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사후협상 (3)
정우는 도해문에서 압수한 문건을 정리 해서 무문연합에 제출했다.
문파 내부의 일에 관해서는 간섭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기는 하나, 암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진 못한다. 하물며 무 문연합에서 개최하는 무림대회에 치명타 를 입을 뻔했다-
그러나 무턱대고 도해문의 잘못으로만 몰고 가진 않았다. 어찌 되었든 도해문도 무문연합의 한 축이었다. 각 무문에서 사 람을 뽑아 조사단올 꾸렸다. 사실인지 아 닌지 직접 눈으로 파악올 해야 했다.
정우의 개인 케이브.
수련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케이브에서 염화와 대련 중이다. 은밀하게 수련하기에 케이브만큼 보안이 되는 장소도 드물었다 개인 공간으로 활용하거나, 임시 별장이라 도 지어 놓으면 쾌적한 환경에서 휴가를 보낼 수도 있다. 다만 케이브의 수명이 있 기에 주기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해줘야 한 다는 점은 단점으로 작용한다 염화와 정우가 격돌했다.
꽈아아앙!
격렬한 화염이 토해지며 공간을 불태웠 다. 검은 염화는 그야말로 지옥의 불길올 연상케 했다. 만물올 불태우지 않고서는 성이 차지 않는 지옥겁화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화르르르르!
지옥겁화를 뒤집어쓰고 있는 염화는 발광했다.
크아아아아아
귀곡성을 방불케 하는 울부짖음은 인 간의 심령을 어지럽히기에 충분했다. 경지 에 오른 무인조차도 방심했다가는 심령이 파괴될 극한의 울림이었다. 심혼을 태우는 겁화와 영혼을 파괴하는 귀곡성, 대단히 위력적이다 빠아악!
다가서기도 힘든 지옥겁화를 무시하고 염화의 공간을 뚫어낸 일격, 정우의 주먹 이 통렬한 파열음을 일구었다.
주먹은 이렇게 쓰는 거다, 정석을 보여 주고 있었다.
쿠다다당!
죽빵을 허용한 염화가 바닥을 수평으 로 휩쓸며 엉망진창으로 굴렀다. 여자로서 의 체면은 던져진 지 오래다. 그런 걸 따지 기에는 대결이 지나치게 살벌하다 잠깐의 방심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팟
안간힘을 썼다
염화는 바닥을 손으로 짚으며 튀어 올 랐다. 계속 굴렀다가는 혹금단주의 무자 비한 폭격에 난자당할 수 있었다. 이 인간 은 여자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짓밟는 게 특기였다. 발버둥을 치며 피할 때마다 어 김없이 밟혔다.
이번에도 전번처럼 당할 수는 없다.
염화의 발전된 반사 신경이 돋보인다. 그러나 정우의 제공권은 반사 신경만으로 어쩌지 못한다
“그럴 줄알았지.”
-니미럴!
염화는 현재 흑화(黑火)되어 있었다
영성을 가진 속성이 튀어나와 그녀를 지배했다. 염화의 내면에 숨죽이고 있던 본성이라 할 수 있었다 혹화의 전투력은 강현과의 전투에서 입 증이 되었다. 어지간한 고수도 식겁할 만 한 가공할 화염과 무지막지한 재생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발전 속도까지 빨라, 대적 하기 까다로운상대임에는 틀림없다. 한국 무림에서도 그녀를 제압할 고수는 많지 않을거다.
그러나 그녀를 대적할 얼마 되지 않을 고수에 정우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 가지고 놀았다.
정우는 지면을 박차고 튀어 오르는 염 화의 타이밍에 맞추어 주먹을 뻗었다. 남 녀 차별을 원하지 않는 무지막지한 맹타였 다 퍼퍼퍼퍼퍼퍽!
먼지 쌓인 포대기를 털듯 염화의 얼굴
과 몸이 맹렬하게 흔들렸다. 지옥겁화를 뿜어내며 저항을 해보지만 정우에게는 통 하지 않았다
“ 나른하네.”
온천에 몸을 담그듯 정우는 지옥겁화 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용암에서도 자유형, 배영, 접영, 평영 다 양한 수영 동작이 가능한 육체의 위용이 었다. 보통 사람은 타 죽을 온도에서도 청 산리 벽계수야를 열창할 수 있었다 주먹질의 살벌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해졌다. 염화를 햇볕이 작열하는 마 른 바닥에 널린 오징어로 만들고 있었다 참다못한 혹화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해도 해도 너무했다
-…이 괴물?… 그만해
“다 너를 위해서다”
며칠 전엔 때리는 자기도 아프다고 하더 니 지랄하고 있었다. 더 미치는 현실은 저 놈이 때리면서 웃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 분히 고의적이며 즐기고 있었다
-……개소리
“도와주는데 욕하면 섭섭하지.”
누가 도와달라고 했나!
-?…악마!
그냥 꺼져주면 안 되겠니?
“갱생의 길은 멀고도 험하구나.”
정우의 선심(善心)을 염화는 악심(惡心) 으로 불태우고 있었다 염화의 속성, 혹화는 미치고 환장할 노 룻이었다. 혹화는 애초에 나오고 싶지 않 았다. 나오면 처맞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염화의 몸을 차지하고는 싶지만, 처맞 는 걸 알면서도 나을 만큼 병신년은 아니 다. 하지만 나오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나 올 수도 없는 현실이었다. 안 나가겠다고 발버둥을 쳤지만, 강제로 끌려나와 개 맞 듯이 처맞고 있었다.
맞고 나올래? 그냥 나올래?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했던 흑금단주가 악마처럼 보 였었다
-…나…그냥 돌아갈래!
“갈 때는 네 맘대로 안된다”
-올... 때도 내 맘아니잖아...
“°k 그렇구나?”
지가 강제로 끌어내고도, 가는 것도 맘 대로가 아니라니. 이 무슨 망할 놈의 불합 리함이란 말인가. 혹화는 복장이 터지다 못해 폭발할 지경이었다. 순 제멋대로인데 다가 말을 바꾸기가 여러 번이었다 한번은 10분을 버티면 곱게 돌려보내 주겠다고 해서 그 말만 믿고 악착같이 버 틴 적이 있었다. 이제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나 했더니, 뺑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소 리가 믿는 도끼에 발등도 찍혀봐야 세상 이 험하다는 걸 안다나.
흑화는 억울해서 눈물과 콧물을 질질 짰다. 볼썽사나운 모습이기는 해도 여자 가 울면 동요라도 해야 하는데, 저 인간은 그런 거 없다. 울면 더 때리고, 더럽게 남 의 케이브에 콧물 홀리지 말란다.
-?내가 뭘……그렇게 잘못했다고
“넌 잘못 없어.”
-근?데 왜?
“그냥:’
혹화는 깊은 빡침을 느꼈다. 자신의 성 향이 좋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 만 저 인간하고는 비교불가다. 차라리 그 럴듯한 이유라도 대면 납득하려고 노력이 라도 흐}지, 그냥이라니. 이건 속 터져 죽으 라는 소리다
“염화하고 약속했거든, 널 고분고분하 게 만들겠다고.”
-……네놈… 뜻대로 될것 같아!
“안되면 하는 수없지.”
-……그게 무슨 말이야?
“오해는 하지 마 죽일 생각이었으면 예 전에 죽였지. 그냥 바뀔 때까지 팰 테니까 알아서 해. 너는 진짜 치는 맛이 있어.”
정우는 시간이 좀 있었다
염화를 불러서 스트레스 해소 대용으 로 패도 되었다. 요즘 들어 속을 썩인 하라 에 대한 악감정을 염화를 통해서 풀고 있 었다. 물론 하라에게 당한 복수도 꼭 해야 했다. 방송에서 당한 만큼 방송으로 갚아 줄 요량이다. 잊은 줄 알고 있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은혜는 잊어도, 원한은 결코 잊 지 않는다 그것이 설령 여자친구라고 할지라도.
정우의 무책임함과 무성의는 혹화를 두려움에 떨게 했다. 두려움이라고는 모르 는 존재인 줄 알았는데, 혹화는 깨닫고 말 았다. 자신보다 더한 악당이 있음을. 절대 로 상종해서는 안 될 망종이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이 악마! ?거길 치다니!
“싸움에 가리는 게 어디 있냐.”
여자의 약점을 무자비하게 공략하는 정우였다. 주먹에 닿은 가슴이 살점과 함 께 뭉개져 절벽이 되기를 반복했다. 빠른 회복력과 재생력이 없었다면 여자로서의 매력을 어필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길바 닥에 잔인하게 짓밟힌 더렵혀진 껌딱지는 될 수 없지 않은가.
“터지기 싫으면 막아.”
-……이 저질! ?치한! ?변태!
“까는 소리 하지 말고?”
- ■?…두고 봐…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
“ 맘대로.”
흑화는 끈질겼다. 끝까지 본성을 지키 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정우의 주먹은 그런 혹화의 가상한 노 력을 잔인하게 짓밟았다. 뜻대로 될 때까 지 부수고, 또 부수었다. 재생과 회복은 순전히 혹화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때리는 사람 따로 있고, 맞는 사람 따로 있는 광경 이었다:
후우
정우는 오늘 할당량을 채우고서 시원 하게 웃었다. 해야 할 일을 끝낸 후의 성취 감은 해보지 않은자는못느낀다.
“과연 끈질겨, 여태 상대해본 그 어떤 적보다 대단했다: ... 칭찬하지 마! 새끼야!
“내일도 질퍽하게 놀아보자고.”
-?대체 언제까지?
“그거야너 하기에 달렸지.”
-?싫다면?
“나야 좋지.”
어째서?
이 미친놈이 왜 좋고 지랄이야
흑화는 멍청하지 않았다. 염화가 속성 을 발휘할 때 제대로 협조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자신과 염화가 하나가 된다면 능 력치는 최대한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결국 엔 염화의 속성으로 남게 된다. 평생 염화 의 그늘에 가려 살아왔는데, 또다시 염화 에게 길들여진 애완견인 양 따라야 한다 는 사실에 반발심이 생겼다.
사실 버티다 보면 놈도 포기할 거란 기 대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후련하 게 웃고 있는 놈을 보자 시궁창으로 처박 혔다. 저놈은 그냥 화풀이 대용으로 자신 을 이용하고 있었다 되면 좋고, 아니라도 상관없는
“회복력도 좋고, 이만한 샌드백도 없잖 아”
-지옥에나 가버려
혹화에게 인세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였다.
버틴다고 해결이 될 상대하고 거리가 멀 었다. 성격도 미친놈인데, 무력은 더 미쳤 다. 솔직히 얼마나 강한지 측정이 불가능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고 있는 게 분명한데도, 여전히 격차가 컸다. 아예 닿 지도 않는다. 말 같지도 않은 무력을 소유 하고 있었다.
-너 인간맞아?
“속성 주제에 사람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말이 안 되잖아
“너도 말 안 되기는 매한가지지. 속성이 고민을 하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않냐.”
속성도 비현실이고, 정우의 무력도 정 상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둘의 대화 를 들어보면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처음 혹화가 본성을 드러냈을 때 는 광기, 그 자체였다 제어되지 않은 광기 로 인해서 주변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성에 차지 않았다. 한데 그녀의 광기가 이제는 제어되고 있었다
-나한테 뭔 짓을한거야?
“무극기를 심었지.”
무극기는 음양합일을 이룬 현종의 기를 뜻한다. 이를 혹화의 육신이 아닌 영혼에 심었다 그녀가 받아들이고 말고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그녀는 무 극기에 융화되어 자연스럽게 염화와 합일 을 이루게 된다. 혹화가 버텨봤자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
-나도 살아 있다고! 왜 나만 희생해야
해.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난부탁을 받았 을 분인데. 살고 싶으면 염화한테 사정을 하든지.”
-이 무책임한 새끼, 넌 분명 지옥 갈 거 야
“그건 나중 일이고, 넌 내일이나 걱정해 라”
혹화는 체념해야 했다. 이 인간하고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 신이 처량해졌다. 염화의 육체를 차지만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악마가 앞길을 막 고 있었다. 이 사태를 해결하고 살아남으 려면 악마의 조언대로 염화에게 사정해야 했다.
-제길!
혹화는 염화의 내부로 빨려들어 갔다. 비록 정신체에 가깝다 하나, 그렇게 당하 고 나면 진이 다 빠져버린다. 육체를 지탱 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결국 염화에 게 육체를 내어주어야 했다.
“끄옹 아파!”
정신을 차린 염화는 욱신거리는 육신 을 부여잡아야 했다. 매번 깨어날 때가 되 면 육신은 걸레가 되어 있었다. 어찌나 주 무르고, 두드렸는지 뼈까지 흐물거리는 기 분이었다. 동네북도 이보다는 심하지 않을 거다
“사람이 할 짓이아니야”
“선택은 네가 했지.”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무식하게 패는 법이 어디 있어.”
“덕분에 고분고분해졌잖아.”
염화는 혹화였을 때의 기억이 있다. 그 래서 더 괴롭다. 차라리 처맞은 걸 모르는 편이 정신 건강에 이로웠다.
전혀 다른 성향이라고 해도, 혹화도 자 신의 일부였다. 동병상련의 고통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지랄맞게도 혹금단주의 주먹질이 통했다. 적응이 되어가고 있는 몸의 반응을 체감할 때마다 기가 찼다.
“남의 몸을 떡 주무르듯 해놓고, 할소 리야?"
“무인은 남녀의 구분이 없어야 해. 그런 걸 따질 거면 무공을 배우지 말아야지.”
“말을 해도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게 하 네.”
“잘됐네 나도 정들고 싶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