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회장은 홀러나오는 탄식을 감추었다 보통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능구렁이 같 은 녀석이었다.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자부한 손녀마저도 이놈과 비교하면 격의 차이가 있었다. 곁에 두고 있는 7급의 유 니크를 제압한 능력보다 심기가 더 무서웠 다. 사람 속을 들어갔다 나온 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 6장 기반을 다지다 (4)
“뭐라도 알고서 말하는 것이냐?”
“근래에 들어 부쩍 케이브에 대한 투자 를 늘리고 있더군요.”
대한그룹은 변화한 케이브의 가치를 높 게 봤다. 마물에서 추출한 에너지 스톤을 비롯한 케이브 코어와 광물, 사체까지도.
당장은 개발비로 들어가는 비용이 크다 해도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투자였다. 미래 산업은 케이브의 활용 에 달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분석팀에 서 검증을통해 나온 결과다 유 회장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이마 를 긁었다. 뜻하지 않은 상황을 마주할 때 나오는 일종의 버릇이었다 정우의 말이 옳다는 의미다
“숨길수가없구나?어쩌겠느냐?”
“공동투자를 하시겠다면 협상하겠습니 다:’
“그 말은 하이퍼 팩토리가 대한그룹과
견줄 수 있다는 뚯인데, 말이 된다고 보느 냐?”
“금강문이 함께한다면요.”
금강문을 거론하자 유 회장의 눈빛이 바뀌었다. 정우에게 배후가 있을 거란 생 각은 하고 있었다. 케이브 코어를 가지고 있는 것부터 말이 되지 않았으니까. 금강 문이 배후에 있다면 그간의 의문이 약간 이나마 해소가 된다. 그리고 작금의 대화 를 통해 정우가 금강문에서도 보통 신분 이 아님을 직감했다.
“훌륭한 사업 파트너를 만났다고 봐야
지.”
“금강문의 가치를 높게 보는군요.”
“묵언의 금강무주라고 하면 알 만한 사 람은다 알더군.”
“실제는 모르잖아요.”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느냐?”
유 회장은 금강문주의 실제를 아는 사 람 중에 하나다. 사업을 하다 보면 무문, 길드 연합과 관계를 맺을 때가 종종 있다. 그때마다 금강문주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말이 홀러나왔다. 꼴통이라는 험담과 함 께.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그건 중요한 문 제가 아니다. 금강문은 사방이 적인데도 굳건했고, 현재는 치고 나가고 있었다.
“적절한 타이밍이네요.”
“계약이만료되는 시기니까.”
“알고 있었군요.”
“나와손녀는 비밀이 없는 사이거든.”
“하라의 입이 가볍네요.”
“함부로대하면곤란할 거다.”
특급 정보원이 가까이에 있었다. 하라 는 금강문주를 견제하려고 떠벌였을 테지 만 유 회장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긴 밀한 협력 관계를 예측하고 있었다. 그러 니 맨손으로 현재의 대한그룹을 이끌고 왔겠지.
유 회장은 젊은 사람 못지않은 혈기를 가지고 있었다. 저 나이쯤 되면 안주하고 싶을 만도 한데, 사업에 관해서는 도전적 이었다.
정우는 이를 높이 샀다.
“그 전에 하실 일이 있습니다.”
“무엇을 말이더냐?”
“일우그룹의 지분을 확보하십시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우그룹의 풍 파
시기가 절묘하다고 해야 하나, 유 회장 은 그간 있어왔던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 고 봤다. 그러나 정우가 일우그룹과 관련 이 있을 거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까면 깔수록 역량을 잴 수 없게 만들었다 어디까지 관여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네 녀석이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저는 일우 그룹의 특허가 필요해서 드린 말씀입니다.”
“시치미 떼도 소용없다”
“추궁하셔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대한그룹이 일우그룹보다 재계서 열이 위에 있다고는 하나, 케이브 사업에 관해 서는 일우그룹이 앞서 있었다. 배터리 사 업을 보더라도 하이퍼 팩토리와 먼저 접촉 을 했던 건 일우그룹이었다. 기술력의 차 이가 크지 않다고는 해도, 일우그룹이 가 지고 있는 주요한 특허를 가져올 수 있다 면 대한그룹으로서는 이득이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특허가 중요해지면서, 후발주자 들은 특허료를 내거나 프랜드 협약을 맺 곤한다.
“일우그룹이 내어주겠느냐?”
“바보가 아닌 이상 내어주지 않겠지요. 하지만 곧 그룹 내부적으로 치열하게 힘 싸움이 벌어질 겁니다”
막바지에 몰리면 정확한 사리분별을 하 기 어렵게 된다. 또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었다.
유 회장도 일우그룹의 현 주소를 파악 하고 있었다. 권력 구도가 안정권에 접어 들어서, 지분을 구매하기가 쉽지 않았다.
“채 회장이 쓰러지면서 둘째는 힘들 텐 데.”
“노병은 죽지 않는다고 했지요.”
노병(老兵), 단순히 늙은 병사를 의미하 진 않는다 일우그룹의 노병은 1명이다
“이놈이, 날놀려!”
“누가 감히 회장님을놀리겠습니까. 불 벼락을 맞을 수도 있는데.”
경로사상, 노인공경을 몸짓으로 나타내
는 정우의 행동에 유 회장은 어이를 상실 할 뻔했다. 오래 살다 보니 별의별 꼴을 다 당하고 있었다.
“능구렁이 같은놈!”
“능구렁이가 곧 손녀사위가 될 겁니다. 하라는 참 좋겠습니다.”
“어쨌든 총알 싸움을 하겠다면 나브진 않겠군.”
투자 목적으로 자금을 빌려 준다면 그 에 따른 지분 확보가 가능해진다. 굳이 전 면에 나설 필욘 없다. 당장은 확보된 지분 의 비율을 따질 테니, 유 회장은 적당히 균형을 맞추는 중재 역할만 하면 된다. 후 일 골육상전(骨肉相戰)으로 인해 남아 있는 게 없다는 걸 깨달아도 돌이킬 순 없다.
“돈이란 원래 돌고 도는 거지요.”
“그건 또 무슨 말이냐?”
“그런게 있습니다”
“협력을 하려면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법이다. 숨기는 것이 있다면 털어 놓 거라?”
“공과사는구분하셔야지요, 지극히 개 인적인 일입니다: 정우는 채철민에게 받은 자금을 운용 해 하이퍼 팩토리로 일우그룹의 지분을 살 계획이다. 이 사실을 채철민이 안다면 땅을 치고 통곡을 하게 될 테지만, 안타깝 게도 끝날 때쯤에 밝혀질 일이다
‘고혈을 쥐어짠다는 건 이렇게 하는 거 지.’
대한그룹과 금강문을 엮고, 하이퍼 팩 토리를 끼워 넣었다. 둘 사이에 줄다리기 를 하기에는 아직은 미력한 감이 없지 않 아 있지만, 아버지의 회사는 곧 대기업의 반열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이놈의 꿍꿍이는 도통 알 수가 없군.’
유 회장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보통은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고 자부했건만, 하라가 데려온 이놈 은 읽히지가 않는다. 오랜 세원의 연륜과 경험이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 그리고 어 떤 짓을 할지 예측불허다
“정계에 아는 분이 있으면 소개나 해주 시죠.”
“또 뭘 하려고?”
“알아두면좋은 거아닙니까.”
정경유착은 한국의 전통적인 관례였다. 사업가치고 정계에 밉보이고 살아남은 선 례가 많지 않았다. 이는 역사가 증명을 해 주었다. 상납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잘나가 던 기업도 하루아침에 박살이 난 적이 있 었다.
“ 일없다.”
이렇게 되니 유 회장은 정우가 무서웠 다. 살면서 무섭다고 느낀 사람은 정우가 처음일 것이다. 더욱이 감추고 있는 걸 여 전히 꺼내들지 않았다. 조사를 할수록 깜 깜 무소식이라 답답하기만 하다
‘또 하라한테 물어봐야겠구먼.’
정우에 대해 캐봤자, 건질 만한 정보가 거의 없었다. 돈을 그렇게 받아 처먹고 일 은 하고들 있는 건지. 손녀한테 물어보는 편이 최선인 현실에 깊은 한숨이 홀러나 온다. 그럴 때마다 손녀의 부탁을 들어주 어야 한다는 점도 탐탁치가 않다.
유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병풍처럼 앉아 있었던 윤철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정우로 인해서 사돈에게 무관심했던 것이 미안했다.
“결례가 많았습니다 사돈.”
“결례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 입니다. 어르신! 모쪼록살펴 가십시오.”
유 회장은 선약이 있어 이쯤에서 일어 났다.
배웅을 하고 돌아온 윤철은 착잡한 심 정으로 아들을 보았다. 망할 놈의 아들은 회의실 문 앞에서 돌아서서 앉았다 유 회 장을 이렇게까지 막대하다니. 그분인가?
자신도 모르는 일을 저지르고 있었다 일우그룹은 뭐고, 금강문은 또 뭐냐?
“이 녀석!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 야?”
“알고싶으세요?”
윤철은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지금도 감당이 되지 않는다. 유 회장을 만나서 동 등한 계약을 한 것부터가 상식적이지 않 았다. 그리고 안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는다. 맡은 일에 관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됐다:’
“아쉽네요. 말하고 싶었는데.”
무서운 놈, 내 아들이지만 정말 알 수 없는 녀석이다.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해 봤다.
“엄마한테 이를 거예요.”
“...뭘?”
“유전자 검사요.”
“어떻게?”
“현천안이 극에 이르면 생각이 투영돼 요.”
“ 진짜?”
“아니요.”
넘겨짚은 거냐? 이 망할 녀석아!
그럼 뭐하냐고?
아들의 개수작에 말려들었는데.
윤철은 할 말이 없었다 오늘 이후로 유 전자의 ‘유’자만 꺼내도 아내가 가만있지 않을 게 눈에 선하다. 아들 앞에서는 생각 도 맘대로 해선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깨 달았다.
재계의 독불장군으로 불리는 유 회장 을 가지고 노는 놈이니, 내 아들이지만 무 서울지경이다 오늘 무문연합의 회합이 열린다
열려도 벌써 열렸어야 했는데, 랜덤 케 이브로 인해 시간이 미뤄졌었다. 오픈 시 파동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회합을 가지 기로 합의했다 정우는 회합 장소인 여의도로 차를 몰 았다.
이호극과3형제가 함께 탔다.
대형세단임에도 소형차를 만들어 버리 는 어깨깡패들 4명 모두 어깨가 문짝이었 다. 그나마 강현이 왜소한 체격이기는 하 나, 일반인보다 두꺼웠다. 가족여행이라도 하려면 최소한 8인승은 되어야 했다. 그래 야 그나마 비좁지 않은 여행을 할 수 있었 다 경인고속도로를 타고 서울시에 들어서
는 데 20분가량 걸렸다
서울은 확실히 인천과는 교통량이 달 랐다. 도로 시설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 다. 잦은 도로공사로 인해 여러 조각의 헝 겊으로 꿰매 놓은 모양새였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고 30분을 지체하 고서야 여의도의 73빌딩에 도착했다. 원 래 63빌딩이 있었던 자린데, 케이브가 오 픈되면서 파괴되었다. 이를 철거하고 새로 지었다. 국내 최대 높이와 규모로 지으려 고 했으나, 강 주변의 지반 악화를 이유로 10층을 더 올리는 것에 만족했다.
회의 장소는 최상층이다.
73빌딩의 공동소유주가 천무문이라, 한층을통째로 사용할수 있었다 정우 일행은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빌딩 내부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나왔 다 식사를 하고 들어가자고 제안했다.
“네가 웬일이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잖아요.”
회의장에 들어가면 음료나 과자 이외에 는 먹지 못한다. 그렇다고 회의 도중 배달 을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배고픈 이호 극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기 는 하다:
“이제야 철이 들었구나”
“문주님의 말씀에는 동의를 못하겠네
요.”
이호극은 그런 말을 해선 안 되는 부류 였다. 철이 들었는지 판단을 하는 것 자체 가 실례다. 몸만 강철보다 단단하다고 해 서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는 건가.
“어디로 가게?”
“좀만 가면 회전초밥집이 있습니다. 맛 있다고 소문이 자자한 집이더라고요.”
“나랑 다니더니 미각에 트였구나.”
“맛은제가 더 잘봅니다.”
정우가 검색을 통해 찾은 집은 ‘한강 초 밥’이었다. 오래전부터 자리하고 있으며, 밥이 좋기로 소문이 났었다. 케이브가 오 픈 되었을 당시 주변이 모두 파괴되었음에 도 굳건함을 유지했다. 초밥집 간판에 적 힌 ‘운수대통 한강초밥’ 이라는문구가눈 에 들어온다.
가격은 싼 편이 아니다. 1접시에 6천원 부터 시작한다
“네가 쏘는거지?”
“오기 전에 총관님한테 법인 카드를 받 았지.”
“야, 그럼 어떻게?”
“배터질 때까지 욕먹기 싫으면 알아서
먹어.”
강천도 초밥하면 귀신이라는 소리를 들 을 만큼 좋아한다. 한번 발동이 걸리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었다. 그래서 가 급적 무한리필을 선호하지만, 한 번 가고 나면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강천 출입금지
[위험한 대식가]로 분류되어 폐점하고 싶지 않으면 받지 말라는 무한리필 점포 연합에서 괴 소문이 돌았을 정도다.
강천은 정우가 사는 거면 거덜 낼 심산 이었다. 돈도 많은 놈이 쪼잔하게 굴지 말 라는 의도였다. 그러나 정우의 대처가 더 발랐다. 법인카드로 긁으면 총관 아저씨가 알게 된다. 초밥에 목숨 걸다 귓구멍에 테 러당하는 수가 있다. 총관님의 잔소리는 이명증(耳鳴症)을유발했다.
“아들아, 돈 앞에 굴하지 말거라. 먹고 싶으면 먹는거지.”
“총관님은 어쩌고요!”
“내가 다 알아서 한다! 이 아비를 믿어 라”
“ 정말요?”
“당연하지, 이놈아!”
“아버지 최고!”
막내의 애교, 보통은 사랑스럽다. 그러 나 2m에 육박하는 강천의 애교는 시선을 교란시키기에 충분했다. 더욱이 부자의 파 이팅 넘치는 포옹에 쇳소리가 울렸다. 몸 이 탄탄함을 넘어 쇠를 능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