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장
겁천마검 ⑴
과거에도 진법은 있었다. 그러나 진법의 효용성이 극대화된 시기는 격변이 일어난 이후다. 격변 이전엔 병법이자 전술로만 치부했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진법의 활용도가 달 라졌다. 음양삼재사상오행 육합칠성 팔괘 구궁십방의 태극도를 바탕으로 한 진법이 실제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게 됐다 그럼에도 진법은 공력과 속성, 과학 기 술과 첨단 무기에 비하면 부족함이 있었 다. 진법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정보를 차단해야 하는데, 현실에선 그것 이 용이치 않았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문파에서는 진법보 다는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데 주력 하는 편이다.
대파멸진은 무인의 이러한 통념을 바꾸 어 놓기에 충분하다. 오랜 시간 진법을 연 구하여 완성한 절진으로 기문진법에 통달 한 천재의 노력과 정수가 깃들어 있었다. 이를 슈퍼컴퓨터로 분석하여 오차 범위를 제로의 영역으로 끌어 올렸다. 일단 발동 되면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는 죽음 의 절진이었다 대파멸진의 특징은 견고함과 끈끈함이 다. 뚫어내려고 해도 회복력이 일반적인 상리를 벗어날 정도로 무시무시하다. 대 부분은 뚫다가 지쳐서 대파멸진의 흐름에 휩쓸리게 된다.
대파멸진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과 같 다. 진 안에 갇힌 생명체를 자양분 삼아 더욱 강력한 진법으로 진화한다. 뚫으려 고 할수록 강해지며, 가만히 놔두어도 만 상의 기운을 끊임없이 흡수하여 견고해진 다. 그야말로 완전무결한 절진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다. 삼국지의 제갈공명이 살아 돌아온다 해도 파헤치지 못할 것이다
‘난 이대로끝나지 않아!’
이극은 협곡 전체에 대파멸진이 설치되 었단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알려주었다 면 가주의 말대로 따르지 않았을 테니, 어 쩌면 당연했다. 쓰고 버릴 패임을 확인하 기에 충분한 현실이다.
혹금단주에게 마음이 기운 결정적인 이 유 중에 하나였다. 충성을 한들, 돌아오는 대가는 배신이었다.
이젠 가주에 대한 신뢰를 버렸다
‘지금이다.’
대파멸진은 팽가가 비밀리에 완성한 절 진으로, 완성도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한다. 약점이 거의 없는 진임은 이극도 알 고 있다. 그러나 대파멸진이 발동되기 전 손을 쓴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웅
대파멸진이 발동될 타이밍에 이극은 혹 금단과 함께 빠져나왔다. 가주의 배신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대파멸진과 함께 죽었 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이극은 대파멸진의 변화에 소름이 돋 았다. 자신의 도움이 있었다 해도 흑금단 주는 무서운 자임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단순히 무력만 강한 것이 아니라 깊이를 제기 힘든 심기와 상대의 심리를 꿰뚫는 통찰력, 변수를 만들어 내는 가공할 전략 까지.
무엇보다 그를 두렵게 만드는 건, 이 모 든 상황을 주도하고 장악하는 지배력이다. 이는 만인의 위에 선 자만이 가지는 패왕 의 기질이었다 금강문의 단주라는 신분마 저도 진실인지 아닌지 의구심을 갖게 한 다
‘내가고를 감당할수 있을까?’
흑금단주의 말대로 3공자는 다루기 쉬 운 존재다. 팽세기를 가주 위에 올려놓기 만 한다면 팽가를 손에 쥐고 좌지우지할 수 있다 하지만 상대가 혹금단주라면?
이극은 항상 가주를 두려워했다. 가주 는 팽가의 절대자이자 폭군이다. 그의 실 체를 감당할 자는 천하를 뒤져 봐도 10명 을 넘지 않으리라 장담했다. 한데, 또 한 명 감당하기 어려운 자와 대면하고 말았 다. 그것도 나이를 감안하면 최연소, 그럼 에도 다 자란 용을 잡아먹는 포식자였다.
여태까지 드러난 역량만으로 그를 판단 하기도 어렵다. 까면 깔수록 두려움의 깊 이만 깊어진다.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할, 혹금단주에 비하면 대파멸진은 아무것도 아닌것 같다.
그런 혹금단주에게 10년의 세월이 더 주어진다면?
이극은 상상만으로 소름이 돋았다. 지 금도 감당이 되지 않는데, 그땐 다들 숨조 차 마음대로 쉬지 못하고 바짝 엎드려야 할지도.
‘그와 같은 자를 어떻게 키운 거지?’
이극으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흑금단주는 금강문 소속의 단주이며, 금 강문주의 오른팔이다. 그토록 가공할 무 력을 지닌 무인이 어째서? 금강문주는 막 무가내의 대명사다. 반도의 백혈도로, 종 잡기 어려운 상종해선 안 될 개망나니다.
금강문주가 혹금단주를 키우다니, 청 출어람이라는 말로도 설명이 안 된다 이 건 한국속담의 개천에서 용나는수준조 차 완벽히 벗어났다. 콩 심은 데에서 팥이 아니라수박이 나온 격이다 이런 수박!
‘가늠하기 어려운 종자라는 건 매한가
지이긴 하지.’
금강문주와 흑금단주의 비슷한 점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예측이 불가능하 다는 것이다. 도무지 어디로 튈지 예상하 기 힘들다. 예상을 하면 할수록 오리무중 첩첩산중으로 만든다. 그런데도 시간이 지나 보면 지극히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었 다
‘괴물이란 건 인정한다 치자 한데 왜?’
납득하기 어려운 전개였다. 대파멸진에 서 벗어나면 그만이거늘 이극은 불안한 감정을 감추기 어려웠 다. 실패하면 끝장이었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키려고 한들, 지나치게 깊이 관여했 다
“이대로두어도되는 것인가?”
“단주께서 다 생각이 있으십니다. 그러 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양용익은 불안에 떠는 이극을 보고서 도 시큰둥했다 사서 고생을 하면 폭삭 늙 는다고 충고를 하려다가 말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개소리다. 현 실은 뼈가 빠지게 고생하면 일찍 죽는다
“상대는 사혹문주일세.”
“그래서요?”
그래서라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저게 지금 사지에 주인을 놓고 온 수하들의 반응이랄 수 있 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지나치게 태 평하다 못해 여유가 철철 넘친다 그만큼 혹금단주를 믿고 있다는 의미 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기는 하나, 상대를 지나치게 얕잡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 다 대륙 전체를 따져 봐도 겁천마검을 가 벼이 여길 자는 열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혹금단주가 그런 자들과 자웅을 겨룰 수 있을 정도란 말인가.
“우린 시킨 일이나 똑바로 하면 됩니다:’
“그렇게까지 확신한다면 더 말하진 않
겠네. 하나, 우리의 상대도 만만치가 않아 버거운싸움이 될 걸세.”
이극의 기우에 양 부단주는 속으로 코 웃음을 쳤다.
여태까지 본 능력이 전부인 줄 안다면 명백한 오산이다. 또한 상대가 강하면 자 신들로서는 땡큐였다. 합법적이며, 합리적 으로 죽올수 있으니까. 지극히 합당한 죽 음이 아니면 단주는 죽은 영혼마저도 가 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 소환해서 영혼까 지 탈탈 털어낸 후 부려먹을 게 분명하다
“하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저횐
다구리가 체질입니다”
“다구리? 그건 수가 많아야 가능한 전 술이네.”
이극은 다구리를 거론하는 흑금단의 말에 의아함이 가득했다 잘못 들은 줄 알 았다. 압도적인 수가 아니면 다구리는 무 의미하다.
의문은 곧 해결되었다.
저 앞으로 결계를 강화하고 있는 자들 이 눈에 들어왔다. 혹금단과 같은 기운올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들 역시도 혹 금단이다
‘방심해선안 될 자구나!’
이극은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흑금
단주는 오늘과 같은 상황까지 대비를 하 고 흑금단을 불러온 것이다 하북성에 절명사신과 하북신룡의 위명 이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만 해도 초명학 은 관심올 두진 않았었다. 애송이가 운이 좋아 선전한다고 여겼다. 전력올 투입하면 시간문제라 판단했다. 하나,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인해 세 번이나 낭패를 겪었다 그때부터는 달리 봐야 했다. 갑자기 튀 어나온 돌부리가 전쟁의 구도를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되었다. 섣부른 대처로 제자 와하북성의 지부마저 잃었다.
하여 직접 나섰건만 더더욱 살려두어 서는 안 될 놈이었다.
‘반드시 죽인다’
하북성을 공포에 물들인 겁혈性血)의 마검, 초명학의 진의가 드러났다. 가로막 는 건 모조리 다 베어버릴 강렬한 살의가 솟구쳐 올랐다 살기와 반응한 공간이 공명하며 인위적 인 흐름을 형성한다. 견디지 못한 대지가 잘게 부서져 허공으로 떠올랐다 드 드 드드 I
기 | | ?!
이감각
초명 학으로서는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꽤 오랜 시간 적수다운 적수를 만나지 못 해 인생이 싱거웠던 찰나였다. 팽가의 가 주를 제외하곤 하북성에서 대적할 자가 없다고 여겼다. 절명사신이라면 무인의 메 마름을해소시켜주리라
‘놓칠 성싶으?냐’
천명의 피를 머금은 겁천의 군림, 천인 혈행보(千人血行步)를 밟았다.
거리가 좁혀진다
초명학의 시야에 절명사신이 잡혔다 까딱 까딱!
협곡의 막다른 장소, 그 앞에서 손을 흔들며 들어오라고 했다. 궁지에 몰린 쥐 새끼치고는 지나치게 태연하다.
그것이 초명학의 심기를 거슬렀다
“ 건방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함정이 있다 한 들, 부서뜨리면 그만. 부비트랩이나 진법 으로는 막지 못한다. 어설픈 현대 문명의 기기로 건방올 떨었다면, 어리석은 판단이 었다. 무인은 오로지 본인의 능력으로 승 부를 봐야 하는 법이다 슈아앙!
공간과 공간에 점을 찍어 연결한 듯, 초 명학의 신형이 거리를 관통했다. 속도와 더불어 이루어진 검의 궤적은 그야말로 쾌 검의 정수라 칭해도 부족함이 없다. 속도, 공력의 전이, 최적화된 검로가 최상의 파 괴력을 형성했다.
두우웅!
검이 나아가기도 전에 기세가 공간을 짓누른다. 이것이야말로 절대고수만이 지 닌 진정한 무형지기(無形之氣)라 할수 있었 다 한데, 피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초명학은 코웃음을 쳤다. 함정이 아닌 정면대결을 하려고 하다니, 자기 주제를 지나치게 과대포장하고 있었다. 물러서지 않은 건 용기라기보다는 만용이다. 진정한 고수를 만나보지 못한 애송이의 무모한 패기였다 꽈아아■앙!
검과 도가 격돌하기 전부터 격렬한 파 열음이 생기더니 종착점에 이르자, 상상을 불허하는 충돌의 여파가 발생했다. 칠공 에서 피를 토할 굉음 격렬한 와류와 파장 이 공간을 분쇄기에 돌린 고깃덩어리처럼 난자한다.
휘이이잉!
거친 와류는 협곡을 휘저으며 나아갈
방향을 어지럽힌다
초명학의 배후를 따르던 무인들은 휘 몰아치는 가공할 돌풍에 육신이 휘청거렸 다. 굳건하고 강력한 장벽이 막아 세우는 듯하다 찌릿찌릿!
비상한 흙먼지가 공간을 뒤덮어 시야를 가렸다.
최고 장로 왕청을 비롯한 혈전대는 육 신에 스며든 경력의 편린에 소름이 돋았 다. 그들로선 도달하지 못할 절대고수의 격돌임을 체감하게 해주었다. 일반인과 무 인의 격차마저 뛰어넘는 초인의 승부였다 기세는 팽팽했다.
‘호각? 그것이 말이 되는 일인가?’
왕청은 절명사신과 손속을 겨루었었다. 문주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는 했어 도, 절명사신을 자신보다 윗줄에 두진 않 았다. 그런 자신조차도 문주의 신위에 비 하면 부족함이 있었다. 문주는 단순히 전 대 문주의 직계이기에 사혹문의 수장이 된 것이 아니다. 그는 능히 일대의 패자가 될 자질을 갖춘 절대의 무인이었다. 한낱 신성 따위가 문주와 자웅을 겨루다니, 믿 기 힘든현실이다.
두둥!
먼지가 걷히면서 시야가 밝아졌다
왕청과 혈전대는 대치 중인 문주와 절 명사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선수를 제압하기 위한 일검치고는 과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일검에 실린 괴력은 능히 태 산을 부수고도 남을 파괴력을 지녔다. 검 의 경력에 휘말리면 갈가리 찢긴 고깃덩어 리가 될것이다
‘저럴수가.’
왕청은 문주의 검식을 겪어 봤다.
희대의 검공이라 불리는 마라검공(魔羅 劍功)을 누대에 걸쳐 보완한 겁천마라검식 은 그야말로 최강의 검법이었다. 감히 대 적할 적수가 많지 않다는 평판을 받는다 그런 문주의 검을 저 젊은 도객이 정면 으로 막아냈다. 일반적인 상리를 가볍게 거스르는 결과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