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243화 (243/500)

정우는 처음부터 팽 가주가 협조를 부 탁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알고서 하는 질문이었다 돌아가기 전에 확실하게 마무 리하기 위해서 재차 확인 작업을 거쳤을 뿐이다 제 4장 팽가풍운 (4)

“그럼 제 역할은끝난 거군요.”

“그러네.”

“할 일을 마치지 않고 논공행상을 거론 하긴 민망했는데, 다행이군a.”

팽우경은 이맛살을 구겼다 혹금단주의 목적을 알았기 때문이다. 할 일을 마쳤으 니,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라는 의미 다. 제 입으로 축객령을 내린 상태라 물릴 수도 없게 되었다.

‘속을 긁는구나:

맘 같아서는 웃고 있는 혹금단주의 면 상을 후려치고 싶은 팽우경이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얄미운 놈은 생전 처음이다. 하지만 교묘히 유도한 혹금단주의 화술 에는 감탄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빈틈을 드러냈다고 는 해도.

“협상한대로 처리하겠네.”

“하면 제가 세운 공적은 어찌 되는지

요? 세부 규약에 공을 세우면 합당한 대 가를 지불하기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솔 직히 말 안 해도 가주께서 잘 챙겨 주시리 라 생각합니다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쓸데없는 노파심이었다면 죄송합니다 ?”

“공을 세웠다면 마땅히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있는 법일세. 그러니 괜찮네.”

“가주께서 그리 말씀해주시니 몸둘 바 를 모르겠습니다”

능청을 떠는 혹금단주의 언사에 팽 가 주와 팽 총관은 치를 떨었다. 말은 공손하 지만, 챙겨달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협상안대로 석가장 일대의 사업권을 금강문에 넘기는 것으로 끝내려고 했었다.

“원하는 조건을 말하게.”

“중국 정부의 외압을 막아주십시오.”

“그 말은 당의 처사가불공정하다는 뜻 인가‘?”

“그럴 리가요. 하나, 어느 국가를 막론 하고 자국 기업과 타 국가의 기업을 동등 하게 대우하진 않습니다 우리라고 다르겠 습니까? 다만 본문과 협약을 맺은 기업이 중국 기업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뜻입니다 그 어떤 불평등 없이.”

“그분인가‘?”

“세금 부분도 10년간 혜택을 받았으면

합니다.”

팽 총관은 흑금단주의 요구에 혀를 내 둘렀다: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세가에서 정부의 규제를 막아달라는 것이 크게 다 가오지 않올 수도 있겠지만, 내막을 알면 그렇지도 않았다 알게 모르게 정부는 자 국 기업을 살리기 위해서 규제를 하거나, 기술 도용을 용인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 로 국내에 들어온 기업의 기술을 빼돌려 서 자국 기업의 기술력을높였다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는 크지 않다 고 하나, 아닌 부분도 꽤 있었다 금강문과 협약을 맺은 기업이 들어와 자국의 주력 물품과 겹친다면 정부의 규제가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때마다 금강문은 협약 을 내세워 하북팽가를 거론할 것이다. 하 물며 기업도 선정되지 않은상태에서 10년 의세금혜택은지나쳤다

“너무 무리한요구가아닌가.”

“무리인가요? 하북팽가라면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봤는데. 죄송합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이쯤에서 포기하려고 했다.

팽 가주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저 말의 의미를 되새겨 봐야 했다.

들어주지 못하는 순간 세가는 정부에 힘 을 쓰지 못하는 종이호랑이로 전락흐]게 된다. 더욱이 흑금단주는 공적을 거론했 다. 객관적인 지표로 계산된 논공행상의 1 순위는 혹금단주였다. 그는 충분히 받을 만한 자격이 되었다

‘들어주지 않으면 세가의 결속력마저 혼 들린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봤자 내부에 서부터 소문이 퍼진 지 오래다 또한 대파 멸진에 대해서는 가문 내에서 아는 사람 이 많지 않았다. 가문은 물론 대외적으로 알려져서 좋을 게 없었다. 흑금단주는 이 걸 노렸을 것이다 눈 뻔히 뜨고, 알면서도 당해야 하는 상황이다. 들어주지 않으면 내부의 사정을 은밀하게 홀릴지도 모른다.

“들어주겠네.”

“가주 무리한요구 조건입니다”

“그럼 세가의 다른무인들은?”

“?…"그건.”

공을 세운 자에 대한 포상은 지극히 당 연했다 논공행상 1순위에 대한 포상이 이 뤄지지 않는다면 남은 순위들도 무의미해 진다. 그리되면 누가 세가를 위해 충성을 하고 목숨을 바치겠는가. 형식적이기는 해 도 해야 하는 일이다.

“가주께서는 역시 현명하십니다. 앞으 로도 본문은 팽가와의 협상에 최선을 다 해 응할 것입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네. 한데, 자네는 어 느 편인가?”

팽 가주는 넌지시 의향을 물었다. 정우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저야 당연히 3공잡니다”

“역시 그런가?”

“아무래도 자주 본 사이니까요. 정도 들었고. 한국사람이 정에 약하거든요.”

팽우경은 혹금단주의 속내를 파악하기 위해서 물었을 분이다. 하지만 이처럼 단 도직입적으로 말할 줄은 몰랐다. 선을 확 실하게 정해 놓는 타입임을 깨달았다. 그 점은 호쾌해서 마음에 든다

‘의심 많은 자에게 두루뭉술한 대답은 오히려 독이 되지.’

정우는 팽 가주와 같은 자의 속내를 모 르지 않았다 저런 자는 사람을 믿지 않는 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하면 뒷조사 를할게 분명하다. 그런 귀찮은수고는 하 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이제부터 노골적 으로 팽세기를 밀어줄 것이다.

“아 아가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결혼이란 인륜지 대사, 어디 둘만의 결 정으로 되는 일입니까. 자고로 가문의 어 른의 허락이 떨어져야 하는 일입니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팽우경은 기분이 나빴다. 얼핏 들으면 금강문에서 세경이를 탐탁지 않아 한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 말은 세경이를 원치 않는다는 뜻인 가?”

“그럴 리가요. 혹, 가주께서는 의향이 있는 겁니까? 본문에선 감히 아가씨를 원 할수 없어 삼공자가상처를받지 않는 선 에서 포기하려고 했었는데. 이런 경사가.”

팽우경은 실수했음을 깨달았다. 저런

식으로 나오면 대답이 궁색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놈의 꾐에 넘어갔음을 통감 해야 했다 딸 가진 부모의 심기를 혼든 것 이다. 이제 와 맘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면 금강문을 무시한 처사가 된다. 그렇다고 허락을 하자니, 혹금단주의 의도대로 끌 려가는 듯한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내 의사보다는 세경이의 마음이 중요 하네.”

“제가 너무 고리타분하게 고지식했군 요. 가주께서 이토록 개방적인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한수 배우고갑니다”

팽우경은 결국 의례적인 말을 해야만

했다. 세경이가 먼저 달려들었다는 걸 알 기에 속은 더 쓰리다 드륵

정우는 예를 갖춘 후, 문을 열고 나갔 다

팽우경과 팽 총관은 혹금단주가 나가 고 난 후에도 한참을 말없이 바라봐야 했 다.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고 해 도무방하다.

“무서운 놈이다”

“그렇습니다. 결코 가볍게 여기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뢰가 갔다. 혹금단

주는 한 번도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않았 다. 확고하게 본인과 금강문의 의사를 밝 혔다. 세경이를 탐내는 건 세가와의 지속 적인 관계를 원한다는 의미가 되었다.

‘한동안 협정을 유지해야겠군.’

금강문의 저력올 확인한 이상, 이대로 버리기에는 아까운 패다. 세가의 후계 구 도가안정될 때 중요한 역할을할수도 있 었다.

정우는 별채로 돌아왔다.

자리를 선점한 인물이 있었다. 강천은 아니다 세경이와 함께 드라이브를 즐기겠 다며 아침 일찍부터 밖으로 나갔다. 국제 면허증은 있냐고 물었더니, 세경이가 면허 증이 있다고했다

“대공자께서 어인 행차십니까?”

별채로 찾아온 인물은 팽세운이다.

얼마 전까지는 2공자였으나, 팽세천이 죽어 대공자가 되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대공자라 불리지 않았다. 세가 내부에서 도 팽세천의 죽음에 대해서 말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대공자라 칭하는 건 이때다 싶어 소가주의 지위를 탐하는 것으로 비 춰질수 있었다

“경솔한 성격이군.”

“그렇기도하고, 아니기도하지요.”

사람이 어떻게 매번 똑같아

그때그때 다르지.

팽세운의 두 눈은 흑금단주를 예리하 게 훑었다. 그는 모르겠지만, 자신은 대파 멸진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아버지와 형 의 계략에서 살아남았다면 범상치 않은 자였다. 그러나 진면목을 드러내지 않으려 는지, 경박해 보인다

‘이런 자가 겁천마검을 죽였다고?’

형의 동귀어진의 수로 힘이 빠졌다고는 하나, 상대는 겁천마검이다. 하북성에서 검으로 그를 상대할 자는 손가락 안에 꼽 힌다.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변방의 오랑 캐에게 당할 자였다면 자신이 직접 단죄했 을 것이다. 소문의 반만이라도 된다면 겁 천마검은 위험한 자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결과였다. 그래서 시험 해 보고 싶었다. 과연 겁천마검을 누를 자 격을 갖추었는지를. 그렇다면 끌어들여야 할자이기도 하다

“잠시 실력을보여줄수 있나?”

“절 시험하시려고 오신 겁니까?”

“직접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 편이라 서.”

정우는 팽세운의 의도를 간파하고 의

사를 밝혔다. 같이 대업을 도모해볼 만한 자인지를 테스트해 보겠다는 뜻이겠지.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팽세기 공자를 지지하니까요.”

“나를 세기보다 못하다고 보는 건가?”

기분이 나쁜지. 팽세운의 안면에 감정 의 빛이 드러났다 큰형이라면 또 몰라도, 세기가 자신의 상대가 되리라 보지 않는 다. 더욱이 세기는 근본도 모르는 여인의 자식이었다.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해서 동등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딱히 뛰어나디고 보지도 않습니다”

“어째서?”

“아니라면 예전에 소가주가 정해졌겠지

요.”

“소문대로 오만이 하늘을 찌르는군.”

흑금단주가 팽가에 와서 벌인 파격적인 행동은 소문을 확대시키기에 충분한 소재 였다. 오자마자 팽가의 무인을 두드려 패 며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줄모르고날뛰 었다.

“오만이 아니라 실력입니다.”

“자격이 안 되면 호된 경험을 하게 될 텐데.”

“색다른 경험이기는 한데, 공자는 아닙

니다.”

팽세운은 끓어오르는 분기를 다스렸다. 혈검을 일 합으로 죽인 자다. 자신은 아직 그럴 만한 힘을 갖추지 못했다. 그도 아니 면 감추고 있었던 회심의 카드를 끄집어내 야 한다. 당장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봤다. 무인은 항시 본인의 능력을 일정 부분 숨 겨야 하는 법. 드러내는 순간 상대는 대비 할 테고, 약점으로 작용한다 물론 알아도 어쩌지 못하는 절대강자가 된다면 또 모 르지만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 거야.”

“그럼해 봐.”

정우의 기색이 차갑게 식었다. 두고 보

자는 놈을 그냥 두지 않겠다는 의지가 살 짝 비쳤다. 앙금을 남겨둘 바엔 치워 버리 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오싸

팽세운은 자신을 옥죄는 기세에 소름 이 돋았다. 저항할 의지를 압살한다. 강하 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 는 줄은 몰랐다 그러나 자존심 상 이대로 물러서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후일 소가주가 될 몸이다. 이런 나를 적대시하면 금강문에도 좋지 않을 것이다?”

소가주가 된 이후라면 모르지. 하지만

그 전까지는 나를 무시해선 안 될걸? 막말 로 초명학이나 남천명보다 강한 것도 아니 잖아”

적의를 숨기지 않는 정우였다. 본색을 드러내며 팩트 폭력배다운 언행을 과시했 다 팽세운으로서는 초명학이 아니라 남천 명도 과분하다. 사실이기에 팽세운은 이 를갈뿐, 선뜻출수하지 못했다.

“봅고 싶으면 뽑아도 좋아. 단 다음 기 회는 없을거야”

정우의 나지막한 위협에 살의가 실려 있었다 잡고 있는 칼을 뽑는 순간, 베어버 리겠다는 의지가 깃들었다.

부르르!

살의가 거짓이 아님을 직시한 팽세운은 칼을 잡은 채 망설여야 했다. 팽가의 후예 라면 응당 모욕을 되갚아 주어야 한다. 그 러나 칼을 빼 들면, 저자는 망설이지 않고 출수를 감행할 것이다.

“?…여긴 하북팽가다!”

정우는 헛웃음이 나을 뻔했다. 좀 전까 지만 해도 대공자라 부르니 경솔한 행동 이라고 지적했으면서 소가주를 거론했다. 사람의 본성은 위기에 봉착해야 진실이 드러나는 법. 아직은 풋내 나는 애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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