 말이 맞는다 해 도, 자신이 원하는 때와는 거리가 있었다.
‘때는 만들면 그만이지.’
시류에 편승한 인기는 오래가지 않는다 진정한 패자는 그 어떤 외압이나 유혹에 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간다. 설 령 문주가 결단을 내린다고 해도, 현재의 정치에서 혁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정치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라는 말도 변질되었 다 예로부터 새 술은 새 잔에 담으라고 했 었다. 조선의 태종을 보라 세종대왕의 위 대한 업적이 괜히 나왔겠는가. 주변을 싹 쳐 버려야 깨끗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것 이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혁명가는 기득권자 가 되어 썩어갈 테지만. 역사란 원래 그렇 게 돌고 도는 순환의 연속일 분이다.
‘기득권에 기댈 거면 애초에 시작도 하
지 않았어.’
전생이나 현재나.
정우는 기득권자들을 옹호하지 않았 다. 언제나 변혁과 파격을 이루어왔다. 세 상이 발전하려면 기존의 굳어져 버린 질 서를 부수고,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그래 야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도 기회가 오는 법인데, 진강백은 이런 큰 뜻을 몰라주고 방해를 했었다.
‘맞는 말을 해서 화를 돋웠었지.’
그 시절의 나는 피를 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목적을 위한 수단에 방법을 가리 지 않는 편이다. 수많은 피를 홀렸다. 나보 다 많이 흘린 놈도 드물 거다. 그리고선 진 강백에겐 대(大)를 위한 소(小)의 희생이라 고 개소리를 지껄였었다 한데, 그놈의 반박이 압권이다. 고리타 분할 줄 알았는데 생각은 깨어 있었다. 내 가 그 희생양에 포함이 될 경우는 어쩔 거 냐고 했었다. 당연히 나는 가만있지 않는 다고 답했다 참 이때는 너무 솔직했다.
어쨌든 나만의 대의였음을 인정하는 꼴이었다. 그러나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사람은 원래 자기만의 대의를 위해 살아 가는 법이다 그것을 꿈이라고 한다. 꿈이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는 건데 일일이 태클 을 걸면 어쩌란 말인가.
‘개소리라서 그런지 혓바닥도 꽤 길었 지.’
구구절절 아니라고 설명해봤자 결론은 나와 있었다. 개인적인 욕심을 부정하진 않았다. 그래서 진강백과는 맞물리지 않 는 평행선에 있어야 했다.
안 시장을 보내고 정우는 문주의 집무 실로 들어왔다.
단순한구도.
집무실의 중앙, 의자에 심드렁하게 앉 아 있는 문주가 인상적이다. 집무실마저 그의 단순무식한 성향을 닮아 있었다. 그 러나 실상을 알면 포장 못 한다. 집기류를 비롯한 서재의 각종 물품이 문주의 심경 변화에 박살이 나면서 구조가 단순해져 버린것이다.
그럼에도 안 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검소해 보인다. 문주의 과격함이 소박함으로 잘 포장되었다
“갔냐?”
“갔어요.”
이호극의 얼굴에 피곤함이 묻어 나왔 다. 평소 하지 않는 언행을 했더니, 입 안 에 가시가 돋치고 식욕이 배로 떨어진다. 오늘도 아침을 10공기밖에 먹지 않았다. 아내도 어디 이상 있는 거 아니냐고 살짝 걱정했었다. 평소라면 10인용밥통 2개를 해치우고도 모자랐을 텐데. 성 여사는 문 주를 위해서 구내식당용 밥통을 따로 주 문해야 했었다.
“수치를 모르는 놈들일세.”
“자기 밥그릇올 지키려면 하는 수 없죠. 그리고 창피함을 알면 정치 못 합니다. 일 단 안면은 철판이어야 살벌한 정치판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는 겁니다”
정치의 기본은 모르쇠와 배신이라는 말이 있다. 친구도, 적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득이 맞으면 언제든 손을 잡기도 한다. 이를 자기들 딴에는 현명한 처세술이라고 포장을 하는데, 대중이 보기에는 그럴 듯 한 개소리에 불과하다.
“쪽팔린 짓 했으면 내려와야지.”
“그게 자기 맘대로 되면 추해지지 않겠 죠.”
사람들은 말한다.
권력의 노예가 되어 추락하기 전에 깔 끔하게 내려놓으라고. 그러나 추락 시점 을 안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안다 고 해도 너무 많이 나아가 있어 되돌리기 에는 늦어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권력자의 말로는 추잡할수밖에 없다. 시대의 영웅 도 흥망성쇠 앞에서는 나약한 인간에 불 과하다.
“한 번해 보고싶기는하다”
“하면요?”
정우는 넌지시 의향을물을 분, 권유하 지 않는다. 문주님은 본인이 하겠다는 마 음이 있어야 하는 분이다. 등 뒤에서 민다 고 순순히 따를 위인하고는 거리가 멀다
“다쓸어버리고, 깨끗한 정치를만들어 야지.”
“세상에 깨끗한 정치는 없어요. 유토피 아를 꿈꾸시는 겁니까?”
“반대하면 다 뒈지는 거지. 근데, 왜 자
꾸 거절하라고 한 거냐?”
이호극은 매번 느낀다. 자신이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원래 정치할 마음이 그다지 크지 않았는 데, 사람 마음이란 게 요상했다.
“문주님은 쉬운 분입니까?”
“당연히 아니지, 나처럼 묵직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아내도 나의 묵직함에 반해 서 여태 못 떠나는 거다. 너도 잘 새겨들 어. 남자는묵직함 이거 하나로 끝나는 거 야.”
정치인을 얕보면 곤란하다.
방송에 나와서 떠드는 정치인을 본 사 람들은 말한다. 저 정도면 나도 하겠다고.
그러나 현실이 어디 그리 만만한가. 그들 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자들이다. 준 비도 없이 나서면 이용만 당하고, 쓸모가 다하면 팽 당하기 십상이다 배반당한 이호극은 어떻게 반응할까? 보지 않아도 훤하다.
말 그대로 깽판을 칠 테고. 정치인들은 이호극의 폭력을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깔 아뭉갤 것이다. 그간 만들어 놓은 이미지 를 한순간에 날려 버리게 된다
“일단은 무림대회부터예요.”
“한동안 점검 못했으니, 슬슬 시험을
해봐야겠구나.”
“5성까진가능할겁니다?”
“6성은 되어야지.”
“벌써부터 곡소리가 들리는 것 같네요. 나야 상관없지만 내 자식도 아니고요?”
정우가 도맡아서 훈련을 담당하고 있 다
이호극은 훈련이 끝이 날 때마다 확인 차 세 아들을 초죽음으로 만들어 놓았다. 단, 팽세경이 있는 장소에서는 최대한 인 자한 시아버지 노릇을 했다. 뭘 해도 허허! 거리는데 실없어 보일 때도 있었다. 강천 조차도 아버지의 이중성에 혀를 찼다. 본 인도 저럴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돈의 위력을새삼 느끼게 하는군요.”
“어허, 이게 다 네가 꾸민 일임을 내가 모를 줄알아?”
“알면서도 넘어가셨잖아요. 아니면 도 로 돌려주시게요?”
최근 이호극은 자유로운 씀씀이를 만 끽하고 있었다 남의 돈을 내 맘대로 쓸 때의 기분이란, 참 홀가분했다. 쪼잔하게 돈 몇 푼에 벌벌 (?) 떨었던 과거를 상기하면 구차할 따름이 다. 물론 보통 사람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무리가 있다.
특히 김 총관과 아내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더더욱 좋다. 둘이서 닦달할 때는 어찌나 호홉이 척척 맞는지, 단련된 육체 가 노곤해질 지경이었다 일주일에 1번씩 아내한테 고가의 선물 을 사주었다. 요즘은 ‘서방님’하면서 안기 는데 얼마나 살갑던지, 서비스가 죽여준 다. 이런 달콤함을 맛보았는데, 빼앗겠다 고? 그건 정말 싸우자는 소리밖에 안 된 다
“준거도로 뺏는거아니다. 그런데 왜 아무 연락이 없을까? 좀 이상하네.”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