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행운의 편지 (1)
일요일 아침 8시.
정우는 침대를 벗어나지 않았다. 오랜 만에 김 여사께서 김치찌개를끓이시겠다 고 했다 차분히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리 고 있는 중이다. 침대에 누워 오늘 해야 할 일정들을 상기하고, 현재의 역량을 테스 트해보고 있었다
-현재스펙.
-현천공은 9단의 중반
-마법 7륜의 극.
나열해보니.
“나쁘진 않은데.”
다른 이들이 이 사실을 안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괴물 같은 스펙이었다. 평생 한 우물을 파도, 설령 전생을 기억한다고 해도 가공할 성취 속도다. 브레이크가 고 장난 KTX를 연상케 한다
“속성 카피의 흐름이 마법을 활용한 권 능으로 가능할까'?”
정우는 심상을 구현하여 속성 카피의 프로토타입을 완성해 보았다. 현실과 심 상의 구분은 짓지 않았다. 오차범위 내에 서 정교한 컨트롤이 가능했다. 하지만 속 성은 천성과 일맥상통하고 있었다. 이를 완벽히 카피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것 이 가능하다면 전지전능도 가능하다. 신 의 범주에 도달해야만 엿볼 수 있는 단계 다 또 하나, 다크마스터의 속성카피로 인 한 성적 결함은 걸리는 부분이다. 자칫 성 불구자가 되는 수가 있다. 제아무리 강해 도고자는사양한다
“10단에 올라서면 알수 있겠지.”
현천공의 10단은 우주의 근원을 이해 하고 통제하는 단계다. 이제 얼마남지 않 은듯하나, 지금의 역량을 초월해야만 가 능하다 지금보다 더 힘들고, 지나하며, 오 래 걸릴 수도 있었다
‘간섭?’
불편한속박이 감지되었다.
대수롭지는 않으나, 정우의 신경을 쓰 이게 했다.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속박은 강해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벌컥!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온 그림
자
정우의 유일한 동생, 수연이다. 웬일로 일요일인데도 불구하고 일찍 일어나서 세 안을 했다. 평일과 달리 일요일은 어지간 한 일이 아니고서는 터치를 하지 않는 편 인데, 어쩐 일로 오빠의 방문을 열고 들 어왔올꼬?
“위선자!”
홈
들어오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뜬금없기 는 하다 상쾌한 아침을 바랐건만 가히 좋 지는 않다 어쨌든 세상 물정 모르는 동생이 겁도 없이 오빠를 위선자로 몰고 있었다. 위선 자라 함은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의 대 명사다. 하지만 수연에게는 항상 진심을 보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수연이가 어찌 오빠한테 위선자라 부르짖을 수 있단 말 인가. 지금도 동생이라서 봐주고 있는 거 다. 타인이었다면 위선자의 진면모를 보여 줬을 것이다
“시도가 신선하기는 하다만, 2절은 사 양하마.”
“오빠는 위선자야”
1번은 동생이라 참았다. 그러나 리바이
벌은 단어의 소비와 낭비다. 동생의 무모 한 저항을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께 서 아시면 얼마나 불편해하실까:
“전후를 잘라 먹고 지껄이면 곤란하다 수연아”
“오빠 때문에 귀찮아졌다고.”
소영이하고는 잘 지내는 걸로 아는데.”
“원래 친하지 않다니까”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수연은 자의가 아닌 타의로 소영과 베 프(절친)가 되어 버렸다. 오빠의 인위적인 조작질의 결과다. 그 전까지만 해도 승부 욕을 불태우던 소영이 180도로 돌아서더 니 항상 같이하려고 했다: 화장실까지 손 잡고 가잔다. 같이했던 2명의 여자친구가 서운해 하기까지 했다 소녀에게 화장실은 비밀의 공유와 친분을 과시하는 장소였다 두손이 모자랄 지경이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망발의 연속이었 다
?니네 오빠 너무 멋지더라.
-친절하고, 상냥하기까지.
-딱내이상형이야
-나도 그런 오빠 있었으면 좋겠다.
-잘생기고, 능력 있고.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개소리란 말
인가? 독도는 다케시마라고 주장한 쪽빠 리의 망언과 쌍벽을 이룬다 수연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 는 단어들이 무작정 나열이 되었다. 소영 이 오빠를 언급할 땐 표정과 말투마저도 달라진다. 선망의 대상이라는 걸 누가 봐 도알수 있을만큼 티를팍팍낸다 하지만 수연이 아는 오빠는 소영의 환 상과 전혀 딴판이다. 전투력만 지상 최강 일 뿐. 성격적으로 이보다 더 최악이기는 어렵다. 솔직히 오빠랑 사귀는 하라 언니 가 불쌍했다. 대체 어딜 보고 오빠에게 안 달이 나 있는 건지. 세상 여자들의 눈들이 다빈 모양이다:
“하하 소영이가사람볼 줄 아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정우 는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도 소영이를 잘 케어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럭무 럭 잘 자라서 동생과는 호형호제는…음 동성연애…음 불알친구…도 아니네 아무 튼 허물없이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맞는 말만 골라했어.”
“맞긴 뭐가 맞아, 맞을래? 내가 오빠를 몰라, 이 위선자! 어서 소영이를 원래대로 돌려놔 내가 얼마나 귀찮은 줄 알아!”
차라리 경쟁심을 불태울 때가 훨씬 편
안했다. 자매처럼 지내자고 하는데, 거절 하기도 애매하다.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 는 소영이를 매정하게 내쳤다간, 이미지가 실추될 수 있었다. 소영이가 승부욕이 있 기는 해도, 바른 생활 소녀였다. 반에서도 1, 2등을 다투고 인기도 제법 있었다
“복에 겨운 소리를 하는구나.”
“언제고 반드시 친구들 앞에서 오빠의 가면을 벗기는 날이 을 거야”
오빠의 물량공세는 소영이로 만족하지 않았다 수연의 주변 6인방도 거들고 있는 현실이다. 어디에 있든, 어디에서 뭘 하든. 다 알고 있는 오빠다. 흑금단 아저씨들이 생리대까지 챙겨 놓고 있었다. 필요할 때 쓰라나. 친구들에게 제대로 생색을 내주 는 바람에 졸지에 훌륭한 오빠를 둔 부러 운동생이 되어 버렸다
“그건 네가 날 넘어설 때나 가능하지.”
“내가이대로포기할거 같아?”
“반역을 하려거든 쉴드부터 넘고 나서 하시지.”
“망할놈의 쉴드!”
“오빠다 버릇없이. 내가 너를 그렇게 가 르쳤더냐.”
쉴드는 수연에게 역린이었다. 6단공에 올라서고 난 후 바로 도전하지는 않았다.
전략을 짜서 대결을 벌였다. 하지만 10전 전패다. 전략이고, 뭐고 뚫리지가 않는다 어떤 수를 써도 다 막아내니 대결을 벌이 다 보면 속에서 열불이 터진다. 화를 부르 는 오빠들임에도 불구하고 패배의 연속. 자신감만 잔뜩 살려주는 도구가 되어 버 렸다.
‘6단공이면 초절정을 넘어서건만.’
현천공이 6단에 오르면 절대의 경지를 바라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경지다. 10 년 전의 이호극과도 맞짱이 가능했다. 그 런 수연에게 패배의 멍에를 안겨주는 쉴 드의 성취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단기간 의 성취 속도만 따져 보면 쉴드보다 빠른 경우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지금부터지.’
쉴드의 성취가 빨랐던 건, 가지고 있는 속성과 유기적인 협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쉴드의 장점은 협업에 있다. 하지만 이것 이 무너지고, 개개인이 되어 버리면 연약 하기 짝이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인 훈련에도 집중투자를 해야 했다
“오빠 때문에 애들이 다속물이 됐어.”
“넌 아닌 척하는 거냐?”
“내가 뭘?”
“30만원.”
또 시작이다
패턴반복.
이 망할 놈의 오빠가, 인내심을 테스트 하고 있었다. 언쟁을 벌이다가 끝에 와서 는 본성을 건드렸다. 하지만 동공이 혼들 렸음을 인정을 하는 바다.
30만 원이 오빠한테는 하루 식비도 안 되는 껌값이겠으나 가여운 동생에게는 억 만금에 비견되었다 무엇보다 지난달에 이 것저것 사느라고 과소비를 했다. 그간 오 빠에게서 받은 돈올 전부 쏟아부었으니, 유동자산이 현격이 경색되었다. 그러나 내 뱉은 말을 주워 담으려면 쪽팔림을 감수
해야했다
‘나도자존심이 있다이거야’
오빠로 인해 아리따운 소녀의 자존심이 종잇장만도 못한 처우를 받고 있으나, 이 제라도 도도함을 유지해야 했다. 미소녀에 게 고고함은 필수옵션이다. 싸 보이면 매 력 어필이 되지 않는다. 여장부로서 블랙 로즈 길드장 언니를 본받아 절대 굽히지 않으리라 맹세를 했다 나도 한다면 한다 이거야, 왜 이래!
“20만원.”
“오빠! 왜 갑자기 줄여!”
일구이언(―□:=은해야지.
일구일언(一□?言)은 너무하잖아
“자존심올지켜주려고.”
“고민중이잖0!:”
“10만원.”
수연의 앙증맞은 손이 정우의 입을 가 로막았다 다음은 충분히 예상이 되는숫 자였다. 더 줄어 버리면 0원이 분명하다. 소녀에게 10만 원은 적지 않은 금액이었 다. 제로금리로 치닫는 현실이라 현금이 과거보다 인하됐다고는 하나, 가치는 있었 다
“콜”
“어이구 귀여운내동생.”
정우는수연의 부풀어 오른양볼을두 손으로 잡아 흔들어 주었다. 아무리 봐도 싹수가 보이는 내 동생이었다. 지금도 이 렇게 귀엽고, 속물 같은데 커서는 얼마나 아름다운 요물이 될는지. 감당이 되는 녀 석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사정이 아 니기에 관심은 없다
“동생을 속물로 만들어서 좋겠수다”
“애늙은이 같은 말투는 옳지 못해.”
동생은 귀엽고, 앙증맞으며, 밝고 상쾌 해야 한다. 애늙은이는 오빠로서 묵과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환갑에도 환골탈태, 반로환동을 시켜 귀여운 마스크를 유지시 켜 줄 것이다 이건 오빠로서 의무다:
“지는.”
“그건반말이고.”
입이 댓 발은 튀어나온 수연이었다.
꾸욱!
동생의 갑툭튀한 입술을 손수 눌러 주 는 친절한 정우였다 하는 김에 턱 주변의 관절까지도 손봐줬다. 여자는 하관이 매 끄러워서 미녀라고 불린다 브이라인을 유 지하면서 자연스러운 하관미녀를 완성해 주었다
“어딜 갖다대. 퉤퉤!”
“오빠손은 보약이다”
정우는 동생과의 언쟁이 싫지 않았다. 전생에선 경험조차 해 보지 않은 신선한 대화의 양상이었다. 바른생활 사나이인 진강백조차도 위선자라고 떠벌이진 않았 다. 그땐 진짜솔직함의 대명사라 해도 무 방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거칠 것 없 이 숨기지 않았으니까. 그럴 만한 무력도 되었고.
5년 후의 동생이기대된다
“이 오빠와 평생 산다고 한 말 유효한 거지?”
≪.2”
수연도 이제는 성에 눈을 뜰 나이다 또
래에 비해 아는 것도 많고, 발랑 까질 준 비가 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섣불리 대답 하지 못한 채 망설이고 말았다. 블랙로즈 의 길드장이 우상이며, 남자 아이들 자코 의 팬클럽에 가입했다
“그저 그런 놈 만나면 가만두지 않는 다”
“오빠보다좋은 사람 만날 거다 뭐.”
수연은 내뱉고 나서도 아니다 싶었다. 오빠의 화술은 장난 같지만 상대방의 속 내를 살살 긁어 본심을 드러내도록 한다. 대비하지 않고 방심하다가는 순식간에 영 혼마저 탈탈 털릴 수 있었다
“만나고는 싶은 모양이구나.”
“떠보지마 안 넘어가니까”
수연은 능글맞은 오빠의 농담을 흘려듣 지 않았다. 오빠는 충분히 그리하고도 남 았다 그래서 강한 사람이 아닌 좋은 사람 이라고 말한 것이다:
‘오빠보다 강한 사람을 어디서 찾아’
결혼 평균 연령이 남자는 35세, 여자는
32세였다. 오빠의 나이를 감안하면 10년 도 더 있어야 한다. 지금도 어마어마한 괴 물인데, 10년 후의 오빠를 상기해 봐라. 상상만으로도 오싹하며, 마른침이 삼켜진 다
“오빠는 나 괴롭히는 게 취미지?”
“이 오바는 널 사랑한단다”
이쯤 되면 취미가 아니라 특기지.
나날이 발전하거든
“그만사랑하시지!”
“그럼 용돈도 없다”
말로써도, 주먹으로도 오빠에게는 여 전히 상대가 되지 않는다. 자금력까지 갖 추고 있어서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오빠가 휘청거리면 집안이 풍비박산난다.
아빠도 근래에 들어 오빠의 눈치를 보 고 있는 현실이었다. 저 나이에 저래도 되 나 싶을 낭랑 18세다. 그런데 오빠가 싫으 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싫지 않고, 좋아서 더 괴롭다
“오빠”
“왜?”
“10만 원에 만족하면, 동생의 마음이 기특하고 가상해서 30만 원을 주고 싶지 않아?”
“금도끼, 은도끼냐”
10만 원을 물가에 빠뜨려 울고 있던 수 연에게 정우가 나타나 ‘이 돈이 네 돈이냐 했더니 아니라고’ 한 일화가 상기된다. 결 국 30만 원, 20만 원, 10만 원을 주었다는 아름다운 미화로 포장하고 싶은 수연이다 합하면 60만 원, 날강도다
“수연아”
“왜오빠‘?”
“이런말은들어봤냐?”
“무슨 말?”
“1대 맞고 끝날 걸, 3대 더 맞는다고.”
“입이 화근이구나.”
“ 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