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천생연분 ⑴
혹금단주와 북무원의 다툼이 세가에 알려졌다. 북무원주조차 일방적으로 제압 당하자, 금강문과의 협약에 반기를 들었 던 장로들이 돌아섰다. 혈검의 패배가 결 코 우연이 아님을 재차 상기시켰다.
정우는 팽가주가 내준 별채에 머물렀
다
팽가의 서쪽에 있는 별채로 귀한 손님 을 대접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았다. 하지 만 구조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사방 에 감시의 눈이 있으며, 빠져나가기 어렵게 만들었다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 했을 때를 대비해 놓은 구조다 별채의 외관과 내부는 크고, 웅장하며 화려했다 고전미와 현대의 발전된 문명이 조화를 이루었다. 온고지신이라는 말이 있다. 옛것올본 받아새것올만들어 낸다 는 의미다. 그러나 과거와 현대의 조합은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작은 변화조차 오 랜 연구와 노력은 물론 비용이 상당히 소 모된다. 이는 팽가의 막대한 재정을 알려 주는 본보기였다. 한마디로 손님을 데려다 놓고, 하북팽가가 이만큼이나 대단하다고 과시하는 것이다.
“어쩌려고 그런거야?”
“까불면 뒈진다는 걸 보여줘야 함부로 못하지.”
정우는 팽가주의 성향을 보자마자 파 악했다. 그는 약자를 대접하지 않는 자다. 무인 특유의 성향이기도 하나, 그는 특히 더 심하다. 조금이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 면, 언제든 돌아설 자였다 더욱이 본문의 문주가 아닌 일개 단주라는 직위가 맘에 걸렸을 것이다 북무원주는 그 시험무대였 다. 금강문에서 제대로 된 무인을 보내주 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그러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렇다 해도 물러서선 안 되지.”
“하아 똥배짱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강천은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온 기 분이 들었지만 금강문의 직계 혈통으로서 불안감을 떨쳐 냈다. 정우의 말대로 사나 이라면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최후가 온다면 도망칠 궁 리도하고 있었다 일단 살고는 봐야지. 장부의 복수는 10 년도 짧다고 했잖아 100년 후 나는 살아 있고, 상대는 죽었으면 복수는 완성되는 거지.
“팽가가 쩔쩔 매는 걸 보면 사흑문도 만 만치 않나봐:”
“그럴까?”
“아니라는거야?”
“명문의 저력을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 로 판단해선 곤란해.”
정우는 별채로 오는 와중 팽가의 무인 들을 살폈다 눈초리는 다들 사나웠다 어 제의 일로소문이 퍼지면서 적개심은 있었 다 그러나 가장중요한 것이 빠졌다.
‘긴장감이 덜해.’
사혹문과의 결전에서 승기를 잡지 못하 고 있음에도 여유가 있다. 믿는 구석이 있 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된다.
‘후발대를 봅아 놓길 잘한 것 같다’
정우는 팽가주와 부딪친 당시를 상기했 다 현천살형기는 무형지기를 극대화한 수 법이다 그렇다 해도 섣불리 륑겨낼 수 있 을 만큼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시험하려고 했으면, 눈치를 챘겠지.’
팽가주의 무형지기가 파고들어올 타이 밍에 비틀어서 되돌려 줄수도 있었다 하 지만 그리되면 팽가주도 반응을 해올 테 고. 패를 드러내 버리는꼴이 되어 버린다 설령 속셈을 알아챈다 해도, 예측과 확신 의차이는 컸다
‘숨어 있는자들도그렇고.’
팽가주는 혼자가 아니었다. 주변에 그 를 호위하는 무인이 있었다. 감각을 흐릴 만큼은신에 능력이 있는 자들이다. 하북 팽가의 저력을 체감하게 해주었다
‘나쁘지 않。K
정우는 하북팽가를 허술하게 대하지 않았다 명문의 저력은 하루아침에 생겨나 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쌓아왔다: 그것이 마음에들었다
‘그렇다면 일단은 공적부터 잔뜩 쌓아 야겠어.’
현재 팽가의 전력 중 절반 이상이 빠져 나간 상태다. 팽가의 대공자와 이공자도 사혹문과의 접전 지역으로 파견되었다 곧 결정이 내려질 테고, 삼공자와 이극올 필 두로 전장으로 나아갈 것이다
‘주 전력은 아닐 테고.’
시대가 변하면서도 과거처럼 아무 데서 나 칼부림을 하지는 않는다. 전생의 강호 무림이었다면 선혈이 낭자하는 전투를 시 도 때도 없이 하겠지만 현 시대는 언론을 무시하진 못한다
현대의 전쟁은 일정한 공간을 정해 놓 고, 그 안에서 전투를 벌이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해 놓는다. 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장에서 주 전력 간의 치열한 대결은 여 태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밀고 밀리는 격 전이 지속되며, 소모전이 되었다 이유는 비어 있는 본진을 공격할 수 있 다는 염려 때문이다. 전장의 암묵적 약속 이라고 해도, 정파와 사파의 전투였다. 과 연서로를믿을수 있겠는가. 언제든등뒤 를 노릴 찬스를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 다 다른 나라와 달리 중국 정부는 내부에 서 벌어진 문파간의 갈등을 전면에서 중 재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 간에 알아서 해 결하고 보고하는 식이다 차후 정부의 통 제를 받아들이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 다 물론, 당의 명령을듣지 않으면 그땐 직 접적인 간섭과 규제를 하게 된다. 실제로 중국의 문파는 당의 명을 완전히 배제하 지 않는다. 자칫 당의 공적이 되어 버리면 그땐 대륙 전체가 적이 되어버릴 수가 있 었다. 그것이 현재 중국 공산당의 위치다. 경제적으로는 개방을 했어도, 정치가 변하 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 문파의 조력 올 받아 현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전력올끄집어 내주지.’
전장에 대한 정보는 이극을 통해서 전 달을 받았다. 악화일로라고는 하나, 전력 손실을 줄이기 위한 형식적인 대결을 벌였 다
‘시기는 본문과 협정올 맺은 이후부터 고.’
팽가는 방어 위주로 전선을 유지하며, 결정적일 때는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 시기가 금강문과 협정을 맺고, 지원올 받기로 한 날부터다 지나치게 공교로워 보 이기는 하는데, 팽가주의 노림수가 있었 다
‘석가장으로 갈확률이 높아’
분석한 자료를 보면 그렇다
석가장의 지형지물을 보다 정밀하게 분 석하기 위해서 본문에 연통을 넣었다. 김 총관에게 항공지도와 분석 자료를 보내달 라고 했다. 중국의 경우큰 땅덩어리를모 두 관리하지는 못한다 케이브가 빈번하게 오픈된 지역은 그대로 방치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검색되는 게신통치가않네.’
중국은 휴대폰으로 검색을 해도 검열 받는 내용이 많았다. 정부에서 여전히 개 인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 다. 필요한 내용올 검색하려면 꽤나 고생 을해야 했다
“무슨생각을그리 깊이 하냐?”
“어떤 식으로 전투를 할지 구상해야 하 잖아”
“답은나왔고?”
“ 대층”
“승산은?”
“내가 승산 없는 일에 나서는 거 봤어?”
“ 하긴.”
강천이 왜 호랑이 굴이면서도 제 발로 하북팽가로 왔겠는가. 그건 바로 정우가 함께하기 때문이다 정우는 안전보장권이 나 마찬가지다. 승부의 마왕이라고 불리 는 정우에게 승산을 물어본 것 자체가 어 불성설이었던 것이다
"그러는 넌 전략은 있는거냐?”
“웬 전략?”
강천은 갸우뚱거렸다 전락전술과는 담 쌓고 지낸지 언 19년이 되어 간다. 살아온 일생 동안 머리 굴려 본 적이 없거늘, 전략 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그리고 머리 굴 리는 걸 아버지가 극도로 싫어한다. 부자 간의 오붓한 대결이라는 미명하에 아동학 대를 저지르며, 빠져 나갈 궁리를 하면 대 가리 굴리지 말라며 더 두들겨 맞았었다. 눈알 돌아가는 소리라도 들리면 눈탱이가 밤탱이 된 적이 허다했다.
“내리자마자 인산인해를 이룬다며.”
“내 매력을 몰라서 그런 거고, 곧 인산 인해를 이룰 거다”
강천은 예상과 다른 뜨뜻미지근한 반 옹에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밀리터리 룩으로 무장한 패션이 빛을 발하리라 기 대를 걸었다 말투도 연습을 해왔다. 아예 관용어처럼 외우고 있기에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자 안기지 말입니다.
-자, 빽가지 말입니다.
-자, 벗지 말입니다.
-자, 하지 말입니다.
-자 결혼하지 말입니다.
-자, 이혼하지 말입니다.
완벽한 군대용어다. 라임이 딱딱 맞아 떨어진다.
이렇게 말하면 중국 미녀들이 껌뻑 죽 는다고 들었다. 강천은 가보지도 않은 군 대임에도 거리끼지 않았다. 그리고 군대보 다 금강문이 훨씬 빡세다 군대 따위가 뭐 가 그리 어렵다고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지 이해하긴 어렵다.
‘우리 아버지가 간부로 가면 다들 곡소 리가 날걸.’
상상이 안간다고.
아버지가 대대장으로 있는 부대는 어느 부대를 가도 특수부대보다 혹독한 부대가 될 것이다. 금강문의 기본 수련공만 가르 쳐도 골골거릴 애들 천지다.
‘안 되지, 아버지는 전쟁 나길 바라는 사람이니.’
전쟁이 발발하는 그 즉시 아버지는 전 장의 선봉장이 되어 튀어나갈 게 분명하 다 솔선수범은 되겠지만 과했다.
정우와 강천이 팽가주의 결정을 기다리
며 시간을 죽이고 있는 그때.
투벅, 투벅!
발걸음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투박하 게 만드는 거대한 그림자가 별채를 향해 길어지고 있었다. 육중한 진동이 바닥을 타고 별채까지 전달되어 시선을 쏠리게 했 다 두둥
해를 등지고 서서 생긴 그림자로 인해 형태만이 어스름하게 비쳐졌다 빛에 반사 된 그림자가 정우와 강천의 해를 빼앗아 갔다. 태양을 피하는 확실한 파라솔이다. 둘 다 어디를 가도 덩치로는 밀리지 않는 데, 능히 비견되는 그림자의 아름다운 떡 대였다.
왜 아름답니고?
그림자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린다. 청초 한 생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던 것이 다. 그러니 예의를 가진 사내라면 표현조 차 아름다워야 하는 법이다
“너희냐?”
“ 맞아”
여자사람은 정우와 강천을 보자마자 하 대를 했다 별채에 있다는 걸 안다면 팽가 의 손님이라는 뚯이 되는데, 꽤나 도발적 인 말투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 는 정우의 하대로 인해 여자 사람은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누군줄알고반말이야?”
“팽가의 금지옥엽이겠지.”
제대로 맞추자 여자 사람이 화들짝 놀 랐다
놀람이 꽤나 서프라이즈하기는 하다. 저 덩치로 제스처가 꽤나 앙증맞다고 해 야 하나. 그런 노력이 곳곳에 묻어나오기 는 했다
“?…어떻게 알았어?”
“딱보면알지 않을까'?”
팽가에 대한 조사 시 검색어 1위에 올
라와 있는 대상이 있었다 그건 도왕(刀王) 도, 도룡(刀龍)도 아닌 도화(刀花)다: 건곤도화(乾耳刀花), 팽세경.
팽가의 금지옥엽이자 공간 파괴자로 불 리는 그녀의 아성이 뒤따라온다. 딱 보면 알수 있는 도화의 특징이 있었다 거대함 그 자체이며, 어이없게도 얼굴은 청순하 다 청순육덕(淸純肉德).
중국의 전형적인 미녀라기보다는 한국 의 청순미녀, 서지수와 비슷한 얼굴형을 갖추고 있었다. 얼굴만 보면 누구라도 호 감을 가질 만하지만, 그녀는 팽가의 상징 과도같은근골을타고났다
2m에 달하는 키와, 바늘로 찔러도 튕 겨낼 갑옷 같은 근육.
요즘 시대는 여자도 근육이 있어야 아 름답다고 하나, 도화의 근육은 크고 강건 했다 스테로이드로 완성한 여성 보디빌더 조차도 명함올 내밀지 못한다. 약이 아닌 순수한 근골이며, 노력으로 완성되었다.
‘완벽하군.’
정우는 도화의 육체를 보고 감탄했다. 무인으로서 완성된 여성의 신체다 수연이 가지향야할육체에 근접해 있었다
“네가 흑금단주야?”
“아닌데 말입니다.”
팽세경은 강천이 흑금단주인줄 알았다 자신에 비해 부족하지 않은 사내다운 신 체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저 밀리터리룩 은 신뢰감을 주었다. 말투도 아주 마음에 든다. 그런데 아니라고 하니, 자연스럽게 옆에 있는 자에게 향했다.
“그럼 너야?”
“어쩐 일로 도화께서 어려운 발걸음을 하셨을꼬,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왜 안궁금해, 하북제일화가찾아왔으 면 당연히 궁금해해야지.”
“하북제일화? 북경의 화용화가 하북제
일화아니었나?”
북경의 화용화는 중화에서 꽤 유명한 여인이다. 방송에도 출연을 했으며, 청초 한 외모와 완벽한 바디라인을 자랑하며 중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북경 제일가의 후손으로서 잠재등급 6급을 받 아 문무겸비, 유니크로서도 인정을 받았 다. 그러니 하북성에서 지나가는사람 아 무나 붙잡고 하북제일화가 누구냐고 묻는 다면, 당연히 화용화를 꼽는다.
물론 그 누구나에서 팽세경은 제외되었 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생면부지임 에도 적의마저 전해진다.
“어디서 헛소리를 들은 거야, 내가 바로 하북제일화라고.”
당당함보다는 뻔뻔함이 먼저 든다.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아야 저리 자신 감이 철철 넘치는지, 팽가의 교육 실태를 고민해 보게 했다. 다들 공주라고 떠받들 며 살고 있음이 분명했다
“비록 완벽한 육체를 지녔다 해도, 너 혼자의 주장이잖아:”
“네가 보는 눈은 있구나. 그리고 혼자가 아냐, 다들그러거든.”
“다들, 누가?”
“세가의 무인들은 다들 그래.”
세가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예스라고 해 야 한다 아니라고 했다가는 도화의 등살 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알면서도 조장 하는것 같아서, 첫 인상그대로뻔뻔해 보 인다.
여하튼 하북제일화든 대륙제일화든.
정우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됐고, 목적이 뭐야?”
“한판해.”
정우는 고개를 돌려 강천올 보았다 지적당한 강천이 화들짝 놀랐다
“왜 그렇게 보시지 말입니다?”
“처리해.”
“저 말입니까?”
“그럼 내가하리.”
정우의 짜증스런 눈빛에 강천은 자리에 서 벌떡 일어났다. 말 안들으면 훈련 양이 배로 늘어날 게 불을 보듯 자명하다 여자 를 상대로 싸워야 한다는 점이 마음에 걸 리기는 해도, 도화는 여자사람이니 괜찮 을것같다.
“지금날 피하는 거야?”
“미안하지만, 나는 너랑 놀 급수가 아니 야”
“흥, 날 무시한 사내 중 멀쩡히 끝난 경
우가 없다는 것 명심해.”
“그건 이쪽도 마찬가지야, 천아. 사정 봐주지마라”
도화의 성향 상 호승심이 강하게 발동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일일이 상대해주는 건 급수에 맞지 않았다 이런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강천을 데리고 온 것이다.
“남자답게 생겼다고 봐주지 않아”
“나도마찬가지지 말입니다:’
차마 여자답게 생겼다고는 말 못하는 강천이다. 그렇다고 여자답지 않게 생겼다 고 막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소한 여 자사람이니만큼 예의는 지켰다
‘얼굴은 진짜갑인데, 어쩌다가몸이 그
렇게 된거냐?’
강천은 아쉬움이 컸다.
얼굴만 놓고 보면 팸세경은 아이돌이 부럽지 않았다. 그러나 육체는 남성 보디 빌더도 명함을 내밀지 못한다 저 말 같지 도 않은 부조화는 어색함의 극치였다 혹 여 부둥켜 않으면 쇳소리가 날 것 같아 섬 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