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사후협상 ⑴
‘어쩐다?’
리드는 도해문의 사후처리에서 밀려난 어정쩡한 상태였다. 가기도 뭐하고, 안 가 기도 뭐한. 애매한 현실과 마주했다 원인은 금강문에 있었다. 손을 쓰기도 전에 도해문을 제압해버리는 바람에 이제 와 포크를 얹을 수도 없는 현실이다.
시간만 흘러가고, 보고는 늦어지고 있 었다.
망연한 돌조각도 아니고, 답답했다. 평 소의 리드답지 않은 결정 장애에 카론과 마이스터는 더 두고 보지 않았다.
“이대로 지켜보고만 있을 건가?”
“그럼 자네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리드는 기다렸다는 듯 반문했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내놓으라는 눈빛이었다.
“대공자의 죽음에 대해 낱낱이 밝혀야 지.”
“누구한테서?”
“그야당연히.”
이번 작전의 목적은 대공자를 죽인 범 인을 찾고, 이를 빌미로 앨런가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한데 핵심용의선상에 오른 도해문을 취조하기는커녕 멀뚱히 관 전하고 있어야 했다.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이다 그러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선 금강문 을넘어서야 한다
“자네가 가서 말해 보게, 이제부터 우리 가조사하겠다고.”
“말로 해서들을까?”
“앨런가를 무시할 순 없을 걸세.”
“확신할수 있나?”
카론과 마이스터는 리드를 몰아세웠지
만 확답하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따지면 앨런가의 요구를 금강문이 묵살할 순 없 다. 한데 그 상식을 들이댈 존재가 금강문 주와 혹금단주다. 과정올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들이 도해문에서 벌인 만행은 일반 상리를 아득히 벗어났다.
망설임이 길어졌다.
리드는 원초적인 질문을 건넸다
“다 떠나서 저들을 막을수 있을까?”
“?…"그건!”
그들의 전력으로도 도해문은 제압이
가능하다. 하지만 금강문은 단둘이서 도 해문을 뭉개버렸다. 그것도 압도적인 힘으 로. 본가의 대마법사는 와야 해결이 가능 한 상대였다. 그뿐이랴 금강문주의 성향 은 보통을 넘었다. 솔직히 미친놈인 줄 알 았다
“금강문주가 본가를 두려워하겠는가?”
“그야.”
카론과 마이스터도 장담하지 못했다. 전투 중 금강문주가 지껄였던 발언이 회 귀되었다 순수하게 전투를 즐기는 미친놈 이었다. 일반적이라면 앨런가와 척을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할 테지만 금강문주는 어 떤 선택을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마치 30년 전의 미국 대통령을 보는 기분이었 다. 노이즈 마케팅을 기본으로 각종 스캔 들을 일으켰기에 설마 당선될 줄은 몰랐 던, 당시의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본가를 함부로 대하진 못할걸세.”
“그랬으면 좋으련만”
긁어서 부스럼을 만들지는 않았을까?
리드는 골치가 아팠다. 금강문주는 어 디로 튈지 예측하기 어려운 돌발변수의 압 축형이었다. 괜히 앨런가를들먹여서 압박 을 가하면 죽자고 달려들지도 모른다. 그 리되면 앨런가는 한국 내에 거점 확보와 지배력 확장에 큰곤란을 겪게 된다.
금강문주와 흑금단주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무력단도 기세가 상당했다.
‘이번 사태 해결로 금강문의 입지는 더 커질수밖에 없다.’
단순히 금강문에 국한되지 않는다. 무 문연합에서의 영향력이 강해진 금강문이 적이 되면,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훼방 놓 을 수도 있었다. 한국이 비록 소국이라고 해도 경제적, 군사적으로 세계 10강에 든 다. 또한 미국의 우방이었다. 무턱대고 적 대시해선 안 되었다.
“자네는 금강문이 두려운 겐가?”
“말이 심하군.”
리드의 안색이 어둡게 변하자, 카론과 마이스터도 더 나가진 않았다. 그들이 아 는 리드는 본가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 다. 그러나 이대로 지켜보고만 있다면 본 가에서도 웃음거리로 전락할 수 있었다. 이는 원치 않는 일이다.
‘응?’
리드, 카론, 마이스터는 뒤통수가 뜨끔 했다. 께름칙한 시선의 강요가 전해졌다. 무의식적으로 돌아선 장소에 문짝을 연상 케 하는 인물이 서 있었다.
‘금강문주!’
다들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한가한 사람이 있었다. 포식을 하고 초원올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를 상기 시킨다.
그가 바로 이호극이다.
어디에 분란거리가 있는지 들쑤시고 다 니다가 쑥덕거리고 있는 앨런가가 눈에 띄 었다.
“어이, 양키.”
*..2”
이호극의 부름에 그들은 말을 잃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양키라니. 생전 들어본 적이 없는 모욕적인 언사다.
화가 치밀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 까는 전투 중이었다 쳐도. 전투가 끝나고 나서도 이 인간의 성향은 좀처럼 파악이 불가능하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더더욱
“내 말이 말 같지 않은 거냐?”
“말씀이 심하지 않습니까!”
“심하긴 뭐가? 양키보고 양키라는데. 내가틀린 말했어?”
이호극에게 있어 백인은 양키, 그 외의 단어는 알지 못했다. 양키를 양키라 부르 지 말라니, 홍길동이 저세상에서 통곡을 하시겠다
“누차 말하지만, 우린 앨런가에서 왔습 니다 아까부터 너무 하는 것 아닙니까?”
“뭐라는 거야? 한국에 왔으면 한국의 법올 따라야지. 그리고 어른이 말씀하시 는데 꼬박꼬박 토를 달아”
한국의 기본 특성, 꼰대 마인드를 잊지 않는 이호극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나이를 거론하 고, 학적을 꺼내 들고, 지역을 따진다. 분 란의 시초를 조장하는 우열과 차별의 기 본 소스였다. 물론 그 잣대를 본인한테 들 이대면, 적반하장의 끝판왕을 보게 될 거 다
“그러는 문주께선 나이가 어떻게 되기 에 이리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는 것입니 까?”
“너보다 많아”
일단 그렇게 시작하는 거다. 먼저 나이 를 대는 순간 지고 들어간다 무조건 상대 보다 한 살은 많아야 했다. 그것이 우리나 라의 서열을 정리하는 기본 형태다.
홍!
리드는 콧방귀를 뀌었다. 금강문주의 신분과 가공할 무력을 인정해 대우를 해 주고 있었다. 나이를 거론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60입니다. 우리가 조사하기로 금강문 주께서는 60을 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만.”
중년인으로 보여 젊을 거란 예상과 달 리 리드, 카론 마이스터는 나이가 꽤 있었 다. 마법사로서 일정한 경지에 올라 젊어 보인 것이다. 사실 무인이나 마법사나 공 력과 마나로 인해서 보통 사람보다는 노화 가 빠르지 않았다. 피부미용을 위해서 무 공과 마법을 익히는 여성들이 부쩍 늘고 는 있었다
“나이 갖고 그러는 거 아니다. 요즘이
어떤 시댄데.”
이 망할 종자가!
이호극의 뻔뻔함은 자타공인, 국제적으 로도 통용된다.
리드, 카론, 마이스터는 뒷골을 잡올 뻔 했다. 우직한 쇳덩어린 줄 알았는데, 말 바 꾸는 데도 선수였다. 본인이 주범이면서도 끝까지 아니리고 열변을 토할 뻔뻔함으로 무장했다.
천성적으로 상대방을 열 받게 만드는 부류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화가 쌓인다. 논리하고는 담을 쌓고 있었다 후후
정우는 도해문을 정리하면서 이호극과 마법사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절로 웃 음이 나오는 상황을 연출했다.
‘마법사에게 문주님은 쥐약이지.’
마법사는 궁극의 진리를 추구하는 냉 철한 이성의 족속들이다. 경지가 높을수 록 외골수적인 성향이 강하긴 해도 논리 를 바탕으로 한다. 따라서 최대한 합리적 으로 판단하려고 노력을 하게 된다.
그에 반해 금강문주는 논리를 철저히 배제한다. 그날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서 대화가 중구난방이다. 한마디로 말해 자 기 꼴리는 대로 지껄이고, 아니다 싶으면 모르쇠로 일관한다. 대화 자체가 안 통하 는 부류에 속했다.
‘속이 썩어날수밖에.’
마법사들의 표정만 봐도 횐했다.
하물며 물러서고 싶다고 해서 놔줄 금 강문주가 절대 아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은꼭 하고 만다 상대가 듣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는다. 물론 들으면 화병 나고, 안 들으면 처맞는다
‘평소대로하랬더니, 더 잘하시네.’
이래서 정우는 금강문주를 좋아한다
멍석을 깔아주면 깔아주는 대로 확실
하게 해준다. 그 호쾌한 천성을 제대로만 다스려준다면 새로운 판을 짜는 데 효과 적이었다. 사실 머리 잘 굴리고, 똑똑한 놈들은 지나치게 계산적이어서 오히려 결 정 장애를 일으킨다. 그보다는 단순명쾌 한 성향이 훨씬 낫다.
“재산목록은 빠지지 않게 작성해둬.”
“예, 단주님.”
“나중에 확인해볼거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정우는 도해문의 무인들이 보는 앞에서 문파의 재물까지도 속속들이 파악해 나가 고 있었다. 마치 자기 집처럼. 이대로 있다 가는 도해문에 남아나는 게 없을 것만 같 았다
“저기요.”
모기가 기어들어가는 듯한 여인네의 떨 리는 목소리가 정우의 시선을 끌었다.
돌아서 보니 평범한 복장올 한 여인이 오들오들 떨면서 서 있었다. 괜히 불렀다 는 후회막심이 얼굴에 쓰여 있지만, 그녀 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뉘앙스가 풍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일단 저질러보는 성향이었다
“불렀으면 말해.”
“?…지금 뭐하시는 건가요?”
“뭘하다니, 재산파악하잖아”
“그러니까, 왜 금강문에서 우리 문파의 재산을 파악하는 거냐고요.”
“피해를본 만큼, 손해배상을 해야 하니 까:’
“피해는 우리가 더 많이 본 거 같은데 요.”
“그거야 입장의 차이지, 도해문은 본문 의 물주… 아! 계약자를 암살했어. 그로 인해 본문은 앞으로도 꾸준히 받아낼 저 금... 아! 미래수익을 잃은 거지. 이제 이해 가되지?”
그녀는 도해문의 재무담당자, 이유정이
다
이렇게 말하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여 인이지만 도해문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다 고 보면 된다. 따지고 보면 고 총관 밑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부총관이나 마찬가 지다. 여하튼 그녀는 무인도, 유니크도 아 닌 일반인이다. 그런 주제에 간도 크게 혹 금단주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무공을 익힌 도해문의 무인들도 감히 질문할 엄두 가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
이 시대의 워킹 맘으로, 집안 사정이 좋 지 않아 일을 해야 했었다. 도해문이 망해 버리면 이번 달 월급은커녕 퇴직금도 받지 못한다. 무인들에게는 보잘것없을지 몰라 도 그녀에게는 소중했다.
두려움에 질린 얼굴과 달리 눈빛에는 굳은 심지가 있었다. 정우는 그것이 어머 니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단은 있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절 고용해주시면 안될까요?”
“당신의 뭘 믿고?”
“제가파악해놓은 재산목록이 있어요.”
“협상을 하시겠다.”
“살아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