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던 혈운장의 경 력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허무하게 사라지 며 원래의 흐름으로 돌아왔다. 마치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은듯 쉴드의 지척에 생긴 웅덩이가 아니었다 면 장력이 분출되었는지도 모를 평온함이 자리했다 제1 장
겁천마검 (4)
“아니?”
왕청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혈운장은 그의 성명 절기다. 절정의 고 수도 한 줌의 핏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자신했다. 그런 장기가 맥없이 막혀 버렸 다. 하지만 단순히 막아냈다고 해서 이렇 게까지 놀라진 않는다. 막아내는 과정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방어의 기본인 막고, 흘리고, 받아내는 삼박자가 완벽한 호흡으로 이루어졌다 그 렇기에 더더욱 놀랍다. 고수는 하수의 공 격을 눈을 감고도 막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그것이 어렵다. 설령 격차가 있다 해도 저토록 완벽한 방어를 하진 못한다. 게다가 저들에게서 느껴지 는 기운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다. 마 치 한 배에서 태어난 쌍둥이 형제처럼 호 흡은물론공력, 생기마저 일정하다.
‘막아내는 건 둘째 치고, 내 기운을 홉
수했어.’
공력의 홉수는 위험하다. 성질이 다른 공력을 홉수하게 되면 가지고 있는 공력 과 상충하여 오히려 파멸을 부추긴다. 그 런데 저놈들은 공력을 흡수하고도 잔잔 한 호수처럼 변화가 없다. 같은 심공을 익 혀도 사람마다 성질이 다르건만, 비현실의 극치였다.
하나, 정파의 무공에 공력을 흡수하는 심공이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 는 사술이자 마공이다.
‘그렇다면 절명사신도.’
절명사신의 무력은 정상적인 범위를 넘
어섰다. 마기가 느껴지지 않는다고는 하나, 충분히 일리가 있었다.
“마공을 익히다니, 그러고도 네놈들이 정파란 말이더냐!”
“그런 말해도 못가.”
“모두 쳐랏, 놈들은 사특한 마공올 익 혔다.”
“아무도 못가.”
쉴드는 벽창호가 되었다.
오직 주군의 명을 받들 분, 저들이 뭐라 고 떠들건 애초에 관심이 없었다. 마공으 로 몰아 마인 취급을 해도 의미를 두진 않 았다. 주군이 그렇다면 그런 거였다. 다른 의미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로 여태까지 왕청은 개소리를 한 것이다.
“홉성마공을 익혔다 해도 한계는 있는 법, 단숨에 끝내 주마!”
흡성마공은 닿기만 해도 공력을 흡수 하기에 상대하기 까다롭다. 그러나 공력을 무한정으로 흡수하진 못한다. 받아들일 수 있는 공력에 한계가 있었다. 그 이상으 로 흡수하면 공력을 통제하지 못해 폭주 하고만다.
우우웅!
왕청은 공력을 10성까지 끌어 올렸다
장로들에게도 눈짓을 보냈다. 공력을
한 점에 집중시켜 발출시킬 심산이다. 소 모되는 공력의 양이 많겠지만, 시간을 질 질 끄는 것보다는 낫다고 봤다.
A컵이 C컵이 될 때까지 영혼까지 끌어 모으기가 무섭게.
“한 줌도 남기지 말고 사라져라”
5명의 장로가 전력을 퍼붓자, 그 위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각기 다른 공력을 출수 하기에 한 번에 흡수하기도 어려웠다. 피 하지 않는다면, 설령 피한다 해도 혈전대 가 버티고 있었다. 도망치게 되면 진형이 흐트러지고, 좀 전과 같은 방어는 불가능 할 것이다. 어느 쪽이라도 상관은 없었다.
‘자부심이 지나치구나, 애송이들!’
왕청은 더 이상은 요행이 일어나지 않으 리라 확신했다. 마공은 강하다. 그러나 마 공이라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다.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공력올 쭉쭉 늘릴 수 있다 면 세상은 마공 천지가 되었을 것이다. 쉽 게 얻은 공력이니만큼, 안고 가야 할 업보 또한 컸다.
꽈아아앙!
지축을 혼드는 파공성과 함께 칼이 담 긴 돌풍이 사방을 휘몰아쳤다 그것도 잠시, 흉험했던 파장이 가라앉
았다.
“저럴수가!”
“말도 안돼!”
“어떻게?”
막아냈다. 그리고 와해시키며 흡수했 다. 눈앞에서 보고서도 믿어지지 않는 비 현실의 극치. 퍼펙트한 방어였다. 저럴 수 도 있나 싶을 만큼 완벽해서 평온하기까 지 하다. 저것이야말로 방어의 교과서다.
“주군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 못 간 다:’
“그렇게 알아들으라고 전하라 하셨다”
“못 알아들어도 상관은 없으니 절대 못
간다.”
“그러니 우릴 넘지 못하면 아무도 못
가.”
“가고싶으면 한번 넘어 봐.”
쉴드는 제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그 리 힘을 쓰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그동 안 익힌 방어술이 발동되었다. 마물사냥 을 통해 완성된 방어술이다. 이제는 눈을 감고서도 펼칠 수 있으며, 다들 한마음이 되었다.
‘주군의 말대로야.’
‘겁낼 필요 없다고.’
‘한놈도보내지 않겠어.’
내색하지 않았지만, 쉴드도 놀랐다.
이렇게까지 방어가 잘될 줄이야. 방어 가 천직이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했 던 서울대 법대생처럼, 방어가 제일 쉬웠 다고 말하고 싶을 지경이다. 솔직히 위험 할 거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젠 안심이 된다. 현재로써는 타격이 전무했다. 공력 흡수로 오히려 더 강해졌다. 이대로라면 언제라도 막아낼 수 있었다.
하나, 인생이 그리 쉽게만 될까?
쉴드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럴 줄알고.
“접근전을 펼쳐라”
왕청은 방법을 바꾸었다.
놈들의 말 같지도 않은 방어력은 상식 을 벗어났다. 한 타 싸움으로 밀어붙이다 가는 오히려 공력이 소진되어 낭패를 면하 기 어려울 수 있었다. 특히 장력은 놈들에 게 먹잇감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이 걸리겠 지만 접근해서 차륜전을 펼치는 편이 나 았다.
채애앵!
전륜원앙진(轉輪窓意陣)을 구성한 혈전 대가 쉴드를 포위하며 병장기를 휘둘렀다 방패와 창, 장칼, 단칼로 구성되었는데 쉴드의 사각을 지속적으로 노려 체력과 공력의 소모를 노린다 왕청과 장로들도 가만 두고 보지는 않 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절기를 펼쳐내 며 쉴드의 제공권을 흔들어 놓고, 반격을 불허했다.
퍼어엉, 퍼어엉!
장로와 혈전대의 공격이 시기적절했다. 첫 공방만으로 쉴드의 약점올 찾아낸 것 이다 경험과 연륜, 관록을 보여주었다.
‘어쩐지 잘된다 싶더라’
‘방심은 금물이었어.’
쉴드는 정신없이 공세를 막아내야 했 다. 반격은 꿈도 꾸기 힘들 파상공세였다. 사혹문의 장로와 혈전대의 뭉쳐진 살의도 쉴드를 힘들게 했다. 빠져나가려고 해도 용이치 않은, 그야말로 사로가 되었다 그렇게 공수공방이 10분간 이루어졌 다
‘투로가보이잖아’
‘예측한대로야.’
‘우리 몸 같지 않아.’
절체절명의 위험한 상황인데 쉴드는 자 기 집처럼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번 데기를 벗고 세상으로 나온 나비처럼, 절 정의 방어술을 선보였다.
보이고, 예측하고, 따르고. 이보다 더 완벽한 방어는 없다시피 하다. 그분이랴, 속성까지 발휘되어 저들의 흐름을 잡아먹 고 있었다. 수동적인 방어가 아니라 적극 적인 방어의 형태였다.
10분이 더 흘렀다.
오싹!
왕청은 소름이 돋았다.
차륜전을 펼친 혈전대가 쉴드의 방어에 되레 먹히고 있었다. 거대한 흐름이 되어 혈전대를 몰아붙였다.
‘이대로는 안된다’
접근전을 활용한 차륜전이라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건만, 명백한 착각이었다. 놈들은 이 와중에 발전해 방 어력을 보완했다.
-공력을 극성으로 끌어 올리고, 속성 을 전부 개방해라.
오히려 장기전이 위험했다.
왕청은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이대로 이 애송이들에게 잡아먹힐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속성을 개방해 놈들의 흐름을 끊어내고, 빈틈을요격해야만 승산이 있 었다. 혈전대의 속성능력자에게는 공력흡 입, 흐름방해, 공간굴절이 있으니 가능할 것이다.
후아앙!
빙혼의 입김은 극한극음의 냉기를 머금 고 있었다. 강력한 눈바람이 휩쓸고 지나 간 자리는 서리가 내린 듯 얼어 버렸다 암 반마저도 냉기를 버티지 못하고 맥없이 부 서져 버렸다. 한여름에도 스키장을 완성 해 버릴 경이로운 한기였다.
촤아아^H
살을 에는 추위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빙혼이 연이어 공세를 이어 나갔다. 역으 로 말하면 여태 정우를 맞히지 못하고 있 다는 의미가 되었다. 극빙의 바람을 드래 곤의 브레스처럼 사용하는데, 제공권을 공략하지 못하고 있었다.
“위력은 인정해 줄게. 하나, 맞히지 못 하면 무의미해.”
현현보를 펼치는 정우는 광속질주하며 시간을 잡아챘다 본인의 시간은 느려지는 가운데, 초명학의 시간은 다급하게 만들 었다. 속도로 인한 시간의 차이가 벌어졌 다. 그 격차를 줄이기는 어려웠다 역량의 차이, 즉 격이 달랐다.
크어어엉!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한 빙혼이 포효하 며 사방으로 절대극한의 냉기를 분출하지 만, 정우의 꽁무니를 추격하는 데 그쳤다.
그 와중에 정우는 초명학의 제공권을
좁히고 있었다. 단순히 피하는 걸로는 만 족하지 않았다. 공간을 좁히며 압박을 가 했다.
이는 물리적, 심리적 둘 다를 충족시켰 다
파파팡!
빙혼과 합을 맞추며 절명사신을 노렸던 초명학의 두 눈은 불신으로 가득 찼다.
놈의 속도는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 버 렸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따르지 못할 속도였다. 밥만 먹고 보법을 연성해도 저 와 같은 경지는 불가능했다. 속도의 차이 가 지나치게 커서, 따라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속도만 따지고 보면 대륙에서도 놈을 따를 자는 천기신행(天氣神行) 순영뿐 일 것이다.
‘어떻게 이런 놈이 있을수 있지?’
반도의 오랑캐에 불과했다. 대국의 무인 인 자신이 속성올 꺼내 들고서도 절명사신 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 채 밀리고 있었다.
자존심 상하는 현실이다
‘살려두지 않겠다. 반드시 죽이고 말 테 다’
초명학은 절명사신의 잠재력이 두려워 졌다. 지금도 이런데 놈이 더 강해진다면 대국은 놈의 발아래 짓밟힐 수도 있었다.
중화의 굴기를 위해서도 싹을 잘라내야 한다.
아직은 방법이 있었다.
스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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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명학은 겁천마라검식의 절초를 사용 해 빙혼과 합격을 이루었다. 전력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려 최후로 나아갔다. 빙혼의 냉혈풍과 겁천마라검식의 결합은 적절했 다. 추격하지 못했던 속도를 그나마 잡아 챌수 있었다.
“그런다고 될것 같아?”
속도의 차이가 현격했다. 속성과 함께 절묘한 합격을 이룬다 해도 다가서지 못할 격차가 있었다. 그만큼 정우의 속도는 미 쳤다고 할 만큼 빠르다. 초음속의 무인이 라불려도 손색이 없다.
쌔애행!
광속을 벗어난 맹렬한 속도.
정우의 신형이 직선과 곡선을 마구잡 이로 그리며 초명학의 감각을 흐트러뜨렸 다.
마침내 사각을 점했다.
-현천삼도 1식 일보전광.
빛살같이 치고 들어간 정우의 도격이 공간을 꿰뚫는다.
휘릭!
도격이 관통했다.
“ 걸렸다.”
초명학이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그는 속도에서 절명사신을 따르지 못한 다 판단하고 방법을 바꾸었다. 속도에서 밀린다면 공간을 장악하기로 한 것이다. 빙혼은 바람을 뿜어내면서 곳곳에 냉기를 남겨 두었고, 절명사신이 최후 초식을 펼 칠 때를 기다렸다. 반드시 접근하여 목숨 을 노렸던 수를 쓰리라 판단했다
-빙혼대결계(氷魂A結界) 빙옥(氷獄).
농부가 봄에 볍씨를 부려 가을에 수확
을 하듯
초명학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놈 이 주둥이를 털어도 묵묵부답으로 일관 하며 분노한 척했을 뿐이다.
휘이잉!
빙혼대결계가 펼쳐지자 공간이 새하얀 얼음으로 뒤덮였다. 호흡하는 공기마저 빙 혼의 의지가 깃들었다. 빙혼이 공간과 하 나가 되어 전체를 지배했다. 그 결과 절명 사신의 속도를 감지해 잡아챌 수 있었다 쩌저적!
정우의 육신이 빙결에 뒤덮여 순백의 동상이 되었다.
3D프린트로 찍어낸 얼음동상과 같다.
내지른 쾌도, 만면에 드리운 미소는 승리 를 확신하고 있었다. 굳어져 버린 육신은 얼음덩어리가 되어 초명학의 면전에서 멈 추었다
초명학은 절명사신의 도극을 바라보며 득의했다.
“크하하하 잘난 체하더니 꼴좋구나!”
이제 막 위명을 등에 업은 주제에 입을 너무 털었다. 신성이면 신성답게 겸손해야 했다. 오만과 빗나간 패기가 죽음을 자초 한 것이다 쩌적!
얼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웃을때가아닐텐데.”
빙결의 온도는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뒤덮이는 순간 피부는 물론 혈액까지 얼어 붙어 동사해 버린다. 그런데 인간의 신체 중 귓불과 더불어 연약한 입술이 얼지 않 은 채 나불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주둥 이만 살아서 나불거린다는 게 뭔지 보여주 었다.
“?…너, 어떻게?”
'三그보; 괜찮아?”
의문을 해소시켜 주기보다는 안부를 묻는다.
“헛소리하지……크윽!”
“거봐, 무리해서 웃을 때가 아니라니 까.”
“ 언제?”
초명학은 가슴을 내려다봐야 했다. 멀 쩡했었던 가슴이 점차 붉어지고 있었다. 자신에게 닥친 비현실에 망연자실해졌다. 심장이 꿰뚫렸음을 지금에서야 알아차린 것이다.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일인 가?
현실은 참담했다
심장이 멎으며 온몸의 피가 빠르게 식 었다. 육신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공력을 사용해 막으려고 했으나, 무리였 다. 심장만이 아니었다. 단전에서도 핏물 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허
기력이 빠져나가자 초명학은 허탈해졌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