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화천풍운 (1)
날이 어두워지는 시간
해가 뉘엿뉘엿 산의 허리를 타고 내려가 고 있었다. 땅거미가 짙게 내려앉으며, 가 로등이 켜졌다. 넓게 펼쳐진 높은 담벼락 과거와 현대가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놓은 장원. 이 일대가 모두 장원의 개인 소 유지였다. 산과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분 지처럼 보이나 실상은 아니다: 장원의 정문
불을상징하는 인장이 박혀 있다.
장원은 한국을 대표하는 7개의 무문, 화천문이다.
랜덤 케이브로 좋지 않은 소문에 시달 리기는 했으나, 세월을 이겨낸 무문의 전 력이 있었다. 화천문은 문주인 권영일을 중심으로 심기일전, 소문을 일축했다 화천문주가 직접 나서고, 염화 권우화 가 문파의 대소사를 총괄하자 안정을 찾 았다. 특히 염화의 일처리는 그간 보여줬 던 능력이 빙산의 일각임을 증명했다
화천문주의 염화에 대한 총애와 신임 이 시간이 지날수록 커졌다 그러나 그럴수록 대공자를 필두로 한 세력은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랜덤 케이 브를 안정시키면서, 대외적으로는 안정올 찾은 화천문. 내부적으로는 후계 문제를 두고 파벌이 생기고 있었다. 화천문주가 건재하기에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해도, 언 제든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륵사륵!
길게 뻗어 있는 통로, 나무 재질로 되어 있는 바닥을 걷는데 소리가 크지 않았다.
통로의 빛올 잠식하는 붉은 머리카락이 강렬했다.
화천문의 대소사를 총괄하고 있는 염 화 권우화가; 무문회합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간이지만, 많이 달라져 있었다. 본격적 으로 문파의 대소사를 총괄하면서 책임 과 권한이 막중해졌다 자리가 사람을 만 든다는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전에 보이지 않았던 무거움과 진중함이 뿜어졌다 슥
그녀가문 앞에 멈춰 섰다.
화천문의 대전.
“들어오너라”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 어갔다
대전의 중앙에 화천문주, 권영일이 앉 아 있었다. 묵직한 기도가 대전을 잠식했 다. 근래에 들어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는 염화지만, 문주와 비교하면 여전히 부족 함올 느끼게 해주었다
“문주님을 뵙습니다”
“아버지라불러라”
염화는 공과사의 구분이 철저했다. 아
버지라 할지라도 공식석상에서는 항상, 문주님이라 호칭했다. 그러나 대전이라고 는하나, 부녀만의 자리였다
“어떠하데4?”
“과반이 넘어요.”
“실망했느냐?”
“아니요.”
“안타깝지만, 사내와 여자는 동등하지 않다. 그것이 현재까지의 인식이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권영일조차도 아들과 딸올 차별했다. 딸이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 도, 아들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 다 아들이 몇 번이나 실망올 주지 않았다 면말이다 그때가 되어서야 딸의 능력을 눈에 들 어왔다. 당연히 해왔던 일임에도, 명분과 권한이 주어지자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 다. 이는 화천문에 소속된 무인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딸의 능력이 아들을 넘어 선다는 것을 그럼에도 인식은 엇갈리고 있었다
“어쩌실 의향이시죠?”
“쳐 내야지.”
“그들을 다 쳐 내면 문파의 기반이 혼
들릴 수 있어요.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 각을 해요.”
“기틀이 바로 서지 않으면, 수가 많다 한들 모래성에 지나지 않아; 혹, 혈육의 정 에 얽매이는 것이더냐?”
“아니에요.”
“그래야지, 단체의 수장이 되려면 정에 연연해선안 된다”
권영일은 말을 하면서도, 지나간 시간 올 반성했다. 아들이라고 해서 오냐, 오냐 했었고 그로 인해 문파의 기강이 흔들렸 다. 더욱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기는커 녕, 아비의 말을 거역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자신했으면, 지지를 말았어야 지.’
무림대회의 출전은 염화로 결정이 났다 아들은 문파의 대소사에 배제되어, 폐관 수련을 명했다. 그런데 문주의 명을 거역 하고, 염화에게도전올했다 문주의 명은 그 어떤 것보다 우선이 되 었다 기사멸조의 죄임에도 묻지 않고, 기 회를 주었다. 하지만 패하고 말았다 마지 막 기회마저 얻지 못했고, 끝까지 추한 모 습올 보였다:
‘눈이 멀었었구나:
권영일은 아들의 일로 인해 많은 것을
느꼈다 그간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 어올수록 부꼬러움이 밀려왔다. 이제는 문파의 개혁이 필요할 때였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었다. 문파의 미래를 위해서 라도, 썩은 싹은 잘라내고 개혁을 해야 했 다
“이제부터 네가화천문의 진정한 후계 자다”
“최선을 다해 본문의 영광을 되찾아오 겠어요.”
“후계자가 되었다고 네 오라비처럼 수 련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 명심하겠습니다?”
그때였다
권영일과 염화의 미간이 살짝 변했다. 부녀간의 대화를 위해서 대전의 주변을 물렸다.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했건만, 익 숙한불청객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드륵!
문이 열렸다.
권영일은 미간을 더욱 찌푸렸다. 들어 오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주의 허 락도 없이 제 맘대로 열고 들어왔다 아비 의 권위에 도전하는 느낌올 받았다
“저를 빼고 작당모의를 하시다니, 너무
하십니다:”
느닷없이 등장한 인물.
폐관수련에 몰두하고 있어야 할 화천문 의 대공자 권우현이다 권영일은 아들의 행태에 노기를 감추지 못했다. 반성을 하고 있어도 모자란 놈이, 아비에게 작당모의라니. 갈 데까지 간 최 악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버지의 노기를 감지한 염화가 먼저 나섰다. 부자간에 폭력사태가 벌어지면, 좋지 않았다. 더 이상 엇나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빠 대체 왜이래?”
“시끄러워! 너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되
진 않았어.”
그런 염화의 바람과는 달리, 화룡일수 는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객관적이지 않은, 왜 나를 밀어주지 않고 동생에게 자 리를 주었느냐는. 자신의 권리를 빼앗은 동생에 대한 질시와 원망이 투영되었다
“정당한대결이었어, 알잖아”
“실수만 하지 않았으면 네가 내 상대가 될것 같아!”
무인이 실수를 언급하다니, 최악이었다 전투 중에 실수였다고 상대방이 기회를 줄 거라고 여기는가: 마음가짐조차 올바르 지 않았다 가족이기에 참고 있었지, 아니 었다면 엄하게 호통을 쳤올 것이다
“그렇다 해도승부는 승부야 정 그렇게 억울하면 다시 도전을 해. 언제든지 받아 줄 테니까:’
"위선 떨지마!”
권우현의 눈빛에 독기와 살기가 교차했 다 동생에게 패배를 한 이후 자존심에 상 처를 받았다. 그것은 씻기 힘든 모욕이었 다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 위해, 실력을 숨 기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네놈이 이제는 아비도 보이지 않는구 나:’
“아버지의 잘못이에요. 어째서 제 자리
를 동생에게 주는 겁니까? 화천문의 다음 대 문주는 바로 저라고요!”
“그래도 이 녀석이!”
객관적인 안목마저 무시해 버리는 아들 이었다 누가 봐도 정당한 대결이었고, 사 특한 방법올 쓰지 않았다 자기 실력이 미 치지 못한 것올 탓해야지, 주변에 전가를 하고 있었다
“됐습니다. 이제 내 자리는 내가 찾을 겁니다”
“하아 정녕 그리될 수 있다고 보느냐?”
“아버지라도 저를 막을수 없습니다”
“그리 자신하면 와서 이 자리를 빼앗아
보거라”
권영일은 아들이 이렇게까지 엇나갈 줄 은 예상 못했다. 폐관수련을 통해 흐트러 진 정신을 가다듬고, 평정심을 되찾는다 면 기회를 주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그 일 말의 가능성마저도 제 스스로 걷어차 버 리고 말았다. 아비로서, 화천문의 문주로 서 아들에게 잘못을 뉘우치도록 본보기 를 보여주어야 했다
“하라면 못할줄 압니까!”
염화는 오빠의 패륜에 깊은 한숨이 흘 러나왔다. 저렇게까지 절망하고 있을 거라 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더욱이 모든 일이 자업자득이었다. 본인의 실수를 주변 탓 으로 돌리고 있었다. 오빠로서도, 남자로 서는 최악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이제는 아버지를 향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니 오빠는 더더욱 안돼!’
염화는 문주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있 었지만, 무엇보다 우선시한 것은 문파의 미래였다. 흑금단주와 만나기 전까지만 해 도 오빠는 문파의 대공자로서 무난했었다 그러나 실패를 거듭하면서 오빠의 본성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오빠에게 문파 의 미래를 맡겼다가는, 모두를 위험에 빠 뜨릴 것이다. 한 나라의 수장이면서 열등 감에 시달려, 백성마저 버리고 도망친 선 조처럼.
‘분노에 눈이 멀어 사리분별도 못하다 니.’
염화는 오빠의 도전을 무모하게 바라보 았다. 아버지는 여전히 문파의 최고수다. 장로들이 합공을 한다 해도 아버지를 무 너뜨리진 못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절대 고수로서, 전투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 지 않는다 자부한다. 그런 아버지를 상대 로 도전을 하다니, 10년은 일렀다 화르르르!
권우현의 염화일기공이 뿜어져 나와공
간올 덥힌다. 공기가 순식간에 타들어가 며, 제공권을 형성했다 이어서 빠르게 치 고 나가는 보신은 바람보다 빨랐다. 화염 풍이 동반되며 가공할 열기를 발산한다
“아니?”
오빠의 염화일기공에 염화는 놀람올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대련을 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성취 다. 족히 2배, 어쩌면 3배 이상의 공력이 증진되었다.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다 오 빠는 동생에게 자리를 양보할 성향과 거 리가 멀다. 일부러 패배했을 리 만무했다.
자존심이 강한 오빠가 모두가 보는 앞에 서 실력올 감추었올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간 절치부심을 한 모양이구나:’
권영일은 아들의 반항에 화가 나면서 도, 비약적인 성취에 노력올 인정했다. 그 러나 인정과는 별개로 문주의 권위에 도 전한대가를치러야한다 그것이 설령, 아들이라 할지라도.
우우웅
권영일의 육신에서 무시무시한 화력이 분출되었다.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을 모 조리 다 불살라 버릴 만한 파괴력을 지니 고 있었다 씨익!
아버지의 경이로운 화력에, 권우현의
입꼬리가 말아 올라갔다
“건방진!”
아들의 미소를 본 권영일은 괘씸했다 그 순간.
권영일의 신형이 멈칫한다
“크윽, 이건‘?”
“설마 아무런 대안도 없이 찾아왔겠습 니까!”
“너 이 녀석… 커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