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겁천마검 ⑵
크음
초명학은 눈앞에 펼쳐진 현실을 냉철하 게 받아들였다.
상대는분명 굉장히 젊었다. 저 나이 때 의 실력을 초월했다. 하지만 검은 거짓말 을 하지 않는다. 검신을 통해 전달된 절명 사신의 공력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자신 조차 동년배였다면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 다. 자질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자부했건만, 강호는 넓었다. 언제 든 믿기 힘든 천재적인 재능과 역량을 갖 춘 자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렇기에 누 구도 천하제일을 함부로 거론하지 않는 것 이다
‘다른놈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절명사신 외에 5명의 기운만이 자리하 고 있었다. 팽세기를 비롯한 팽가의 주력 이 도주할 시간을 버는 줄 알았는데, 그렇 지도 않았다. 위로 올라갈 시간과 거리를 계산해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치 협 곡에서 사라져 버린 듯했다. 인간은 바람 앞에 사라지는 연기가 될 수 없다. 그렇다 면 다른 흉계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결계를 쳤구나.”
“알고 있었을텐데.”
초명학은 협곡에 들어오기 전부터 함정 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협곡의 흐름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이 넓은 공간에 들어오고 나서야 깨달았다 실상 결계가 있다 한들, 문제가 될 거라 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좀 걸릴 뿐, 부숴 버리면 그만이었다. 무엇보다 자신은 일문의 수장이자 대표다. 망신을 당하고 서 결계가 두려워 추적을 멈추었다면 세간 의 비웃음거리로 전락할수 있었다.
“후후후, 이딴 결계로 날 막을수 있을 거라 보느냐?”
“보통은 막기 어렵지만, 이건 좀 달라. 팽가에서 제대로 공을 들였거든. 그러니 당신 정도 되는 무인도 이제야 눈치를 챈 거지.”
허술한 준비였다면 무인의 날카로운 감 각을 벗어나기 어렵다. 조금만 흐름이 이 상해도 감지하고 방향을 바꾸거나, 추격 을 멈추었을 것이다. 이를 충분히 고려해 서 만들었다. 팽가가 바보가 아닌 이상 통 하지도 않을 진법에 시간과 자금을 낭비 했겠나. 수도 없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효 과가 있다고 판단을 내렸기에 투자한 것이 다
‘팽가에서라고?’
마치 남의 문파를 대하듯 거리감이 있 었다.
홈
초명학이 두 눈에 의문을 새겼다. 그리 고 보니 놈의 공력은 팽가의 독문내공심 법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었다. 겉으로 드 러난 외관이 전부가 아닐지라도, 저만한 자를 비밀리에 만들어 내려면 팽가의 정 수를 쥐여 주어야 했다. 절대고수가 하늘 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이 세상은 단 순히 재능만으로 통용이 되진 않는다. 그 에 걸맞은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전폭 적인 지원을 해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듯, 어려운 현실 속에서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너는 팽가의 무인이 아니구나?”
“팽가 따위가 날 키울 순 없지.”
초명학은 헛기침이 나올 뻔한 걸 간신 히 억눌렀다 비록 하북성을 두고 자웅을 겨루는 적이라고 하나, 하북팽가를 만만 히 보진 않았다. 대륙에서 하북팽가를 저 딴 식으로 부르는 자는 손에 꼽을 것이다: 하물며 절명사신은 하북팽가를 위해 싸 우고 있었다. 하북팽가를 개무시하고서 하북팽가를 위해서 싸우다니, 논리에 맞 지 않는다
“네놈은 대륙인이 아니구나.”
“눈치 빠르네.”
남의 나라 싸움에 개입해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세작의 표정과 비슷해진 정우였 다. 그 나라가 어떻게 되든 말든 상관하지 않겠다는 방관자적 뉘앙스까지. 아주 적절 하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울화와 죽빵 을 불러일으킨다.
“대륙의 신성한 결전에 외인을 끌어들 이다니, 팽가도 예전만못하군.”
“됐고, 결판이나 짓자고. 주둥이가 왜 이렇게 길어.”
초명학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건 이 있었다. 하북팽가가 한국에 눈독을 들 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상대는 한 국 무림의 무인일 가능성이 컸다
“반도의 오랑캐 주제에 중원의 일에 개 입하다니, 주제를 모르는구나.”
“중화라는 말 같지도 않은 자부심은 개
나 줘 버리시지. 그런다고 네놈들 세상이 되진 않아. 왜냐고? 그런 꼴은 내가 못 보 거든.”
“나라가작으니 짖기는잘 짖는군.”
초명학은 절명사신의 무위를 인정했다. 저만한 실력을 가진 자는 중원에서도 혼 치 않았다. 하지만 상대가 중원의 무인이 아닌 반도의 오랑캐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지금도 저런데 시간이 지난다면 대륙의 큰 방해물이 될 게 분명하다 싹은 자라기 전에 꺾어 주어야 하는 법, 팽가의 가주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흐름이 읽히지 않는다, 과연 보통 진이
아니구나:
팽가는 절명사신을 미끼로 던져 사로잡 거나, 묶어두려는 것이다.
차도살인지계, 계략으로서는 최상의 전 략이다. 그러나 자신은 반도의 무인으로 인해 시간을 지체할 생각이 없었다.
“죽기 전에 남길 유언은 있느냐?”
“마치 다 이긴 둣이 말하네 그 말 그대 로 돌려주지. 여기가 마지막일 테니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
초명학은 비웃었다. 한국은 예전부터 그래 왔다. 강한 척해 봤자, 결국에는 무 릎을 꿇었다. 그것이 한국의 본성이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강자 앞에서는 언제나 바닥에 머리를 박고 조아렸다. 제가 살기 위해 삼배구고(三拜九마])도 마다하지 않았 던 잡것들 주제에 세상이 바뀌었다며 천 지분간을 못하고 있었다. 상국은 언제나 상국이다
“끝까지 주제를 망각하는군. 그래 봤자 소국의 버러지에 불과해.”
“땅이 넓고 대가리가 많으면 통하는 시 대는 지났어. 그리고 너희는 대국답지 않 잖아 쪼잔함을 따지면 밴댕이 소갈머리보 다 못한 주제에 대국인 척은 차라리 그냥 다 내가 가지고 싶다고 선전 포고를 하라 고. 왜, 아직은 그럴 배짱이 없나 보지? 그 러면서 대국처럼 굴기는 개불.”
정우는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자긍심을 찔렀다. 겉으로는 대국이라 자 칭하면서 탐욕을 부린다. 차라리 욕심이 많음을 인정하고 세계를 상대로 담판올 짓든가. 그렇다면 대환영이었다.
‘혼란은 언제든 변수를 제공하거든.’
정우는 중국인의 욕심을 탓하진 않았 다 그건 인간본연의 본성이고, 자기 나라 에 대한 자부심은 당연했다. 그 어느 나라 도 굴욕이나 치부가 없는 나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치부를 반성하고 발판 삼 아 나아갈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오냐, 대륙의 진정한힘을보여주마”
“마치 네가 대륙의 대표라도 되는듯이 말하네. 고작 일개 성을 놓고 다투는 주제 에. 혹시 지금 그 말 흑룡성주한테도 해 봤냐?”
사혹문은 흑룡성에 소속된 12개의 문 파 중하나다
초명학이 하북성에서 명성을 날리는 도 객이기는 하나, 혹룡성주에 비하면 부족 함이 있다. 흑룡성주를 비롯한 우내십천 으로 불리는 자들이야말로 대륙의 진정한 무인이었다. 사혹문주와 팽 가주는 우내 십천의 아래였다. 이것이 현실이다.
빠드득!
제대로 먹혔다. 초명학의 냉철한 심기를 어지럽혔다. 비록 우내십천에 속하지는 않 는다 하나, 대륙삽십육강에는 든다. 또한 우내십천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자부 하고 있었다. 문제는 사실이라고 해도 대 놓고 말하면 화가 치밀기 마련이다:
‘되놈들이란. 쯧쯧쯧!’
혼자서는 아무것도 아닌 못난 놈들이 수만 믿고 설치고 있었다 정우는 우내십천, 대륙삽십육강, 중원 백강을 믿지 않는다. 그게 무슨 대수랴 명 성이나 별호가 실력을 드러내는 진정한 지 표는 아니었다. 압도적인 무력이 있으면 주 변에서 떠들어 댄들, 개 짖는 소리에 불과 했다
“후회하게 해주마”
“ 얼마든지.”
“버려진 주제에 허세 부리지 마라”
“버려진 놈한테 지면 꼴이 우스울 텐데, 감당할수 있겠어?”
초명학은 한편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놈이 대체 뭘 믿고 이리 자신하고 있 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설마 자신을 감 당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인가? 설령 그 렇다 한들 문파의 장로와 혈전대가 버티 고 있었다. 고작6명으로 뭘 할수 있다고 저리 태연하지? 혹、본인이 버려진 패임을 모르는 것인가? 그럴 가능성은 희박했다. 대면은 오늘 처음이지만 이놈은 영악하 다 사리 분별이 되지 않을 만큼 무모하진 않았다
“썰은 풀 만큼 풀었을 테니,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나도 내가 얼마나 강한지 요 즘은 모를 지경이거든.”
“허세가 지나치다못해 미쳐 버렸구나?”
“허센지 미친놈인지는곧 알게 되겠지.”
“죽어서도 잊지 못하게 해주마”
초명학은 절명사신의 눈빛을 읽었다. 허 세로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자신만만하 다. 저 눈빛의 의미는 너희 따위는 나 하나 로 족하다는 자신감의 발로였다 패배라고 는 새겨지지 않은, 강자의 순수한 자신감 이다.
그래서 더 거슬린다
감히 자신을 두고 저딴 말도 안 되는 몽 상(夢想)을 품고 있다니. 팽가의 가주도 자 신을 상대로 저토록 자신하지는 못한다. 오늘 일생에 큰 실수를 했음을 영혼 깊이 새겨주어야했다 스윽!
정우는 쉴드를 남겨 두었다.
케이브를 통해 마물 사냥에는 적응이 되었다 하나, 오늘과 같은 상황은 쉴드에 게도 버거울 수 있었다. 그러나 반드시 거 쳐야 하는 통과 의례다. 버거운 현실을 피 해만 가서는 발전하지 못한다. 어려움을 정면으로 맞서고, 극복을 해야만 한 단계 이상의 성장을할수 있었다
“알아서 살아남아.”
“예,주군.”
정우는 쉴드를 보호해주지 않을 계획 이다. 그 어떤 상황이 닥친다 해도, 쉴드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해야만 한다. 이전 처럼 의존하고 있다면 거기까지다. 쉴드의 목적은 절대방패, 그 용도를 다해야 할 때 가다가왔다
‘주군께서 우릴 믿고 계신다’
‘반드시 신뢰에 보답하겠어.’
‘오늘은절대 죽지 않을거야’
사혹문의 장로와 혈전대는 수도 많고, 무력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들을 상대로 살아남으라는 명령은 누가 봐도 가혹한 처사였다. 그러나 달리 보면 신뢰하지 않 고서는 하기 힘든 명령이다. 자신들의 능 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주군이었다. 주군이 그렇다고 하면 마땅히 그리 될 운 명인 것이다
‘살아남으려나?’
정우는 쉴드의 능력을 안다. 가르쳐 왔 으니, 당연했다. 그러나 쉴드의 잠재된 능 력까지 속속들이는 모른다. 그저 그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맹목적인 쉴드를 보고 있자니 살짝 미안해진다. 선 별해서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빵셔틀이나 하며 근근이라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조 기 단명시키는 게 아닌지.
‘되면 좋고, 아니면 하는수없지.’
유명을 달리한다면 식구들에 대한 연
금은 보장해줄 수 있었다.
부글부글!
절명사신의 방만한 행태에 초명학은 분 노했다. 자신을 앞에 두고 허언을 지껄이 다니. 결코 편히 죽이지 않을 것이다 또한 이 대결을 오래 끌어선 안 되었다. 팽가의 정수가 담긴 결계였다. 어떤 상황이 벌어 질지 예측하기 어렵다. 놈을 제압하는 즉 시 결계를빠져나가야 했다.
초명학의 육신에서 뻗어 나간 극혈패공 (極血事功)의 9성 공력이 격렬한 와류를 형 성했다가 사라졌다. 진기의 운용과 출회 수가 극한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다. 갈무리된 공력은 외부에서 가늠하지 못한다.
“끝까지 주둥이를 나불댈 수 있다면 칭 찬해주마”
“내 주둥이를 단속하려면 그걸로는 부 족할걸?”
초명학이 천인혈행보를 펼쳤다
슈아앙!
9성의 공력의 보법은 빛을 초월하는 둣 하다. 나아가는 의지와 일맥상통했다. 공 간을 끊어낸 극상승의 보신경을 선보였다
“ 빠르네.”
정우도 속도 대결에 한 발 보탰다.
‘나도오랜만이거든’
간만에 주변 눈치를 보지 않고 맘껏 활 개 칠 무대를 만들었다 보는눈이 없어서 더 좋다
대파멸진은 분명 위험한 진이지만, 단 계가 있었다. 시동을 거는 1단계와 기운을 흡수하는 2단계. 그리고 마지막 3단계를 발동시켜야만 완성된다
‘누르고 싶으면 눌러도 된다’
같이 죽을 용기가 있다면.
현현보를 밟으며 나아가는 정우의 얼굴 에 화색이 만개했다 오늘만큼은 맘껏 놀 아본들 탓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역시 깽판은 남의 나라에서 쳐야 제맛이었다. 땅도 넓어서 설령 핵이 떨어진들 인구 감 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뒷정리할 필요도 없고.’
정우는 깽판을 치고 정리할 마음이 없 었다. 그 몫은 팽가에 남겨 주기로 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 도 된다.
人、人、스스≫
II II II 늬!
점과 점을 이어 놓은 선의 격돌.
오감을 벗어난 초월감각이 발동되었다. 서로의 속도를 가늠했다. 그리고 극한에 도달했을 때 전력이 부딪친다.
처어어엉!
검과 도가 충돌할 때마다 격렬한 파장 을 일으키며 일대를 부수어 놓는다. 협곡 이 결계에 의해서 촘촘하고 타이트하게 변 하지 않았다면 파장의 범위는 기하급수적 으로 늘어났을 것이다 공간을 무시하고 여기저기 중구난방으 로 검과 도가 난무했다 형을 초월한 무공 의 진의가불을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