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오빠의 마음 ⑴
일우그룹은 풍파에 휩싸이고 있었다. 그룹 이미지가 좋지 않게 흘러가면서 주식 이 곤두박질을 쳤다 특히 재벌 후계의 살 인 교사는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주었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처벌을 하지 않으면 일우그룹의 제품을 불매하겠다는 운동이 일어났다. 실제로 살인교사는 20년 이상 의 징역형을 받을 무거운 죄였다 그때 공교롭게도 살인 교사를 한 채현 우가 살해되었다.
일우그룹으로서는 다행이라고 할 수 있 었다 죄를 지었다고 해도 죽은 이상 처벌 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채현우의 죽옴으 로 후계구도가 흔들리면서 내부적으로 단 합이 되지 않았다 그룹이 산산조각 날 수 있다 판단한 채 회장은 중대 결단을 내렸다. 문제를 일으 킨 채철민을 잘라내고, 둘째에게 후임을 맡긴 것이다 채철민은 졸지에 아들을 잃고, 아버지 의 신임마저 잃게 되었다. 이대로 밀려날 수 없었던 채철민은 셋째와 넷째에게 힘을 빌렸고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초반에는 채 회장과 둘째인 채철진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채 회 장이 병환으로 쓰러지면서 급변했다. 이때 를 놓치지 않고 치고 들어간 채철민은 지 분을 앞세워 일우그룹의 임시 회장이 되었 다 임시 회장이 되고 며칠 후
채철민은 낯선 사내의 방문을 받았다
금강문의 혹금단주였다
“회장이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인사치레는 됐고, 무슨 일인가? 사례 는충분히 했다고 보는데.”
채철민은 아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금강문에 사례를 했다. 하지만 아들 의 죽음에 대한 사례치고는 적당히 생색 을 낸 수준에 불과했다.
‘혈육보다 기업이 더 중요한가보군.’
아들의 죽음으로 복수심에 불타고 있 을 거란 예상이 빗나갔다. 채 회장이 결단 을 내리기가 무섭게 채철진과 채철란을 포 섭한건 신의 한수였다. 그렇다해도 채 회장이 쓰러지지 않았다면 시간이 길어졌 을 거다
정우는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금강문 의 대표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섭섭지 않은 대접에 감사하고 있습니 다”
“그럼 끝났군. 가보게.”
채철민은 금강문과 얽히는 걸 원치 않 았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 지 안 했는지 알 수도 없고, 결과적으로 지키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보상을 해준 것은 대외적인 관심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크마스터는 아니더군a.”
“나를 협박하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단지 서로에게 이득이 되 는 것을 취하자는 것이지요.”
정우는 다크마스터를 죽이고 난 후 그 가 계획한 일을 파고들었다. 최경환은 채 현우를 죽이고, 일우그룹까지 흔들어 놓 으려고 했다. 일우그룹으로선 감당하기 어 려운 결정적 약점을 쥐고 있다는 의미가 되었다
“꽤 많은 사람이 관련되었더군a.”
“?…이걸 어떻게?”
채철민의 동공이 흔들렸다
다크니스 길드에 의뢰한 인물과 처리 과정, 현금 거래를 적어 놓은 문서다 날짜 와 시간 상대까지 적혀 있었다. 소문으로 만 떠돌고 있는 물증이 눈앞에 떡하니 나 타난 것이다. 이분이 아니다. 혹막에서 얻 어낸 자료까지 더해지면 일우그룹은 공중 분해될수있었다
“우연치고는공교롭군. 채 회장님의 건 강이 갑작스럽게 나빠진 것도.”
“?헛소리하지 마라.”
채철민은 혹막에 의뢰한 걸 후회했다. 일이 잘못되면 회장 직은 물론, 가지고 있 는 전부를 잃게 된다 아들을 잃고 악마에 게 영혼올 팔았다는 말까지 들으면서 이 자리에 왔다. 그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 었다.
“그룹이 망하면 파급력이 상당하겠지 요,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게 될 테 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애석하겠 습니다”
정우의 표정은 애석해하고 있지 않았 다. 마치 부서진 장남감이 완전히 부서질 지, 아니면 연명할지 선택을 기다리고 있 었다
‘썩은 뿌리는 확실하게 뽑아내는 게 좋 지.’
한국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일우그룹의 파산은 경제에 막대 한 타격을 줄 수 있었다. 공적 자금을 들 여서까지 대기업을 살리려고 애를 쓰는 이 유중에 하나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가 과 연 올바른가? 라고 묻는다면 10명 중 9명 은 아니라고 말할 거다. 대기업이 망한다 고 나라 경제가 무너진다면, 그거 자체로 문제임을 직시해야 했다.
정우의 전생은 혁명의 연속이었다
기존의 기득권을 부숴버리고 새로운 기 득권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마지막에 와서 진강백이 고춧가루 제대로 부렸지만 그런 혁명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는 정우에 게 일우그룹은 썩은 싹에 불과했다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거래가 알려지 면 금강문에도 좋지 않을 텐데.”
썩어도 준치라고 채철민은 호락호락하 지 않았다. 아버지를 무너뜨리고, 제자리 를 지킨 인물이다. 허술하게만 보진 않는 다 물고 늘어지면 동귀어진도 마다하지 않 겠다는 채철민의 독기에도 정우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본문은 협박도 거래도 하지 않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 자네도
잘알지 않는가?”
다크니스 길드와의 거래가 밝혀질 거 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밝혀 졌다. 채철민은 그 점을 되짚었다 만약 오 늘의 거래로 금강문이 사실을 은폐했다가 드러난다면 여론의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 지 않는 일이었다
“확실히 보통 분이 아니군요. 한방 먹 었습니다”
은은히 미소를 짓고 있는 혹금단주의 태연함에 채철민은 미간을 찌푸렸다 실수 한 자는 은연중에 당황한 기색이 나타난 다
‘여유가 있어?’
채철민은 약점에 발목이 잡혀 금강문에 끌려가고 싶지 않았다. 경영권 방어를 위 해서는 좀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와야 했 다 이런 와중에 금강문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해야 한다면 동생과의 경영권 다툼에 서 승리를장담하기 어렵다
“본문은 정당한 사례를 받았을 분입니 다”
“현실이 그렇게만 돌아갈까, 사람들은 믿지 않을거다”
“증거가 남지 않는다면 다르겠지요.”
“이거 어쩌나? 오늘의 대화만으로도 충
분한데.”
채철민은 혹금단주가 들어오기 전부터 방 안에 설치된 녹음 장치를 틀었다. 말을 하는 즉시 영상과함께 저장이 된다 소용없는 짓입니다”
“강제로라도 빼앗겠다는 것이냐?”
“그럴 리가요.”
정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말은 했고, 채철민의 결정만 남았다
“부디 올바른 판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흥! 같이 죽지 않으려면 금강문이야말 로 잘 선택해야 할 거다”
“본문은 외부의 시선 따윈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건가보면알겠지.”
흑금단주가 물러간 후.
채철민은 저장된 파일을 확인해 보았 다 만약을 대비해서 저장 장치를 분산시 켜 놓았다 강제로 빼앗는 건 불가능했다 콰득!
저장된 영상과 녹음을 확인한 채철민 은이를 악물었다
“알고 있었구나!”
저장된 영상은 물론, 녹음파일까지 알 고 있는 것과 달랐다. 평소와 다름없이 차 를 마시고 있는 영상과 목소리는 무음처 리 되었다. 금강문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상대임을 깨달아야 했다. 마지막까지 여 유를 잃지 않았던 건 자신이 있었기 때문 이다.
“빌어먹을!!”
일우그룹에서 나온 정우는 본래의 모 습을 회복했다.
차는 혹금단을 시켜 근처에 주차해 놓 았다
“남의 집 불구경도 나름 재밌네.” 예로부터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 라고 했던가.
정우는 그 반대다
직접 싸우는 것도 좋지만 싸움 구경도 재미있었다. 그 좋은 걸 말릴 이유도 없거 니와 채철민과는 애초에 흥정을 할 생각 도 없었다. 실상 흥정이 아닌, 좋은 말로 할 때 순순히 내놓으라고 한 협박이나 다 름이 없었다.
“꽤 짭짤하겠어. 후후후.”
채철민은 생색을 내는 정도로 손을 털 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때처럼 하지 못 한다 그랬다가는 감당 못할 후폭풍을 맞 는다는 걸 깨달았을 것이다: 정우의 목적은 일우그룹이 내부적으로
경영권 다툼에 휘말리도록 하는 데 있었 다. 당장은 채철민이 유리한 쪽으로 홀러 가지만 유동자금이 마른 상황이라 자금 을 마련하려면 똥줄이 탈 수밖에 없다
“10일후가 기대되는군.”
투여된 약은 독이 아니다. 한 달가량 육 체를 가사상태로 만드는 약이다. 며칠만 있으면 약은 자연스럽게 해독이 된다. 그 럼 일우그룹은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 것이디:
“혼란이 혼란을또부르겠지.”
정우는 일우그룹을 말리고, 말려 한톨 의 핏물도 남지 않도록 고사시킬 작정이 다. 하지만 회사는 망해도 재벌은 3대가 간다는 말이 있었다. 망하기 직전에 남아 있는 재산을 빼돌리면 곤란했다. 그래서 서로가 물고 물리는 팽팽한 대치국면을 만들고, 자금을 쏟아붓도록 계획한 것이 다
“조금만 더, 그게 함정이지.”
알면서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욕 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이번만 투자를 하 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상은 저 멀리에 있는 뜬구름과 같았다. 잡으려 고 할수록 도망치는, 끝에 가서는 아무것 도남지 않겠지.
“가득 차기 전에 저금통의 배를 가를 수는 없잖아”