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 팽가풍운 ⑵
이호극은 요즘 심심해 죽을 지경이었다. 케이브도 잠잠하고,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좋겠는데. 어떻게 하면 이 심심함을 극복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다. 나이가 들어 서 그런지 몰라도 마음도 허하다.
평생 고민을 해 보지 않은 이호극이어
도 요즘은 신경이 쓰인다.
왜냐?
본격적인 깽판을 치기에는 보는 눈이 너무 많아졌다. 열렬히 환호하는 군중들 의 시선이 있기에 그 앞에서 망나니짓을 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예전처럼 주변을 의 식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인기 스 타의 비애임올 체감하게 되었다 스타가 되기 전엔 뭐든지 시켜만 주면 다 한다고 하면서 sns를 열성적으로 하지 만 정작 스타가 되면 피곤해하는 것처럼 사람이란 언제나 본인의 환경에 영향을 받는 간사한 존재였다. 그만큼 일관성, 즉 초심을 유지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본인은 아닐 것 같지, 하지만 사 람은 대부분 비슷하다.
“옛날이 좋았지.”
“작작하시죠.”
김 총관은 과거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일생일대의 실수는 금강문과 계약을 맺은 것이다. 선대의 약속이니 뭐니 취소해 버 리고 살았으면 인생이 고달프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말을 자신의 입으로 하긴 창피 하지만, 그는 엘리트였다. 금강문이 아니라 고 해도 대기업 임원은 가뿐히 될 수 있다.
“7}을 타나?”
“한서불침에 금강불괴면서.”
“속이 허하네.”
“그렇게 처먹고 할소립니까?”
가을 탄다면서 공깃밥 스무 그릇을 앉 은자리에서 처리한 인간이 속이 허하다 니.
김 총관은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내 가 중국에 갔어야 한다고 어찌나 노래를 부르던지, 노이로제 걸리시겠다. 정우가 만 들어 놓은 인기의 덫이 아니었다면, 문주 는 예전에 판을 부숴 버렸을 것이다. 그나 마 깽판을 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만 들어 놓아서 다행이었다.
‘이런데도 인기 있는 거 보면 신기하단 말이야’
정우의 매직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 었다. 간간이 마물을 퇴치해준 것도 득이 되었다 연관검색어에서 항상수위에 오르 는 걸 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속고 있다 고, 입이 근질거릴 지경이다
‘이러다가 설마?’
김 총관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최악의 대박 사건이다. 꿈에라도 그런 일이 생기 면 안 된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 라의 재앙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살짝 불안했다. 정우가 그리 는 큰 그림에 문주가 있었다. 하물며 중요 한 역할이란다. 이제까지 정우가 손댄 일 중 안 된 경우가 없었다. 하고자 한다면 반 드시 이루어 내었다
‘팽가를 들쑤셔 놓은 것만 봐도.’
정우에게 연락이 왔다. 일이 예상대로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외부의 힘을 이용해 팽가의 내부를 혼들고 이득을 챙겼다. 본 문으로서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었다. 이제 협정대로 이득을 챙기기만 하면 된 다
-한 가지 더. 팽 가주는 야심이 큽니다.
아마 하북성으로 만족하지 않을 겁니다.
김 총관으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방식 으로 대륙을 혼들 심산이었다 무서운 사 실은, 그럼에도 누구도 정우를 의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 서도, 설령 안다고 해도 어쩌지 못하는 구 도를 만들었다. 실로 무서운 간계였다. 당 하고 나서 억울해한다 한들, 아무도 들어 주지 않을것이다 띠링!
벨 소리가 울렸다. 이호극은 휴대전화 를 열었다.
정우의 문자였다
화면에 사진이 떴다.
“이건 뭐야?”
남자야 여入1야?
얼굴은 여잔데, 몸은 아주 튼실했다 금 강문의 기본공을 꾸준히 오랫동안 수련해 야만 나올 법한 육체다.
스크롤을 내려 봤다.
-며느립니다.
이호극과 김 총관은 할 말을 잃었다. 뒤 통수를 심하게 처맞은 기분이 들었다. 난 데없이 등장한 두 장의 사진, 두 떡대가 떡 하니 화면을 가득 채웠다 친구라면 또 몰 라, 며느리라니.
김 총관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 했다.
흐I?하하하■?… 케엑!
이호극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 다. 살짝 휘두른 다는 게 감정이 실렸는지 김 총관이 벽면으로 날아가서 틀어박혔 다. 조금만 힘이 셌으면 황천길로 직행할 뻔한 김 총관이었다. 가만있다가 처맞은 김 총관은 정신을 차리기가 무섭게 욕지 거리가 튀어나왔다.
“이 망할놈이, 허구한날주먹질이야!”
“그러게 왜 처웃고 지랄이야! 내 아들이 지금 남잔지 여잔지 구분도 안 되는 애를 만나는 게 그렇게 웃을 일이야?”
“웃기잖아 넌 안웃기냐!”
“당신자식이었어 봐; 웃기나.”
분명 옷기는 장면이기는 했다. 그러나 남의 자식이었을 때나 웃기지, 내 자식이 라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호극이 비록자식의 인생에 개입하는 부류는 아니더라도, 이건 좀 아니었다. 염 화를 꼬드겨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염화 보다는 못해도, 여자 같은 맛이라도 있어 야지. 며느리가 아니라 사위가 생긴 든든 함이다
“내 아들이 외모를 안 보다니, 그리 가
르친 적이 없거늘”
“성격을 봐야지, 외모가 다는 아니잖 아!”
“사람은 외모가 다야”
“외모 얼마 안 간다. 결혼하면 다 똑같 다고:
“개소리는 외모오래간다.”
이호극은 외모를 본다. 그렇지 않았다 면 지금의 와이프와 결혼하지 않았다. 예 로부터 여자는 외모 뜯어 먹고 산다고 했 다. 그리고 미녀는 나이가 들어도 미녀다. 얼굴뜯어 먹고살 거 아니면 마음을보라 고 하는데, 살다 보면 얼굴 많이 뜯어 먹 고 살게 된다. 노안이 나이가 들수록 제 얼굴을 찾아간다는 말은 자기 위안에 불 과했다.
“내 이놈을 당장!”
금강문의 후손은 여자의 외모를 무조 건고려해야한다.
왜냐고?
금강문은 무골을 타고났다. 골격이 크 고, 우람하며, 힘이 장사다 무공을 익히지 않아도 신력만으로 대적할 상대가 많지 않다. 문제는 여자가 태어났을 때부터다. 외탁을 하지 않고서는 혼인하기 힘든 육체 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화면에 스크롤이 더 남아 있었다
혹시나 해서 내렸다
-하북팽가의 금지옥엽니다.
사진을 내려 보니 팽세경의 신상 내력이 적혀 있었다. 가문과 가문의 결합에 정략 결혼만큼 좋은 방법도 없었다.
“나쁘지 않군?… 크악!”
김 총관은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벽면 에 처박혔다. 만화에서나 나을 법한 자세 가 되어 있었다. 이호극이 참지 못하고 주 먹을 뻗은 것이다. 이번엔 감정을 제대로 실었다. 김 총관이 말라버린 오징어처럼 미끄러져 내린다
“영일이 놈을 어떻게 구워삶지? 팰까?”
일단 저지르고 보는 방법도 있기는 한 데.
사혹문의 정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팽가의 가주가 정예를 이끌고 직접 나 서자 사혹문은 버티지 못했다. 혈해산장 이 지원을 오기는 했어도, 팽가의 주력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장 혈해산 장도 다른 정파 무림의 공격을 받고 있어, 전력을 다 빼지 못한 것이다 사혹문은 하 루 만에 함락당하고, 항복을 선언해야 했 다 팽 가주는 사혹문의 항복을 하북성 전 역에 알려 하북팽가의 건재함을 과시했 다. 그간 사흑문과의 결전이 길어지면서 하북성 내의 입지가 흔들렸었다. 특히 중 도 성향의 문파는 전쟁의 양상을 살피며 눈치를 보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 와 큰 의미는 없어졌다. 전투에서 승리한 이상, 하북성은 하북팽가의 뚯대로 재편될 것이 다 가문으로 돌아온 팽 가주는 첩영(課影) 의보고를 받았다 첩영은 총관인 팽자겸이 키운 정보 조 직이었다. 원래는 귀영각이 해야 할 일이 지만 팽 가주는 이극을 신뢰하지 않았다
“어떻게 됐지‘?”
“대파멸진이 발동되면서 증거라고 할 만한 게 대부분 소실되었습니다. 신뢰할 만한 단서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팽 총관은 회의적인 보고를 올려야 했 다. 사태를 보다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서 직접 석가장의 협곡으로 갔지만, 무너져 버린 협곡에서 단서를 찾아내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격이었다
“대파멸진은 확실하겠지?”
“3단계까지 발동되었습니다.”
대파멸진의 위력을 알기에 팽 가주도
총관을 추궁하진 않았다. 자신이 간다고 해도 그 안에서 단서를 찾아낸다 보장하 지 못했다. 그러나 가문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가 죽었다. 사태의 진위를 순전히 절 명사신의 증언에 의존해야 하니 답답함이 쌓여갔다
“혹금단주의 말을 신뢰할 수 있겠는 가?”
“그의 증언엔 허점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더 이상해. 약속한 대로 움 직였다면 대파멸진과 함께 사라졌어야 했 어.”
“저도 그 점이 수상했습니다. 대공자는
호기를 부려 전략을 노출시킬 성향이 아 닙니다”
허점이 없다 해도 절명사신의 증언일 분이다.
팽세천이 천무단과 함께 사혹문주와 동귀어진 했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 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절명사신의 증언 을 뒷받침할 증거가 있었다. 초명학의 수 급이 그증거다
“천무단이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어. 더 군다나 초명학의 무위는 천이라도 감당하 기 어려워. 설령 속성을 열었다 해도 사혹 문주 혼자도 아니고 장로들까지 있었을 텐데. 그게 가능한일인가?”
“흑금단주의 무력은 대공자를 넘어섭니 다. 혈검을 간단히 처리했다면 결코 호락 호락한 인물이 아닐 겁니다.”
“그렇겠지, 맞는말이야”
남천명을 패배시킨 혹금단주의 무위는 일반적인 수준을 벗어났다. 하물며 혈검 은 패배를 되돌려 주기 위해 절치부심했 었다. 날카롭게 벼려진 혈검을 단 일 합으 로 제압할 수 있는 무인은 대륙에서도 많 지 않았다.
“귀영각주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기는 했어도 아직은 거동
이 어렵습니다.”
“운이 좋아도 너무좋。!:”
이극은 엉망으로 망가진 채 돌아왔다. 부러진 다리 중 오른 다리는 수술로도 고 치기가 어려워 평생 절고 다녀야 할지 모 른다. 그러나 죽지 않은 것만 해도 천운이 따른 것이다.
초명학은 함정을 예상하고 이극을 통 해 정보를 파악하려고 했을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이극의 진술도 혹금단주와 같았 다
“이극이 배신했을 가능성은?”
“ 없습니다”
“짐작은 했을지 모르지.”
“그랬다면 순순히 따르지 않았을 겁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