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237화 (237/500)

제 3장 속물근성 ⑵

정우는 부상병동이 된 혹금단과 함께 협곡에서 빠져나왔다. 사지가 불편하기는 해도, 다들 불평 한 마디 하지 않았다. 기 어서라도 행렬을 따르는 흑금단원들의 처 절함은 홉사 텔레비전을 뚫고 나온 귀신처 럼 느껴진다

‘대파멸진은 나중에도 써먹을 수 있겠

어.’

정우는 대파멸진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면밀히 분석했다. 좋은 건 홉수하고, 내 것은 나누지 않는다. 지극히 합당한 정우 만의 철학이다.

마지막 진강백이 펼쳤던 결계와 호환성 이 좋았다. 몇 가지 단점이 있기는 해도, 보완하면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팽가 전체에 쳐진 결계와 비슷한 면도 있고.’

그 점이 가장마음에 든다.

대파멸진은 팽가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

한 결계를 변환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 고 결계의 대부분이 비슷한 성질을 가진 다. 안과 밖의 시야를 가리거나, 효과적으 로 방어하기 위한수단이다. 즉, 완벽한 방 어야말로 결계의 최종 형태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올 하면 완벽한 방 어는 곧 완전한 감옥이 된다. 대파멸진은 결계의 이런 특성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 다 대파멸진의 설계도는 이극을 통해서 공 수했기에 오래 걸리진 않을 것이다. 완성 된다면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어주는 훌 륭한도구가 된다.

뭐, 서로 믿지도 않았지만, 아무려면 어 떠냐, 잘만 사용되면 그만이지.

‘남은 건 팽가가 알아서 하겠지.’

마무리는 온전히 팽가에 맡기기로 결정 했다. 나서서 하겠다고 하면 의심을 살 수 있다.

팽 가주라면 팽세천의 죽음을 은밀하 게 조사할 테고 인과를 찾아내려고 안간 힘을 쓸 게 확실하다. 제 자식 죽었는데 나몰라라하는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그 것도 가장 아끼는 자식이 채 꽃을 피우기 도 전에 비명횡사를 했는데.

교훈이 되겠지, 이불 밖은 굉장히 위험

하다는걸.

그러게 캥거루처럼 자식을 품 안에 넣 고살았어야지, 왜 내보내.

그러니까 나를 만나는 거다

“소가주가 되려면 훈련이 좀 필요하겠 어.”

정우의 중얼거림에 팽세기의 안색이 시 거멓게 죽어 갔다. 훈련할 생각만으로도 앞날이 깜깜했다. 혹금단의 지옥 수련을 경험했기에 더욱 그렇다. 하나, 거절은불 가다. 단주가 하겠다고 하면 할 수밖에 없 는 처지다 위안이라면 하늘 같았던 큰 형 을 제치고 소가주의 자리에 올라설 기회 가 생겼다는 것이다. 남자로 태어나 세가 의 주인도 되어보고, 겉으로 보기엔 성공 한인생이다.

‘그럼 뭐하냐고.’

팽세기는 체념했다. 발악한들, 단주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무얼 어떻게 했는지 몰라도 영혼이 먼저 바짝 엎드린다. 그리고 그나마 필요할 때 잘해 야 했다 쓸모가 다하면 폐기 처분 대상에 오를수 있었다.

“팽가로 간다:’

“예, 단주”

막 발걸음을 내디딜 때.

-너에게로 가는 길, 다시 시작하게 될 테니月

휴대전화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발신자를 확인했다

-〈入7 하라〈入2

정우는 이름을 그대로 쓰는 편이지만, 하라가 제 맘대로 적어놓았다. 하트가 4개 는 있어야 한다며. 꼭 그래야 하느냐고 물 었더니, 자기는 특별해야 한다고 주장했 다 또한 특별관리대상이라며 여자 이름을 검사까지 했다. 번호를 저장해서 sns까지 꼼꼼히 검수해주었다. 국민여동생이라 일 상이 바쁘다면서 그럴 시간은 있었다. 이 분이랴. 자기 휴대전화도 아니면서 만날 때마다 비밀번호까지 검수한다.

“연애는 피곤한 거구나. 전화는 일주일 에 한 번 하면 되지 않나? 살아 있는지만 확인하면 됐지 전화를 매일 왜 하는 건지 모르겠네.”

중국에 출장 간다고 말만 해놓고 여태 연락하지 않았다.

카톡의 메시지 창상태를 보니 사진이 걸리지 않은 상태로, ‘외롭다’라는 단어가 적혀 있기는 했었다. 여태 같이 찍은 사진 으로 도배를 해놨으면서 언제 다 지운 건 지.

“어, 웬일이냐?”

-하,어이가 없네.

목소리가 날카롭다. 여자들은 알다가 도 모르겠다.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아서 엉겨 붙다가도, 몇 분 지나면 토라 져서 앵앵거린다. 전생에선 다들 좋아하 는 표정만 지었는데, 너무 풀어준 모양이 다

“뭔데 또?”

-또라니, 지금 그게 사랑하는 사람한테 할소리야

주변에 사람 없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도 언성을 높이고 있었 다. 국민여동생의 사나운 성깔이 밝혀지 면 곤란할텐데.

“내가 뭘?”

-몰라서 물어, 적반하장도유분수지.

그럼 몰라서 묻지, 알고서 묻나. 말 이상 하게 했다. 아 이런! 한숨 소리가 들렸나? 거칠어진 하라의 음성은 휴대전화를 투영 하여 쩌렁쩌렁 울렸다.

“내가 분명 출장 간다고 했잖아”

-시간이 오래 걸리면 오래 걸린다고 했 어야지. 일주일째 연락도 안 하고, 누가 보면 놀러 온 걸로 오해하겠다. 금

강문의 공적인 업무를 위해서 온 출장이 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다면, 복날 개님 처럼 매타작을 당하는 수가 있었다.

“공적인 일이야”

-공적은 개뿔. 여자 만났지? 아주 다사 다난하시던데.

“여자를 언제만나?”

-강천이 카페 가봤거든

강천은 이번 기회에 국제 여친을 만들 어 보겠다며 호언장담을 했었다. 실상은 꽝이지만, 사진이야 얼마든지 무단으로 촬영해서 올려놓을 수 있었다. 합성사진 앱도 많아서 본인 위주로 편집도 가능했 다. 중국은 아직 그런 쪽으로는 한국보다 철저하지 않았다. 만나는 여자들마다 사 진부터 찍더니, 이런 용도로 사용하고 있 을 줄은 정우도 몰랐다.

-별명도 영웅호색이던데. 대체 뭐 하려 고중국간거야?

“내가 강천이도 아니고, 너 그거 병이 야.”

-지금 날 의부증 환자로 모는 거야?

의부증 맞구먼.

그래도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지는 않 았다. 이만하면 나름 하라를 배려해 주고 있었다 전생이었다면 거들떠도 안 봤다

“누가 또 그렇대?”

-지금 말이 그렇잖아

“볼륨 그만 올려, 예전엔 안 그랬는데. 원래 사귀면 이런 게유”

-그럼 화상통화로 해, 주변 돌려 봐.

하라는 의심이 되었다. 정우가 워낙무 뚝뚝하기는 해도,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 았다. 저 인간이 작정하면 안 넘어올 여인 이 없을지도 모른다 윤정이 그 앙큼한 년 도 아닌 척하지만 수상하고. 특히 중국은 남친을 보내지 말아야 할 국가 중에 하나 였다. 혹여, 요즘 유행하는 지카 바이러스 에 감염될 수도 있었다.

“적당히하고끊어.”

-오랜만의 통환데 한 시간은 해야지.

“국제전화잖아”

-수신자부담으로 해줄게. 됐지?

“할말 없어. 만날보면서 뭔 말을 해.”

-그게 여자 친구한테 할 소리야? 아무 생각 없는 것도 남자 친구로서 직무 유기 라고.

정우는 전화 통화로 질질 끄는 걸 선호 하진 않지만 들어주었다. 여자는 들어주 는 남자를 원한다고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났다.

‘그래도 한 시간은 너무한 거 아니냐?

그렇게 전화하고서 왜 만나서 얘기하자는 거야?’

전화 통화를 하며 가는 길에 아는 얼굴 을만났다

사실 대기하고 있는 걸 알고 있었다 만 약을 대비해서 팽가의 가주가 보낸 비장 의 병기였다. 그새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 지, 그때와 인상이 많이 바뀌었다

“이런, 오랜만입니다. 남 호법님.”

정우가 반갑게 손을 들어 인사를 하자, 남천명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만약의 사태 시 대공자를 보필하도록 명을 받았다. 한 데, 와야 할 사람은 오지 않고 혹금단주가 나타났다. 주변의 흐름이 통신 장애를 일 으켜 연락이 되지 않았기에, 대파멸진의 영향 밖에 대기하고 있었었다. 사태 파악 이 되지 않아 무턱대고 살기를 드러낼 수 도 없었다.

“어찌된 영문이냐?”

“아; 잠깐만요, 전화좀하고?”

정우는 손으로 제지를 하며, 하라와마 저통화했다

하라의 전화가 먼저였으니 남천명은 응 당 기다려야 했다. 그게 매너 있는 되놈의 바른 자세다 요즘 되놈들은 노 났는지 남 의 나라 가서도 시끄럽게 떠들고, 담배 피 우고, 침 뱉고, 가관이기는 하다. 물론 여 긴 되놈 나라이니 담배 피우고, 침 뱉어도 된다.

“너 자꾸이럴 거야?”

-내가 뭘? 난 널 좋아한 죄밖에 없어.

“좋아하면 믿어줘야지.”

-난 널 믿어.

“나도널 믿어. 됐지?”

-그럼 사랑한다고 말해줘. 하아, 꼭 이 런 말까지 내가 먼저 해야 하는 거야? 나 도 사랑이 고픈 여자라고.

“사람들 있어.”

-있으면 좀 어때? 내가 창피해! 내가 안

아 달래, 선물을 사 달래? 나는 그저 사랑 한다는 말이 듣고 싶을 뿐이야 왜 그렇게 내마음을몰라 하라의 한 서린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 렸다. 어지간한 거리가 아니면 다 들린다. 더욱이 무인은 귀가 굉장히 밝다. 속닥거 리기만 해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고수의 반열에 오를수록 귀는 예민해진다 부글부글!

남천명은 순간 어이를 상실할 뻔했다. 중요한 통화인 줄 알았건만, 고작 애인과 의 통화 때문에 자신의 물음을 끊어낸 것 이다. 한국어로 하고 있기는 해도 번역기 가 있어서 금방 해석이 되었다. 해석이 잘 될수록 울화가 치민다

“흑금단주,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인가?”

“통화중입니다?매너를 지키세요.”

이래서 되놈들은 안 된다는 표정이 압 권이다. 기본 에티켓을 배워야 대국이 될 수 있는 법이다

“내 말이 말 같지 않다는 것이냐?”

“누가 그렇대요?”

남천명의 살벌한 살기에도 정우는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통화를 재개했다 왜 대화를 자꾸 끊느냐는 하라의 목소 리는 분위기를 악화시키는 윤활유였다.

옆 사람 좀 조용히 시키라는 말이 모두에 게들렸다

부르르르!

남천명은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하지 못했다. 혹금단주와의 악연을 상기하면, 보자마자 달려들지 않은 것만 해도 많이 참은 것이다. 한데, 이놈이 자신을 아예 없 는 사람처럼 무시하고 있었다. 이런데도 참는다면 자존심도 없는 놈이 된다

“네놈! 죽고 싶은것이더냐?”

음산하기까지 한남천명의 일갈

화아앙!

살기가 공력과 융화하여 일대에 소요를

일으켰다. 그의 경지가 일전에 비해 많이 올라갔음을 실감하게 해주었다. 잘 벼린 칼처럼 언제든 선혈을 붐어낼 듯 날카로웠 다

-뭐야 이 소름돋는목소리는?

X 봐라”

-인상 죽인다. 사람 잡아먹을 상…이 네.

“다너 때문이잖아?”

정우가 영상통화로 돌려 남천명을 보여 주었다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는 남천 명의 분기가 영상을 통해 고스란히 전달되 었다. 특수 분장을 하지 않아도 좀비물이 가능했다.

-일하는 거면 일한다고 했어야지. 헤헤.

“내가 일한다고 몇 번이나 말한 걸로 아 는데.”

여차하면 녹음한 걸 틀어주겠다고 하 니, 하라도 더 이상은 투정 부리지 않았다.

-알았어, 끊어. 그래도 내가 사랑하는 거알지?

“안다,이년아”

정우의 마지막 말은 듣지도 않고, 전화 를 끊었다.

딱 봐도 싸움 나기 일보 직전이고, 자신 이 기름을부었다는 사실을눈치챘다. 이 럴 때는 또 눈치가 굉장히 빨라졌다.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으면서도 전혀 걱정하지 않는 무사안일이었다. 상대가 여자였다면 달라졌겠지만.

“보채지 좀 마시죠. 예의 없이 뭐 하는 겁니까’?”

“나를 능멸하는 것이냐!”

“제가 언제요?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 면나도참지 않습니다. 혹 일전의 일을잊 으신 겁니까'?”

웃으면서 말하지만, 정우의 말투는 싸 늘했다.

공손히 대우를 해줄 때 알아서 기라는

명백한 협박이기도 했다. 패배한 개새끼 주제에 설치지 말라는 부언은 주변의 수 하들을 감안해서 묵음 처리해 주었다.

“방심했을 뿐이다. 네놈에게 또다시 그 런 운은 없다?”

“그래서 한판 해보시겠단 말처럼 들리 는데요. 설마 협정을 어기시겠다는 겁니 까?”

“그렇다면 어쩔 테냐?”

“하하, 이거 내가 어지간히 얕보였던 모 양이네.”

정우의 말투도 바뀌었다

존대에서 하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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