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함흥차사(咸興差使) (1)
하아 하아
가븐 호흡과 숨결에 다급함이 전해졌 다. 그만큼 추격은 집요했다. 만약을 대비 한 안가(安家)는 운신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았다. 추격자는 안가의 주변에 설치된 트랩과 결계를 부수며 접근해 왔다.
방향이 지나치게 정확했다
경로를 알고 추격을 해오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사전에 구비해놓은 도주로는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추격을 해온다. 몸에 추적 장치와 같은 게 있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 몸에 장치를 달 고 도주하진 않는다. 무공이 아닌 추적마 법의 일종일 가능성이 컸다.
‘평범한 마법사가 아니야’
한국 내 활동하고 있는 마법사는 무인 에 비해 평가 절하되어 있었다. 원인은 상 급 레벨에 오른 마법사의 수가 절정고수의 수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러나 마법 레벨이 상급에 이르면 수준 차 이가 확연하게 달라진다 혈화(血花)는 추격해 오는 자가 상급 마 법사임을 직시했다. 이런 수준의 마법사 는 혼치 않았다. 맞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 을 격차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마법사는 여유가 있었다.
‘대체 왜?’
과정을 복기하면 함정이 분명했다. 암 살을 실행할 때를 마법사는 기다리고 있 었다. 정보가 샜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연 유를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조 금이라도 지체하면 추격자는 어김없이 꼬 리를 물었다.
아니나다를까.
찌릿!
소름 돋는 한기가 감각을 파고들어왔 다
‘망할!’
혈화는 남아 있는 공력을 쥐어짜 신법 을극대화했다 마법사는 근거리를 치고 들어오는 속도 가 느리다고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마 치 잘 짜인 시스템처럼 거리를 계산하여 공간을 이동해 오고 있었다. 찰나의 멈칫 거림도 위험하다. 자칫 마법사의 제어된 공간에 가로막히게 된다.
‘그 오만함이 실수임을 깨닫게 될 것이 다?’
혈화는 암살이 실패한 직후 상부에 보 고했다.
신임문주께선 문파로 복귀하라는 명올 내렸다. 동선 노출과 암살 실패라는 두 가 지의 걸림돌이 있기는 하나, 마법사는 물 러서지 않고 추격해 오고 있었다. 따돌릴 수 없다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렸다. 이렇 게 된 이상 마법사를 끌어들여 문파에서 끝을 봐야 했다. 다른 무문이 알게 된다면 그것도 골치 아팠다.
슈0}앙!
혈화는 속도를 내면서도 주변을 신경 썼다. 이목을 끌어서 좋을 게 없었다. 암 살이 실패하면서 소란이 크게 일었다. 벌 써 냄새를 맡은 자들이 붙고 있었다 이런 와중 시선을 끌게 된다면 암살의 주모자로 낙인이 찍힐 수 있었다. 마법사 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공간이동과 환영 을동시에 펼쳤다.
자고 일어나면 끝날 일인 줄 알았다.
도해문주에게 암살 실패는 예상치 못
한 낭패였다. 혈화의 암살 성공률은 도해 문에서도 최상위다. 100건이 넘는 암살을 간단히 처리해왔었다. 모두 자살로 위장처 리 되었기에 완벽함을 자랑했다. 그런 그 녀가 시작도 해보기 전에 실패했다면 함정 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미리 대비를 하지 않고서는 실패를 납득하기 어렵다
“총관이 보기엔 어때?”
“돌아가는 정황이 이상합니다. 어쩌면 우릴 끌어들이기 위한 계략일 수도 있습 니다”
“자세히 말해봐.”
“문주께서도 알다시피 상급 마법사는
흔하지 않습니다. 채 회장은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욱이 우 리는 전대 문주님의 일로 공론화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여론이 많이 불리합니 다”
채 회장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도해문주도 보고받았다. 번번이 실패했기 에 그땐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었는데, 돌이켜 보니 이상했다. 채 회장의 행동반 경은 극도로 조심스러웠었다 금강문이 보 호하고 있는 와중에도 경계를 했다는 의 미다. 일우그룹의 전대 회장이 끌어들인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반증이었다.
“별 거지 같은 것들까지 본문을 깔보는 구나”
돌아가는 정황이 이제야 명확해진다
도해문과 의문의 세력을 충돌시켜 일거 양득의 효과를 노리는 계책이었다. 결과적 으로 채 회장은 금강문과는 원만한 관계 를 유지할 수 있었다. 어찌되었든 금강문 은 다크마스터를 죽여 채 회장의 복수를 해주었다. 쉽게 끊어낼 관계는 아닐 것이 다. 기업의 입장에서 무문과의 협약은 필 수였다.
빠드득!
도해문주의 화를 돋우는 진정한 이유
는 속았다는 것보다, 본문을 얕잡아 본 채 회장의 계략에 있었다. 의문의 세력과 공 멸하기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명백한 무시 였다. 자기 집에서 비웃고 있을 채 회장을 상기하니 열이 받는다
“그런 꼴을 볼 순 없지.”
도해문주는 혈화의 연락을 받은 즉시, 채 회장에게 사람을 보냈다.
채 회장은 오늘이 명년 제삿날이 될 것 이다. 식솔이 보는 앞에서 철저하게 짓밟 아주어야 한다. 감히 본문을 농락한 대가 를 뼈저리게 각인될 수 있도록. 당연히 그 가 가지고 있는 재물로 배상도 해야 한다.
“이제 마법사의 실력을 구경해보실까.”
“방심하시면 안됩니다.”
총관의 충고가 도해문주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입바른 직언이나, 편치 않은 심 기에 기름올 부운 격이다 이를눈치 챈 총관이 다시 말했다.
“본문의 전력은 예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더 이상의 전력 손실은 위험 합니다. 또한오늘 일이 외부로 새어나가서 도안 됩니다?”
도해문주는 분기를 다스렸다.
총관의 말대로다. 더 이상의 전력손실 은 문파의 규모를 축소시킨다. 더욱이 상 대의 실체를 모르는 이상, 방심하다 역공 을 당할수도 있었다. 최대한빠른 시간안 에 조용히 정리하려면, 전력으로 단숨에 제압해야 한다:
“비상령을 내려 전원 집결시켜.”
“예,문주님.”
총관은 기다렸다는 둣 행동했다.
도해문이 분주해졌다.
비상령이 내려지자 무인들이 속속 잠에 서 일어나 무복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 다. 사태를 전달받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 았다 무인의 규격화된 움직임은 군대의 5
분 대기조를 능가했다. 곧장 일어나 채비 를 마치고 문주의 명을 기다렸다.
스륵!
도해문이 일사불란하게 전쟁 준비를 마 치고 있는 사이, 검은 그림자가 담벼락을 유유히 넘어왔다. 남의 집 담벼락올 타는 솜씨가 가히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 담 은 이렇게 넘어야 한다는 교범을 보여주었 다. 양상군자가 되기를 소망한다면 보고 배워야 할 만큼 완벽하다 스르륵!
그림자는 물 흐르듯이 스며들어 모여 있는 무인들 속에 끼어들었다. 어느새 무 인들과 같은복장이 되었다. 옷의 변화마 저도 보호색을 띠는 카멜레온보다 더 완 벽하다.
“아 피곤하다. 피곤하다. 피곤해. 피곤 하다. 피곤하여.”
“그만해, 나도 피곤해지려고 하잖아”
그는 옆에 멀뚱히 서 있는 무인에게 천 연덕스럽게 물었다. 잠이 덜 깬 목소리와 눈에 낀 눈곱이 귀찮음을 머금고 있었다. 생활연기가 극에 달해 있었다. 어느 것 하 나도 놓치지 않는 사실적인 디테일한 묘사 가 두드러졌다. 누가 봐도 도해문에서 산 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무인이었다.
“새벽부터 웬난리냐?졸려 죽겠네.”
“눈곱부터 떼라”
“됐고, 뭐야?”
“마법사가 본문을 습격한다고 하더라”
“마법사 나부랭이가 감히 여기가 어디 라고, 내 친히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아서라, 그러다가 제일 먼저 골로 간 다”
“내 실력을못 믿는거냐?”
“전원 비상령이 내려진 이상 조심해야 해.”
그는 무인들 사이를 오가며 열의를 불 태웠다. 마법사를 언급하며 무인의 위대 함을 유감없이 과시할 때가 왔다고 주장 했다. 무인의 기본 의식에 마법사에 대한 과소평가가 깔려 있기에 제대로 먹혔다.
“마법사 나부랭이를 죽이자!”
“본문의 무인답게 호쾌하네.”
“마법사는 애초에 우리의 상대가 안 돼.”
“맞는 말이야.”
그는 유유히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사뿐, 사뿐
무인들사이에서 사라졌을즈음, 대화 를 나누었던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한 기분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낯선 얼굴이 분명한데, 친숙하게 다가와서 더욱 그렇다. 어디서 많이 봤음 직한 얼굴 임에도 떠 올리려고 하면 기억이 나지 않 았다. 흐릿한 잔상이 안개 속에 가려진 느 낌이다. 다들 잠이 덜 깬 몽롱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다.
“쟤 누군지 알아?”
“쟤라니 누구?”
“방금 전에대화한 녀석.”
이름이 생각이 날 것 같아서 더더욱 짜 증을 불러온다. 아예 기억에조차 없는 외 형과 이름이면 수상히 여기기라도 할 텐 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게 뭐가 중요해, 지금 적이 쳐들어오 고 있는데.”
“?그런가?”
“애먼데 신경쓰지마”
문파에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얼굴올 다알고 있진 않았다 새로들어올수도 있 고, 분류가 다를 수도 있었다. 더욱이 문 주의 비상령이 내려진 상태였다. 초면에 말좀 걸었다고 딴죽을 걸 상황과는 거리 가 멀었다 다들 전투태세를 갖추는 데 몰 두했다 사소한 일은 다음으로 미루었다.
룰루랄라
콧노래와 함께.
무인들이 그렇게 대충 인식하고 보내버 린 대상은 도해문을 제집처럼 마음껏 활 보하고 있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스며들 어서 누구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
‘침입을 꼭숨어서 할 필욘 없지.’
정우는 숨기는커녕 보란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도해문의 무인 그 자체였다. 그렇지 않 고서는 이토록 자연스럽기도 어려웠다 침 투의 정석하고는 거리가 멀지만, 이 또한 대단한 능력이었다 적의 심장부에서도 불 안해하기는커녕, 평상시보다 더 침착했다.
연습보다 실전에 더 강한 타입이었다
정우는 내가 침입자다, 라고 과시를 하 건만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살짝 외로웠다. 그런 외로움을 즐기면서 소란과 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사뿐, 사뿐.
발걸음은 여전히 가볍다
건물 내부에 감시 카메라가 작동하고 있지만, 모니터 요원마저도 의심하지 않았 다 문파에는 무인만 거주하고 있지 않았 다. 청소를 하고, 요리를 하고, 건물을 고 치는 등등의 사람들도 필요하다. 그중 일 부는 상주해 있었다.
정우는 그들과 같은 복장으로 또다시 변했다. 카멜레온처럼 주변의 환경에 따라 변신이 자유자재였다 도해문의 심처에 당도하기 직전부터는 정우도 신경을 썼다. 비상령이 내려졌어 도, 문파의 주요 심처에는 보안유지를 위 해 지키는 무인이 있기 마련이다 시간을 쟀다
꽈아아앙!
폭발이 울려 퍼진다. 통렬한 파장이 밝 아오는 아침을 뒤흔들었다. 굉음이 도해문 을 쩌렁쩌렁 울렸다.
정우는 발동을 걸었다.
스윽!
육신을 공간과 동화시키고, 마법으로 결계를 두른다. 이어서 현현보를 밟아 거 리를 최단으로 만들었다.
헉!
문주의 집무실을 지키고 있는 5명의 무 인은 멀뚱히 선 채 의식이 끊어졌다.
‘?뭐야?’
스치고 지나간 바람이 혈을 짚는 동안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다. 문파 내에서도 실력을 인정받아 문주의 심처에 배속된 자들이다. 그들은 의식이 끊어지는 찰나 에 ‘왜?’라는 의문밖에 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