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사후협상 ⑵
그녀의 절박함을 정우는 느낄 수 있었 다. 그러나 능력은 별개의 문제다. 정에 이 끌려 능력도 없는 사람을 고용할 만큼 한 가하진 않았다. 더욱이 그녀는 도해문에 서 오랫동안 일을 했다. 벌벌 떨고 있다고 해도 무인들이 거주하는 문파에서 일을 하는 여인이다. 보통 강단이 있지 않고서 는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면전에서 박대하진 않았다
“가져와 봐.”
“여기요.”
그녀는 언제든 준비를 해놓는 습성이 있었다. 이럴 때를 대비한 건 아니지만 만 약의 상황은 항시 염두에 둔다 건네준 저장장치의 내용을 열어 확인했 다
호오.
정우는 그녀를 다시 봐야 했다. 장부에 작성된 목록과 거의 비슷했다. 대부분의 일을 도해문주와 총관이 주도적으로 했 고, 그녀는 재정 관리의 효율성을 담당했 을 뿐이다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가운데 이 정도로 정확하게 파악을 하다 니, 뛰어난 인재였다 그럼에도 허드렛일이 나 하는 여인으로 치부하며 능력올 인정 하지 않았다니 도해문의 한계를 통감하게 해준다
“월 오백, 어때?”
“당장짐 쌀게요.”
현재 그녀의 월급은 월 250이다. 회계 경리치고는 적지 않은 액수지만 그렇다고 많지는 않았다. 한데 500이라니, 당근 오 케이다.
“더 줄수도 있었는데.”
“?…더요?”
“하지만 기회는 자주 오는 게 아니지.”
정우는 인재를 연봉 6천도 안 주고 부 려먹은 도해문의 심보에 개탄했다. 인재 를 날로 부려먹고 있었다. 능력에 따른 보 상은 지극히 당연했다. 한데, 혹금단을 거 론하면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 는 격이 된다. 금강문주와 다르지 않은 찰 떡궁합이다.
어쨌든 신분조회는 필수다
“그녀의 뒤를 모조리 파악해.”
“예, 단주님.”
대우가 좋지 않았을 분 그녀는 재무를 담당했다. 능력은 물론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보는 중요하다. 앞으로 주요 업무를 도맡아 할 인사가 될 수 있으니 확 실하게 조사해놓을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 다 그녀가 돌아선 이상, 신변보호를 해주 어야 한다. 도해문이 대놓고 해코지는 못 해도, 그녀를 지우는 건 일도 아니다
“양해를 해준다면 본가에서 섭섭지 않 은 대접을 해줄 겁니다”
리드는 금강문주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들로서는 작금의 상황을 이해 시키고, 조사를 해야만 한다. 이대로 아무 소득 없이 돌아가게 된다면 문책은 피하기 어렵다. 그러나 울컥울컥 치솟는 분기는 극도의 피곤함을 불러왔다. 다 되었다 싶 으면, 항상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으니 더 열 받는다. 대화를 할 때마다 초면이 되고 있었다
“딱히 바라는건 없는데.”
“본가와 우호적인 협상을 한다면 금강 문에도 많은도움이 될 겁니다.”
“내가 남의 도움이나 바라는 속물인 줄
알。}.”
“그런 뜻은 아닙니다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금강문주의 시큰둥한 반응에 리드, 카 론, 마이스터는 난감했다. 반응이라도 보 여야 대화를 이어나가지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문주님, 끝났습니다”
처리를 마친 정우가 걸어왔다. 핵심 자 료는 금고에 있었다. 그것만 처리하면 나 머지는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다.
“이제 가면 되는 거냐? 좀도 쑤시고.”
“가시죠.”
이호극이 그냥 가려고 하자 리드는 당
황했다. 설마 진짜 가려는 건 아니겠지 했 는데, 간다 여태 대화를 하고선 사태 해결 은 되지 않았다 사정을 봐달라는 말을 못 들은 것도 아니고. 그냥 가버리면 어쩌란 말인가.
“배고픈데, 해장은하고가야지.”
“좋죠.”
밥은 전투를 끝내고 난 후가 가장 맛있 다. 그래서 이호극은 전투를 사랑한다. 맹 렬한 전투를 할수록 식욕이 당긴다. 물론 평소에도 식욕이 없었던 적이 없기에 비교 대상은 되지 않는다. 20인분 먹을 거 40 인분 먹는다고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 다
“해장엔 감자탕이지?”
“아침부터 매진되겠네요.”
이호극이 감자탕을 먹겠다고 다짐한 순 간 돼지 100마리는 죽었다고 복창해야 한 다. 24시 감자탕 전문점이라고 해도 솔드 아웃은 필연이었다.
“돈 있지‘?”
“좀 챙겼습니다.”
“내가 단주 하나는 잘 뒀다니까.”
챙겨?
설마 도해문에서 돈을 슬쩍했다는 건 가? 그들은 명색이 한국을 대표하는 무문 의 문주와 단주다. 원한관계가 있다고 해 도 정식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돌아 가는 대화의 정황은 일반적인 상리를 넘 어선다.
리드, 카론 마이스터는 저 인간들의 정 신 상태를 이해 못 했다.
‘그건 그렇다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도 아니고, 그냥 가 버리면 어떡해?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로 가고 있었 다. 혹금단도 철수 준비를 마치고 대기했 다 리드는이 말도안되는현실의 연속에 냉정함이 무너졌다
“이대로 가면 우린 어쩌라는 겁니까?”
“아 그렇지.”
그제야 기억이 난 듯 단기기억상증이 만연했던 이호극이 돌아섰다. 전투 외에 는 맹한 구석이 있음올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이다. 기실 관심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기는 하다만.
“맘대로 해.”
≪..
그렇게 말할 거면서 주변은 왜 어슬렁 거렸단 말인가?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한다는 말이 맘대로 하라니? 말문이 막힐 따름이다.
“사실 난잘 몰라”
“이런개?…!”
리드는 욕이 튀어나오려는 걸 간신히 견 뎌내었다. 지가 말을 시켜놓고, 이제 와 모 른다고 발뺌을 하고 있었다. 여태 벽창호 보다 못한 자를 설득하기 위해 뻘짓올 한 꼴이 된다
‘내가 이러려고 협상을 한 건가?’
마법사로서의 자부심이 무너지고, 자괴 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화를 낸다고 통할 대상이 절대 아니었다 냉정을 유지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유도해야 했다. 맘대로 하 라는 말이 미끼일 가능성도 있었다. 덥석 물었다가 쥐약이면 빼도 박도 못한다
“진정 우리 맘대로 해도 된다는 것입니 까?”
“그건안 됩니다.”
이호극의 대답보다 정우가 빨랐다
문주에겐 끝났으니, 먼저 가서 시켜 놓 고 있으라고 했다. 어차피 1시간이 지나도 먹고 있을 거다. 시간은 상관하지 않아도 되었다.
“도해문은 명예는 물론 금전적으로도 본문에 타격을 입혔습니다. 따라서 도해문 안에 있는 재산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합니 다.”
“우리보고 구경만 하라는 것이오‘?”
“장부의 카피 본을 내어드리겠습니다. 잘 살펴보시면 원하는 답을 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당신이 준 자료만 보라는 것 아닙니까‘?”
“받아들이는 입장의 차이겠지요. 그러 나 결과는 여러분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 습니다?”
정우도 무책임하기는 금강문주와 매한 가지였다
리드는 구겨진 인상만큼이나 자존심이 상했다 남이 떠넘겨주는 자료에만 의존해 야 한다는 사실에 참기 힘든 모욕감이 들 었다. 해서 꺼내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말 았다.
“금강문도 본가의 리스트에 올라와 있 다는 것올아시오?”
“그렇군요.”
대공자를 죽였다는 낙인이 찍히면 앨런 가는 절대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금강문 의 무력이 대단하기는 해도 앨런가가 전력 을 다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그럼에도 놀 라기는커녕 남의 집 일처럼 대하고 있었 다
‘무신경한 건가? 아니면 아예 생각이 없
는건가?’
차라리 오해였다고 반박을 한다면 그나 마 다행이었다. 앨런가를 무시하지 않고서 는 이런 식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것이 더 더욱 자존심올 상하게 만들었다.
“내 말한 마디에 금강문이 위태로울 수 도 있는데, 마냥 태평할수 있을까?”
“본문의 가치는 의와 협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할 이유가 없지요.”
“정녕 그리 생각을한단 말인가?”
“세간의 평판을 들어보면 앨런가는 공 명정대 하다더군요.”
세상은 공정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힘
이 있으면 없는 죄도 만들어낼 수 있다.
리드는 앨런가의 힘을 동원해 금강문을 압박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그런데 되 레 앨런가의 평판을 들먹이며 공정하게 처 리하라고 압박했다 객관적인 자료를 무시 하고 임의대로 처리한다면 앨런가는 도의 도 모르는 가문이 되어버린다. 언뚯 들으 면 지극히 타당한 듯 보이나, 실상은 앨런 가의 행태를 교묘하게 비난하고 있었다
“오늘일을 후회할걸세.”
“본문은 후회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설 령 오늘의 입장표명이 잘못되었다 한들 후 회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정우는할말을 끝낸후 미련 없이 돌아 섰다.
리드는 돌아선 혹금단주를 망연히 바 라보고 있어야 했다. 많은 상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금강문의 뻔뻔함은 무력 에 기반올 두고 있었다. 자신감이 아니고 서는저리 당당할수 없었다.
“본가를 이리 홀대하다니, 대가를 치러 주어야 하네!”
“금강문 따위가 감히 본가를 괄시해!”
카론과 마이스터는 분기를 억누르지 못 하고 토했다 화병이 나기 일보직전이었다. 금강문주와 그 부하까지 속을 긁는 데는 천부적이다. 하물며 앨런가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똥개만도 못한 취급을 했다.
“내 맘도 자네들과 다르지 않아 하지만 금강문과 상잔을 해서 우리에게 과연 이 득이 있을까?”
“자존심은 지킬수 있지 않나.”
“그럼 금강문을 철저히 굴복시켜야 하 는데, 그럴 자신은 있고?”
“그거야”
금강문을 일반적인 문파로 봐선 안 되 었다. 무문 사이에서의 평판을 따져볼 때 붙어봤자 손해막심이었다. 알력을 행사한 다고 순순히 굴복이라도 할까? 저 싸움에 미친 문주가 곱게 항복할 거란 기대는 애 초에 불가능했다.
“우린 아직 대공자의 죽음도 밝히지 못 했어. 이를 먼저 밝혀내야 하네: 그들도 리드의 말이 옳다는 걸 안다
화가 나서 말해 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마법사는 합리적 이성의 집합체다. 손익이 분명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는다. 다만, 금 강문주의 안하무인에 빡 쳤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