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속물근성 (4)
너라니!
북무원주는 살면서 이토록 모욕적인 언사는? 두 번째네. 그것도 다 저놈이 지 껄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박하지 못했다. 혈검을 폭사시킨 무시무시한 광경 을 보고 나서 함부로 지껄일 수 있는 사람 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래도 그렇지, 자신 은 팽가의 원주다. 장로와 대등한 위치에 있었다. 반도의 일개 단주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이에 대한 정중 한 항의가 필요하다.
“말귀를 왜 못 알아들어, 고막을 뚫어 줘?”
“……아닙니다!”
“안이긴, 여긴 밖이잖아”
≪.2”
지금 무슨 말을 한 거지?
한국과 중국의 개그 코드가 다름을 확 인할 수 있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식 으로 대화를 하면 왕따 당한다.
언제 적 애드리브냐며.
당황한 북무원주는 허둥지둥했다. 뭔 가 답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마땅한 답변이 떠오르지 않는다. 순간 받아치는 순발력 과 센스가 없음을 한탄해야 했다.
“지금 내말 씹는 거야?”
“아닙니다.”
“여긴 밖이라니까”
“?…제가 뭘?”
“병신, 대답도똑바로못하네.”
병신이라니, 누가?
네가?
내가?
그래 네가?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닌가. 정정 보도를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 명해야 한다. 그것이 대국의 무인으로서 가져야 할 자부심이다. 소국은 대국올 넘 보지 말아야 하며, 대국의 무인을 존중해 야할 의무가 있다
“나는 말이야, 날죽이려고 한 놈들을 살려두지 않아”
“그건 혈검의 독단입니다!”
자부심은 개뿔
북무원주는 살려고 발버둥 쳤다. 저 인
간이 살의를 드러내는 순간, 자신들의 목 숨은 벼랑 끝에 몰린다. 그리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은 분명히 말렸다. 그런데 도 혈검이 독단적으로 달려들다 뒈진 것이 다. 그러니 책임은 온전히 혈검에게 있었 다
“그래도 혈검은 네놈들의 상관일 텐데 그리 말해도 되는 거냐? 대국의 무인이라 면서 의리가 쥐똥만큼도 없네.”
“의리보다는본 세가와금강문이 맺은 협정이 우선입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 을 대입해선 안 됩니다.”
“좀 전과 달리 혀가 매끄럽게 잘도 돌아
가네.”
살기 위한 궁여지책처럼 들린다.
누가 봐도?
북무원주는 속이 쓰렸다. 빈정거리는 게 분명한데도 따지지 못하고 있었다. 저 안하무인의 행동을 저지하지 못하는 자신 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어쩌랴? 무인의 세상은 무력이 본인을 대변한다 상대는 혈검을 분쇄시킨 강자였다. 저런 강자를 향해 달려들어 봤 자, 무의미한 만용이었다. 주먹이 깡패라 고, 억울하면 강해야했다
“이제 어쩔 거야?”
“어쩌다니요?”
북무원주는 되물었다.
정우는 피식거렸다. 잘 돌아가던 머리 가 시멘트도 아니고 그새 굳어 버린 모양 이다. 사태 파악이 우선이라고 떠벌리던 주제에 목적을 잊어버리고 살기 위해 발버 둥 치고 있었다. 이래서 사람은 궁지에 몰 려봐야 본성이 튀어나온다고 하는 것이 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아니면 여기서 왜 기다린 거야? 혹시 염탐이라도 하려 고? 그도 아니면 만약을 대비해서 누굴 처 리하려고 한건가?”
“……그렇지 않습니다. 가주께서 혹시라 도 사흑문이 빠져나올 때를 대비하라고 했습니다.”
핵심을 찌르는 정우의 비수와 같은 화 술에 북무원주는 심장이 덜컥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마치 알고서 말하는 느낌이었 다. 그런데 아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처 지다. 그걸 확인하는 순간 자신의 목숨을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죽었는지 확 인하고, 죽지 않았으면 처리하려고 했다고 말하면 가만둘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혹문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처리했
으니까.”
“다행입니다만, 과정을 설명해주셔야.”
단순히 처리했다고 다가 아닌 현실이 되 었다.
사흑문과 절명사신이 공멸해 버렸으면 사태만 수습하면 끝날 일이건만. 혹금단 주가 살아 있는 바람에 애초의 계획들이 모두 다 헝클어져 버렸다. 또한 가주에게 보고하려면 정확한 자초지종을 알아야 했다. 원주 체면에 가주 앞에서 모르쇠로 일관할 수도 없지 않은가.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일단사혹문 주와의 대결부터 말해야겠지.”
차분히 설명해주는 정우였다
의문점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놓았다. 일의 선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짜 맞추면 꽤나 그럴싸 한이야기가 된다.
“아 이런.”
“왜그러십니까?”
“빼먹올 뻔했네.”
“자 이거.”
마법아이템을 운용해서 아공간올 열었 다. 마법을 익히고 있다는 걸 알리지 않기 위해 불편하지만 마법아이템을 사용했다.
“?…초명학.”
“어때, 맞지?”
“이럴수가”
“의심되면 혈액 샘플 채취해서 검사해 보든가:’
“정말이군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가짜 수급을 가 지고왔을리 없다 겁천마검의 수급을 본 북무원주는 말 문이 닫혔다. 사실 설명을 들으면서도 설 마 하는 심정이었다. 초명학이 어떤 자인 가? 가주와 쌍벽을 이루는 검의 대가다. 하지만 대파멸진을 운용했다면 이해가 되 기는 한다
“그리고이것도.”
≪..2”
?상태가 좀 그렇지? 이것도 검사해 보려 면해도 돼.”
아공간에서 나온 몸뚱이에 북무원주 와 무인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사지가 절 단되었지만 모를 수가 없었다
“?…대공자!”
팽세천이 이런 꼴로 나타나게 될 줄이 야.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었다. 이건 계획 에도 없는 팽가 역사상 최악의 결과였다. 사혹문주를 죽인 쾌거조차도 묻혀 버렸 다. 대공자가죽었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 하단 말인가. 작전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 없게 되었다.
“함정에 빠진 초명학의 분노가 대단했 거든.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 어서 겨우 초명학을 제압할수 있었지.”
팽세천의 살신성인을 간과하지 않고 말 해주었다. 그의 공적이 있어서 초명학을 처리할수 있었다는 부언을 더해서.
“대공자가 겁천마검과 맞섰다는 겁니 까?”
“그래.”
“어째서요?”
“어째서라니, 이해가 안 되는데. 뭐가
잘못됐어?”
사혹문과의 결전은 하북팽가의 명운이 걸린 중차대한 일이다. 가문을 위해서라 면 본인의 목숨도 초개와 같이 버린다고 호언했던 자들이 왜라니?
세가의 대공자로서 가문을 위해 목숨 을 버렸으니 자랑스러워해야 마땅했다.
“……아닙니다:”
“여긴 밖이라니까.”
이것도 계속 들으니 중독은 된다.
짜증도 나고.
북무원주는 차마 이유를 설명하지 못 했다. 사혹문주와 절명사신을 대파멸진에 가두어 공멸시키려 했다고 어떻게 말하느 냔 말이다. 그랬다가는 혈검을 죽인 절명 사신이 가만있지 않을 게 분명하다. 평상 시에는 예의를 차리는 척하지만, 본성은 사나운 폭군이었다 건드리면 언제든 폭발 할 준비가 되어 있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 전소와 같았다. 한마디로 재앙을 몰고 다 니는 사내였다.
“가문올 위한 일이니 죽어서도 행복할 거야. 그렇지?”
“?…그렇습니다”
정우의 능청스러운 연기도 한몫했다. 의중을 전혀 모르겠다는 제스처가 압권이 었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라고 조언했 다. 그런 절명사신의 순수함이 답답함으 로 다가왔다. 뭘 알0}야묻고 답을 흐}지.
북무원주로서는 속으로 끙끙 앓는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앓느니 죽지?’
이유 불문 북무원주와 팽가의 무인들 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대공자를 도와 마 무리하라는 가주의 명올 어긴 꼴이 되었 다 그 앞에서 정우는 공을 논하고 있었다. 마음은 이미 콩밭에 가서 콩을 수확하고 있는중이다 뭘줄지 기대에 부풀었다.
“사혹문주도 죽이고, 비록 몸뚱이에 불
과하지만 대공자도 주워 왔으니 기대되는 걸. 흐]?하하하”
헐
북무원주는 둔기로 뒤통수를 세게 처 맞은 기분이었다. 남의 세가를 초상집으 로 만들어 놓고서 한다는 말이 가관이다 저래도 되나 싶을 만큼 공적에 눈이 멀었 다 대공자의 죽음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음이 분명했다.
“표정들이 왜 그래? 대승이라고 안 기 버?”
“대공자가죽었습니다!”
“그게 뭐?”
“?…그 무슨!”
이게 사람인가?
본인의 공적에만 관심이 있었다. 죽은 사람도 죽은 사람 나름이지, 팽가의 대공 자를 짐짝처럼 던져놓고.
“대승을 위한 작은 희생은 필연이잖아. 왜이래, 유치하게.”
사혹문의 문주를 죽이고, 핵심 무력을 와해시켰다. 대승이라고 한 건 맞다. 팽가 의 대공자를 버려, 사혹문을 무너뜨렸다 면 수지 타산은 맞았다. 그러나 팽가로서 는 역사에 길이 남을 무인을 잃었다
“이번 협정서에 뚜렷한 공적을 세우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요구할수 있도록 명 시한 건 알고 있겠지?”
정우는 팽세천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 았다. 공적을 탐하는 속물근성을 유감없 이 발휘해주었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데다가 대공자를 잃은 북무원주와 무인들만 속이 탈 뿐이 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지는 것도 아니고, 살아 있을 때나 잘하면 되지. 죽어 버린 시체는 어차피 고깃덩어리잖0K”
북무원주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치 가 떨리도록 화가 났지만 차마 터뜨리지 못하고 분을 삭여야 했다
‘이 망할놈, 네놈부모가죽었어도 이리 말할수 있는 것이냐!’
가문의 후사가 죽었다. 그 앞에서 할 말 이 있고, 못할 말이 엄연히 있었다. 그런데 절명사신은 남의 일로 치부해 버렸다.
‘흥, 내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당연히 이 렇게 안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