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160화 (160/500)

제 6장

얽히고설키다 (1)

“일이 참 우습게 돌아가는군. 그렇지 않 나?”

“송구합니다 전적으로 제 불찰입니다!”

“아니지, 미리 말하지 않은 내 불찰이 야”

“가주께선 실수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가, 생각해 보니 그렇군.”

이극은 금강문과의 협상을 맺은 후, 세 가로 돌아와 가주와 독대를 하게 되었다. 사태를보고해야 할 책임이 있었다. 하지 만 가는 내내 심경의 복잡함이 쌓이고, 쌓 였다.

가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 컸다. 그 의 성향상 절대 실패를 용납하고 받아들 이진 않을 것이다. 언제고 쓸모가 다하면 가차 없이 버려질 소모품임을 직시했다. 그러나 절대 의사를 내비치지 않았다 이극은 최대한 납작 엎드렸다. 가주는 날카로운 직관을 지니고 있었다 조금이라 도 맘에 들지 않으면 맘속의 앙금까지도 파악하는 자다

“좌호법의 팔을 자르고, 인사불성으로 만들다니 대단하군.”

“철저히 능력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주 의해야 할 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만한 능력자를 찾기도 힘들 지. 안그런가?”

“그렇습니다 가주!”

이극은 최대한 숨기지 않았다. 숨긴다 고 될 일도 아니고, 좌호법의 상태가 당시 에는 심각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양호한 편이었다. 팔이 잘리기는 했어도, 매끄럽 게 단숨에 잘려서 치료술을 받으면 곧 원 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단전이나, 기맥에 입은 상처도 요상대법을 활용하면 되었다

“금강문이 우리한테 도움이 되리라 보 는가?”

“병기로 쓰기에는 적당합니다”

하북팽가는 현재 상황이 그리 좋지 않 았다. 오대세가 간의 경합에서 남궁세가 에게 밀렸고, 이 와중에 사파연합인 흑룡 성이 각 성을 노리고 있었다. 맥이 끊겨 겨 우 연명하는 수준일 줄 알았던 혹룡성의 기세가 등등했다.

그러나 오대세가와 구파일방의 자존심

상 무림맹의 창설은 시기상조로 받아들 였다 각 성을 담당하는 대 문파나 세가가 축이 되어 혹룡성을 막자는 의견이었다.

문제는 팽가의 영역을 노리는 혹룡성의 핵심 문파인 사흑문과 접전 양상이라는 것이다 말이 좋아 접전이지, 밀리고 있어 팽가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렇다고 다른 세가나 구파일방에 손을 내밀기에는 스스로 힘이 없음을 시인하는 꼴이 된다.

“본가의 희생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최대한 지원을 받아내야 하는데, 할 수 있 겠나?”

“삼공자와 함께 결과로서 보여드리겠습

니다.”

팽우경이 그리는 큰 그림은 다른 곳에 있었다. 가문의 힘이 약해졌다고 믿는 자 들에게, 남아 있는 역량을 보여준다면 반 전의 기회가 올 것이다. 사흑문과의 대치 국면도 다음을 준비하기 위한 수순이었 다 그러나 사혹문을 만만히 봐선 안 되었 다 지금 당장은 막아낼 수 있으나, 흑룡성 의 12개의 문파에서 지원을 온다면 곤란 했다

‘그것만 완성되면, 굳이 눈치 볼 필요도

없겠지.’

당장은 시간과 역량을 감추는 작업이 필요했다.

정우는 학교 정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를 대놓았다 차 안엔 양용익 부단주와 혹막의 수장 박찬균이 앉아 있었다 혹금단의 혹독한 조련 과정을 마친 박 찬균, 군기가 바짝 들었다. 혹막의 수장으 로 나름 이름이 알려진 자이건만, 혹금단 내에서는 막내나 다름이 없었다. 옆에 있 는 부단주는 자신을 가르친 실질적인 교 관이었다.

‘ 악마들!’

치가 떨리는 조련 과정이었다

혹금단의 실체를 알면 알수록 박찬균 은 거역할 수 없는 수렁에 빠졌음을 실감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단체를 만들어도 되나 싶을 만큼 혹독하다.

박찬균도 나름 흥신소 바닥에서 잔뼈 가 굵고 잔인하다는 말을 흔하게 듣곤 했 지만, 혹금단에 비할 바가 아님을 깨달았 다 하늘 밖에 존재하는 악마들의 놀이터 다

장난감은 본인이고.

놀라운 사실은, 그 실체의 우두머리가 세단의 뒷자리에 앉아 있는 고등학생이란 것이다

‘내 인생 돌리도!’

박찬균은 나쁜 놈도 급이 있음을 실감 했다. 단주에 비하면 선하게 살아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구르고 또 구르고, 정신 제압에 죽지 않는 기공술까지 배웠다. 전 투력이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늘었지 만, 불행했다 죽고 싶은 마음이 서너 번씩 들었었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선배들이 찾아와 집

단 린치를 가해왔다.

어떻게?

표정만 봐도 안다나?

귀신같은 자들이었다

-이 새끼 죽으려고!

와 이 이기적인 새끼를 보소, 지만 편 하려고!

-죽엇, 아니지! 살아야지 새끼야!

-너 죽으면 우리가 얼마나 피가 마르는 줄알아!

-개인적인 놈한텐 매가 약이지, 밟아!

-내일도 죽는다고 깝치면, 알지?

혹금단에 강제 가입이 된 이상 죽음도

민주주의적 자기 의사결정 권하고 무관하

다.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도 육체는 생 생한 데다가 죽으려면 단주의 허락을 받 아야만 가능했다 그러나 단주는 살려서 두고, 두고 괴롭 히는 성향이었다. 고자질을 한다 해도 통 하지 않는 그야말로 최악의 말종 집단. 그 래서 그런지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않았다. 선배들의 성향은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았다.

박창균은 철저한 세뇌 교육을 받아 현 재 혹막으로 외근 중이었다. 그나마 정보 수집 능력이 뛰어나서 다행이었다. 일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 되어 버리고 말 았다

‘난끝까지 외근이다!’

외근을 해야만 산다. 그리고 단주에게 유능함을 드러내야 했다. 이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이 다. 시키면 뭐든지, 대통령이 오늘 어떤 속 옷을 입고 출근을 했는지도 밝혀낼 자신 이 있었다.

“ 까봐:”

“겉으로는 그룹의 요청으로 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는 다릅니다. 국내에 영 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기반을 장악의 첫 단추를 꿰기 위해서입니다.”

“하긴, 내버려 두기에는 먹잇감이 괜찮 은 편이지.”

귀찮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저금통 주변에 날파리가 꼬인다.

정우는 나설지 말지를 고민해 보았다. 먼저 움직이는 편이 낫기는 한데,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이것을 먼저 해결 하고 나서야 명분이 생긴다. 하지만 상대 가 발 빠르게 치고 나온다면 안타깝지만 단호해야 했다. 서푼의 인정에 얽매여 희 생을 초래할 바에는, 과감한 결단이 현명 하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하지, 아마’

정우는 그런 생각을 해 봤다 자신은 가 만히 있는데, 세상이 건드린다고.

그러나세부적으로, 기민하게, 핵심을 파고들어 보면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자 기 몫을 챙기고, 영향력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 부딪침은 당연했다. 가 지지 못한 자는 제외를 하더라도, 가진 자 와의 마찰은 필연이다.

‘암만 봐도 화근을 부르는 체질이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료한 삶은 아니라고 봤다. 삶을 영위해 나가는 건 생명체의 소명이다. 그것으로 인해 설 령 세상이 큰 화를 입는다 해도.

미래는 선의도, 악의도 중요하지 않다. 선의를 행한다 하여 화를 면하고, 하지 않 는다는 하여 화를 당하지는 않는다 역사 를돌이켜 보면, 선과 악의 영향이 팽팽하 다

“그가 단주님의 신상을 조사하고 있습 니다”

“어디까지 파악했지?”

“알려진대로입니다.”

집요한 구석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쁘지 않다. 정우는 뒤끝유발자를 원하는 편이 다. 어떤 식으로 나오든 명분은 생긴다.

“상대는 감각이 뛰어나고, 냉철한자니

섣불리 접근하지는 말고.”

“명심하겠습니다.”

임무 보고를 마친 박찬균과 양용익은 신속히 세단에서 내렸다. 정우가 창문을 열고 지갑에서 1만 원을 꺼내 주었다

“택시 타고가라”

“감사합니다. 단주님!”

90도로 허리를 숙이려던 양용익과 박 찬균은 뻣뻣해졌다. 단주의 개세적인 공력 이 육신을 통제한 것이다. 나름 강해진 양 용익과 박찬균이지만, 조족지혈임을 수시 로 실감하고 있었다

“시선 많다”

“송구합니다!”

양용익과 박창균은 만 원에 감동하게 될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전엔 택시는 쳐다보지도 않았고, 외제차를 몇 대씩 굴리고도 아쉽지가 않았었다. 그때 와 비교하면 격세지감, 근검절약이 몸에 배였다.

만 원의 행복?

아니지.

만원의 불행이다

현천공을 운용하여 감각을 극대화했 다. 6단에 이른 수연의 현천공은 예전과 는 비교도 하기 어려울 만큼 진전이 되었 다 극도로 예민해진 감각이 공간을 확장 하여 불순물을 걸러 내었다. 현천의 진기 는 자연스러움을 기반으로 한다. 미세한 변화를 캐치해 분석, 안전성을 테스트했 다

‘좋았어.’

감각 테스트를 해 본 결과 혹금단 아저 씨들의 기척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은밀히 학교 곳곳. 즉 교실, 복도, 창고, 교무실, 화장실, 탈의실까지 꼭꼭 숨어서 철통감시를 벌이고 있었다. 사생활의 침해 범위가 날이 갈수록 타이트해졌다 이 망할놈의 아저씨들이 오빠의 명령 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시선에만 들키지 않을 뿐, 나와 내 친구들, 전체 학 생들.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감시리스트에 포함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삿된 마음이 있으면 강제력을 발휘했다. 학교 내에 시 기, 질투, 폭력을 지양한다는 오빠의 목적 에만 부합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니, 어느 날부터 학교 폭력이 사라지고, 성추행 관 련 소식이 끊어졌다

‘의매증 말기야, 말기!’

애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쩌려고?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수시로 감시

당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자진 신고를 불가능하다. 의매증(疑味症)이 심각한 질병 임에는 분명하지만, 선의였다. 이를 무작 정 싫다고만 할 수도 없는 처지다. 작금의 나를 완성시켜준 사부나 마찬가지인 오빠 를 외면하지는 못한다 외면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절이 싫어 중이 떠나도, 오빠라면 찾아 오고도 남는다. 벗어날 수 없는 혈연의 굴 레를 수연은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그래도 오늘은 아냐.’

최대한 늦게 들어가고 싶었다. 걸리는 즉시, 지옥행 열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짜증나는 상황의 반복을 또 겪고 싶지 않 다. 훈련이란 미명 아래 동생의 발버둥을 즐기는 오빠의 악취미였다

‘영화보고, 밥 먹고, 노래방도 가고. 최 대한늦게 들어가야지.’

친구들도 몇 명 꼬드겼다.

소영이도 오늘은 과외가 없다고 해서 참석하게 되었다. 솔직히 얘는 좀 피곤하 다. 오빠에 대한 우상화가주체사상을 능 가하고 있었다. 심각하게 왜곡되고, 부적 절한 정보제공의 피해자였다 소영이는 북 한에 살고 있는 불쌍한 주민처럼 왜곡된 정보를 받아들여,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 고 있었다. 오빠의 간교한 정보 조작에 세 뇌당한 불쌍한 희생양이다 하지만 그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오 빠의 진면목을 모른 채 좋은 오빠인 줄만 알다니. 내가 아무리 말해도 소귀에 경을 읽는 격(牛耳讀經)이었다 심지어 나보고 오 빠에 대한 집착을 버리란다. 집착하는 게 누군데.

‘나만 나쁜 년 됐잖아’

그렇게 좋은 오빠를 흉본다고, 못된 동 생이 되고 있었다. 한편으로 안 보인다고 오빠 욕을 하고 있으니, 좋게 보이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래도 오빠한테 한번 당해 봐라, 쌍욕이 막 나올 거다. 엇나가지 않고 이만큼 올바르게 자란 것만 해도 훌륭했 다

“수연아”

“?…응?”

“뭐해?”

“아냐.”

소영이 친근함을 과시하며 수연의 손을 잡았다 요즘 들어 손잡는 걸 그렇게 좋아 하는 소영이다. 내가 너의 베프라는 걸 널 리 학교에 공표했다. 전교 1, 2등이 화목 하게 지내니, 그림은 잘 나왔다. 경쟁의식 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모 습이 미담의 충분조건이 되었다

“부러워, 네가:’

“…어떤 점이?”

부럽다니, 그럴 수도 있겠으나. 딱히 소 영이가 부러워할 만한 필요충분조건을 찾 기 힘들다. 소영이가 개천에서 태어난 봉 황도아니고.

“오빠가 직접 훈련시켜 주잖아 나도 받 고싶다. 네오빠한데.”

“?…(미친)!”

너 진짜돌았구나!

나니까 버티는 거라고!

소영은 수연을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

었다. 집에 훈련장이 따로 있어, 대련을 해 보자고 했었다. 나름 유니크가 되기 위한 훈련을 차곡차곡 받고 있는 과정이라, 어 느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몇 번 겨 룸으로 격의 차이를 체감했다. 도저히 넘 을수 없는 거대한 벽이 눈앞에 있었다. 시 기는 하지 않는다. 그렇게 대단한 오빠가 있으니, 수연이도 강해진 거라 믿고 있었 다

“엄마가 너하고 친하게 지내도 된대.”

“고-답구나!”

소영은수연의 집안이 평범하지 않음을 인정했다. 작은 기업을 운영한다고 하더 니, _요즘 뜨고 있는 하이퍼 팩토리였다 아 바도 하이퍼 팩토리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 다. 대한그룹의 협력 업체로 신제품을 내 놓을 때마다 돈을 쓸어 담고 있다고 한다. 이제는 중소기업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빠의 회사인 영진약품보다 훨씬 상종가 를 치고 있었다.

‘제정신들이아냐! 다들 미쳤어!’

오빠의 이중성을 낱낱이 밝히고, 선량 한 어린 양들을 구원해 주고 싶으나 방법 이 막막하다. 눈에 콩깍지가 제대로 쓰이 고 말았다. 오빠의 빈틈이라도 있다면 찌 르고 들어가고 싶으나, 인정머리 없이 완 벽했다. 피를 나눈 혈육도 치를 떠는데, 오 빠에게 미움을 산 자들의 말로는 보나 마 나다 드륵!

담임선생님이 종례를 위해 교실로 들어 왔다. 내일 필요한 준비물과 청소를 지시 하고 돌아가셨다. 아주 쿨내 진동하는 짧 은 종례다. 교장선생님도 훈화말씀을 담 임선생님처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자 애들아”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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