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극에겐 대파멸진에 대해 알려주지 않 았다 버려졌음을 눈치챘올 땐 늦는다. 이 극의 상태를 보면 고문당했을 가능성이 컸다. 혼적을 보면 사혈에도 충격을 주었 다. 강도가 조금만 강했으면 죽음을 면치 못했올 것이다 제 4장 팽가풍운 (3)
“혹금단주의 동태는‘?”
“북경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팽 가주와 세가의 주력이 사혹문을 정 리하는 동안, 혹금단주는 고급 외제 차 를 렌트 해 북경 일대를 여행 다녔다. 가는 곳곳마다 술집과 맛집을 찾으며, 쇼핑을 하고, 돈을 뿌려대며 즐겼다. 남의 돈이라 며 전후 재지 않고 쓰는데, 법인 카드에 찍 힌 가격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카 드를 반납하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가 주의 지시로 카드를 주었다 준 걸 도로 뺏 는 건 가문의 체면상 하기 어려웠다
“수상한 점은?”
“ 없습니다”
“눈치를챈 거 같은가‘?”
“아닙니다.”
혹금단주의 동선은 오픈되어 있었다. 어디를 가도 은밀하게 접선을 할 만한 공 간과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첩영의 감 시 범위 내였다.
“그리고.”
“또 뭐?”
“아가씨께서 금강문의 삼남과 함께하십 니다”
“골치 아프군. 싫다고 하지 않았나?”
“그게, 대결에서 이기셨답니다?”
팽 가주는 딸의 식성을 알고 있었다. 혼 자서 앉은 자리에서 10인분은 너끈히 해 치우고도 남을 식성을 보유했다. 그런 딸 과 먹는 걸로 대결을 했다니, 사귀고 싶어 서 안달이 난 놈이 아닐 수 없었다. 하긴, 딸의 매력을 안다면 당연한 결론이었다.
“사내란 어쩔수 없군.”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건 또 무슨소리야?”
“두 분이 드신 음식 종류입니다”
명세서를 가지고 온 팽 총관이 가주에 게 내밀었다. 명세서는 한 줄이 아니라 여 러 겹이었다. 가지각색 다양한, 북경대반 점에 적혀 있는 요리 전부였다. 그것도 1인 분이 아니라4인분씩 시켰다
“가게의 일주일 치를드셨습니다.”
“쌍으로”
잘 어울린다고 해야 하는 건가:
팽 가주는 골이 지끈거려 머리를 짚었
다 아들의 죽음으로 뒤숭숭한데, 딸이 말 썽이었다. 이러다가 변방의 오랑캐를 사위 로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절대로 있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괜찮은 일일지도 모르는데.’
팽 총관은 내심 금강문의 삼남과 팽세 경이 이루어지는 편이 나을 수 있다고 봤 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해도 아가씨의 덩치로 좋은 남자를 만나기란 어렵다. 다 른 명문정파나 세가, 대기업에 연통을 넣 었지만 사진을 받은 후 잠잠했다. 실상 이 강천이 짝으로는 나쁘지 않은 궁합이었다. 그러나 속내일 뿐, 가주 앞에서 내색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다른 세가와문파의 동향은?”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하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니까”
“최단 기간안에 끝내려 할 겁니다.”
혹룡성과의 전쟁은 단순하지 않았다. 역사상 가장 강력한 힘을 구축한 정파다. 강한 힘을 분출시켜야 할 대상이 필요했 고, 혹룡성이 그 상대였다. 하지만 흑룡성 주의 능력을 간과하는 바람에 분쟁이 예 상보다 커졌고,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럼에도 정파는 전력을 투입하지 않 았다. 자존심이 걸려 있는 문제지만 내막 을 파고들면 각 문파 간에 전력을 소모시 키기 위해서였다 혹룡성이 사라지고 나면 정파가 그 자리를 또다시 관리하게 될 테 고, 분쟁이 일어날수밖에 없다.
그때를 대비해서 상대 문파의 전력을 소비시키고, 전력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 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팽가 가 사혹문을 멸문시키면서 다른 문파에서 도 가만있기 어렵게 되었다
“당분간 정비할 시간은 있겠군.”
“그렇습니다.”
주 전력은 아니더라도, 세가의 전력이 꽤나 소모된 상태다. 또한 팽세천의 죽음 으로 세가의 후계구도가 흔들렸다. 현재 팽세운과 팽세기를 중심으로 세가의 힘이 분열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사흑문을 대승 으로 이끈 팽세기를 후계자로 선택할 수 도 없는 노릇이었다. 여러모로 팽세운과 팽세기는 팽세천에 비해 부족했다
“완성률은?”
“80%입니다”
은밀하게 일을 진행시켰다. 이 일이 외 부에 알려지면 곤란하다. 하지만 완성된다 면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럼 팽가 는 최강의 생체병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신중을 기해야한다.”
“정보 범위를 최소화했습니다. 그리고 일이 끝나면 처리하겠습니다.”
시기가 문제일 뿐, 곧 대륙이 혼란의 소 용돌이가 될 것이다. 사파 무림의 격동을 단순하게 바라봐선 안 되었다 그때.
-흑금단주가 찾아왔습니다.
고심에 빠져 있던 팽 가주의 상념을 깨 웠다. 사전에 약속이 없었던 방문이었다. 당분간 혹금단주와 멀리하려고 했었기에 잊고 있었다. 그러나 알고 찾아왔는데 무 작정 내칠 수도 없었다
“들여보내.”
예
얼마 뒤, 흑금단주가 문을 열고 들어왔 다
정우는 예를 갖추었다. 형식적이기는 해도 그는 세가의 주인이다. 그에 합당한 대접을 해주었다.
“그동안 잘지냈나?”
“가주님의 배려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 습니다”
잘 놀고, 잘 먹은 티가 팍팍 났다. 윤기 가 좔좔 흐르고, 얼굴에 고민 한 점 보이 지가 않는다. 제대로 놀자판이었음을 얼 굴로 증명해주었다. 팽가 역사상 최악의 사태를 만든 장본인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뻔뻔함이었다.
눈 밑에 음영이 진하게 새겨진 팽 가주 와는 대조적이다. 제아무리 절대고수의 경 지에 올랐다 해도 자식의 죽음에 영향을 받지 않올 수는 없었다.
‘어느 것이진짠지 모르겠군.’
팽우경은 혹금단주의 패도를 보았었다. 세가의 한복판에서도 패도를 버리지 않았 었다. 반도의 오랑캐가 아니라면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을 만큼 강력한 무력도 갖추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영락 없는 한량이었다. 하루 종일 방구석에서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있을 뉘앙스다. 한 번 보면 그 사람의 내력을 파악할 수 있다 자부했던 안목에 빈틈이 생긴 것이다. 여 하튼 맘에 들지 않는다.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저도 심히 유감 으로 생각합니다.”
“그리 말해주니 고맙네만, 북무원주의 말과는 조금 다르군.”
“중국어가 서툴러서 오해가 생긴 모양 입니다.”
“그런가, 그런 것치고는 꽤 유창하군.”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쉬는동안
노력했습니다.”
노력하기는
매일 밖으로 싸돌아다니면서 놀았으면 서. 더욱이 북무원주의 말로는 주검이 된 팽세천을 푸주간의 고깃덩어리로 대했다 고 한다. 그 말을듣고 난후, 냉철한 팽우 경도 심기를 조절하는 데 곤란함을 겪었 다
“사흑문을 정리한 건 감축드립니다. 힘 이 많이 빠졌다곤 해도 사파를 구성하는 12개의 문파 중에 하나였을 텐데. 팽가의 저력에 새삼 감탄이 나옵니다”
“말치레는하지않아도 되네.”
“말치레라니요, 진심으로 드리는 말씀
입니다?”
“그렇다면 알겠네.”
팽우경은 입맛이 썼다. 겉으로는 가문 을 띄워주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사혹문의 문주와 주력이 일망타진 당했 다 본진은 주력이 빠진 무주공산이었다 그러나 부정하거나, 화를 내기도 애매 했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혹금단주는 있 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여우 같은 놈.’
용의주도하게 본인을 띄우고, 은연중 상대를 깔아뭉개고 있었다.
팽 가주와 총관은 혹금단주가 전투력
못지않게 심기도 뛰어난 자임을 직시하게 되었다 흐]지만 그를 의심하기에는 알리바 이가 지나치게 명확하다. 반전의 계기를 만들 단서나 증거가 없는 이상, 흑금단주 를 강제로 몰아붙일 수도 없는 현실이다
“저에 대한 의문은 이제 풀리신 겁니 까?”
“애초에 의문은 없었네.”
정우의 화술은 상대방의 허점을 찌르 는 데 능숙하다.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을 놓치지 않고 지적했다. 말하지 않 으면 그것 역시 방조가 되는 세상이다. 이 를 트집 잡으면 귀찮아질 수 있었다.
“보는 눈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신경 을 과하게 썼나 보네요. 오해였다면 죄송 합니다?”
“지금이라도 풀려서 다행이군.”
그러면서 팽 가주는 힐끔 총관을 보았 다. 들키지 않았다는 보고와 달리, 혹금단 주는 알고 있었다. 첩영의 감시 능력을 인 정하고 있었건만, 혹금단주의 감각이 예리 했다. 한편으로 감시가 붙어 있음올 알면 서도 태연하게 돌아다닌 걸 보면 배짱도 상당한 놈이었다. 어쨌든 감시자를 파악 해 놓았을수도 있기에 따져 물을수도 없 게 됐다. 서로 까발려 봤자, 손해 보는 사 람은 정해져 있었다.
“한데, 어인 일인가?”
“몇 가지 여쭈어볼 사안이 있어서 찾아 왔습니다. 마무리해야 할 일도 있고요.”
“ 말해보게.”
“혹룡성과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줄 압니다. 혹, 다른 문파에 무인을 파견 하실 요량이십니까? 그렇다면 본문에서도 협조할 의사가 있습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막 사혹문 이 정리되었을 분이다. 흑룡성엔 11개의 문파가 남아 있으며, 혹룡성주 진대악은 위험한 자였다. 그가 비장의 수도 없이 강 성한 힘을 가진 정파와 정면대결을 벌이진 않았으리라 판단했다.
“하고 싶어도 아직은 원조 요청이 오지 않았네. 그리고 금강문은 충분히 할 일을 해줬으니 관여하지 않아도 되네.”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러나 도움 이 필요하면 본문은 언제든 나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혹금단주는 팽가의 무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른 세가나 문파에 혹금단주에 대해서 알려지면 하북팽가는 힘이 없어서 반도의 문파를 끌어들였다는 오명을 뒤집 어쓰게 된다. 가급적 혹금단주에 대해서 는 알려지지 않도록 정보를 단속하고 차 단해야 했다. 그러니 원조 요청이 온다 해 도 금강문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해결 해야한다.
‘그러시겠지.’
팽가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사안이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