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기반을 다지다 (5)
“전장에 나가려면 우선 배가 든든해야 하는 법이다.”
“회의 중에 싸우려고요?”
“맘에 안들면 싸울 수도 있는 거지.”
“그러지 마세요.”
기분 좋게 초밥집으로 가는 길.
여의도는 사람이 많았다. 남녀노소 불 문 한강 주변을 즐기는 인파가 몰렸다 대 부분 젊고 활력이 넘친다 시선이 집중되었다.
“저 사람?”
“혹시?”
“묵언의 금강문주!”
“와 진짜크다!”
사람들이 금강문주를 알아보고 웅성거 렸다. 한두 사람이 몰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이돌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호극이다.
“인기 장난 아니네요.”
“크흠, 그걸 인제 알았느냐”
남녀를 막론하고 이호극에게 다가와서 사진을 찍고, 사인을 부탁하고 있었다. 어 느새 구름떼와 같은 인파가 몰리고, 가는 길마다 따라오게 되었다. 누가 보면 선거 유세를 하고 있는 줄 알겠다.
‘신비주의 같은구식이 먹히네.’
정우는 문주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테스트해 볼 요량으로 초밥집으로 유인했 다. 가는 길마다 알아보기만 해도 성과가 있다고 봤는데, 상상 초월의 인기다. 예전 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대중성이다.
“가족이세요?”
“아들입니다.”
이호극이 말을 하자, 환호성이 터진다. 혹시, 벙어리가 아닐까 의심을 했던 것이 다. 덩치에 어울리는 시원한 목소리에 기 분마저 좋아졌다.
“목소리가 좋으세요.”
“과찬입니다”
강현, 강우, 강천 형제까지 덩달아서 인 파에 휩싸였다. 다들 2m가 넘는 장신에 근육으로 무장을 하고 있어 독특하기까지 했다. 멀리서도 시야가 확보되어, 시선집 중을 유발시켰다 씨익!
정우는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 괜찮군.’
이호극의 주둥이가 사고를 치지 않을 까, 걱정을 했는데 직선적인 말에 모두가 좋아하고 있었다. 가식이나 위선이 아닌, 꾸미지 않은 생목(Natural-voice)의 위엄이 었다. 뱉어 낸 말마다 거짓이고, 책임을 지 지 않는 요즘의 구태의연함에 질린 사람 들에게 신선함을 선사했다
“마물이 무섭진 않았어요?”
“무섭기는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걸!”
인파를 몰고서 초밥집에 당도한 문주와
3형제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워낙 인기 있는 맛집이라 잠시 기다려 야 했었다. 자리를 찾아 앉았을 때 시선을 또한번 집중시켰다.
-식신이라더니!
-가족이 전부 식신인가봐!
-요리사가 탈진하겠네!
-먹는 게 아니라, 마신다!
-기록세우겠는데?
-이미 세웠다! 저걸 누가 깨냐!
식당 안의 사람들은 식신 가족이 얼마 나 먹을지에 관심이 쏠렸다. 쌓아 올린 접 시가 벌써 200그릇에 육박했다. 초밥 요 리사 6명이서 쉬지 않고 만들어 내고 있는 데, 족족 접시 위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가 격과 부위를 가리지 않고, 초밥을 들이붓 고 있었다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회전 테이블에 빈 공간만 자리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텀을 주었다. 요리사 가 숨 좀 쉬자고 부탁을 한 것이다. 재료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었다.
“얼추 시간이 됐네요, 이제 그만 일어나 시죠.”
“이쯤하자 과식은좋지 않으니까” 적당히 먹고 일어났다는 이호극의 망발 에 식당 안은 침묵을 강요받았다. 저런 말 은 해선 안 되었다. 지금까지 먹은 접시만 해도 무려 400개다. 1인당 100개나 먹은 것이다. 가격으로 따져도 300만 원에 육 박했다 보통 사람은 배가 터져 죽어도 이 상하지 않은데, 멀쩡하다니.
-정말로식신이었어!
-대체 얼마나 먹은 거야?
-400그릇, 인간맞아
-300만원! 후덜덜하네!
-한달식비가 궁금하다?
-마물을 닥치는 대로 때려잡아 먹는 걸 로소비하나 봐!
이호극과 3형제는 사람들의 혼을 쏙 빼
놓은 후, 계산을 위해 카운터로 향했다
정우가 법인카드를 꺼내 긁었다
-띠리링!
카드의 계산된 금액이 김 총관의 핸드 폰에 전달되기가무섭게 이호극의 핸드폰 에 불이 났다 이호극은 그럴 줄 알고 진동으로 해놓 은 후에 오자마자 끊고, 영상통화로 연결 했다 김 총관의 폭풍 잔소리가 터져 나을 것을 계산한 꼼수였다. 핸드폰을 돌리며, 열광하는 사람들을 찍어서 보냈다
-이(망할!)?…".
“왜 말이 없어?”
-문주님(빠득), 회의 시간에 늦지 않도 록 참석하셔야지요. 초밥집에 전세 낸 것 도아니잖아요.
“알지, 총관은 염려하지 않아도 돼.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저녁때 꼭 할말이 있거든요.
“김 총관! 예로부터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고 했어, 할 말이 있으면 지금 해.”
-아닙니다 저녁 때 할겁니다
“혹, 딴맘이 있는 건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하늘에 계신 부모님을 걸고?”
-……그렇습니다!
김 총관은 끝내 말을 못하고 전화를 끊 어야 했다
이호극은 통쾌한듯 두손을불끈 쥐었 다. 오랜만에 김 총관에게 시원한 복수를 해주었다. 그간 얼마나 잔소리가 심했던 가. 돈이 있으면 쓰고 없으면 안 쓰면 되는 데, 시시콜콜 따졌다. 사람이 인정머리가 있어야지.
“봤느냐, 사람은융통성이 있어야하는 거야.”
“다시 봤어요, 아버지”
정우도 이호극의 잔머리에 다시 봤다.
저런 머리를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 실을 그동안 간과하고 있었다. 하도 머리 를 쓰지 않아서 굳어 버렸는지 알았다.
이호극은 정우의 예상보다 더 나갔다
“여러분 오늘 먹은 거 제가 쏩니다”
“문주님, 사랑해요!”
“문주님, 파이팅!”
정우와 형제들은 김 총관의 혈압이 오 르는 소리를 생생하게 듣는 기분이었다. 핸드폰이 울릴 때마다 조마조마했다.
7대 무문의 수장이 원탁을 두고 자리
에 앉았다.
이호극은 평소와 다름없이 자리만 꿰찬 채 본격적인 묵언수행에 돌입했다.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끝날 때를 기다리는, 일 상에 찌든 직장인을 대변해 주었다.
각 문주들의 시선은 평소와 달랐다
‘도대체 뭔 짓을 벌이는 거지?’
‘묵언의 금강문주라니!’
‘이해할수가 없군! 도대체 어디가?’
방송과 인터넷에서 연일 금강문주에 대 해 보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한 화 제성으로 여기고 무시하려고 했었다. 그러 나 시간이 지날수록 부풀려지고 과대 포 장된 소문은 금강문주를 영웅화하고 있었 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인의 인물로 부각되었다. 이러다가는 뉴욕 타임즈 세계 100인의 영향력 있는 인물에 선정될 판이다
‘저 꼴통이 영웅이라고? 그럼 나는 불 세출의 영웅이겠다!’
‘누가 이런 말 같지도 않은 괴 소문을 만드는 거야?’
‘그렇다고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잖 아’
은밀히 소문을 내서는 이호극의 인기를 덮지 못한다. 잘못했다가는 역풍을 맞기 딱 좋았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은 문주들 의 속내다. 그들이 아는 이호극은 소문과 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저 인간은 사람들 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이 절대 아 니다. 자기 멋대로인 데다가 안 풀리면 주 변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기 일쑤다.
그분인가? 말이 통하지 않아 불협화음 의 대명사로 불렸다. 정상적인 사고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호극을 영웅이라 부르 진 않는다. 주변을 환장하게 만드는 구타 유발자가 정확한 표현이다.
그럼 뭐하냐고?
이 안에 않아 있는 사람들만 안다. 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이호극의 실체를 모르고 있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이호 극의 주변으로 구름떼처럼 인파가 몰렸다.
다들 저딴 놈?이 저토록 엄청난 인기를 얻어도 되는 거냐, 라는 시선이었다.
“거, 뭘 그렇게 꼬나보는 거요?”
“꼬나보기 누가 꼬나봤다고!”
이호극의 인기에 제일 심사가 불편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화천문주 권영 일이다. 일전에 아들이 금강문을 비방했 다가 역풍을 맞고, 화천문이 운영하고 있 는 사이트가 항의로 폭파될 뻔했다. 근래 에 들어 화천문의 이미지가 거의 폭망 수 준이다.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찾으려면 시 간이 필요했다
“아니면 말지, 계집애처럼 삐지기는.”
“.?버지다니! 말을 가려서 하시오!”
“가리지 않으면 어쩔 건데, 한판 해보자 고!”
“해보자면 누가 겁낼 줄알아!”
이호극과 권영일이 으르렁거리자 회의 장 안이 들썩거렸다. 붐어져 나오는 기세 가 만만치 않았다. 전력이 아님에도 강력 한 기운을 발산했다. 무문의 수장들이 아 니었다면 심각한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둘 다 꼴통에 다혈질이기는 하나, 강함의 척도에서 부정할 수 없는 절대강자였다.
“싸우러 온 거 아니면, 진정하고 이쯤 합시다. 화합을 해도 부족한 판국에 우리 끼리 싸워서 되겠소이까!”
무문연합의 임시 수장 천무문주가 나 서서 이호극과 권영일을 만류했다. 둘이 싸운다고 해결된 문제도 아니고, 화천문 주에겐 명분이 없었다. 도리어 금강문주에 게 사과를 해도 부족했다. 뒷담화가 걸리 지 않으면 대수롭지 않은 사안이나, 걸렸 으면 사과는 인지상정이다.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무인에게 자존심은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러게 아들 간수 잘했어야지.”
이호극의 비아냥거림에 권영일은 이를 갈기만 할 뿐, 입을 닫아야 했다. 아들이 한 행동이 치졸한수작임은 분명하다. 입 이 10개라도 그 일에 관해서는 할 말이 없 었다
“염왕도 정곡을 찔리니 별수 없군.”
“?…"(빠드!”
평소처럼 해보라는 금강문주의 도발에 화천문주는 고개를 팩! 돌렸다. 더 듣고 있다가는 정말로 끝장을 볼 것 같았다 그때 절묘하게 치고 들어오는 자가 있었
다
“하북팽가와 거래를 했다면요?”
도해문주 김문수다.
그는 발표되지 않은 사실을 전면에 꺼 내들었다. 하북팽가와는 껄끄럽게 정리가 된 상태라 문주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나마 해결이 됐는데, 또다시 외세를 끌 어들이는 것이 아니냐는 힐난이 담겼다
“ 했으면.”
“팽가가 벌인 일을 모른단 말입니까?”
“뭔 일을 했는데?”
“그거야 다들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다들 아는 게 뭐냐고?”
김문수는 직선적인 이호극의 물음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팽가가 해온 일 에 관해서는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 있는 문주들 중 모르는 이는 없 다 해도,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북 팽가가 혹호문과 거래를 하고, 소녀를 납 치하고, 흡마공을 전수했다는 결정적 증 거를 찾은 것도 아니고. 소문만으로 하북 팽가를 매도하지는 못했다.
당황한 도해문주를 대신해 천무문주가 정중히 물었다. 무문연합에게도 팽가와의 거래는 가볍지 않은 사안이었다
“팽가와의 거래가 위험하다는 건 아실
테고, 대체 왜 그런 것이오?”
“위험이 있다 해도 우리가 감당할 일입 니다. 문파 대 문파의 거래에 대해서는 관 여하지 않기로 되어 있지 않습니까.”
무문연합의 규례에 문파 간 거래를 제 재할 방법은 명시되지 않았다. 문파든, 길 드든 연합이든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었 다 단 결정적인 결격 사례가 있다고 판단 이 되면 개입이 가능하다. 문제는 하북팽 가를 결격 사유가 있는 세가로 규정을 해 야 한다는 점이다. 이건 고양이 목에 방울 을 다는 격이었다 어느 문파가 총대를 메 고 그런 짓을 하겠는가.
암묵적으로 팽가를 부정적으로 바라본 들, 공식적인 절차를 따라야만 효력이 있 었다. 이를 걸고 넘어가면 각 문파의 거래 현황을 전부 물고 늘어질 위험을 초래한 다. 함부로 나서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 다. 문파 간 거래를 일일이 규제하게 되면 무문연합이 와해될 수도 있었다
‘이자가 언제부터 이리 말을 잘했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건가?’
‘그럴 리가, 그게 다 연기라는 말인가?’
이호극이 지나온 과거에 문주들은 고 개를 저었다. 연기를 하려면 손해를 보지 말아야 했다. 이호극의 꼴통 짓으로 금강 문은 막대한 손해를 입기도 했었다. 설마 지금을 위해서 그런 짓을 자행했다고는 생 각하지 않았다. 사람이 정도라는 게 있어 야지, 금강문주는 지가 꼴리면 일단 내지 르고 보는 스타일이었다
‘정우 말대로네.’
문주들 중에 누군가는 반드시 팽가와 의 관계를 거론할 거라고 했다. 그때 이렇 게 대답하라고 몇 번이고 연습을 시켰다. 화천문주를 자극하고, 이목을 끌었던 것 도 정우의 계략이었다
‘이놈을 주의하라고 했지.’
회의 중엔 눈에 띄지 않는 놈이 오늘따 라 말이 좀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