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밀어주다 (3)
기내식이 나오자 세경은 본격적으로 식 사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비행기를 탈 걸 염두에 두고, 기 내식이 가장 괜찮은 항공사를 찾았었다. 가는 동안 가격에 비해 양질의 기내식이 나오지 않는다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후르륵!
기내식은 적당히 배고픔을 해소하는 음식이지, 이걸로 풍족하게 배를 채우지 는 않는다.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 대부분 은 그리 생각한다. 반면에 세경은 배를 채 우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팽가 소유의 골 드 플래티넘 프리패스 카드가 있었다. 거 의 백지 수표라고 보면 된다. 세계 어디에 서도통용이 되고.
승무원은 기내식 카트를 운반하는 데 바빴다. 아일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반복 하고 있는 중이다. 다른 손님도 있어서 더 바빠졌다. 하지만 그들도 세경의 식사에 혀를 내두르며 관전자가 되고 말았다.
‘기내식 거덜 나겠다!’
‘제한해야 되는거야?’
‘저럴 거면 퍼스트 클래스로 가지.’
‘이코노미가아닌게어디야’
비행기 내에 개인에게 주어지는 기내식 을 제한할 수도 있으나, 그건 장거리 운행 일 때나 간혹 그렇다. 북경에서 인천공항 까지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기내식을 제 한할필요성이 거의 없다.
‘2시간이라서 다행인 건가?’
‘장거리면 끔찍했겠다;
2시간 중 이륙하고 착륙할 때의 시간을 빼야 했다. 남은 1시간 반가량을 기내식 준비를 하고, 운반하는 데 쓰고 있었다.
“아쉽네.”
착륙 직전이 되어서야 멈춘 세경의 한 마디에 기내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그렇게 먹고서도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다니, 상식 을 초월했다. 강천이 세경과 사귄 이유를 증명하고도 남는 장면이었다
‘돌아갈 땐 안 봤으면 좋겠다?’
승무원들의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리드는 대공녀와 함께 금강문을 찾아
야했다
금강문의 정문에 당도한 리드는 편치 않은 안색이었다 금강문에서 먼저 연락이 왔을 때 수락했으면 번거롭지 않았을 것이 다. 한순간의 오기와 분노가 협상을 어렵 게만들었다
‘그러나 그때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리드는소리 없이 다짐했다. 앨런가를 만만히 본다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결 코 이롭지 않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금강문에서 사람이 나와 그들을 집무 실로 안내했다. 집무실엔 정우와 김 총관 이 앉아 있었다. 이호극은 화천문에 갔다.
화천문주가 친목을 다지자고 연락해 온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둘 간의 우열을 가 늠하기 위한 도전장이었다 도해문으로 인 해 망신을 당했던 화천문주는 아직 죽지 않았음올 검증하고 싶었다. 그 실험대상 으로 금강문주는 제격이었다.
“문주님은 어디가셨나요?”
“협상에는 문제없을 겁니다. 사실 있으 나 없으나 크게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김 총관의 대답에 리드와 윤정은 잠시 당황했다. 문파의 수장을 투명인간으로 소개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바지문주 도 아니고. 혹시나 심리전을 쓰는 것일 수 도 있어, 선뜻 항의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형태가 되었다
‘안되지.’
페이스에 말리면 한도 끝도 없다
리드는 도해문에서 뼈저리게 체감했었 다. 논리성은 하나도 없는데 당하고 나면 정신을 못 차린다. 마법사에게 있어 금강 문의 무대포와 무논리는 쥐약과 같았다
“하온데, 이 아리따운숙녀분은?”
“본가의 대공녀이십니다”
리드가 신분을 소개하자, 윤정이 이름 을 밝혔다
김 총관은 정우를 통해서 사전에 인지
를 받았으나, 놀라는 척은 했다.
앨런가의 대공녀에 대해서는 세간에 알 려지지 않았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공식 적으로 대공녀를 선보일 예정이라고 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으로 넘어가실까 요?”
“좋습니다?”
“협상안은 살펴보셨을 테니, 결정을 하 시겠습니까?”
“내용이 지나치게 금강문 위주로 작성 이 되었습니다. 또한 금강문주께서는 마법 병단의 절반을 죽였습니다. 그에 대한 책 임부터 져야합니다.”
“오해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식 으로 잘잘못을 따진다면 앨런가와의 중립 적인 협상은 어렵습니다.”
리드는 금강문주로 인해서 마법병단의 절반올 잃었다. 오해라고 해도 금강문주의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대가는 치러야 했 다
“그뿐이 아닙니다. 도해문이 저지른 행 위는 무문연합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 를 철저히 규명해야 합니다?”
“무문연합에서 도해문은 배제되었습니 다”
“그렇다 해도 최근까진 무문연합 소속
임은분명하지 않습니까!”
리드는 도해문과 무문연합을 엮어 금강 문을 압박했다. 도해문의 악행을 무문연 합에서 통제하지 않아서 벌어진 일로 몰 아갔다 잠자코 있었던 정우가 말문올 열었다.
“협상을 하러 온 건지, 따지러 온 건지 모르겠군요.”
“말씀이 지나치세요, 원활한 협상을 하 려면 당연히 해결되어야 할 사안이 아닌가 요?”
정우가 나서자 윤정도 나서서 물러서지
않고 받아쳤다.
윤정이 비록 금강문에 우호적이라고 해 도 앨런가에 소속되어 있었다. 앨런가의 대공녀로서 가문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개인의 잘못올 전체로 일반화시킨다면 세상의 누구도 온전하지 않을 겁니다”
“도해문을 개인으로 치부하기에는 무리 아닌가요? 그들은 한국 무림의 한 축을 담 당하는 대문파예요.”
“그럼 다른 미국의 가문이 실수를 해도 앨런가에 책임이 있다는 겁니까?”
“그건 억지 주장이에요. 이는 다른 가 문이 실수를 했을 때나 가능한 일이죠, 벌 어지지도 않은 일과 도해문을 엮는 건 옳 지 않아요.”
정우와윤정의 설전은 뜨거웠다. 서로 간에 물러서지 않는 팽팽함을 유지했다. 그러면서도 논리가 가볍지 않았다.
김 총관과 리드는 관전자가 되어 둘의 대치를 관망해야 했다 금강문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리드는 이런 식으로 흘러가게 될 줄은 몰랐다. 대 공녀는 자신의 입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상 징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그녀가 이토록 세세하게 내용을 파악하고 있을 거라고 는……. 판단실수였다.
‘그간 대공녀를 간과하고 있었구나:
윤정은 앨런가의 힘을 앞세우지 않았 다. 금강문과의 대치 관계를 정확히 파악 해서 가문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다.
“당시에 금강문은 오해가 있었음을 명 확하게 밝히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힘으 로 본가를 찍어 눌렀죠. 이것이 협을 지향 하는금강문의 기치인가요?”
“본문은 오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 을 했습니다. 문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건 앨런가입니다”
“좋게 말할 때 가라, 라고 하셨지요. 그 게 과연 오해를 풀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면 금강문의 정의는 무도 함에서 오는 건가요?”
“도를 넘어서는군요. 대공녀께선 지금 본문의 한가운데 있음을 명심하셔야 합니 다”
정우답지 않은 언사였다.
두 눈에 분기를 드러내며 무형의 기운 을 붐어내었다. 당장 무력을 행사해도 이 상하지 않을 만큼 분위기를 험악하게 이 끌었다
‘크홈:
리드는 혹금단주의 무형지기에 난감했 다. 대공녀의 논리 정연한 화술과 강단 있 는 배포는 인정을 받아 마땅하나, 상대는 금강문주에 못지않은 자였다. 그를 상대 로 이렇게까지 도발하다니, 현명하지 않았 다. 하물며 여긴 금강문의 중심이었다. 금 강문주의 성향올 알기에 더더욱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이 망할놈의 문파는 정상이 아니란 말 입니다!’
리드는 오기 전에 앨런가의 대공녀임을 잊지 말고 강단 있게 행동하라고 했다. 그 래도 이건 너무 나간 듯했다 남의 문파에 와서 기조를 비난한 꼴이 되었다. 보통은 앨런가의 위세를 내세워 잠재울 수 있겠으 나, 금강문은 일반적인 상리로 대해선 안 되었다.
‘아니?’
혹금단주의 기세를 대공녀가 맞받아치 고 있었다
우우우웅!
윤정의 내부에 숨죽이고 있던 마력이 무형지기에 반응했다. 그간 오빠의 부재 를 채우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했었다. 그결과7륜의 벽을허문지 얼마안됐음 에도 8륜에 근접해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수준을 한참이나 벗어난 성취였다 그분이 랴 마법에 대한 이해도 남다른 수준에 도 달해 있어, 독자적인 마법을 구현할 수 있 게되었다 츠츠츠츠츳 [
공력과 마력이 충돌하자, 쇠를 찢는 파 열음이 발생했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간 다면 집무실이 쑥대밭이 될 수 있었다. 그 만큼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물러설 마음이 없나보군.”
“금강문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폭력 부터 쓰는 문파였군요.”
정우의 살기는 보다 더 증폭되었다. 이 쯤에서 타협하지 않으면 여자라도 가만두 지 않겠다는, 물론 여자라고 해서 가만둔 적도 없지만. 여하튼 적당한 선에서 협상 안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언제 이렇게 성장했지?’
리드는 대공녀의 성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이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 올지는 미지수였다. 그녀의 정의가온당하 다 하나, 세상은 정의만으로 굴러가지 않 는다. 힘이 있어야만 했다. 폭력을 어떤 면 에서 가장 잘 다루고 있는 문파가 금강문 이었다. 저들은 타협점을 찾는 대신, 협상 을 폭력으로 굴복시키려 하고 있었다.
공기가 극한에 다다를 때.
“하아아。]:”
깊은 한숨과 함께 팽팽했던 공방이 깨
졌다.
정우가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좀 전의 험 악함과는 구별되는 아쉬움이 묻어 나오 고 있었다 패배의 쓴맛이 감돈다.
“안 통하는군요.”
“그럼 통할줄알았냐?”
“사람나름인가 보네요.”
“앨런가는 대단한 여인을 후계로 두었 구나.”
“인정합니다.”
정우의 한탄에 김 총관이 윤정을 대견 하게 바라보았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었음 에도 버텨낸 건 대단했다. 정우가 비록 똑 똑한 녀석이지만, 무식할 땐 문주에 버금 갔다. 버텨냈다는 것만으로도 인정을 받 을만했다.
“대공녀의 강단에 졌습니다.”
“지고 이기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공 정한 협상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분이에 요.”
“그 나이에 혜안까지, 감탄할 따름입니 다”
“그렇지 않아요. 단주야말로 대단해요. 솔직히 무서워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거 든요.”
정우는 한 수 접어주며 윤정을 치켜세 워 주었다 그녀의 강단을 인정하고, 협상 안을 재검토하기로 약속했다
‘굉장한 사람이야.’
윤정은 내심 안도의 한숨올 쉬어야 했 다
혹금단주의 무형지기는 심령을 파고들 어 와 마구 혼들었다. 조금이라도 방심했 다면 심령에 사로잡혀 굴복하고 말았을 것이다. 혹금단주의 강함을 체감했다. 그 는 진짜로 강하다. 직접 부딪친다면 승산 이 많지 않음을 실감하고 말았다.
-넌 앨런가의 대공녀야, 그 점을 잊지 마
三그마워 정우야.
윤정이 금강문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 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금강문올 방문하기 전 정우에게 금강문의 성향을 들었고, 파악했다. 밀리고 들어가면 절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었다
‘잘하네.’
위협적이었던 정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당황해 서 허둥지둥하고 있는 리드의 행동만 봐 도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었다. 현재 정체 를 윤정에게 밝히진 않았다. 그녀를 오랫 동안 봐왔기에 믿고는 있지만, 대마법사가 배후에 있었다. 당장은 대공자의 죽음이 밝혀져 오해를 풀기는 했어도, 윤정올 끊 임없이 시험할 게 분명했다. 그때를 대비 해 모른 척할 필요가 있었다.
‘계약대로 힘을 줘볼까’
정우는 윤정과 약속했다. 윤정이 대공 녀로서 앨런가에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게 해주겠다고. 나브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 녀의 발언권이 커질수록 서로에게 윈윈이 된다.
“협정을 조정하겠습니다. 앨런가가 원 하는 방향을 말씀하십시오.”
윤정은 그때부터 협상에 대한 걸 리드 에게 맡겼다. 굳이 자신이 협상 전체를 총 관하지 않았다. 리드에게 권한올 줌으로 써 신뢰를 쌓게 하는 일타쌍피의 효과가 있었다 정우도 협상에 관해서는 김 총관에게 맡겼다. 실상 회의에 들어가기 전에 일정 부분 새롭게 짜놓은 협상안이 있었고, 그 안에서 손을 보도록 입을 맞췄다.
이후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마찰이 생길 부분이 있었지만, 타협안
을 찾았다.
정우는 최종 타결이 될 때쯤, 단서조항 을 달았다. 이는 하북팽가와 다르지 않은 조항이기도했다
“본문은 대공녀와 함께하기로 결정했습 니다”
“어째서요?”
갑작스러운 결정에 윤정은 당황했다. 그녀가 비록 대공녀의 신분이라고는 하나 가문에는 경쟁자가 있었다. 그들의 힘이 온전히 남아 있는 이상, 자신은 큰 힘을 발휘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오히려 의구 심이들었다
“본문에 우호적이라 들었습니다.”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짐작이 가지만, 고작 그런 말 한마디로 저를 신뢰할 수 있 는건가요?”
“저는 제 감올 믿습니다 대공녀라면 반 드시 큰 인물이 될 겁니다.”
“말씀만으로도 감사해요. 하나 큰 기대 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자칫 금강 문에 큰 해가 될 수도 있어요.”
“위험이 큰 만큼, 돌아오는 것도 크겠지 요.”
투자의 미덕이다
윤정의 겸양에도 정우는 밀어붙였다
리드는 그 일련의 과정을 묵묵히 지켜 봤다. 이유 불문 금강문은 대공녀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후계 다툼에서 대공녀의 부실한 지지기반을 다 질 기회다.
‘금강문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거래겠 지.’
대공녀가 앨런가에서 기반을 확보한다 면 금강문으로선 손해 나는 투자가 아니 다. 설령 후계에서 밀린다 해도 직접적인 피해는 입지 않을 것이다
‘나도 결정을 내려야겠군.’
대공녀의 신분을 인정하면서도 경쟁에
서 살아남기는 어렵다고 봤었다. 그러나 금강문이 배후에 있다면 판도가 달라진 다. 한편으로 앨런가에 큰 환란이 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내부적으로 혼 란은 가중된다 이는 순리다
‘목적을 위해선 충견도 필요한 법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