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귀환 ⑵
일요일 아침 9시.
정우는 연락을 드리고 집으로 왔다. 오 늘막도착한걸로 되어 있었다 의심 많은 수연이를 위해서 입국 수속 날짜까지 조 정해놓았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모님과 동생, 하라도 있었다.
하라의 눈빛이 곱지는 않았다. 일전에 전화통화를 한후 귀찮게 하지 말라고 했 더니 삐쳐서 수신 차단을 해 놓았다.
정우는 공무를 수행하는 중이라, 수신 차단 상태인 줄 몰랐었다. 한국에 와서야 알았다. 그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하라는 부모님과 수연에게는 다정한 얼굴로 사근 사근하게 굴었다.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 로 서서히 각광을 받고 있더니, 완벽하게 연기파의 길로들어섰다
‘가식 쩌네.’
아수라의 화신인 줄 알겠다. 공과 사의
구분은 확실하다고 해야 하나. 여자들에 게 두 얼굴은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패 시브 스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앞에서 한 말이 진심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빠:”
수연이 소파에서 용수철처럼 튀어 올라 단숨에 정우의 품으로 안겨 들어왔다. 평 소 하지 않는 행동이기는 하나, 이해는 간 다 정우는 동생의 애교보다, 좀 전의 도약 력과 스피드, 근력의 최적화된 활용을 먼 저 봤다 확실히 여느 오빠들과는 다른 관 점이기는 하다.
“게으름 피우지는 않았네.”
“누구 말씀이시라고, 나처럼 오빠말잘 듣는 동생은 없다고 자부해. 나는 오빠의 영원한 딸랑이야.”
수연이의 엉덩이에 꼬리가 있었다면 살 랑거렸을 것이다
“마지막표현은좀 그렇구나. 누가들으 면 오해하겠다. 나는 그런 오빠가 아니지 않니, 수연아?
“?…당연하지."
“템포가늦어. 그래선 안돼.”
수연은 최대한 오빠한테 잘 보이려고 노
력했다. 그러나 동생을 반강제적으로 훈 련시켰으면서 좋은 오빠까지 되고 싶다니, 위선의 끝판왕을 보는 것 같아 타이밍이 늦었다. 과거의 혹독했던 훈련이 주마등처 럼 스쳐 지나갔다 친구들은 훌륭하고 빼어난 오빠를 둬 서 좋겠다고 어찌나 부러워하는지, 현실을 발설하고 싶으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일 뿐이었다 소귀에 염불을 외우고 말지, 도 통 들어 처먹지를 않는다. 그러고서 흉 좀 보면 나만 나쁜 년이 되어 있었다. 배부른 소리 좀 그만하라며, 특히 소영이 문제다. 방송에 나왔다며 팬클럽을 만들겠다고 난 리 치는 걸 겨우 말렸다. 환상에 빠져 신적 인 존재가 되어 갔다 오빠가 종교 하나 만 들면 소영은광신도 1순위다
“오빠는 너그러운 사람이잖아”
“누가?”
꼭한 번은 되묻는다.
확인 사살이다.
“당연히 오빠지.”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만, 그 손은 뭐냐?”
“오빠。K2 알면서.”
동생의 애교는 오빠의 자금 사정에 따 라 다르다는 말이 있다. 어릴 때는 오빠를 따라다니기 위해 필사적이었던 여동생도 나이가 들면 쳐다보지도 않는 경우가 허다 하다. 그러나 간혹 여동생이 애교를 부리 는 때가 있는데, 자금 사정이 궁핍할 경우 가 7할 이상이다. 만족할 만한 용돈과 리 스펙트 한 선물이 눈에 들어오면 그 시간 만큼은 세상에 다시없을 착한 여동생으 로 빙의한다.
수연도 넓게 보면 그 안에 포함된다. 물 론 대부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전제 가 깔리기는 한다. 세상에 용돈과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영란 법에 저촉되지만 않는다면.
두두
정우는 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다.
해외에 갔다 오면 응당 선물을 보따리 째로 긁어 와야 하는 법이다 아공간에 두 둑하게 쌓아 놓았기에, 의도치 않게 면세 가 되었다. 나중에 계산해서 팽가로 영수 증올 보낼 계획이다. 사람들은 법을 어겨 절세를 하면 잘하는 거라고 치켜세우지 만, 그렇지 않았다. 법은 지키고자 노력할 때 비로소 아름답게 바로 서게 되는 것이 다 와
수연은 물론 부모님과 하라의 동공이
흔들렸다.
고가의 백화점을 털어 온 듯한 엄청난 양의 보석과 전자기기, 명품 옷과 가방까 지 두루두루. 당장 입거나 쓰지 않을 사치 성 물품으로 풍족하게 사 왔다.
정우는 이런 물품에 그다지 관심이 없 다. 적당히 골라 달라며 종업원에게 부탁 했었다 그날 하루 소비로 백화점의 WIP 가되었다
“얼마나 산거야‘?”
“잘 몰라”
“모르면서 이 비싼 걸 산 거야?”
“추천해주기에 포장해 달라고 했을 분
이야.”
“돈 많이 번다고 막 쓰는 건 옳지 않아.”
“네 선물도사왔는데, 골라봐.”
“내가 언제 그런 거 사달래? 난 그냥 네 마음이면 족해.”
하라는 원체 부자다. 딱히 선물이 필요 하지 않았다. 부자의 범위에서도 벗어난 재벌이다. 선물에 혹하지는 않는다. 물론 부모님에게 의존하는 성격도 아니다 연예 활동하면서 충분히 벌고 있었다. 5년째 기 부 활동도 꾸준히 하면서 자립적 라이프 를 즐긴다
“화풀어, 공과사는구분하자.”
“누가화났대?”
“아니면 말고.”
정우가 휙! 말을 돌리자 하라는 욱! 할 뻔했다. 성질 그대로 나오는 걸 겨우 참아 냈다 아무래도 여기는 정우의 홈그라운드 였다. 아버님, 어머님이 보고 있는 자리이 다 보니 화를 내선 안 되었다. 최대한 조신 한 척, 예쁘게 보여야만 했다. 미래의 며느 리로서 현명한소비 생활과 과소비 방지를 위해 노력했다.
“그래도 이건 옳지 않아 적어도 필요한 걸사야지.”
“괜찮0}; 내 돈아니니까”
지 돈 아니라고 막 썼다 자랑을 하다니.
하라는 대놓고 자랑하는 정우의 뻔번 함에 헛바람을 삼켜야 했다. 대체 어디서 이런 정신 나간 짓을 하도록 내버려 뒀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두 푼도 아니 고, 선물로 족히 수억은 가볍게 나갔다 대 기업 법인 카드로도 이처럼 과소비를 하 면 시말서를 제출해야 할 것이다. 하물며 본인한테 필요한 걸 빼고, 필요 없는 것만 골라서 샀다:
“우주복은 왜산 거야‘?”
“화성으로 여행갈지 모르잖아”
“ 언제?”
“언젠가는 되겠지. 희망을갖자고.”
“희망은 개뿔!”
하라는 급히 속된 언어 표현을 수정했 다. 이건 절대 본의가 아니었음을 아버님, 어머님께 분명하게 밝혔다.
정우는 가족과 아침 식사를 하고, 아버 지와 방으로 들어왔다. 집 안에 남아도는 게 빈방이라, 조용한 공간은 얼마든지 있 었다.
“할 말이 있으면 해 봐라”
“사업을 확장할 시기가 온 것 같아서 요.”
공장을 지어 생산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수주 물량이 넘쳐나고 있기 는 해도, 당장 공장이 더 필요한 시기는 아니었다 내실을 좀 더 다지고 난 후에 사 업을 확장하는 편이 낫다고 봤다
“좀 이르지 않니?”
“조건이 나쁘지 않거든요.”
정우는 하북팽가와 맺은 계약 조건을 아버지에게 설명했다 서류를 꺼내 조목조 목 따져 가며, 회사에서 갖추어야할 부분 을 거론해나갔다.
“무상으로 토지를 대여해 주겠다고?”
“예.”
“건설비용까지 대주고.”
“그럼요.”
“세금도 10년면제네.”
“괜찮죠?”
“이게 괜찮은 정도냐?”
중국은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인건비 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노동력으로서의 가치가 많이 떨어지기는 했어도, 한국보다 는 아래였다. 하물며 무상으로 토지를 대 여해 주고, 세금까지 면제다. 이보다 더 좋 은 조건이 없을 만큼 훌륭한 계약이다 지 나치게 유리한 조건이라, 혹시 사기가 아 닐까 의심이 들 지경이다. 만약 아들이 아 니었다면 구라 치지 말라며 한 소리 했을 것이다.
“하북팽가가 왜 이런 좋은 조건으로?”
“금강문과 협약을 맺고 추진했던 프로 젝트가 잘 해결됐거든요. 그 일을 해결하 는 조건으로 맺은 거예요.”
“혹,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냐? 그런 거 라면 하고 싶지 않구나.”
윤철은 아들의 강함을 알고 있었다. 설 령 지옥에 홀로 떨어뜨려 놔도 살아 나올 녀석이었다. 그러나 부모의 마음이 어디 그런가. 혹시라도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 대가로 받아 온 계약이라면 원치 않았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굳이 사업을 확장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지금도 벌어들이는 수익이 예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성장했다.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다 해도, 만족하며 살아가면 되었다. 딱히 지금보다 더 부자 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이만큼 살수 있 는것에 감사했다
“아버지가 걱정할 만큼 위험하진 않았 어요.”
“정말이냐?”
“물론이죠.”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정우는 중국 출장에서 위험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일이 계획된 범위 대로 흘러가서 심심했다. 무엇보다 기대했 던 겁천마검과의 대결은 싱거웠었다 대륙 의 인재 폴이 그거밖에 되지 않은 것에 실 망했다 좀 더 강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 으나 안타까웠다.
‘속성능력자라도 발견했으면 스카우트 하는건데.’
안타깝게도 별다른 능력자를 만나보지 못했다. 특이 속성을 지닌 유니크의 중요 성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오덕X만 봐 도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지, 쓰임새가 다 양하고 넓었다. 단순히 전투력만 고려하지 않고, 속성의 쓰임새를 염두에 두었다.
“계약M 는이 녀석들에게 맡기세요.”
“갑자기 왜?”
“속성이 빼박이거든요.”
“빼박? 그게 뭔데?”
“일단 계약을 하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 는 일종의 약속이에요.”
“그것참 대단한 능력이구나. 사업가에 게 필요한 능력이기도 하고.”
사기꾼들이 난립하고 있는 우리나라다. 사기를 치면 1명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피 해를 보는데도, 법적 장치가 미약하다. 어 쩌면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문제점이 바로 이것일 테다. 고의적인 경제 실패도 사기 의 범주에 들어가기에 피해 갈 구멍을 만 들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사기당한 놈만 피해를 보는 꼴이다.
“검증을 해도 사기를 치려고 작당한 놈 들을 당해내지 못하니까요.”
“그건 그렇지.”
본인 딴에는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기꾼은 그러한 성향마저 이용한다. 그러 니 항상 자만을 해서도, 욕심을 부려도 안 되는 법이다
“투자와 욕심은 다른 거예요. 확실한 이상, 승부를 봐야 할 시기예요. 좁은 나 라에 틀어박혀서는 원하는 가치를 얻지 못합니다?”
“자고로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고 했다. 확실해도 변수가 발생하는 현실 이야. 누군들 그런 걸 감안하지 않고 시작 하겠어.”
정우는 아버지와의 의견 차이를 존중 했다. 모든 아버지와 아들은 대화가 많지 않다. 나이가 들수록 같이 있어 봤자 어색 하게 텔레비전이나 볼 뿐이다.
‘토론 형식의 대화도 나쁘진 않지.’
업무적인 대화이기에 딱딱할 수도 있으 나,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서로의 마 인드를 알아 갈 수도 있고.
“이젠 핵심 기술을 발전시킬 때예요.”
“말처럼 되면 누구나 하겠지, 시간이 필 요한일이다’’
“리차드 교수가 도와줄 거예요.”
“그분은 볼 때마다 나를 놀라게 하더구 나. 그 나이에 어떻게 이런 기발한 아이디 어와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고 배우 는바가 크다”
“그러니까 스카우트를 한 거죠.”
사실은 매번 전화가 올 때마다 그만 좀 부려 먹으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정우가 전화를 걸어 대마법을 핑계로 쪼아대니, 리차드 교수는 울며 겨자 먹기 로 열심히 해야 했다. 요즘은 대마법과 마 법슈트, 마법아이템 작업으로 밤샘 작업 을 마다하지 않고 있었다
‘같이 작업할 인원이 필요하기는 하겠 어.’
리차드 교수처럼 마법공학과 마법을 동 시에 수행할 수 있는 멀티클래스가 되면 좋겠지만, 그런 천재는 간단히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둘올 분리해서 고민해봐 야 할 문제다. 마법에 특화된 자와 공학에 특화된 자를 선별해서 확인 작업을 해야 한다.
‘노인네 부려먹는다는 소리를 계속 들
을 순 없지.’
대마법사의 극의에 이르면 또 한 번 탈 태환골이 이루어지지만, 그건 요원한 일이 다. 도달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다. 혹여, 리차드 교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경우를 대비해 놓아야 했다. 그간 연구한 자료들을 복사해 놓고, 인수인계할 수 있 도록 말이다
“사업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여행은 어 땠니?”
“괜찮았어요. 북경은 한국보다 발달된 곳도 많았으니까요.”
하북팽가에서 내준 카드로 풍족한 여
행이 되었다. 맘 같아서는 카드를 가지고 와서 사용하고 싶으나, 팽자겸이 정중히 반납을 요구했었다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 는 꼼꼼한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천이는 괜찮으려나?’
문주의 성향이 워낙 종잡기 어려워서 강천의 안위를 예측하지 못했다. 실상 관 심을 두지 않았었다. 본인의 생사는 본인 이 알아서 할 일이다. 나이도 이제는 스무 살이 되었으니, 관심을 꺼 주었다
‘두드려 맞기밖에 더하겠어.’
하루를 집에서 쉬고, 업무 보고를 위해
금강문을 찾았다.
학교 수업은 리차드 교수에게 말해 놓 아 출석하지 않아도 인정이 되었다. 공식 적으로 5레벨 이상의 마법사를 수업 듣 지 않는다고 빼지는 않는다. 정우의 경우 마법학과의 수업만으로 중급 마법사가 되 었기에 광고 효과도 되었다. 3년만 배우면 정우처럼 될 수 있다는 마법학과의 플래 카드가 붙었다 다다다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곱게 차려입은 효 린이가 안겨 왔다. 금강문의 기본 보법인 탄보가 제법 틀이 잡혀 있었다. 핏줄은 못 속인다고, 효린이도 나이에 비하면 성장이 굉장히 빨랐다. 벌써 또래보다 10cm 이상 은 더 컸다.
“효린이는 날이 가면 갈수록 예뻐지네.”
“오빠를 위해서 노력하고 있거든.”
“어이쿠 황송해라 10년 후가 기대되는 구나:’
“9년이야.”
“그래, 9년.”
효린이의 집념이 느껴졌다 여전히 일편 단심이었다.
정우는 효린이의 그 마음을 지켜주려고 노력하겠지만, 설마 했다. 사춘기가 지나 면 달라질 거라 본다. 그때는 아이돌에 환 장하는 시기다. 사랑은 비슷한 연령과 만 나야 아름답게 포장이 된다. 나이 차이가 많을수록 주변의 시선은 싸늘하다. 서로 사랑하는데 웬 참견이냐고 할수도 있겠으 나, 그게 바로 선입견이다
“자 받0]:”
“나주는 거야‘?”
금으로 만들어진 나비 문양의 머리핀이 다 세공된 솜씨가 상당하다 중국 명인의 혼이 깃들어 있었다. 정우는 그것으로 만 족하지 않고 마법세팅까지 해 놓았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해
주는기능이 있지.”
“오빠가 해 줘.”
효린의 머리에 핀을 꽂아주고, 총관실 로 향했다. 업무 보고는 문주의 집무실이 아닌 총관실에서 이루어지기에 당연한 행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