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는 박상원이 만만치 않다는 걸 깨 달았다 연륜과 경험을 무시할 수 없었다. 돌려 말을 해도 그의 속내를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좀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경계 할 수 있었다 적당히 멈추는 편이 나았다 제 5장 협상조율 ⑴
새벽 4시.
동이 트기 까지는 3시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어둠이 깔린 공간, 간간이 비쳐지 는 빛이 전부였다.
강화도에 속한 여러 섬 중의 하나, 미법 도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섬 중으로 상시 인구가 30명올 넘지 않았다. 간혹 배를 몰 고 오는 관광객이나 농사일을 돕기 위한 용역이 오기는 한다
-한반도를 위협하고, 악의 구렁텅이로 몰고 가는 남조선의 수괴는 들을 지어 다?… 미사일 배치를 철폐하지 않으면 즉각 수도권을 불바다로?….
북한의 군사 분계선과 가까운 인근의 섬이라, 대남방송이 들려왔다. 시간올 한 정하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확성기를 틀 어 놓아 귀를 아프게 한다. 대북 화해 모 드일 때와는 달리 강경한 발언을 서슴없 이 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이 개입을 하는 바람에 더 시끄러웠다 썰물이라 선창■ 엔 갯벌이 드러나고 있었다. 예전엔 뱃터가 있었다고 하는데, 새우 잡이가 망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휘이잉!
바닷바람에 거칠고 비릿한 향기가 실렸 다
어둠 속에 천막이 설치되어 있었다. 천 막 안은 검게 칠해져 있는 외피와 달리 밝 고 넓었다 모여 있는 자들은 약속한 시간 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거한이 투덜거렸다.
“오려면 빨리 올 것이지, 더럽게 뜸들이 네."
“10분남았습니다”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사람올 이 시 간에 불러대? 잠도 없나.”
“시각의 차이겠지요:
“시각의 차이 좋아하네, 누가들으면 엄 청 멀리 떨어진 줄알겠다.”
“대륙의 클래스가 있지 않습니까”
“클래스좋아하네, 땡깡이나부릴줄알 지. 다지네 땅이나바다래!”
“힘이 있으면 뭔들못하겠습니까”
이호극의 불만 섞인 투덜거림에 반대편
에 앉아 있는 귀영각의 각주 이극은 심사 가 뒤틀렸다. 사람을 앞에 두고 대놓고 디 스를 하고 있었다 예전에도 그렇지만, 저 인간은 하북팽 가를 길가에 돌아다니는 돌멩인 줄 알고 있었다. 건방이 하늘을 찌르다 못해 안하 무인의 끝판왕이었다.
그럼에도 화를 내지 못하는 건 옆에서 추임새를 넣고 있는 흑금단주 때문이다. 화를 낼 타이밍을 적절하게 끊어내며, 염 장을 더 질렀다. 어떤 면에서 이호극보다 혹금단주가 요주의 인물이었다 디스의 격 이 다르다고 할까? 대륙의 사정을 봐주는 척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놈도보통이아니구나:
금강문의 인물들 면면은 가벼이 여길 대상이 아니었다 흑금단주는 물론 이호극의 세 아들도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금 강문과 협상을 진행하는 결정적인 이유였 다. 하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협 상의 내용이 팽가에 이롭다고 보기도 어 렵다. 우위를 확실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 었다 계약의 주도권은 팽가가 가지고 있어 야 한다. 오늘의 협상은 금강문올 팽가의 아래에 두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다
“왔네.”
응?
이호극의 반응에 이극은 멈칫했다. 자 신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간혹 밤 에 부는 바람 소리를 인기척으로 착각할 때가 있었다. 헛소리를 지껄이는 게 아닐 까 의구심이 들 찰나. 어둠을 투영하여 감 각에 잡히는 회미한 기운이 있었다:
‘생긴 건 소도 때려잡게 생겨가지고, 감 각이 극도로 예민하잖아: 철괴물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을 근육 으로 무장한 이호극이다. 딱 봐도 센서티 브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데 가장 먼저 희미한 기척을 잡아내었다- 전투력과 감각만큼은 인정해야 할 자임을 새삼 깨 닫게 되었다. 하북삼도의 건천도 팽우진 장로가 조심하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다.
펄럭!
휘장이 걷혔다.
검은 그림자가 천막으로 들어왔다
숨 막히는 위압이 스며든다.
움찔!
그를 본 이극과 팽세기의 두 눈이 요동 을 쳤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 한 인물이 나타났다. 본가에서 은밀한 자 리를 만들라는 명을 받았기에 누군가 올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저자의 등장은 뜻 밖이었다:
‘혈검라니!’
혈검(血劍), 남천명.
별호가 말해 주듯 그는 피를 몰고 다니 는 자다 전대 가주 때부터 좌호법에 올라 가주의 명을 수행했었다. 그가 나서서 해 내지 못한 일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가문에서 가장 강한 외인(外시이 다. 가주 외에는 그에게 명을 내리지 못하 고, 아무도 그를 다스리지 못했다. 이극조 차도 그의 진면목올 알지 못할 만큼 완전 히 드러낸 적이 없다 중국 무림 내에서도 북검남도(北劍南刀) 도 불린다. 남쪽에 백혈도가 있다면 북에 는혈검이 있다는.
스윽!
남천명의 스산한 안광이 이호극과 마주 했다
우웅!
둘 간의 신경전에 천막의 기류가 무겁 게 가라앉으며 금방이라도 터질 듯 일촉 즉발이 되었다. 짓누르는 무형의 압박에 숨을 죽어야 했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듣던대로 주제를 모르는군."
“이것들이 협상을 하자는 거야, 싸우자 는거야?”
“곧 알게되겠지."
이호극의 사나운 기세가 남천명의 근처 에서 와해되었다. 기세만으로 제압은 불가 능한 대적상대임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예 상보다 강하다. 이를 근질거리는 주먹이 감지했다. 도발에도 쉽게 흥분하지 않은 상대다. 본인에 대한 자부심이 높지 않고 서는 저러기 힘들다
‘시험을 하겠단 말이지.’
정우는 팽팽한 신경전의 의미를 파악했 다. 그리고 예상했던 바이기도 하다. 장소 선택을 최대한 인적이 드문 곳으로 한 이 유만 봐도 충분하다.
“어쭈이름좀 있나보지.”
“본가의 좌호법이오, 예의를 갖춰 주시 오.”
이극이 날카로운 신경전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어렵사리 협상 자리를 마련했 다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이런 식이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리고 이번 일은 자 신과 삼공자에게도 중요했다 반드시 성사 시켜야 할 이유가 있었다.
“ 남천명이다”
“내 이름은 알고 있을 테니 생략하고.
할거야 말거야‘?”
잡설을 배제한 이호극은 아쉬울 것 없 는 태도였다.
그것이 이극과 팽세기의 심장을 조마조 마하게 했다. 한국 내에서 인망이 두텁게 형성되고 있다고는 하나, 반도의 백혈도라 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자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리는 것을 떠나, 맘에 안들면 밥상 올? 걷어차고도 남을 위인이다.
하나; 상대는 좌호법인 혈검이다
그 앞에서 저런 식으로 나오면 무사하 기 힘들다 백혈도와 더불어 북검남도라고 불리는 것만으로도 남천명의 위명은 증명 이 되었다
참을 인(忍)자에 왜 칼날(刀)이 들어가는 지 알수 있었다. 그만큼참기 힘든팽팽한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이극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활 화산의 정상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차작!
이호극의 발언에 참다못한 자들이 나 섰다
‘야차혈.’
혈검을보필하는 5명의도객.
주인이 명하면 그 어떤 자라 해도 물어 뜯는 야차 같은 자들이다. 겉으로 보기에 는 평범해 보이지만, 그것은 함정이다. 길 들어지지 않은 맹수의 숨결을 타고난 자 들이며, 이를 길들인 존재가 남천명이다. 그들 다섯이면 절대고수도 잡아먹는 다는 소문이 있었다. 상대가 설령 금강문의 문 주라고 해도 섣불리 상대하진 못할 것이 다
‘후후어쩔 거냐?’
팽팽한 신경전에 심장이 쫄깃쫄깃하기 는 한데, 이극은 차라리 잘됐다고 봤다. 이호극은밟아줄 필요가 있는자다. 저 강 철 같은 근육이 무장해제를 당해야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저벅!
팽팽한 긴장감이 극에 이를 때 누군가 한발을내디뎠다 그 안에 포함된 의미는 남천명과 야차 혈을 돌아보게 했다. 별거 아닐 수도 있으 나, 이호극과의 간극을 재고 있었다 그 안 으로 비집고 들어왔다는 건 범상치 않다 는 반증이다
“개는주인이 짖으라고 할 때 짖어야지, 안그래?”
정우의 말로써.
야차혈은 한순간에 주인이 기르는 개 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반대로 남천명은 개도 관리를 못하는 무능한 주인이 되었 다
일타이피.
동시에 남천명과 야차혈에게 빅엿을 날 렸다.
‘이놈성깔보소, 껄껄껄!’
이런 건 어디서 가르치나, 나도 좀 배우 고싶다
돈을 낼 의사가 있다
이호극은 기꺼웠다 태연한 척해도 심기 가 상했올 남천명의 낯빛을 통해 확인했 다. 확실히 사람 속을 뒤집어 놓는 말발에 서는 정우를 따라갈 자가 없었다
“그 입심만큼이나 실력이 있다면 좋겠 는데, 어떤가?”
“무엇을 말입니까?"
“개의 실력을 확인해 보는 것이."
“하긴, 말 안듣는 개한텐 몽둥이가약 이지요.”
이극은 숨이 멎는줄 알았다. 금강문주 야 워낙 꼴통이고, 신분상으로도 남천명 과 크게 뒤지지 않는다 쳐도. 흑금단주의 비아냥거림은 상식을 넘어섰다.
‘금강괴룡이라더니!’
그 문주에 그 문도였다.
어찌나 똑같은지, 판으로 찍어냈다고
할 정도로 싸가지가 없다 신분은 둘째 치 고, 나이도 어린 것이. 한국이 동방의 예 의지국이란 말도 무색하다. 본국에도 저 렇게까지 싸가지 없는 놈은 찾기 힘들다
‘죽으려고 작정을 하지 않고서야.’
야차혈은 개개인도 무시 못 할 실력을 지닌 도객이었다
“너희는 개가 되었다. 가서 사람이 되어 오거라?”
“존명.”
남천명의 명령이 떨어졌다
야차혈은 사람의 탈을 벗어던지고, 야 차혈공(夜?血功)으로 운용된 야차혈기(夜
=0를 뿜어내었다.
그 꼴을 보고 이호극은 가만있지 않았 다
“전 단주”
“예,문주님.”
“몸보신 좀하고 와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