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밀어주다 (1)
?소와 아키라가 당했습니다.”
“ 연유는?”
실패보고에도 중년인은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며, 수 하의 보고를 찬찬히 음미했다
“금강문과 앨런가가 개입되었습니다.”
“일이 꼬였군.”
그들은 일본무문을 구성한 12지신, 그 중에서도 쥐를 숭상하는 네즈미가(家)의 가주와 총관이다. 네즈미가는 예로부터 예지력이 뛰어나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그 뛰어난 예지력으로 가문올 일으켰고 명맥올 유지해왔다 다다미방의 상석에 앉은 이가 네즈미가 의 당대 가주 유우신이다 그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은 이가 총관인 료다
“신녀의 전언이 걸리는군.”
“예지라고해서 100프로는아닙니다”
네즈미가의 역사는 수백 년이 넘어간
다. 긴 세월 동안 신녀는 항상 존재했었다 그러나 격변의 세상 이후, 신녀는 단순히 상징성만을 갖지 않았다. 대대로 신녀로 태어난 여인은 속성으로 예지력을 가졌 고, 이번에 봅힌 신녀는 잠재등급 7급이었 다 그녀의 예언은 90퍼센트에 육박하는 적중률을 보였다.
네즈미가가 사업적으로도 번창하고 있 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먼저 사업을 장악해 영역 을 확장하고, 진입장벽을 만들어 선점했 기 때문이다.
-한반도, 세계의 중심.
신녀에게서 한반도가 거론되었다. 예언 은 확실한 문장으로 되어 있지는 않다 몇 가지 단어로 예지가 되며, 이를 가주와 가 문의 핵심 수뇌부가 의견을 나누어 결정 한다.
한반도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면, 북한 보다는 한국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이 번에 도해문의 요구를 받아들여 한국에 서 입지를 다지려고 했다. 물론 사업적으 로는 꽤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는 있다.
한국에 있는 저축은행 중 두 곳이 가문의 자금으로 운용된다.
-위험, 전생의 투신.
문제는 신녀의 단서조항에 있었다
가주는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론총 관의 말대로 신녀의 전언이 100퍼센트 일 치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게 다 예지대로 홀러갔다면 본국의 12가문을 복속시켰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기에 허점은 존재했 다 그렇다 하나 흘려들을 수 있을 만큼 예 언이 허술하지는 않았다
“전생의 투신이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알겠나?”
“신녀의 예지에 혼선이 빚어진 게 분명 합니다. 전생이 존재할 리가 없지 않습니 4.”
신녀의 예언은 케이브가 열리는 파동 에 의해서 영향을 받기도 한다. 세상의 흐 름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렇기에 간혹 혼선이 되어 전혀 의도치 않은 문장 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건 신녀라 해
도 불가능합니다 과한 기우입니다.”
그는 도해문과의 협약에 가문의 전력 을 투입하지는 않았다. 신녀의 전언에 대 한 대비로 가문의 행사가 외부에 알려지 지 않도록 선별한 무인을 보냈다. 쇼와 아 키라가 바로 그들이다.
“자고로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습니다. 저들의 행태를 보십시오. 자기 발목을 잡 을 걸 알면서도 자파의 이익을 위해서는 손을 잡는 무모한 족속들입니다. 그러니 심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제가 직접 나서겠습니다.”
“방심은금물, 항상 신중을 기하도록.”
이번 작전에 소모된 비용이 크기는 하
나, 그뿐이다. 가문의 막대한 자금의 일부 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자금력만 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본격적으로 나서 려면 한국 무문과 길드, 연합에 대한 보다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분석한 정보를 토대로 전략의 새로운 판을 짤 것 이다.
‘서로 물고 뜯는 것에 이골이 난 족속들 이다.’
총관의 다음 작전은 정해져 있었다. 회 유책만 제대로 쓴다면 무문과 길드, 연합 의 고리를 끊어내며 자중지란을 일으킬 것이다
‘내 일을 방해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앨런가는 철저히 준비를 한 이후 해결 을 해야 하나. 금강문 따위가 네즈미가의 위대한 업적을 방해했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방송에나오겠다고?”
“그래.”
정우는 줄곧 방송가에서 섭외 순위 안 에 드는 특급 게스트로 분류되었다. 일전 에 보여준 방송처럼만 한다면 시청률 보증 수표에 포함된다. 더욱이 하라의 남자친 구라는 타이틀이 국민의 화병을 다스리는 욕받이로서 홀륭한 역할을 소화했다.
“너 방송싫어하잖아”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 고.”
“네가 언제부터 예의 차렸다고!”
“언제긴, 항시 예의를 차렸지.”
단, 본인만의 예의이기는 했다.
정우에게 예의 없는 걸로 찍히면 신상 에 이롭지 않았다. 강제로라도 예의를 차 리도록 필히 만들어준다
‘순순히 말을 들을 인간이 절대 아냐, 내가 널 모를 것 같아!’
하라는 의혹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
다. 그 일 이후 정우가 방송에 나올 거라 고 생각하지 않았다. 가공할 전투력과 무 서운 심기를 가지고 있는 천재 중의 천재 지만, 속은 개미 똥구멍보다 좁았다. 시간 이 지났으니 잊었올 거라는 안일함은 위험 하다. 정우를 상대로 방심은 금물이다. 항 상 예상한 그 이상으로 사람을 놀라게 했 었다.
하라는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고 봤다.
“열어."
“뭘?”
“네 마음”
“난 순수해, 어차피 거절해도 계속 연 락 오는데 가서 적당히 눈에 띄는 행동 하 지 않으면 다시 부르지 않을 거 아냐?”
“그러니까; 열라51.”
정우의 난색에도 하라는 표정 하나 변 하지 않았다. 오픈하지 않으면 네 사악한 의도를 믿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아무리 너라도 오픈되면 어쩔 수 없을 걸,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다 이거야’
하라에게는 극한에 다다라가는 신안이 있었다 신안이 극대화되면서 어지간한 상 대는 생각을 꿰뚫어 보는 게 가능하다 사 실 일정 공간에 있는 생명체뿐만 아니라, 사물의 기억까지도 이제는 읽는 것이 가 능하다. 물론 너무 많은 정보의 홍수로 인 해서 골치가 아플 때도 있지만, 천원일기 공이 있기에 컨트롤이 되었다.
휴우우
정우는 깊은 한숨올 쉰 후 자포자기했 다
“들어와라”
“그런다고 안 들어갈 거라고 봤다면 오 산이야.”
하라는 천원일기공을 운용해서 신안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이런 기회는 혼치 않았다. 다른 이는 몰라도 이 인간의 뇌구 조가 어떤지는 본 적이 없었다. 세계 8대 불가사의보다 정우의 머릿속이 더 궁금했 다
‘어디.’
하라는 정우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 서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신안이 완 벽해질수록 생각을 읽는 수준을 벗어나 생명체의 완벽한 통제가 가능해졌다.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싶거든.’
사랑은 확인하는 거라고 배웠다
하라가 비록 강단 있는 성격이기는 하 나, 사랑받고 싶은 여인이기도 했다. 여자 는 남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느낄 때 비로소 행복을 만끽한다
-이름: 유하라
-나이 : 20세
-속성 등급:7급
-신체 사이즈: 173cm, 몸무게 50kg
-심장 기능 : 정상
-식도 기능 : 정상
-위장 기능 : 정상
-생리주기 ?” 등등
하라의 인상이 정우의 생각을 읽어 내 려갈수록 일그러졌다. 이 인간의 뇌구조 는 마른 사막보다 더 건조했다. 자신에 대 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컴퓨터 부호 처럼 지나치게 수치적이다. 솔직히 자신도 모르고 있는 신체의 비밀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는데, 감성적이긴커녕 시멘트보다 단단하다.
‘아직은아냐!’
화가 나지만 하라는 인내심을 가지고 신안을 유지했다. 계산된 정보로 위장막 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어린 시절 바둑을 둘 때도 그 수법에 당해서 맨땅에 헤딩한 꼴이 되었다. 좀 더 깊이 파고들었 다 정신의 심해 속으로.
하라는 그제야 본심을 발견했다. 꽁꽁 숨겨 놓았지만 신안과 천안일기공을 벗어 날수는 없었다.
-하라와는 이제 할 때가 되었다
-이것도하고, 저것도 하고.
-이런 식으로도 누르고, 저런 식으로 도 누르고.
본심을 읽은 하라의 얼굴이 홍시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차마 입 밖으로 내 뱉기 어려운 망측스러운 내용이 자세하게 거론되었다. 이 인간도 자기 방을 기공(氣 功)으로 차단하고, 몰래 컴퓨터를 하고 있 는 게 분명하다. 어쩐지 집도 크고, 방도 많다. 게다가 기감이 극대화되어서 어지간 해서는 들키지 않았다
“평소에 무슨 생각올 하는 거야?”
“남자는 다 똑같거든, 그리고 연인끼리 당연한 거잖아. 매일 보다 발전된 자세를 완성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본 다 그래야 권태기가 없지.”
“그래도 그렇지, 이 자세는불가능해.”
“신체는 그리 나약하지 않다 너라면 가
능할 거야”
“시끄러! 이 변태!”
“난 네가 좋아할 줄 알고 무던히 상상 력을 키웠을 뿐이야. 여자친구한테 아무 감정이 없는 게 더 이상하다며?”
“그래도 그렇지, 심하잖아”
언제든 자빠뜨려도 된다고 했던 하라 다 그러나 말과 행동은 엄연히 다르다 그 때는 정우가 너무 튕겨서 해본 소리였다. 한편으로 이 딱딱한 인간이 자신으로 인 해 변하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이 들었 다 남자를 변화시키는 여자로서의 성취감 이랄까?
“더 할래.”
“됐어, 더러워.”
하라는 신안을 거두었다. 더 들추었다 가는 사랑에 대한 작은 환상마저 깨져버 릴 것만 같았다. 다행이라면 다른 여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후후 됐다:
정우는 태연한 척하지만 꽤나 많은 심 력을 소비하고 있었다. 하라의 신안은 일 반적인 수준을 한참 벗어났다. 시간이 지 날수록 그녀의 통제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다. 절대 급의 무인도 방심하다가는 정신이 제압당할 수 있었다. 그뿐이랴, 천 원일기공으로 인해서 신안의 능력치가 극 대화되었다. 조금만 방심했으면 감추어졌 던 진실이 탈탈 털릴 뻔했다. 해서 하나가 아닌 이중의 함정을 만들었다
‘안에서 막는건너무힘들어.’
하라의 신안올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 은 외부에서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길올 내어주면, 정우조차도 방심할 수 없었다.
‘테스트하기에도 안성맞춤이고.’
정신방어의 기량을 파악하고 보완하기 에 하라만 한 대상도 혼치 않았다 하라의 능력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정우도 노력 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까발리려는 년과 까발리지 않으려는
놈
정우는 하라와의 연인관계를 발전을 위 한자양분으로 삼았다. 이 얼마나 합리적 으로 효율 좋은 커플이란 말인가. 앞으로 도 꾸준히 하라와의 연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당위성을 부여해주었다.
‘밑밥은 깔았고.’
정우의 꼼수는 또 있었다. 하라는 분명 방송 출연에 대한 의도를 의심할 것이다. 촉이 굉장히 좋은데다가, 신안이 진실을 파헤치기에 어지간한 수가 아니면 통하지 않는다.
그럴 때일수록 정석으로 가야 한다. 본
인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수로 믿음을 줄 필요가 있었다
‘당하고는 못살지.’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답시고, 남자친 구를 배신한 행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주어야 했다. 현재 강 피디의 프로그 램은 한창 잘나가고 있었다. 하나도 아니 고, 다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데 전부 대박을 쳤다. 시청자가 원하는 걸 캐 치하는 능력이 타고났다고 봐야 했다
‘내 반드시 망하게 해주마’
시청률의 바닥을 찍어주기로 작정을 했 다. 물론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강 피디의 진행은 짜증 나지만, 그 능력은 인 정하고 있었다
‘그만한사람도 찾기 힘들지.’
금강문의 행보는 이제 시작이었다 그리 고 그 중심에 금강문주가 있었다. 그를 제 대로 띄워줄 만한 기획력이 출중한 인재 가 필요했다. 이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정우의 꿍꿍이를 하라는 의심하지 못 했다. 신안을 지나치게 믿었다. 그마저도 속임수라는 사실을 후일 알게 된다면 땅 을 치고 후회하게 되리라
‘이는 남자친구로서의 정당한 의무이니
라’
정우의 혹심은 가볍지 않았다. 빈틈을 내주어 허허실실의 작전으로, 오랜 장고 끝에 완성되고 있었다. 물론 서두르지는 않았다. 그런 기색이라도 보이면 하라는 눈치 채고 튈 게 분명하다
“밥 먹고 갈 거야?”
“그래야지, 할아버님도 봐야 하고.”
하라의 어머니, 반 여사는 한창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정우는 이미 사윗감으로 정해진 분위 기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까지 적극적으 로 나서니, 정우가 결정하면 지금 당장에 라도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결 혼에 관해서는 하라도 시간을 두고 고민 해보자고 했다 하라의 아버지가 정우에게 물었다.
“바둑 좀두나?”
“어렸을때 좀두었습니다”
정우가 겸양을 떨자, 하라가 개입했다
아빠의 로망이 사위와 오붓하게 바둑 을 두며 이런저런 시사적인 대화를 나누 는 거라고 했으나, 상대를 잘못 택했다. 저 인간 말대로 어렸을 때 둔 건 맞지만 실력 은 세계 1위 베타고도 상대가 되지 않는 다.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는 시 대가 되었음에도 저 인간의 수를 막아내 지 못한다 하물며 승부의 마신으로 불렸 었다. 져줘도 되는 상대임에도 무참하게 박살 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딸이 돼서 아빠가 정신적 데미지를 입도록 방관할 수 만은 없지 않은가.
“아빠, 두지 마!”
“살살둘 테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게 아니라 이 녀석 프로라고. 나도 못이겨!”
“?…정말이냐?"
“프로도 얘는 못이길걸.”
유성호는 사위와의 바둑대결의 꿈을
접어야 했다. 하라의 바둑도 이미 자신을 넘어섰는데, 정우는 그마저도 벗어나 있었 다. 그 앞에서 바둑 좀 두냐고 했으니, 번 데기 앞에서 주름 잔뜩 잡은 격이다.
“내가 그때 얼마나 환장했는데, 빨주노 초파남보만 떠올리면 아직도 열 받아!”
“빨주노초파남보? 그건 또 무슨 소리 냐?”
“신안이 안 통하는 건 알지, 그때 당시 에 내가 읽은 생각을 역으로 이용했다니 까.”
“허, 대단하구나.”
성호는 정우가 하라의 신안이 통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능력자임은 알고 있지만, 가지고 놀았을 줄은 몰랐다. 아버지가 왜 그토록 정우를 사위 삼으려고 노력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숨겨진 능력이 까도 까도끝이 없었다.
“내가 설마 아버님하고 정색하며 두겠 니?”
“응:’
촌음의 망설임도 없는 하라의 대답에 정우는 입을 닫았다
‘언제부터 단호박이 된거냐?’
사실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