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159화 (159/500)

제 5장 협상조율 (6)

이극은 그제야 흑금단주의 본질을 조 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의 입가에 맴도 는 희열, 그것은 살소(殺笑)였다. 그렇다 하 나, 이대로 숨을 죽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를 죽이면 본가와 금강문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네. 정녕 그리되기 를 바라는가?”

“시비를 건 건 우리가 아니라 팽가지."

이극이 보기에도 남천명의 등장은 예상 외였다. 힘으로 금강문을 압박하려는 의 도가 있었음을 부정하진 못했다. 협상의 우위에 서려면 우열의 증명은 필연이었다

“설령 그렇다 한들, 과한 처사지 않나!”

“과하기는 오히려 좋아할 일이지.”

협상을 하자고 나와서 대상자를 반병신 으로 만들어 놓고, 좋아하다니.

변태도 아니고.

이극은 기가 차도 말도 잘 나오지 않았 다. 금강문은 온전한 정신이 박힌 인간이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죄다 만나는 놈들 마다 미친놈이었다. 그런데도 한국에서는 잘나가는 걸 보면,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본가를 업신여기는 것이냐!”

“사태 파악이 안되나봐;

“겁박을 한다고 달라지진 않는다?”

“그게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라는 거야.”

“나를 모욕하는 것이냐!”

하북팽가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귀 영각이며, 이극은 각주다 현실 파악을 하 지 못한다는 의미는 지독한 모욕이었다. 모멸감까지 받았다.

“팽가의 가주는 예상보다 쪼잔하군.”

“말을함부로 하지마라!”

“아직도 모르겠어, 이자가 찾아온 이유 를?”

“무슨 말이더냐!”

“이거 실망인데, 이쯤 되면 알아들을 사람으로 봤건만.”

혹금단주의 신랄한 비판에 화가 치밀었 던 이극은 뇌리를 찌르고 지나간 섬광에 아연실색했다. 차라리 협박을 한다면 모 를까, 혹금단주는 좀 전과 다른 사람이 되 어 있었다 보다 냉철하며, 돌아가는 현황 을 직시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혹시?’

생각이 맞는다면, 이극은 모욕을 당해 도할말이 없었다 한국 내의 일이 실패하면서, 본가에서 정보를 건네주지 않은 것이다. 남천명의 등장도 사전에 언질을 주었어야 했었다. 협상을 주도한 자신과 삼공자에게마저 알 려주지 않고 남천명을 보냈다는 건, 가주 의 신임을 잃었다는 뜻이 된다.

“떠오르는 게 전부가 아닐 거야”

“아니라니, 또 있다는것이냐?”

“좌호법을 보냈다는 건, 두 가지 의미

야.”

“두가지라고?”

“하나는 본문의 전력을 알아보려는 걸 테고.”

“그건 알고 있다”

“다른 하나는 팽가가 위태롭다는 의미 지.”

이극은 소름이 돋았다. 오대세가의 한 축을 담당하는 하북팽가다. 설득력이 떨 어지는 추론이어야 했다. 그러나 돌아가는 정황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렇지가 않 았다 남천명이 비록 팽가의 좌호법이라고 는 하나. 직계는 아니었다. 그를 보냈다는 건 단순히 금강문을 힘으로 찍어 누르려 는 것보다는 협상을 하려면 이 정도는 넘 어서야 한다는 의도가 더 강했다. 좌호법 올 제압할 힘이 있다면 본가와 협상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역으로 따지면.’

팽가가 그만큼 절실한 상황에 처해 있 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극은 가주의 신뢰 회복에 급급해 정 보를 선별하지 않고 받아들였음을 깨달았 다. 그간 해온 과정이 있기에 본가의 신뢰 를 잃지는 않았다고 여겼건만, 자신도 남 천명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눈앞에

있는 혹금단주였다.

‘이 모든 사태를 알고 있었다는 것이 냐?’

괴물 같은 전투력은 타고난 속성이라고 쳐도, 사태를 파악하는 넓은 혜안은 아무 나 가지지 못한다. 판을 넓게 보고, 전체 를 읽어내는 경험과 연륜을 갖추어야 했 다. 반로환동한 괴물이 아니고서는 믿어 지지 않는 현실이다.

‘무서운 놈이다!’

일전에 스쳐지나가듯이 물었던 때가 엊 그제 같았건만, 괴물을 상대로 무모한 도 발을 한 격이다. 어쩌면 그때의 일들이 이 놈의 머릿속에서 나왔을 수도 있었다. 의 자에 앉아서 코나 후벼 파고 있는 금강문 주의 머리로는 도저히 나오기 어려운 계획 이다.

‘이자다, 이놈이 분명해!’

금강문의 부흥은 최근이었다. 저 안하 무인의 금강문주가 인망이 두텁고, 신뢰 와 믿음이 가는 인물로 포장이 된 것만 해 도 알수 있는 대목이다.

“어때, 이만하면 쓸만하지 않아?”

“그렇다 한들, 좌호법의 팔을 자르고 인 사불성으로 만들었는데 가주께서 가만있 을 거라 보는가.”

“팽가의 가주는 사사로운 감정보다는 가문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지. 내 말이 틀려?”

이극은 생애 처음 누군가에 대해 두려 움을 느꼈다. 이자는 보통을 넘었다. 가진 무력은물론, 지략까지. 게다가 가주를누 구보다 정확하게 바라보았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자이기도 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이극의 말투가 바뀌었다. 주도권을 빼앗 겨 버린 이상, 최대한 애초에 진행했던 협 상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했다. 본가 를 우위에 내세우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 았다

“본문은 이득을 취하기 위해 계약을 되 돌리는 짓은 하지 않아. 그건 우릴 대단히 무시하는 처사야.”

“…물론이오.”

이극은 안심을 하면서도 두려움을 느꼈 다. 혹금단주는 경시하기 어려운 자였다. 본가에서는 그를 경계해야 했다. 한편으 로 그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게 잘하는 것인지 회의적인 감정이 들었다.

‘후후, 의심은 원래 이렇게 시작이 되 지.’

정우의 목표는 계약의 성사와 이극의

심기를 흔드는 것이었다.

남천명의 등장이 뜻밖이진 않았다. 팽 가에서 힘을 쓸 거란 건 예상을 하고 있었 다. 이극의 실패로 인해서 초조해 하고 있 다는 건 팽세기에게 전해 들었다. 협상의 주도는 이극이 하면서 표면적으로는 팽세 기가 앞장서게 될 것이다.

이를 보다 공고히 하려면 이극의 협조 가 필요했다. 가주 직속의 이극이 팽세기 를 의지하도록 만들려면, 이간질은 필수 요소였다 물론 강하게 나가진 않는다. 이 런 자는 본인의 눈, 귀, 머리를 특별하다 여기는 부류다. 강요를 하게 되면, 분명 의 구심을 갖고 찾으려고 할 것이다. 그런 분 야에선 감각도 뛰어나기에 제 스스로 상 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정우는 그저 상황을 거들었을 뿐이다

“명분은 제쳐두고, 우린 본문의 이익 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 은 팽가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돼."

“시원하구려, 그리하겠소."

이극은 흑금단주의 직설적이면서도, 확 실한 목적에 수긍했다. 지극히 합당하면 서도, 합리적인 발상이었다. 협상이란 서 로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다. 이익이 되 지 않는다면 언제든 돌아설 것이다. 그렇 기에 더욱 믿음이 갔다. 처음부터 협상을 위해서 간이나 쓸개를 내줄 것처럼 했다면 신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 가지고 노는 건 천부적이네.’

이호극은 이극의 머리 꼭대기에서 노는 정우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이 모든 상황 이 머릿속에서 구상이 되었고, 현실로 그 대로 재현이 되었다. 보면서도 솔직히 믿어 지지 않기는 했다. 차라리 힘으로만 해결 을 했다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거 다

‘어떻게 된 게 저 녀석 앞에 있으면 다

들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이 되냐.’

이것도 재주라면, 아주놀라운 재주다

참고로 엮이지 않는 게 이로웠다

괜히 엮어봤자 피 본다.

정우는 이극과 협상을 끝내고 텔레포 트 수식을걸었다.

마법이 7륜에 오르자 좌표를 설정하면 어디에 있든 본문으로 공간이동이 가능해 졌다 단, 공간이동 장소에 미리 마나를 연 결한 마법진이 설치되어야 한다. 대마법사 의 반열에 오르면 특정 장소에 마법진이 없이도 가능한 일이나, 7륜은 제약이 있었 다. 그렇다 한들, 어디에 있든 귀소본능을 충족하기에는 충분하다. 대리를 부르지 않아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금강문으로 돌아가기 전에 할 일이 있 었다.

전투는 혼전이 펼쳐졌지만, 실상 계산 된 설정이었다. 남천명을 아무런 손해도 없이 제압을 하면, 팽가는 위협을 느낄 것 이다. 건드리면 피를 보는 수준으로 설정 을 해 놓았다 그렇기에 정우는 주변의 흐 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결계의 축이 충격파에 밀려 나갔었다.

“결계의 흐름이 10cm가량 흔들렸다.”

“시정하겠습니다”

“고작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하면 내 체면 이 뭐가 되냐.”

“단주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 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은중요하지 않。]:”

“잘하겠습니다!”

“그래, 잘하는 게 중요해.”

혹금단원 1조 조장 강태산은 변명하지 않았다. 단주는 변명을 가장 싫어한다. 그 리고 단주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다. 주 제도 모르고, 변명했단 비명횡사가 그리 울 수 있었다. 단주의 성향상 절대 죽이지 않고, 내내 가혹행위를 당하게 된다. 사회 규범과 법칙은 통용되지 않는다. 단주의 이하 혹금단은 인간존엄과 거리가 멀다.

‘4라면까고.’

‘벗으라면 벗어야지.’

‘같은 말이잖아 새꺄’

‘난 몰랐는데.’

혹금단의 최종 학력이 중졸이라 벌어지 는 현상이다 못 배운 티를 너무 내고 있었 다. 하지만 그 점이 나쁘지 않았다. 못 배 운 놈일수록 주먹 앞에 고분고분하다. 센 놈을 따르는 센 놈 우월주의를 지향했다.

“상념이 길다 내가 너무풀어준 거냐.”

“아닙니다!”

정우의 갈굼은 이극과 귀영단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마지막까지 힐끔거렸던 이극은 질린 기 색이 완연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혹금단의 결계는 좌호법의 혈화신기를 막아냈다. 그 런데 고작 10cm가지고 갈굼을 당하니, 치를 떨만했다

“복창한다. 지금 시간새벽 5시.”

“새벽 5시.”

“3시간, 몇 시간?”

“3 시간!"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오나?"

“아닙니다!”

“그럼 2시간준다:’

혹금단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내달 리기 시작했다.

후다다다!

벌써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정우는 혹금단을 떠나보내고 텔레포트 를발동시켰다

“가시죠.”

“너도 징하다”

이호극은 고개를 절레절레 혼들었다. 2 시간은 미법도에서 본문까지 오는 시간이 었다. 자기는 공간이동으로 가고, 수하들 은 뜀박질로 오라는 명령이다. 제 시간 안 에 도착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 박을 더해서.

“그럼 뛰어 오실래요?”

“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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