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판을 벌리다 ⑵
다들 망연자실한 채 서 있었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다. 사흑문으로서는 고수급에 속하는 흑기단 주 기경운이 일격에 전멸했다는 사실에 놀라고, 하북패가로서는 파격적인 선수에 기겁했다. 지금까지의 격전을 애들 장난으 로만들어버렸다
“전투란 모름지기 피가흘러야 제 맛이 지. 크크.”
일격으로 기경운을 가루고 만들어 낸 정우.
사흑문의 일천 무인을 향해 하얀 이를 드러냈다. 두려움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은 투신의 강림이었다 찰나의 정적.
곧 깨졌다
“미친놈! 저놈올죽여맛!”
사흑문을 이끄는 자는 혈우서생(血雨書 生) 마운이다.
외양은 글을 쓰는 서생처럼 생긴데다 철혈필(鐵血筆)이라는 쇠로 된 붓을 들고 다니기에 그리 불리지만, 그의 잔혹함과 악명은 하북에서도 유명했다. 하지만 10 년 전 여인 수십 명올 간살하면서 무림 공 적이 되었다. 그가 사흑문의 빈객이 되어 나타났다 정우는 사혹문의 진형에 근접해 있었 다. 팽가의 무인들이 도움을 주기에는 시 간이 걸린다. 보통은 재빠르게 치고 빠지 는 전략을 쓰나, 물러서기는커녕 오히려 나아가고 있었다
“길을 튼다”
“예.”
정우가 선봉을 서고, 그 뒤를 쉴드와 팽 세기가 따랐다: 사혹문의 흑기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단주가 죽었다 해서 기세가 줄진 않았다. 숫자의 미학 다구리에 대한 자신감이 있 었다
“단주의 원수를갚자!”
“위선의 팽가를 멸문시켜라!”
마운은 흑기단주의 일격절명에 놀라기 는 했다. 그러나 곧 신색올 회복했다 팽가 의 전력은 200을 넘지 않았다. 제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 해도 피륙으로 이루어 진 인간에 불과하다. 차륜전이 되면 제풀 에 지쳐서 무너질 것이라 봤다. 혹기단의 차륜전법은 사혹문 내에서도 인정을 받았 다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뛴다고 되는 줄 아느냐!’
간혹, 초반부터 힘을 써서 기세를올리 는 놈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구태의연 한 허장성세가 통할 만큼 마운은 허술하 지 않다고 자신했다 와아이아'!
격돌이 벌어졌다
파도처럼 밀고 나간 혹기단과 무인들이
정우와 쉴드, 팽세기를 둘러쌌다. 원형무 륜(圓形無輪)의 차륜전법이 펼쳐졌다. 수레 의 바퀴처럼 무한이 돌고 도는 전술이었 다. 일단 갇히고 나면 절정고수도 빠져나 가기 어렵다: 마운은 그걸로 끝이 났다고 판단했다
“저놈은 팽가의 삼공자다 사로잡아라” 선봉장이 되어 공을 세우고 싶은 모양 인데, 날을잘못잡았다 이거야 마운은 팽가의 삼공자로 사로잡아 공 적을 세울 욕망을 불태웠다. 대공자가 아 니라는 점이 아쉽기는 해도, 팽가의 직계 혈족을 잡게 되면 포상이 내려질 것이다.
포상을 받아 한동안 거하게 계집질 할 걸 상기하니 벌써부터 하체가 뻐근해진다.
크어어억!
비명이 터져 나온다.
마운은 피식! 웃으며 전장을 지켜보았 다 한두 명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혹 기단주를 일격에 죽였으면 실력은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팽가의 주요 무인 명부에 저놈의 데이터는존재하지 않았다. 결국 갓 튀어나온 신성 중에 하나일 것이다 공 을 세우려고 호기를 부리고 싶은 모양이 나, 어쩌랴 현실은 시궁창?…응?
푸아아앙!
시궁창아니네!
격렬한폭풍이 일었다
정우를 감싸고 있던 공간이 넓어졌다. 닥치는 대로 밀고 들어와 다구리 치려고 했던 되놈의 전매특허, 인해전술이 공황 상태에 빠지는 현실이었다.
“막고 싶으면 막아 차륜전도 좋고 동기 어진도 좋다”
정우는 가는 길, 막아서는 걸 용납하지 않았다. 사방에서 붐어져 나온 혹기단의 속성을 개무시하고 금강파(金剛破)를 질렀 다 일로금강이 일인격살용이라면, 금강파 는 대인격살용의 수법이다 단숨에 일대의 공간을 붕괴시키는 포격의 일종이었다 버어엉!
공간이 맥없이 뚫려 나갔다:
휘말린 무인 수십 명이 갈가리 찢겨져 나가면서 핏물이 대지를붉게 칠했다. 인 해전술올 바탕으로 한 차륜전의 허망한 최후다 현대 무기가 발달하면서 과거처럼 인해전술이 통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 다 크크크!
선혈이 사방팔방2로로 튄다.
치고 나간 정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
다. 실로오랜만에 제대로된 피 맛을보 고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강호를 흔들어 놓았던 재앙의 본모습이었다. 잊고 있었던 피의 본능이 꿈틀대며 피어올랐다. 착하 게 살기 위해 노력을 했으나 갈증이 심했 던것같다 그리고 예로부터 깽판은 남의 나라에 서치라고 했다
“죽엇!”
그 순간.
정우의 제공권을 뚫고 들어왔다
공간점프.
5급의 속성을 지닌 자다. 단숨에 정우
의 중심까지 파고들어 비수를 찔렀다. 그 러나 차가운 한광을 번들거리던 비수는 어처구니없이 허공을 찔렀을 분이다 잔상 과는 다르다. 애초에 속도의 차이가 넘사 벽이다 커억!
정우의 주먹이 더 발랐다
“느려.”
공간점프는 겪어 보았다
고작 5급의 속성으로 정우의 제공권을 뚫어내진 못한?다 내지른 권격이 혹기단원 의 가슴올 꿰뚫고 지나갔다. 이어서 그를 잡아서 휘몰아쳤다. 피륙이 파편으로 화 하면서 가공할 병기가 되었다.
이이제이.
오랑캐를 오랑캐로 제압했다. 동료의 피륙에 육신이 꿰뚫리며 속절없이 절명하 자, 흑기단의 두 눈에 공포가 서서히 들어 차기 시작했다 쉴드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막고, 흘리고, 받아내어, 튕기고, 흡수 하여, 분산한다. 방어의 기본이 되는 모든 수법이 한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보기 에는 흘러가는 물처럼 평범하나 다가서면 격랑이 되어 상대를 집어 삼켰다
“이놈들, 죽어맛!”
“젠장 왜이렇게 단단해!”
“안 뚫리잖아”
“뭐, 이런놈들이 다 있어!”
쉴드의 단단함은 범상한 수준을 벗어 나 있었다. 개떼처럼 달려드는 흑기단의 포위공격을 대수롭지 않게 막아내며 팽세 기를 보호했다.
팽세기는 마음 놓고 일방적인 공격을 할 수 있었다 굳이 자신을 보호하지 않아 도 되었다. 사방이 적임에도 가장 안전한 장소에 놓였다:
‘이 녀석들은 지치지도 않나?’
되도록 화려하고, 파괴적인 초식을 사
용하고 있는 팽세기였다. 당연히 공력의 소모가 크다. 하지만 쉴드에 비하면 양호 했다. 사방에서 죽기 살기로 덤벼드는 혹 기단의 파상공세 속에서 여유 공간을 만 들어내었다. 단주의 괴물 같은 신위야그 렇다 쳐도, 흑금단에 비할바가 아니었다 꽈득!
정우를 막아선 자들의 최후는 참혹했 다
치는 족족 머리, 가슴, 배, 팔다리가 남 아나지 않았다. 뭉개는 수준을 넘어서 가 루가 되어 흔적이 남지 않는다. 단체로 속 성을 사용해서 진격을 늦추려 해도 통하 지가 않았다. 막아서면 입고 있는 병기나 슈트와함께 절명했다.
일직선으로 뚫고 들어간 정우가 마운 과 10m의거리를두고 있었다 마운의 두 눈에 당혹감이 서렸다. 팽가 에 저와 같은 파격적인 자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네놈은 누구냐?”
“따가리가 알아서 뭐하게.”
“따……까리! 뚫린 주둥이라고 함부로 나불거리는구나!”
“아니라면 증명을 하시든가.”
마운의 안면이 푸들거리며 근육들이 신
경질을 냈다. 서생의 단정했던 모습은 온 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겉으론 40대로 보이지만 그의 나이는 60을 넘었 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새끼에게 그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진 않았다.
-속성개방
-그림자의 술장악
7급의 속성을 지니고 있는 마운이다.
그는 즉시 돌진해 들어오고 있는 놈의 그림자를 묶었다 설령 묶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은 하지 않았다 속력을 늦추고, 빈틈을 노리면 그만이었다. 이어서 마운 은 그의 성명절기인 명부필법(其府筆法), 염 라혈필(閣羅血筆)을 펼쳐냈다
YrVri*『슉!
날아드는 철혈필이 환영을 일으키며 수 백 갈래로 나뉘어졌다;
속성에 걸린 듯 멈칫했던 정우가 철혈 필을 향해 현천공을 바탕으로 한 뇌정금 강을출수했다
“그래봤자 잡스러운 절기지.”
정우는 피하지도 않는다 잡혀준 척 했 올 뿐이다 집중된 공력이 권의 극에 모여 일직선으로 꿰뚫고 지나갔다 추아아아앙
승리를 장담했던 마운의 표정은 가시지
않았다. 느낄 사이도 없었다고 보는 편이 맞았다. 꿰뚫린 공간은 반경이 5m나 되 었고, 산자락의 끝을 박살 내며, 허공으로 흙기둥을 치솟게 했다 권로의 궤적에 있었던 마운은 그렇게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가 자랑 하는 철혈필의 비밀을 알리지도 못한 채. 실상 철혈필을 막았을 때를 대비해서 붓 끝에 독이 발라진 강침이 발출되도록 설 계가 되었다. 마운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 했지만 정우는 쓸 기회를 아예 주지 않았 다 두둥!
가공할폭발이 천지를 개벽한후, 일대 는 정적이 흘렀다. 휘말려 들었던 혹기단 중에 살아남은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무 시무시한 파괴력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 었다
“저럴수가!”
“혈우서생이 저토록 허망하게!”
“말?…도안 돼!”
“괴물이다!”
정우는 멍청하게 서 있는 흑기단을 내 버려 두지 않았다 전장에서 한눈을 팔다 니. 죽음을 재촉하는 어리석은 행동이었 다. 무공의 고하를 떠나 살고 싶다면 도망 이라도 쳐야 했다.
그러나어쩌랴
정우는 이때를 대비해서 흑금단을 대기 시켜 놓았다. 혹금단은 애초에 전면에 나 서지 않았었다. 사방을 포위하고, 도망치 는 자들올 포획하기 위해 그물망을 이루 었었다; 그들이 지금 나타났다;
우왕좌왕!
흑금단이 나타나서 흑기단을 도륙하자 사흑문의 무인들은 허둥지둥댔다. 수장을 잃고 나니, 전의가 담배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나는 대 하북팽가의 혼뢰신룡 팽세기
다! 투항하는 자는 살고, 저항하는 자는 죽는다!”
전장의 중심은 혹금단주였지만 지휘자 는 팽세기였다. 그는 지위를 드러내며 전 장의 중심에 자신이 있음을 공포했다 이로써 혹금단주는 팽세기의 칼임이 증 명되었다.
헤
귀영각주 이극은 귀영단과 함께 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음에도 감탄 이 절로 나왔다. 피해를 최소화하는 건 둘 째 치고, 팽세기의 위명을 끌어올리고 있 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란 건 혹금단주 의 파격적인 성향0]었다
‘전신이란 말인가’?’
전투에 임하는 흑금단주의 얼굴에서 화기가 돋는 걸 보았다. 태생적으로 전투 를 즐기는 부류, 즉 혈로(血路)를 걷는 자 의 본성이다 혈우서생은 저토록 허망하게 죽을 자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격을 견 디지 못하고 가루가 되었다. 혈검을 제압 한 실력이 결코 운이 아님을 재차 실감했 다
‘패왕의 기질을지녔다:
이극은 혹금단주의 말을 되새기며, 결
심을 굳혔다. 저자라면 본인의 말을 반드 시 실현할 능력이 되었다. 또한 지금까지 그는 한 번도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그것 이 설령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어린놈이 주제를 모르는구나!”
“어린놈에게 뒈지면 저승 가서도 쪽팔 릴 테니, 분발하라고.”
“건방진, 원대로죽여주마!”
“이빨길게 털지 말고.”
정우의 잎을 가로 막은 자.
사혹문의 장로, 육지혈마(A指血魔) 나
관이다. 잔혹한 성향만큼이나 그의 탄지
공은 절정의 경지마저 초월했다고 자부한 다. 일전 혈우서생의 절명과 혹기단의 패 배는 사혹문에 층격을 주었다. 팽가가 이 토록 파격적으로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것이다 그간 지지부진한 상태였기에 이번에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봤는데, 칼을 꺼내든 것이 분명했다. 사혹문에서도 어설픈 수 를 쓸 수 없게 되었다. 유화 지부에 있는 주력 절반과 본문에서 파견된 정예부대가 나섰다 이만하면 팽가의 주력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전장은 예상과 정반대로 흐르
고 있었다
사흑문의 정예부대와 유화지부 주력 절 반이 괴멸지경에 이르렀다. 더욱 화나는 것은 전과 다르지 않은 전략에 당했다는 사실이었다
“네놈만죽으면 어차피 끝이다!”
“할수있으면 하라니까”
나관은 한 수의 부딪침으로 만만치 않 음을 실감했다. 육신을 파고들어온 전사 경이 독혈공(毒血功)을 뒤혼들었다:
‘어디서 이런 놈이!’
힘 대 힘의 싸움에서 밀려보기는 근래 에 들어 처음이었다. 새파랗게 어린놈에 게 밀린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하지만, 섣부른 공격은 위험했다. 놈에게서 뿜어 져 나모는 광포한 공력 때문만이 아니다. 놈의 눈빛, 냄새, 기운이 말하고 있었다. 이런 기도를 가진 자를 알고 있었다;
혹룡성주진대악:
혹룡마제(黑龍魔帝)라 불리는 사파제일 존.
그를 봤을 때 이런 느낌을 받았다 감히 따르지 못할 현 세상을 집어삼킬 절대마 제였다 그와같은 기질을 맡았다. 그래서 더 두렵다 지금도 이런데, 후일 시간이 지 난다면 이놈은 괴물이 될 게 분명했다 홑 어져 버린 사파무림을 규합하여 단일 세 력으로 만든 진대악이 두 명이어서는 안 되었다.
‘네놈의 위명은 여기까지다.’
나관은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투 는 이제 시작이고, 놈은 거미줄에 걸렸다.
탄지공을 쓰는 고수는 대부분 보신경 이 탁월하다. 빠르게 움직여 원거리에서 상대를 격살하는데 특화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나관의 보신은 혈섬행(血閔行)이다 사파 의 보신경 중에서도 수위에 속하며, 극성 까지 익히고 있었다. 그의 신형을 잡아챌 수 있는 자는 사파 내에서도 소수에 꼽힌 다
휘리릭!
혈섬행을 밟자, 나관이 공간에서 사라 져 버린 듯 꺼졌다. 실제로는 사라지지 않 았다 너무 빠른 나머지 신형이 눈에 잡히 지 않는 것이다
“어딜.”
정우는 나관의 현란한 보신을 향해 일 로금강의 업그레이드 버전 게틀링금강포 를 시전했다. 이 기술은 강천이 개발한수 법으로 이름이 좀 거시기 해도 나름 참신 했다 연격포의 일종이기에 속도에 치중한 나머지 위력이 덜하다는 단점이 있으나, 이를 보완해 놓았다.
퍼퍼퍼퍼퍼펑!
무차별 연격.
대공포를 발사하듯 두 주먹이 불을 뿜 는다. 총도 1천 발가량 쏘면 총열이 열이 받아 쉬어주어야 하건만, 정우의 두 팔올 멀쩡했다. 오히려 더 빨라지고 있었다: 퍼어엉!
하나하나의 위력이 경이로울 지경이었 다. 반경에 있던 멸기단원들은 속절없이 당해야 했다. 막아도 소용이 없다: 크아아악!
죽어가는 무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다. 오히려 살아남은 무인들이 공포에 질러 신음을 토해냈다. 무차별 폭격이 줄 어들지 않고, 지속되었다. 그것도 자신들 올 이끄는 육지혈마 나관으로 인해서. 나 관이 지나간 공간은 여지없이 꿰뚫리며 폭사했다. 살아 있는 것올 허용치 않은 살 인무형권(殺人無形勞이었다.
지옥의 전장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