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밀어주다 (2)
식사를 끝내고, 유 회장과 독대를 했다
돌아가는 사태에 대해서 여태 보고해주 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 연세에 징징 거리셨다 이번 사태는 복합적인 측면이 강해서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기는 했었다.
완벽한 계획이라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 빈틈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그때마다 허점 을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했었다.
“자 말해보거라”
“할아버님이 예측한 대로입니다.”
부연설명을 하지 않고 결말부터 짓는 정우였다.
“귀찮다고 넘겨짚진 말고.”
“역시, 안통하네요.”
“아부하지 말거라”
정우는 그동안 벌어진 일들을 유 회장 과 공유했다. 알고 있어야 할 부분이 있었 다. 앨런가와의 협상에서 중요한 역할이었 다
“도해문에 몽땅 뒤집어씌웠구나.”
“오해십니다.”
“오해는 개뿔!”
“죄를 지으면 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도해문은 그간의 악행이 하늘에 닿아 천 벌을 받은겁니다.”
“그 망할 놈의 하늘은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리는구나/
도해문의 단죄는 정우가 내렸다 본인이 천벌을 내리고서 하늘을 대신했다는 개소 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얼굴에 철판을 깔 지 않고서는 저처럼 태연하기도 힘들다.
거론당하는 하늘도 열 받았는지 심상치 않다
‘네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냐?’
유 회장은 흘려듣지 않았다. 일련의 사 태를 되짚어보면 소름이 돋을 만큼 치밀 했다. 한 번의 전략으로 골칫거리가 되었 던 도해문, 일우그룹, 앨런가를 해결해버 렸다. 무공만 가지고서는 어려운 일을 너 무나간단히 처리했다.
그러면서도 본인분만 아니라 금강문은 사건의 중심에서 쏙! 빠져 있었다. 적의 칼 로 내 앞의 방해물을 처리하는 차도살인 지계의 끝장판이다. 나이도 어린 놈이 이 런 쪽으로는 천부적이다 못해 마신의 반 열에 올랐다. 적으로 만나기 싫은 부류가 아닐수 없다.
“그래도 채철민올 꼭 죽여야 했었느 냐?”
“그가죽어야 오해의 여지를 차단할수 있으니까요. 살아 있으면 금강문뿐만 아니 라 할아버님도 골치깨나 썩었을 겁니다”
유 회장도 알고는 있었다.
모두를 위해서는 채철민이 사라져야 했 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는 그의 죽음이 애처로웠다. 아들을 잃고, 아버지에게도 버림을 받았다. 꼭 그렇게 비참하게 죽여 야 했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애석해할 필요 없습니다. 그는 금강문 을 방패막이로 내세우려고 했으며, 그걸 빌미로 할아버님올 옥죌 계획이었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연민이 드는 건 인지 상정이 아니겠느냐.”
“이런, 감상적인 분이신 줄은 몰랐습니 다”
“너도 늙어봐, 젊었을 때처럼 단호해지 나.”
“손녀는 단호하던데요.”
“시끄럽다, 이놈아”
유 회장의 굳은 심지는 재계에 소문이 자자하다.
그의 눈 밖에 난 자치고 온전히 기업을 운영한 자는 없었다는 말이 들렸다. 하지 만 그건 패배한 자들의 변명이었다. 그는 가급적 최선의 방법올 찾았었고, 합법적 인선을지켰었다.
“하긴세월은 순리니까요?”
“이놈이! 이럴 때는 바로 인정해버리 네.”
부정할 때 인정하고, 인정할 때 부정하 는.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했다. 무엇 보다 늙었다고 할 때 ‘맞습니다’라고 장단 맞춰주면 좋아할 노인네는 많지 않았다. 아직은 정정하다고 말해 줄 줄 알았건만, 이 망할놈은 가식이 없었다.
“됐고, 너 때문에 2천억 손해 본 건 어 쩔 거냐?”
“2천억으로 일우그룹의 경영권을 가지 게 될 텐데, 싸게 먹힌 거죠.”
“채국환이 가만있을까?”
“지분 싸움은 이제 우리가 유리합니다.” 정우는 일우그룹의 전임 회장을 구슬리 면서, 맞섰던 형제자매를 찾아가서 협상을 했다. 적당히 가격을 쳐줄 테니 먹고 떨어 지라고 했다. 물론 시장 가격에는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그야말로 후려쳤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채국환의 눈 밖에 난 이 상, 그들로서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도 해문의 개입을 모르는 이상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 보호해준다고 했더니 덥석 물었다.
“앨런가는어쩌고?”
“본문과 협상이 진행 중이니 어쩌지 못 할 겁니다. 앨런가가 원하는 건 한국 내의 거점 확보이니만큼 인정해주면 그만입니 다”
“너하고 금강문이 다 처먹겠다는 소리
네.”
금강문이 가지고 있는 지분과 유 회장 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합하면, 일우그룹 의 실질적인 소유주가 된다. 물론 거리를 약간 두는 척할 것이다. 그래야 채국환이 의심을 하지 않올 테고, 교묘히 일우그룹 올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중국 진출에 대한 준비는 얼마나 됐습 니까?”
“그게 하루아침에 되겠느냐, 일전에 중 국 정부에서 강압적으로 우리 기업을 퇴 출시키는 바람에 결정이 쉽지만은 않0E”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습니다”
“조건만 좋다고 될 일이면 예전에 처리
했을거다?”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팽가 를 내세우면 중국 정부도 어쩌지 못할 겁 니다?”
“넌 대체 안 뻗치는 곳이 어디냐?”
세계열강 중에서도 2강인 중국과 미국 까지도 손을 뻗치고 있었다. 그 모든 줄기 가 엉키지 않고, 맞물리는 톱니처럼 굴러 가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우리나라는 수출주도형 국가입니다. 세계를 상대로 한 경쟁은 당연한 겁니다?”
“뚫린 주둥이라고 청산유수구나.”
교과서적인 답변을 듣자고 한 게 아니
다
언덕 위의 바위는 구르기 시작했다. 돌 이키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앞으로가 걱 정이 되었다. 당장은 모든 것이 순조로울 지 몰라도, 이 중 어느 하나만 잘못되어도 실타래는 엉망진창이 될 것이다.
“확실히나이드셨네요.”
“이 망할 녀석이.”
늙은 것도 서러운데 괄시하고 있었다. 재산이 많아도 가는 세월을 막지는 못한 다 결국에는 맨몸으로 왔다, 맨몸으로 가 는 것이 순리다. 하지만 갈 때 가더라도 남 겨진 혈육에게 좋은 것을 물려주고 싶은 건 사람의 당연한 욕망이었다.
“여기서 더 뭘할셈이냐?”
“전 욕심이 많지 않습니다. 딱히 뭘 하 려는 것도 아니고.”
“누가 들으면 진짠 줄 알겠다, 이 녀석
“저는한 번도 남의 것에 욕심올 내거나 가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지요.”
재물이야 이제 차고 넘친다. 굳이 더 노 력하지 않아도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 다 정우는 한 가지 원칙만은 고수했다. 내
것을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건드리지만 않으면 먼저 나대지 않는다. 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양심적인 태도란 말 인가.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자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가치관이었다.
“넌 양심도 없느냐, 네가 가진 게 지금 작아?”
“처음부터 크진 않았습니다만.”
정우의 손이 뻗치는 영역이 시간이 지 날수록 넓어지고 있었다. 금강문과 대한그 룹 하이퍼 팩토리, 앨런가, 하북팽가만 해 도 차고 넘친다. 이 안에서 교집합을 이루 지 말란 소리나 다름이 없다 한발 걸치는 순간 지옥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제 딴 에는 맞는 말처럼 들리나, 유 회장은 가당 치도 않은지, 헛기침을 남발했다
“이제부터라도 조용히 좀 살자”
“안타깝게도 한반도는 꽤나 매력적인 곳인 모양입니다”
유 회장은 흘려듣지 못했다. 이 녀석은 항시 폭풍을 몰고 다니는 놈이었다. 또한 실없는 소리는 절대 하지 않는다. 온갖 사 건사고를 일으키고, 고생은 주변 사람들 이 하고 있었다. 자기는 쏙 빠져서 챙길 건 다 챙긴다.
“그건 또 무슨소리야?”
“뭐,그렇다는 겁니다.”
“좋은 말할때 불어라”
“후우우.”
“…이 망할놈이!”
도해문에서 일본 무문의 개입이 있었 다 한 번의 실패로 조용히 물러설 거란 기 대는 하지 않는다. 대회장에 설치된 치밀 한 함정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견될 일이 다. 아직 제출하지 않은 장부와 설계도가 있었다?
“흥분은 좋지 않습니다. 그 연세에.”
“너 끝까지 이럴 거야‘?”
“불사초 한잔하실래요.”
“크홈, 내가참으마”
일전에 마셨던 불사초로 인해서 10년 은 더 회춘한 기분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기력이 딸려서 업무에 지장올 초래했건만, 불사초의 효능은 끝내주었다.
“오래는 살고 싶은가 봐요.”
“넌 그게 어른한테 할소리냐!”
하북팽가는 사혹문과의 경쟁에서 승리 했다
그로 인한 대가는 컸다. 팽가의 미래를 책임질 대공자를 잃었다. 승전을 했음에 도 세가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팽가주는 팽가의 체계를 정비해야 했 다. 팽세운과 팽세기로 세가의 주축이 양 분되고 있었다. 경쟁의 심화를 관망하기에 는 돌아가는 정황이 심상치 않았다.
팽가의 승리 이후 정파 무림이 힘올 내 었다. 시간을 끌수록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혹룡성도 마냥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무너지지 않은 사파 무림을 규합 해서 결전을 벌일 채비를 했다. 정파에서 도 힘을 모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남궁세가가 천혈방을 무너뜨렸습니
다?”
“결국 힘을 아꼈다는 뜻이군.”
“검왕이 조급해졌다는 의미도 되지요.”
“그를 간과하진 말거라”
“물론입니다,가주?”
진작 무너뜨릴 수 있었음에도 남궁세가 는 전력을 동원하지 않았다. 시간을 질질 끌어 장기전으로 돌입시켜 각 세가의 힘 을 약화시키려 했다. 하지만 하북팽가가 승리함으로써 남궁세가도 더 이상은 지연 시킬 명분이 사라졌다. 자칫 시간이 더 늦 어진다면 안휘성의 지배력이 흔들릴 수 있 었다.
“이른 시일 내에 혹룡성을 치기 위해서 세력을 규합하게 될 겁니다”
“실상은 잔당처리에 불과할 테지.”
사파무림은 정파무림처럼 유대가 끈끈 하지가 않다. 조금이라도 약세를 보이면 뒤통수치는 걸 마다하지 않는 족속들이 다 더욱이 흑룡성은 규합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역사가 짧은 만큼 신의를 기대하 긴 어렵다.
“진짜는 흑룡성을 끝장낸 이후겠지.”
“정부에서도 어느 정도는 용인하는 분 위기입니다.”
“독립하려는 의지를 부리 봅?을 필요가
있을 테니까”
“그렇습니다.”
팽가주는 남궁세가와 비교되어 한 수 아래로 평가받는 걸 원치 않았다. 오대세 가의 수장은 물론이거니와 하북성으로 만족할수 없었다.
그때, 무인이 급하게 찾아왔다.
“무슨 일이기에 경거망동하는 것이냐?”
“아가씨께서 사라졌습니다”
팽세경의 주변을 지키는 무인은 방에 남겨져 있던 서신을 가주에게 바쳤다.
팽가주는 편지를 읽은 후, 손으로 이마
를 짚었다.
-아빠, 나 남편 찾으러 가니까. 걱정하 지마욤이
가문올 단속하느라 세경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후려치다니. 팽가주의 화를 돋 워주었다.
“내 이것을 그냥”
“아가씨도 생각이 있으실 테니, 두고 보 심이.”
“자네 딸이라면, 그리 말할 텐가?”
“송구합니다.”
팽자겸은 솔직히 그렇다고 말할 뻔했다. 팽세경이 딸이라면 그렇게 해서라도 시집 을 보내야 한다. 아니면 평생 혼자 살 팔자 다
“금강문에 연락을 넣게.”
“어쩌시려고요?”
“가출했다고할 순 없잖아:’
“그러시다면 적당히 포장을 해놓겠습니 다”
세경의 행동은 마음이 들지 않으나 금 강문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했다. 가출했다 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면 곤란하다. 세 경의 가출에 목적을 만들어, 동기를 부여 해 놓을 필요가 있었다.
그시각
팽세경은 인천국제공항으로 가는 비행 기에 탑승했다.
세가의 감시망올 무력화하기 위해서 유 가신술을 운용해 신체사이즈를 줄였었다 그로 인해 소모되는 공력과 체력이 만만 치 않았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서 반드시 원활한 식사를 해야 했다.
“저기요.”
“말씀하세요, 손님.”
기내의 여승무원이 미소를 지으며 친절
하게 다가왔다.
팽세경이 기내식 메뉴판을 내밀었다.
“이거 주세요.”
“어떤 걸로요?”
승무원은 메뉴판을 주면서 음식올 선 택하지 않은 그녀에게 재차 물었다. 주문 을 정확히 해야 가져다줄 수 있으니 그녀 로서는 당연했다.
“어떤 게 아니라, 여기 있는 걸로 달라 고요.”
“혹시, 이거 전부요?”
승무원은 말문이 막힌 채 메뉴판과 팽 세경을 번갈아 보다가 갤리(Galley) 되돌아 갔다. 갤리는 비행기 내의 식당이다. 이 안 은 음식을 준비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공 간으로 활용한다.
기내식 준비를 위해서 여승무원이 동료 에게 말했다.
“이거 다달라고?”
“그것도 3세트로 달래.”
승무원들을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몰 래 휘장을 걷어 세경을 확인한 승무원들 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