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버스 빌런-139화 (139/500)

제 6장 기반을 다지다 (3)

하이퍼 팩토리는 창립한 이후, 역대 최 고의 호황을 맞고 있었다 기업의 외적인 성장이 눈부시다. 본사 를 이전 확장하고, 공장을 짓고, 인력을 보충했다. 중소기업의 기준이 되는 자산 300억은 훌쩍 뛰어넘었고, 매출이 2조원 대로 팽창했다. 기업 가치로 따지면 300배 이상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중견기업 중에 서도 순위권 안에 들었다 회의를 열었다

정우는 임원은 아니나, 투자자 겸 이사 로 분류되어 참석했다 지 과장과 윤 대리는 부장과 과장으로 승급이 되었고, 외부에서 부장을 1명 더 수혈했다.

논의가 진행되는 동안 정우는 말을 아 꼈다. 그럼에도 다들 정우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회사의 주인은 사장이지만, 실세 는 정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법인 등기를 새로 하니 확실히 요구하 는게 너무 믾아”

“중견기업으로 분류가 되다보니 혜택은 적어지고, 과세율도 더 높습니다”

중소기업일 때 받아왔던 지원이 사라 진 데다가 공제받을 사항이 줄어들었다. 이제까지 해왔던 대로 했다가는 세금 폭 탄을 맞을 수 있었다. 사업 규모가 커진 만큼 내실을 다지지 않으면 모래 위에 성 을 짓는 것과 같았다 윤철은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 동분서주했었다 임원으로 승격한 지 부장과 새로 온 공

부장도 손발을 쉬지 못하는 현실이다. 인 원을 보충했다고 해도 신입이었다. 일을 배우고,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또 한 임원을 아무나 봅을 수도 없는 노릇이 다. 능력분만 아니라 신뢰할 수 있어야 했 다 윤철과 임원들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우는 한가로이 차 를 마시며 관조했다.

빠직!

윤철의 미간에 주름이 간다. 아들의 한 가로움이 심히 거슬렸다. 아비는 머리에 과부하를 일으킬 만큼 고생하고 있는데, 아들놈이 지나치게 덤덤하다. 마치 자신 의 일이 아니라고 거리를 두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왜 아무 말도 없는 거냐? 평 소엔 잘도 나대면서.”

“공적인 자리에선 직함으로 불러주십시 오.”

공적은 개뿔, 윤철에게 정우는 아들일 뿐이었다. 지극히 사적으로 연관이 되었으 니, 부자로서 대할 것이다. 그래야만 가장 의 권위를 세울 수 있었다. 아들하고 공적 으로 경쟁해선 답이 안 나온다는 걸 뼈저 리게 체감했다 한편, 아들에게 잘 보이려고 경쟁해야

하는 처지가 서글픈 신세다. 어디 가서 하 소연을 할 수도 없어, 답답하기는 하다 해 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여전히 호강에 겨 워 요강에 똥 사는 소리 한다고 구박을 당 한다.

“됐고, 어쩔 거냐고?”

“어디에 장난을 맞춰야 할지 모르겠네 요.”

“척하면 척이면서, 능청떨지 말거라”

“제가 감히 아버지 앞에서 그럴 리가 요.”

“착한 척도 하지 마라, 가증스러우니

까!”

윤철은 아들이 지나치게 간섭을 할 땐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피땀 흘러 이룩한 회사를 아들이 날로 쳐드시는 기 분이었다. 이건 물려줄 때와는 또 달랐다.

팔팔한 반백년이다. 아들 때문에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했었 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이틀이지 규모가 커지니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이 고, 줄지를 않았다 이쪽을 해결하고, 저기 서 또 터지고.

자산과 월급이 오른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었다.

“몸이 피로하진 않잖아요.”

“나만 멀쩡하면 다냐”

임원과 달리 윤철은 육체적으로 괜찮 은 편이다. 정우가 매일 추궁과혈로 피로 를 풀어주고 있어, 몸은 그 어느 때보다 건 강하다. 문제는 여전히 인력이 부족하다 는 것이다. 혼자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같 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었다 늘어나는 규 모를 감당해야 하기에 인력을 지속적으로 충당해야만했다

“그럴 줄 알고 보름 전에 법무팀과 재무 팀을 선별해 놨습니다.”

가장 시급한 것이 법적인 문제를 전문 적으로 해결해 줄 인원과 재무를 효율적 으로 관리할 인원의 채용이다. 이때까진 윤철과 지 부장 공 부장 윤 대리가 맡아 왔었다. 인사, 재무, 세무, 법무까지 임원 이 전부 관리하니,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임원들은 직원들 퇴근하고도 남아서 추가 근무를 해야 할 판이었다.

‘망할놈의 아들, 역시 준비를 했구나.’

윤철은 아들의 철두철미함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준비성 하나는 진짜 타고난 놈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상한 점이 발견 되었다.

“잠깐보름전이라고?”

“그런데요.”

“그런데 왜말을안한 거야?”

“지나친 간섭이라면서요.”

“이 녀석이, 아비를놀려!”

한시라도 빨리 법무와 재무, 세무를 밭 아 줄 인원이 필요했다. 그래야 사장, 부 장, 과장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몸이 서너 개라도 부족한 판국에 보름이나 지 체를 하다니, 윤철은 아들놈의 정신 구조 를 이해하기 벅찼다. 머리 꼭대기에 올라 아비의 동분서주를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 다. 능력 출중한 아들을 둔 아버지의 비애 였다 아들의 유유자적에 윤철의 말투에 가

시가 돋쳤다.

“냉큼부르지 않고 뭐해!”

“불러 놨습니다. 아마 1층에서 대기하 고 있을겁니다.”

“?……(또 빠직)!”

잘한다, 잘한다 했더니.

윤철은 살다 살다 내 아들 같은 놈은 처음 봤다. 어쩌다 이토록 재수 없고, 완 벽한 아들이 되었단 말인가. 기분이 좋으 면서도 엿 같다. 어디 한 군데 못난 구석이 있어야 아버지로서 험난한 사회에 대한 가 르침과 훈계라도 할 것 아닌가. 지나치게 잘난 아들이라서 훈계는커녕 도리어 배워 야할 처지다. 완벽함이 지나쳐서 아들로 서 미덕이 없었다.

“역시 이사님이십니다!”

“과연, 우리의 구세주세요!”

“이사님이 우릴 살렸습니다!”

태세전환은 직장인의 필수사항이다. 실 세이자 대세를 거스르지 않아야 오래 사 는 법이다 지 부장 공 부장 윤 과장은 엄지를 치 켜세웠다. 말뿐인 아부가 아닌 진심이 묻 어나왔다

‘엄청난분이다!’

특히 공 부장은 정우의 능력에 혀를 내

둘렀다. 상사에게 바른 말 하다 직장을 잃 고 방황하는 자신을 봅아?줬을 때만 해도, 돈 지랄하는 건방진 애새끼인 줄만 알았 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해서 자존심을 굽 히고 들어왔는데 단순히 돈 많은 재벌이 아니라 능력의 끝을 모르겠다. 이사님 혼 자 해도 기업이 잘굴러 갈 것만 같았다.

선별한 18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회의실 로 들어왔다.

“보고해.”

“예, 이사님.”

정우는 신입사원을 뽑아 놓고 방치하 진 않았다. 회사 사정을 파악하고, 문제점 을 해결하도록 했다. 시간 외로 시키는 작 업이라 임금을 3배 더 주기로 계약을 맺었 다. 능력을 테스트해 보기에는 나쁘지 않 았다. 실무에도 바로 투입할 수 있고.

“반년 단위로 예산안을 계획하고, 분기 별로 재무와 법무를 나누었습니다.”

“공제할 수 있는 부분이 꽤 있어, 비용 으로 처리하면 절세 효과가 있습니다.”

“그간 방만하게 운영되었던 세부적인 사안들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세어 나가는 부분을 파악해 놓고, 서류와 차트로 작성을 했다. 꽤나 정확하고 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개개 인의 능력도 뛰어난 편이다.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여태 취업하지 못한 걸 보면, 한편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 다 하나, 그들의 능력보다 대단한 건 정우 였다.

‘업무 분담을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일처리가 무서우리만큼 정확하잖아’

‘잠재력을 극대화했다고 봐야 하나.’

신입으로 ■뽑아 놓은 인원을 보면 연령 대가 다양하다. 20대 초반에서 40대 후반 까지. 연령에 구애받지 않았다. 그리고 체 계를 정확히 명시해 놓았다. 철저히 능력 에 따라 선별하고, 나이 대접은 배제한 것 이다. 또한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두뇌에 자극을 주었다.

폭풍이 스치고 지나갔다

회의가 끝났다 각자 위치로 돌아갔다

‘내 아들 맞나?’

윤철은 말을 잇지 못한 채, 가만히 정우 를 응시했다. 여태 아들의 손바닥 안에서 놀고 있었다. 이게 기분이 참 모호하다. 드 라마를 보면 대부분이 못난 아들을 둔 아 버지가 속을 썩는 편인데, 지나치게 잘난 아들을 둬서 골이 지끈거린다. 그렇다고 아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사 람을 끄는 통솔력까지 갖추었다. 흠을 잡 으려고 해도 잡을 수가 없다. 친구들에게 아들에 대해 사실대로만 말해도 팔불출 소리 듣기 딱 좋았다 그 어려운 것을 너무 도 간단하게 해치워 버려서 어렵게 보이지 않을뿐이다.

“왜 그러세요?”

“너 때문에 힘들어서 그런다?”

아들이 아비의 고충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으나, 정우한테는 씨알 도 먹히지 않았다. 일에 관해서는 철저하 다 못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마였다.

“분발하세요.”

“그게 아비한테 할소리냐.”

“아버지 힘내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 까?전 믿습니다!”

“무서운 말을 서슴없이 하는구나.”

윤철은 솔직히 이렇게까지 스케일을 키 울 생각은 없었다. 아들의 페이스에 휘말 리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도 아 들은 만족을 모른다. 발바닥에 땀나듯이 뛰어다니고 있는 아비의 노고를 고려해 줬 으면 하는 바람이다

“좀 있으면 오겠네요.”

“오긴 누가오는데?”

아들의 뜬금포에 윤철은 시껍했다. 이

녀석은 툭! 던지지만 윤철에게는 핵폭탄 급이었다 방심하면 큰일 난다.

“하라 할아버지요. 오라고 하기에 바쁘 다고 했더니, 찾아온다더라고요.”

“그렇구나, 찾아올 거면 미리 선?…?”

윤철은 곧, 하라의 할아버지가 누군지 를 깨달았다

대한그룹의 오너, 유 회장이다. 정재계 의 굵직한 인사들도 마주하기 어렵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다. 그런 유 회장을 아들 은 옆집 할아버지 취급을 하고 있었다

“이놈아 그럼 진작말을 했어야지.”

“부담 갖지 마세요. 지나가는 길에 차나

한잔하자는 건데.”

“넌 그분이 어떤 분인지 모르고서 하는 소리냐! 우리 같은 기업은 그분 입김만 불 어도 사라질지 모른다고!”

“언제는 하라 때문이면 취소하라면서 요.”

하라와 연관된 투자면 받지 않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던 윤철이다. 그러 나 유 회장의 면전에서 그런 말을 할 만큼 간이 크진 않았다. 솔직히 유 회장과 대면 해서 떨지 않을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거다.

‘호랑이 간올삶아 먹었나.’

아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 같았다. 좋게 보면 배짱이고, 나쁘게 보면 자만이 었다. 이는 윤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기도 하다. 아들은 아버지의 거울이라고 하는데,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회장님도 사람이에요, 그리고 제 아버 지시잖아요.”

“네 똥굵다, 이 녀석아!”

아들의 응원에 윤철은 민망함을 감추 고, 평소대로 돌아왔다. 유 회장이 비록 거물이라고 해도, 사돈이 될 사이다 아들 앞에서 기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는 없다. 그것이 설령 허세일지라도.

20분후.

유만식 회장이 방문했다

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로 간단 히 안부를 묻고 물었다. 어른들 간에 따로 만나서 식사라도 하자는 제안을 했다. 아 버지도 과하지 않은 예의로 맞았다

인사치레가 끝나자, 정우와 유 회장의 본격적인 줄다리기 시작되었다.

찌릿!

정우에 대한 유 회장의 시선이 곱지 않 았다. 일전에 교제 허락을 위해 찾아오고 나선,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것이 괘씸했 다. 부르면 오기라도 해야지, 바브다며 제 말만 하고 끊어 버렸다. 회장이 된 이후로 처음 당해보는 문전박대였다. 급한 사람 이 오는 거라고 했을 때는 전화기를 부술 번했다.

“이제볼 장다본 것이냐?”

“사업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아실만 한분이.”

헙!

유 회장을 되레 타박하는 아들의 행동 에 윤철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다. 누가 감히 유 회장 앞에서 저토록 건방진 대꾸를 할 수 있을까? 내 아들이지만 정 말 난놈이었다. 그리고 일관성 하나는 끝 장났다. 장모님과 아내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사는 자신의 처지와 대조적이었다

“전화 1통 하지 않았다면서! 하라 눈에 눈물 나면 내가 가만둘 성 싶으냐!”

“오햅니다 대게도사줬고.”

하라가 그새 할아버지한테 일러바친 모 양이다. 정우는 생각보다 가벼운 하라의 입을 탓했다. 연인 간의 일은 당사자끼리 해결을 해야 한다. 집에 고자질을 해봤자 분란을 야기할 뿐이다. 만나면 기본적인 상식을 가르쳐 주어야겠다

‘별종이야, 별종,

유 회장이 보기에 정우는 아버지를 닮

지 않았다. 성향뿐만 아니라 기질이 달랐 다. 교제를 허락받기 위해 찾아왔을 때의 기질은 패도(퓨道)였다. 절대 누군가의 밑 에 있을 녀석이 아니다. 사돈과 같은 평범 한 가정에서 나오기 힘든, 돌연변이다. 어 떻게 이런 괴물 같은 녀석을 키웠는지 도 리어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다.

“어물쩍 넘어갈 생각일랑 하지 말거라. 수틀리면 계약이고 뭐고 다 취소할 테니 까:’

“그럴 분이 아니시잖아요.”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장담하는 거

“다는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일로 찾아 올분은아니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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