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그럼 나는? (7)
‘크으윽, 이 정도였었나?’
격돌의 파급력에서 물러난 이극은 자괴 감마저 들었다. 자신이 비록 정보를 담당 하는 귀영각의 각주라고는 하나, 무인이었 다 무공 수위가 수련한 세월에 꼭 비례하 지는 않는다곤 해도, 저 두 사람의 나이는 자신의 반 토막에 불과했다. 그런데 격의 차이는 세월을 압도적으로 넘어섰다 자신 은 도달하지 못할, 위의 위에 있는 절대자 의 격돌이었다
‘아니?’
이극의 두 눈이 또 한 번 놀라고 말았 다
대공자의 무지막지한 전력을 막아내고 있는 혹금단주의 검법으로 인해.
‘저 검법은…… 겁천마라검식.’
검을 사용하기에 의문이 들기는 했다. 전력을 다하는 대공자의 도강을 막아내려 면 본신의 절기를 펼쳐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흑금단 주는 겁천마라검식을 펼쳐내고 있었다
‘도대체가?’
이극의 잘 돌아가는 머리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겁천마라검식은 초명 학의 절기다. 이를 아무에게나 가르쳐주지 는 않을 것이다. 초명학의 수제자가 아니 고서야 그렇다면 혹금단주가 초명학의 숨겨진 기명제자였다는 말이 되는데, 상식적으로 불가능했다 혹금단주는 금강문에 소속되 어 있었다 이런 오해를 팽세천도 당연히 할 수밖 에 없다. 초명학의 지옥마검을 들고 있는 것도 그렇고.
“사흑문의 간세였구나!”
“뭐 눈엔 뭐만 보인다더니.”
“더 이상 네놈의 간교한 혓바닥에 속지 않는다”
“네가 하면 전략이고, 내가 하면 수작 이냐. 그런 법이 세상에 어디 있는 거야. 좀 일관성을 가져라. 이런 거 보면 사람이 라는 족속들이 간사하단 말이야”
본인이 할 때는 대단한 전략 전술인 양 떠벌리면서, 반대로 당하면 간교한 수작이 나 암계로 몰아간다. 전략과 전술은 원래 객관적인 단어다. 그걸 사용하는 건 인간 의 몫이고.
차라리 당해서 억울하다고, 나쁜놈이 라고 욕을 하지. 이상하게 말을 돌려 가며 명분을 만들려고 애를 쓴다. 그게 다 뭐라 고. 허술하든, 허술하지 않든 당하고 나면 아무짝에도 소용없다.
“팽가의 이름으로 네놈을 단죄하겠다!”
“자꾸 이름 들먹이지 마라, 너는 팽가 아니면 말 못하냐.”
가문이 자길 지켜줄 거란 맹신도 이 정
도면 병이다
눈에 핏발이 선 팽세천은 정우와 전력 으로 부딪쳤다. 서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격전이 결계 안을 들쑤시고 있었다.
위력은 점점 더 상승해 갔다.
화룡점정의 시간이다.
정우의 두 눈이 차갑게 식었다.
-겁천마라검식, 지옥혈.
검식을 완벽히 익히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사용해 보고 나니, 몸에 익는다. 그때부터 정우는 겁천마라검식의 절초를 펼쳐 나갔다.
‘딱보면 견적이 나와야 했는데.’ 초명학과 접전을 펼친 이유가 여기에 있 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절기를 모두 끌어 내야 했다. 그래야 팽세천의 몸에 잘 새겨 넣을 수 있었다. 어지간한 초식을 사용하 면 눈치 빠른 팽 가주가 의심할 것이다. 최 소한 팽가의 대공자에 걸맞은 초식이어야 한다.
푸악!
막아선 팽세천이 핏물을 거칠게 토했 다. 충격이 육신을 강타하며, 전신혈맥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전력과 전력이 부딪 친 결과에 그는 믿지 못할 얼굴이 되었다.
혼원벽력도법의 극의, 만뢰신강(萬雷神 I朝을 펼쳤다. 한데, 부딪침과 동시에 뇌강 이 산산이 부서지며 충격이 전신으로 파 고들어 왔다. 전력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 는 현실이었다. 격의 차이가 너무 심했다. 절명사신의 전투력이 이렇게까지 강했다 면 전략을 다시 짰올 것이다. 여태까지 능 력을 숨긴 놈의 간계에 화가 치밀었다.
“우릴 속였구나! 이 더러운 배신자!”
“난속이지 않았어. 처음부터 믿지 않 았을뿐이지.”
속는 놈이 병신인 세상이다. 누가 더 잘 속이는지가 중요했다. 그리고 애초부터 시 작을 한 쪽은 하북팽가다 배신을 하지 않 았다면 사혹문을 처리하고 하북성을 온 전히 수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북팽가 와 금강문의 역사에 길이 남을 아름답고 평화로운 협정이 되었을 텐데. 아쉽게도 배신과 모략으로 진흙탕이 되어 버렸다
‘순리대로 되었다면 내가 더 섭섭하겠지 만, 그럴 가능성은제로지.’
온전히 협상대로만 진행했다면 정우는 실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팽가가 순순히 따르지 않을 거라는 전제를 깔아 놓고 진 행시켰다. 인간의 본성을 알고 있다면 당 연한 수순이었다.
“가문을 속이고, 중원을 농락한 네놈
을 하늘을 대신해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말하지 마라, 꼭 내가 악당 같 잖아.”
오해하지 말라는 정우의 대답이었다.
순간 닭살도 돋았다. 격언이나 속담도 아니고, 하는 말들이 왜 이렇게 구태의연 한지.
겁천마라검식올 펼쳐 팽세천의 왼팔을 어깨부터 잘라주었다.
스적!
잘려 나간 왼팔이 허공으로 치솟아 오 르자, 정우는 기다리지 않고 권공을 발출 했다 좌수는 권공이, 우수는 검공이 자유자
재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격언처럼 겸손하게 따로 논다. 오 른팔과 왼팔이 이처럼 자유분방하려면 양 의심공을 극성으로 익혀야만 가능했다. 실로 놀라운 기행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당하는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푸슥!
매끄럽게 잘려 나갔기에 수술로 붙이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우는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 다
크아아악!
팽세천이 비명을 내지르며 잘린 왼팔을
내려다보았다.
믿기 힘든 현실과 조우하고 말았다. 자 신이 누군가, 팽가의 대공자이며 대륙에 명성을 떨칠 천고의 기재다. 그런데 한낱 변방의 오랑캐이자 간세에게 팔을 내주고 말았다.
“팔 하나 사라졌다고 찡찡대기는.”
자기 팔 아니라고 서슴없이 막말을 하 는 정우였다.
본인 팔은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네일 숍에 들러 손톱 손질까지 꼼꼼히 하면서. 이율배반의 극치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 었다.
원래 인간의 대부분은 자기중심적이기 에 정우는 하등 미안해하지 않았다 오히 려 지극히 당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남 의 집 염병보다 내가 걸린 코감기가 신경 쓰이는 것처럼. 팽세천의 팔 절단은 남 일 이었다. 왼팔이 잘리면 오른팔로 밥을 처 먹으면 되는 것처럼. 장애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극복하면 된다
“이놈! 죽여버릴 테다!”
부지불식간에 외팔이가 된 팽세천은 이 성의 끈을 유지하지 못했다. 제아무리 고 고한 척 폼을 잡아도 후기지수의 한계를 드러냈다 무작정 전력을 뿜어내며 절명사 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쯧쯧
정우는 혀를 찼다.
냉철하게 달려들어도 사정이 별반 다르 지 않올 텐데, 저러면 답이 없다. 결과는 이제 정해졌다. 사실 애송이한테 시간을 너무오래 끌었다.
촤아악!
정우와 팽세천이 교차했다.
마주한 등이 서로를 향해 돌아섰다
스륵!
미끄러져 내린다
팽세천의 신형이 휘청거렸다. 절벽이 무
너지면서 허공에 선 그는 떨어져 내리고 있는 다리를 물끄러미 바라봐야 했다. 의 도치 않은 순간 다리와 생이별을 하고 말 았다
“크아아아악! 이 악마 같은놈!”
“악마라니, 그렇게 심한 말을”
화들짝 놀란 시늉을 하지만 지나치게 가식이었다 누가 봐도 엄살이라고 생각할 만큼 어설프다. 그래서 사람을 더 화나게 만든다. 본인 딴에는 심사숙고해서 한 행 동이나,아무렇게나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 가 맞아 죽는 이치와 비슷하다.
여하튼 그 돌멩이 누가 던졌을까?
처맞은 팽세천은 안다.
“다리 하나 잘렸다고 찡찡대기는.”
데자뷔인가.
좀 전에 했던 말 같았다. 흐}지만 정우는 전혀 거리낌 없이 반복했다. 듣기에 따라 서는 아주짜증 나는 단어 선택이었다. 엄 살이라고 하기에는 다리 하나, 팔 하나가 작지 않았다. 불편함은 없어져 봤을 때 확 연하게 티가 난다. 막말로 화장실도 가기 편찮아질 수밖에 없다.
서걱서걱!
정우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발악을 하며 버티고서는 팽세천의 남은 팔과 다리 를 잘라 주어 몸뚱이만 남겼다.
이어지는 찌르기는 단전을 관통했다.
허억!
헛바람을 들이 삼킨 팽세천의 동공엔 강도 9.0의 지진이 발생했다. 아랫배에서 불에 지진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러나 사지가 잘려 나가 몸뚱이만 남았다. 발버 둥을 친다 한들 변하지 않은 잔인한 현실 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르르!
무심히 내려다본 정우.
팽세천은 피눈물을 홀리고 있었다. 자 신에게 일어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은 것 이다. 팽가의 대공자로서 대륙에 위명을 날리며 비상할 날만 기다렸건만, 오늘이 명년 제삿날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놈에 게 빌지는 않는다. 그건 죽는다 해도 받아 들일 수가 없었다. 죽기 전까지 저주를 퍼 부을 것이다.
“……아버지가 네놈을 용서치 않을 것이 다!”
“그럴 리가, 나는 빗발치는 사혹문의 공 세에서 네 녀석의 몸뚱이나마 구한 팽가 의은인인데.”
정우의 목적에 팽세천은 분노마저 잊고 말았다 상상만 해도 소름 돋는 잔혹한 현 실이 그러졌다. 이는 관전하고 있던 이극 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다죽어 가는 사람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니건만, 비극에 비극 을 더해주었다
“네놈의 말을 믿지 않으실 거다!”
“낙관론자네, 하지만 네 몸뚱이에 난 검식과 초명학의 대가리면 충분히 납득이 될 테지.”
정우의 차분한 설명에 팽세천은 부들 부들 떨었다. 납득하고 싶지 않지만, 만약 그렇다면 아무도 의심하지 못한다 아니라 고 반박하려면 대파멸진을 펼치기 전까지 의 계략을 빍'혀야 한다. 스스로 팽가의 이 름에 먹칠하는 격이 된다. 심증은 가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것이다 설 령 사실이라 한들 가문의 명성을 위해서 함묵할 수밖에 없다.
지독한 계략이다.
만약 이 모든 상황을 절명사신이 유도 한 것이라면?
오싹!
팽세천은 죽어 가면서도 소름이 돋았 다. 이대로라면 팽가도 안전을 보장받기 어렵다. 놈이 이대로 멈추지 않으리란 걸 깨달았다. 절명사신은 처음부터 팽가와 대륙을 노리고 온 것이 분명했다.
“……악마다! 네놈은 최악의 악당이다!”
“그러지 마, 나도 나름대로 살려고 전략 을 세운 것뿐이야. 애초에 네가 배신하지 않았으면 사흑문을 간단히 처리했을 거 야 안그래?”
합리적이고 합당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지극히 결과론적인 발 언이었다.
현실은 사혹문과 하북팽가 모두 정우 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난 격이다. 그리고 세상은 팽가의 절묘한 전략으로 사혹문을 처리했다고만 알 것이다. 그 이면에 숨겨진 계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분이랴 정우는 사혹문을 처리한 1등 공신이 된다
“억울해하지 말자, 서로 속고 속였잖아. 내가 더 잘 속였을 뿐이야 다들 그렇게 살 아가는거지.”
“? …네놈올 죽어서도 용서치 않을? … 것이다!”
“그래, 그 마음 이해해. 어련하겠어. 나 같아도 저주할 테니까 다 받아들일게. 살 짝 무섭네, 지옥 갈까 봐. 크크크크!”
인색하지 않은 정우의 아량이다. 그러 나 죽어 가는 팽세천에게는 악마의 가식 에 불과했다. 놈으로 인해 팽가는 씻지 못 할 최악의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 런 줄도 모르고 금강문과 협상을 했다니, 최악의 실수다
“잘가;’
“?…이…… 악마?… 크억!"
정우는 심장을 찌르고, 두 눈을 후벼 팠다.
잔인한 행동이지만, 마땅히 행해져야 하는 절차였다. 왜냐고? 함정에 갇힌 초명 학이라면 이렇게 했을 테니까. 화가 솟을 대로 솟은 놈이 시체를 온전히 놔둔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어쩌랴? 이렇게 해야 그럴듯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담의 진실이란 원래 잔인함 속에서 피어 나는 법이다. 잔인하면 잔인할수록 미담 의 강도도 강해진다.
“어때요? 이만하면 초명학본인이 했다 고해도 믿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