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215화 (215/500)

제 4장 하북팽가 ⑵

천진에 도착해 고속열차를 탔다.

북경까지 이어진 고속열차는 꽤 잘 만 들어져 있었다. 몇 해 전 케이브 오픈과함 께 고속열차가 망가지는 바람에 이제야 복 구가 되었다고 한다: 복구하는 김에 그간 문제가 되었던 잔

고장을 비롯한 문제를 해결했다. 예전부터 문제가 많이 있었고, 사고가종종 발생하 는 바람에 이참에 대대적으로 보수한 것 이다

“대륙이 넓긴 넓네.”

“우리나라가작은 거다”

중국의 한 성이 한국보다 컸다. 끝에서 끝으로 가려면 한국처럼 4시간 내에 도착 하지 못한다. 한달을잡고 가야할만큼 넓다

“이런 데 뭐가 아쉬워서 남의 땅이나 바 다를 노리는 거야.”

“그 바탕에 중화가 깔려 있으니까 그렇

지.”

중국인의 자부심, 중화(中華).

그것은 세상의 중심은 중국이라는 그 들만의 국수주의로 통한다. 그렇기에 중 국인들은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를 한 수 아래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세계의 패 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 나 다시 한 번 세상의 중심으로 서려는 야 욕이 있었다?

“한류에 열광하지만, 속에 있는 진심은 또 다를거다”

“이거 겉 다르고속다른 놈들이잖아.”

“그럴 수밖에. 우리나라가 중국보다 발

전한 시간은 고작 해 봐야 수십 년에 불과 하지만,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세월 은수백 년이 넘으니.”

“그래봤자짱깨지.”

우리나라가 짱깨라고 무시했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그리고 발전 속도도 이제는 거의 다 따라왔고, 기초 분야에서는 앞선 다고볼수 있었다 그런 중국이 반도의 작 은 분단국가인 한국을 인정하고 받아들 일까? 역사를 공부하면 답은 뻔히 나와 있었다. 대놓고 속국으로 여기지 않는 것 이 다행이었다.

“중국 입장에서 우린 언제든 쥐고 혼들

수 있는 패에 불과해.”

“이번 기회에 아니라는 거 확실히 보여 주자”

“그래도 다구린 조심해야 할걸.”

“하긴 예로부터 비겁하긴 했잖아”

“다구리야말로 만고불변, 경계 없는 최 선의 전략이니까”

정우는 다구리를 비겁하다고 여기지 않 는다 수가 많은데, 사용하지 않고 정정당 당하게 붙어서 깨지는 것이 더 멍청했다. 전략전술의 목적은 승리에 있었다 승리하 는 데 있어 최선이 있을 뿐이지, 대의명분 은 그다음이었다 승리하지 못한 전략전술 앞에 대의명분은 허울뿐인 계책에 불과했 다

‘좀 미안하네.’

정우는 사흑문과의 전투에서 강천을 배제했다. 본인 딴에는 편하게 놀라고 배 려한줄 알겠지만, 하북팽가에 있는동안 인질이나 다름이 없었다. 의심 많은 팽가 의 가주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데리고 온 것이다:

‘본인이 그렇게 안느끼면 된 거지.’

강천은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국뽕을 잔뜩 매겨 놓 았다.

정우는 100명의 혹금단을 분리시켰다. 관광비자로 온 혹금단은 5명 단위로 흩어 져 있었다 이는 하북팽가의 요구였다. 되 도록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다 아무래도 단체로 이동을 하게 되면 소문이 번질 수 있었다

‘다른 세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군.’

얼핏 사흑문을 경계하는 뉘앙스지만, 실제로는 다른 세가에 소문이 번지지 않 도록 경계하고 있었다.

“이거집 맞아‘?”

하북팽가의 정문에 당도한 일행.

강천과 쉴드는 끝이 보이지 않는 담벼 락과 그 위로 솟구쳐 오른 거대한 고루거 각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실로 엄청난 규 모였다 남궁세가에 밀려 위세가 꺾였다고 는하나, 하북팽가의 저력이 느껴졌다

“쫄았냐?”

“쫄긴 누가 쫄아! 나 이강천이야! 그런 데 넌 아무렇지 않아?”

“ 별로.”

“하긴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도 그랬던 것같다:”

금강문도 한국에선 규모에서 뒤지지 않 았었다. 그런데도 정우는 일반 가정집과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였다. 애초에 스케 일로 기를 죽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강천은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를 폈다.

“어떻습니까?”

“ 괜찮군요.”

이극은 담담한 흑금단주를 보며 속으 로 히죽였다 실제로 담담하다 해도 안으 로 들어가면 달라지리라 확신했다

‘본 세가가 용담호혈로 불리는 이유를 깨닫게 될 것이다’

가주에 대한 신뢰를 잃기는 했어도, 이 극은 하북팽가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내심 금강문에 당했던 수모를 되돌려 주 고싶었다.

드르륵!

문이 열렸다

하북팽가 내부의 전경이 드러났다

돌의 종류에 맞게 깔아놓은공간은 먼 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 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것은 입구에서 건물까지의 거리다 최소 축구장 으개는 들 어찰만큼 넓었다 바닥에 깔린 대리석 하나하나에 손으 로 새겨 넣은 문양이 있었다. 규모도놀랍 지만 어느 것 하나 단순하지 않았다

‘겹겹의 미로처럼 만들어 놨군.’

정문에서 건물로 들어갔을 때 정우는 사방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을 감지했다:

‘반감이 상당하군.’

예상했던 바다. 저들이 호의적으로 나 올 것이라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 은연 중 혈검에 대한 소문이 번졌올 게 분명하 다. 입단속을 한다고 해도 가문에 소속된 이들은 알고 있었다. 금강문과의 협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 자들은 이를 교묘히 이 용하려 할것이다 내당으로 들어가기 전 막아선 자들이

있었다

팽가의 내당을 책임지고 있는 북무원 (北武院)의 무인들이다. 그들은 팽가에서 일어나는 내부적인 사안들을 가주 직속 으로 처리한다.

거구의 사내는 팽명호라는 인물로, 북 무원의 무력 서열 10위에 랭크되었다. 전 체 서열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무인으로 문파의 장로들도 인정하는 무의 재능이 넘치는 자다

“금강문에선 손님이네, 가주께선 어디 계시는가?”

“회의가 있어 접객실에서 기다리고 하 셨습니다”

이극의 눈썹이 잘게 떨렸다. 예전과는 다른 대접이었다 말투에서부터 냉랭함이 깃들었다. 가주의 신뢰를 잃은 귀영각의 현재 위치를 알려주었다. 하물며 가주의 결정에 의해서 금강문과의 협정이 이루어 졌다. 정해진 날짜와 시간을 알고 있으면 서도 이 시간에 굳이 회의를 할 이유가 없 다

‘내 처지가 처량하군.’

이극은 참담함을 애써 감추었다. 과거 였다면 팽명호를 엄히 문책했을 테지만, 그럴 수도 없는 현실이다. 팽명호를 질책 해봤자, 비호해줄 세력이 많지 않았다. 그 럼에도 분함은 쉬이 사라지지 않고 앙금 으로 남았다.

‘나브지 않네.’

정우는 내심 히죽였다

이극 같은 자는 결코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계산적인 성향이라 실익을 반드시 따진다. 그는 이제부터 선택의 기로에 서 야 한다. 절치부심하여 원래의 자리를 찾 든가, 아니면 새로운 목표를 위해 노력하 든가.

‘의외로 쉽게 가겠어.’

그렇다고 방심하진 않았다. 이극의 저 울질을 팽가의 가주도 알고 있을 수 있다 그에 대한 조치를 했다면 방심하다 허를 찔리게 된다. 지금부터는 단순한 무력싸 움이 아니라 심리전까지 펼쳐야한다:

“미안하게 됐습니다.”

“사흑문과의 일도 있고 하니, 딱한사정 이 있겠지요.”

정우는 이극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 러나 내용을 되짚어 보면 그렇지도 않았 다. 사혹문과의 결전은 대외적으로 알려 져 있다. 그러나 긴박한사정이 있음을밝 히자, 하북팽가가 사혹문에 밀리고 있다 는 투로 들렸다. 실로 교묘하게 상대의 심 경을 긁었다

“뭐라고 지껄인 것이냐?”

팽명호가 기세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 다. 손님으로 왔다고 밝혔음에도 그는 하 대를 거리끼지 않았다. 반도의 작은 문파 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했다. 그런데다 세가를 무시하는 투의 발언을 참고 넘길 만큼 인내심이 넓지 않았다. 팽 가의 핏줄답게 뛰어난 근골과 골빈 머리 를 자랑했다

‘이런, 제길!’

팽명호의 거친 반응에 이극은 긴장했 다. 설마 하는 심정이었다. 좀 전까지만 해 도 예의로 똘똘 뭉쳐진 흑금단주였다.

이극은 혈검을 상대했을 당시가 갑자기 상기되었다

‘설마?’

팽명호의 대응이 거칠기는 했어도, 여 기는 하북팽가다. 제아무리 철석간담을 지닌 자도 섣부른 짓은 하지 못한다 막말 로 혹금단주도 원인을 제공했다. 잘잘못 을 따지면 서로에게 있었다. 이극은 혹금 단주가 적당히 한발 물러설 거라 봤다 그 때 자신이 나서서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 면 된다.

그러나 이극의 예측은 또다시 빗나갔

그것도 가장 최악으로.

“지껄여, 넌 뭔데 초면에 반말을 찍찍하 는게押 이곳은원래 그렇게 배우는곳이 냐?”

“?…네놈이 미쳤구나!”

예로부터 싸우다가 부모 욕하면 더 열 받아서 죽기 살기로 싸운다: 팽명호에게 있어 하북팽가는 부모보다 크고 위대했다. 반말은 둘째로 치고, 자신 은 물론 세가까지 싸잡아서 모욕한 것이 다.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하북팽가는 예 의범절도 없는 후안무치한 세가가 된다

‘이거 위험한데.’

강천은 홈칫했다

되놈들한테 밀리고 싶지는 않지만, 여 긴 되놈들의 안방이었다 어느 정도 선을 지킬 줄 알았건만, 예상을 훨씬 상회했다 이러다간 협정이고 나발이고, 중국에서 객사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속은 시원하네.’

강천 본인도 제법 사이다 같은 놈이라 고 불리지만, 정우는 역시 한 수 위였다. 사람은 환경에 영향올 받는다고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남의 집 안방이라는 환 경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는 금강문의 근본을 일깨웠다. 아버지가 이 장면을 봤 다면 대견하게 바라봤을 것이다

“네놈은본 세가를 모욕했다 그러고도 살수 있다고 보느냐?”

“적어도 네가 나의 생살여탈권을 가지 고 있진 않겠지.”

“이놈이, 감히 내가누군줄 알고 함부 로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것이냐!

“됐고, 더 이상 건방 떨면 사지를 분질 러 버릴 테니까 입 닥치는 게 좋을 거야”

정우는 주둥이뿐만 아니라 손짓도 사 람열 받게 하는데 타고났다고해야했다 귀찮은 파리를 쫓듯 휘휘 저어 대니, 팽명 흐는 한순간 파리 떼의 일부가 되었다. 표 정까지 귀찮음이 잔뜩 묻어 나와 속을 뒤 집어 놓는다. 차라리 적의를 드러냈다면 그나마 호적수로 여긴다고 간주할 텐데, 이건 시정잡배보다 못했다

“?…전 단주! 지금무슨!”

이극이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때는 이 미 물 건너간 지 오래다 폼에 살고, 폼에 죽는 불통의 아이콘이 무인의 기본성향이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전후사정을 두고 보지 않는다. 하 물며 똥개도 제 집에서는 3할을 먹고 간다 고 하는데, 그 앞마당에서 개 무시를 했으 니 열 받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다. 더욱 이 상대는 팽가의 직계 혈족이다. 천성은 어디 가지 않는다.

부글부글!

팽명호의 안면이 분노에 가득 찼다 툭 툭 불거져 나오는 근육들이 성을 내고 있 었다. 그는 살아생전에 오늘처럼 열이 받 기도 처음이었다.

“내뱉은 말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집 지키는 개 주제에 책임 운운할 지위 라도되는 모양>] 지.”

말발로 조진다.

이를 철저히 실행하는 정우다. 어디에 내놓아도 아가리 파이팅은 만렙 유저다.

더 이상 나아가지 않을 천의무봉의 경지 에 도달했다 자부해도 된다

“뭐라, 네놈이 진정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그럼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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