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화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정 부분 포 기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 인간에게 자 신은 훈련을 빙자한 샌드백이 분명하다 제 4장 사후협상 (4)
-치료.
정우의 마력이 염화를 감쌌다.
빛의 휘광이 고리가 되어 염화를 돌고 돌자, 육신이 원래의 상태로 빠르게 회복 되었다. 재생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기력이 회복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이를 마력과 공력을 운용해서 채웠다.
“마법은 언제 배운 거야?”
“전문학교에 들어가서부터.”
“잠재등급이 3급이라며.”
“잠재력이 전투력을 평가하는 시댄 지 났잖아”
염화는 정우의 마법이 보통 이상임을 알고 있었다. 치료 마법이 하급에 속하기 는 해도 이 정도로 완벽한 치료를 하려면 일반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 무공이야 잠재등급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해도, 속성은 달랐다. 어지간한 노력을 하지 않 고서는 불가능하다. 하물며 마법은 무인 에게 있어 쥐약과도 같은 분야다. 몸으로 때우는 무공과 달리, 마법은 머리가 뛰어 나야 했다
‘탐이 안날수가 없는 녀석이라니까’
정우의 거친 매력에 한번 빠져버리면 벗 어나기 힘들었다 염화는 그 강함에 매료되었다. 마음 같 아서는 당장에라도 육탄 공세로 무너뜨리 고 싶으나, 불가능했다. 갖고 싶은데, 갖지 못하니 마음은 애가 탔다. 그리고 눈만높 아지고 있었다. 또래에 흑금단주와 견줄 만한 대상이 없다시피 했다.
“도해문은 어째서 그런 짓을 한 거지?”
염화는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도해문 사태에 대해서 조사 중이었다. 전임 도해 문주가 화천문을 노린 거야 서로의 이권 이 맞아떨어진 일이지만, 이번 사태는 납 득하기 어려웠다. 도해문주의 행동은무모 했다
“조사가 마무리되면 알게 될 거야.”
“뭔가더 있구나?”
“일본의 무문이 연관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다들 쉬쉬하는 거였네.”
도해문의 자체적인 문제였다면 사건 조 사에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한데 이번 일 에 일본의 무문까지 연관이 되어 있었다.
대회장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는 않았지만 설계도를 입수한 상태였다 설계대로만 된 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정우는 공개되지 않은 일부를 염화에 게 공개했다.
“미친 거 아냐!”
“무문의 수뇌부만 해치우면 도해문의 세상이 될 거라생각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일본과 손을 잡아”
을사조약은 물론 군사협정도 했는데 이 제 와 무슨 말을 더 할까? 국민들과 상의 도 없이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건 예나 지 금이나 매한가지였다. 을사오적이 부활하 지 못하도록 싹을 잘랐어야 했다.
“그러게 친일매국노는 예전에 청산했어 야했어.”
도해문의 금고에는 장부 외에 족보가 남아 있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도해문의 전대 문주는 친일부역자였다. 창씨개명을 하고 일제의 수탈에 앞장섰었다. 그런 주 제에 독립이 되고 난 후 버젓이 떵떵거리 며 살아왔다. 한데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도해문은 지금까지도 일본과 연관을 맺고 있었다.
“만약 네 말대로 됐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렇다면 정해진 수순이겠지.”
정우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염화는 소 름이 돋았다. 금강문은 무문의 미래, 더 나아가 한국의 미래를 지켜냈다. 조사가 진행되어 결과가 나온다면 금강문은 무문 연합의 실질적인 리더가 된다. 이는 순리 다. 부정한다면 그 역시도 부역자나 다름 이 없었다
‘이 인간 설마‘?’
사태를 예측했다고 봐야 했다. 마치 혹 금단주의 손바닥 안에서 모두가 장단을 맞추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염화는 두려움을 느꼈다.
만약 흑금단주와 척을 진다면, 과연 살 아남을 수가 있을까?
‘아니겠지, 그게 말이 돼?’
만약 그렇다면 인간도 아니다.
무문연합에서 조사가 들어간 가운데, 앨런가도 대공자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리드는 도해문에서 얻은 자료를 바탕으 로 그간의 일들을 조합, 판단을 내려야 했 다 윤정이도 이번에는 빠지지 않았다. 그
간 자신을 빼놓고 일을 벌이고 있었음을 알고 그에게 항의했다.
리드도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용의선상에 있을 때와 달리, 사태의 핵 심에선 거리가 멀었다. 심증이 해소된 이 상 그녀에 대한 의심올 풀었다. 그녀는 이 제 앨런가의 진정한 대공녀다. 함부로 대 해선 안 되는 고귀한 신분이었다
“도해문에서 오빠를 죽였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금강문은요?”
“조사가 끝나봐야 알겠지만, 현재로선
연관성이 희박합니다.”
윤정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만약금 강문이 오빠의 일에 관여했다면 정우와 서먹서먹해질 수밖에 없다. 그간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었다.
‘이걸다행이라고봐야하나'?’
리드는 도해문이 유력한 용의자임을 부 인하지 못했다. 전후의 사정을 살피면 도 해문이 확실하다. 그렇다 하나 금강문주 와 혹금단주의 만행은 받아들이기 힘들었 다. 그들의 막무가내 행패는 앨런가를 무 시하는 행위였다.
‘그렇다고 마냥 배척할 수도 없고.’
금강문은 도해문을 친 후 곧바로 일우
그룹의 전임회장에게 그 동안의 정황을 해명했다
채국환도 아들이 죽은 이상 금강문과 척을 질 생각이 없었다. 하물며 금강문은 채철민과의 거래를 통해서 일우그룹의 지 분을 일정 부분 가지고 있었다. 협력관계 를 유지하자고 손을 내미는데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로 인해 닭 쫓던 개 신세가 된 건 앨 런가다
채국환의 요청은 아들을 비밀리에 제거 해달라는 것이었다. 반면 앨런가는 채국환 의 의뢰를 해결하기는커녕, 손을 쓰지 않 은 꼴이 되었다. 금강문이 자체적으로 해 결을 해버렸으니, 의도치 않게 방관한 것 이다.
-금강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연결해.”
리드는 금강문에서 연락하리라곤 예상 못 했다. 그러나 박대하진 않았다. 전번의 일로 마음이 상하기는 했어도, 현재로선 금강문과 척을 지는 건 현명하지 못한 판 단이다
-어쩔 거야?
금강문주였다.
그런데 대뜸 한다는 소리가 가관이었
다
어쩔 거냐니?
리드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골이 지끈거 렸다. 먼저 전화를 했으면서 이런 식으로 나오면 어쩌란 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연락은 내가 아니라 문주님이 했습니 다:’
-그러니까묻잖0E 어쩔 거냐고?
“허튼소리 할 거면 이만 끊겠습니다.”
-그러든지.
리드는 물론 윤정도 할 말을 잃었다. 금 강문주가 이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자다 수화기에서 흑금단주와 금강문주의 대 화가들렸다.
저희들끼리 떠들고 있었다.
-그러게 모건가와 협상하자고 했잖아
-대화가 통할 줄 알았는데, 안 되는군 요.
모건가?
잘못 듣진 않았다. 모건가는 앨런가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5대 가문이다. 또 한 앨런가와는 호시탐탐 마찰을 빚고 있 었다. 미국의 야구명가인 양키스와 보스 턴을 떠올리면 얘기하기 쉽다
‘끝까지 말썽이군.’
리드는 흘려들을 수 없었다. 모건가는 한국에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그렇다 하 나 금강문이 모건가와 협상을 한다면 상 황이 꼬이게 된다. 금강문의 입지는 현재 무문연합의 수장이 되기에 충분했다. 금 강문주의 불도저와 같은 성향을 감안할 때 마음을 정하면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게 분명했다
“협상을 하세요.”
“하지만 이건 금강문의 술수입니다”
“술수라한들, 어쩌시게요?”
리드는 작금의 대화가 자신을 떠보기 위한 금강문의 술수라는 걸 깨달았다. 한 데 무턱대고 거절하기도 어렵게 되었다.
‘대공녀께서도 호의적이니.’
윤정의 호의도 리드의 판단을 망설이게 만드는 걸림돌이 되었다. 의문이 일정 부 분 풀리기는 했어도 여전히 미심쩍기는 했 다. 그러나 금강문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 민 이상 선택은 해야 한다.
“협상을 하시지요.”
_뜨 뜨 뜨 뜨 뜨
”1 I I I 「三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리드는 또다시 폭발할 뻔했다. 금강문 의 아쉬울 것 없다는 태도를 확인한 셈이 되었다. 이렇게 되면 아쉬운 쪽은 자신이 었다. 금강문주의 성향상 시간을 질질 끌 것 같지도 않았다. 당장 모건가에 손을 내 밀면 그땐, 본가에서 책임을 물을 수도 있 었다.
“이렇게 끊을 거면 뭐하러 연락한 거 냐‘?”
“우리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는 뜻。] 되니까요.”
“관대함을 보여주려고?”
“그런 셈이지요.”
보기에는 별거 아니다. 하나 앞으로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이 런 사소한 과정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밑거름이 된다.
정우는 학교에서 윤정을 만났다. 윤정 은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 다. 그 말은 리드가 윤정을 배제시켰다는 의미가 되었다. 윤정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것이다. 대공녀라는 감투를 준 후 용 의선상에 두어 이래라저래라 훈계를 두었 으며 아무런 권한도 주지 않았으니. 신분 적인 상승만 있을 분 껍데기에 불과했다
‘껍데기라도 대공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
정우는 넌지시 흘렸었다. 소문의 출처
는 강천을 활용했다. 윤정에게 금강문과 도해문, 앨런가의 충돌을 알려주었다. 전 에도 아는 내용이 있으면 알려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이상하게 바라보진 않았 다. 이때쯤 윤정이 리드를 찾아가리란 걸 예상했다
“올까?”
“올겁니다:’
“오면 배알도 없는놈이 되는 건데.”
“자존심은 중요하진 않습니다.”
“가문이 더 중요하다는 거냐?”
“그렇습니다.”
이호극이라면 본인의 자존심을 위해 선
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에 반해 리드는 냉철하며 합리적인 성향의 마법사다. 단순히 자존심이 상한 다고 해서 선택을 주저하지 않는다. 무엇 보다 윤정이 옆에서 바람을 잡고 있었다. 의문이 해소된 이상 윤정의 눈 밖에 나서 좋을게 없었다.
-띠리링!
아니나 다를까, 전화벨이 울렸다
“ 받으세요.”
“귀신같은놈”
이호극은 혀를 내둘렀다. 도해문에서 마법사 놈의 속을 마구잡이로 긁어놓았 음에도 결과적으로 먼저 손을 쓰도록 했 다
-협상을 하겠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말을 흐}지, 계집 애도아니고.”
-?날짜를 집지요.
리드의 빡침이 전화기를 통해서도 들리 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호극은 리드의 심 정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정우의 전음대 로통화를 했다.
“운 좋은 줄 알아 모건가의 협상 조건 도 제법 괜찮았거든.”
-?문주님의 배려에 감사합니다.
“암 그래야지.”
전화를 끊은 이호극은 정우에게 물었 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으 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속언을 되새겼었다.
“모건가는 또어디냐?"
“그런데가 있습니다.”
정작 이호극은 모건가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다. 연락을 할 생각도 없었고, 연락처 도 모른다. 이 황당한 사실을 리드가 안다 면 과연 멀쩡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